새소녀 - 꿈을 따라간 이들의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김남주 옮김 / 이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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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캘리(신연선 작가)님 추천으로 벨마 월리스의 소설 <두 늙은 여자>를 읽고 너무 좋아서 국내에 출간되어 있는 벨마 월리스의 다른 책 <새소녀>를 중고로 구입해 읽었다. 새 책이 아닌 중고책을 구입해 읽은 건, 이 책이 현재 절판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벨마 월리스 책 좋은데 왜 절판일까. 이 책이 나왔을 때 알아보지 못한 게 너무 아쉽고 미안하고, 유튜브 '핀드티브이(PINNED TV)'를 통해 벨마 월리스의 책을 소개해 주어 이제라도 읽게 해준 캘리님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감사해요ㅠㅠ). 


소설은 벨마 월리스의 전작인 <두 늙은 여자>와 마찬가지로 알래스카 원주민들에게 전승되어 온 전설을 바탕으로 한다. 그위친족 소녀 '주툰바'는 어릴 때부터 요리나 바느질보다는 남자 형제들과 함께 달리기를 하고 사냥하러 다니는 걸 좋아했다. 새들이 내는 소리를 완벽하게 흉내 내서 '새소녀'라는 별명이 붙은 주툰바는 아무와도 결혼하지 않고 평생 이대로 살고 싶다. 그위친족이지만 주툰바와는 다른 무리에서 자란 소년 '다구'는 어릴 때부터 달리기나 사냥보다는 자연을 관찰하고 몽상하기를 즐겼다. 일 년 내내 따뜻한 '해의 땅'에 관한 전설을 들은 다구는 언젠가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소망을 남몰래 품고 있다. 


<두 늙은 여자>가 늙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무리에서 쫓겨난 두 여자가 보란 듯이 생존에 성공하는 해피엔딩 스토리였기 때문에 <새소녀>도 그럴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주툰바와 다구는 둘 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규범(성역할)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리에서 눈총을 받고 각자가 원하지 않았던 삶의 방식을 강요 당한다. 결국 주툰바는 무리에서 이탈하는 편을 택하고 다구는 일단 무리의 요구를 따르는 편을 택하는데, 주툰바는 물론이고 (우여곡절 끝에 원하던 삶을 살게 된 것처럼 보였던) 다구조차 잔혹한 일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이란 이래도 비극 저래도 비극인 걸까 싶었다. 


그렇다면 그 비극을 만드는 건 무엇일까. 그들의 운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 소설에서 주툰바와 다구를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뜨린 건 그들의 운명이라기보다는 그들이 마주친 인간, 더 정확히는 혐오에 세뇌된 일부 인간이다. 우리 종족은 옳고 다른 종족은 나쁘다는 말. 여자는 이렇게 살고 남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 이런 말을 어릴 때부터 주입 당하고 그 말의 진위를 의심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이 눈앞의 인간을 괴롭히고 그것을 합리화한다. 머나먼 알래스카의 원주민들이 옛날부터 들어온 전설이라는데 요즘 세상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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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의 꿈
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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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 기자님의 추천으로 넷플릭스에서 영화 <기차의 꿈>을 보고 너무 좋아서 원작 소설을 찾아 읽었다. 근데 소설과 영화의 내용이 비슷하나 같지 않다. 일단 영화와 소설의 큰 줄거리를 거칠게 요약하면, 고아 출신의 가난한 백인 남자 로버트 그레이니어가 주로 육체 노동에 종사하며 한 평생을 살다 간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이에 한 여자와 사랑에 빠져 미래를 약속하기도 하고, 그 여자와의 사이에서 예쁜 딸을 얻기도 하고, 화재로 가족과 집을 모두 잃는 등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넓게 보면 그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고, 그래서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는 - 평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을 산 사람이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찬사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원작 소설을 읽었는데, 줄거리는 동일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이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가령 영화에서 로버트는 중국인 노동자가 백인 노동자들에게 죽임을 당할 때 그들을 말리려다가 저지 당하고 끝내 그를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해 평생 동안 죄책감을 느낀 것으로 묘사된다. 반면 소설에서 로버트는 중국인 노동자를 죽이려는 백인 노동자 무리에 자발적,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영화에 소년 시절의 로버트가 숲에서 부상을 당해 죽어가는 남자를 만나는 장면이 짧게 나오는데, 소설에는 이 남자의 서사가 제법 길게 나오고 그 내용이 상당히 끔찍하다.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소설에는 나오는 암소 이야기도 충격적이었다. 작가가 왜 이런 소설을 썼는지, 감독(각본도 담당함)은  원작 소설을 그렇게(낭만적이고 감동적으로) 각색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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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플롯 - 문학에서 발견하는 무한한 좌표들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6
황모과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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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인 나현은 이혼 후 혼자서 아들을 키우는 언니 미현의 집에 얹혀살고 있다. 반년간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현은 언니와 조카의 행동에 묘한 위화감을 느낀다. 언니가 나현만 보면 나가서 돈 벌라고 타박하고, 조카한테 장난을 치면 낄낄대며 웃어주는 건 예전과 똑같은데, 왠지 모르게 다들 예전보다 감정이 메마른 듯하다. 결국 나현은 '김듀라 샐비지 클리닉'이라는 곳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감각 과잉 감정 과발산증'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나현이 보기에는 다른 사람들이 '감각 상실 감정 무발산증' 같은데 자신이 문제라니. 그런 나현의 눈앞에 더욱 이상한 문장이 뜬다. '제87차 서브플롯'은 실패했으니 다시 '메인플롯'으로 돌아간다고. 


황모과의 소설 <서브플롯>은 첫 번째 장(章)만 보면 백수인 여동생과 현실적인 언니, 귀여운 조카, 이렇게 세 사람이 나오는 가족 드라마처럼 보인다. 하지만 첫 번째 장의 끝에서 이 이야기는 '메인플롯' 즉 실제의 나현이 경험한 '서브플롯' 중 하나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대체 나현의 실제 인생(메인플롯)은 무엇인지, 살면서 어떤 일을 겪었기에 그것을 소화하기 위해 이토록 많고 다양한 서브플롯을 필요로 하게 되었는지를 궁금해하게 만든다. 나현은 처음엔 메인플롯의 원인 또는 결과를 바꾸기 위한 용도로 서브플롯을 이용하려고 했지만, 수많은 서브플롯을 경험하면서 자신이 바라는 완벽한 서사는 실현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게 된다. 최종적으로 나현은 자신이 경험한 메인플롯과 수많은 서브플롯을 통해 얻은 교훈 및 아이디어를 조합해 자기만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인간이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이유, 인간에게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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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데이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0
서수진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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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유진은 호주 남자 데이브와 연애 중이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유진은 졸업 후 도망치듯 호주로 떠났고,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술집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데이브와 연인으로 발전했다. 두 사람은 연애 초반부터 각자가 나고 자란 문화의 차이 때문에 크고 작은 다툼을 빚는다. 예를 들어 유진은 정식으로 결혼할 사이도 아닌데 부모님께 자신을 소개하고 싶다는 데이브가 너무 성급한 것 같은 반면, 데이브는 자신을 좋아한다면서 자신의 가족과는 만나고 싶지 않다는 유진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호주와 한국을 오가며 5년 넘게 연애를 이어간다. 


서수진 작가의 소설 <유진과 데이브>를 한 줄로 요약하면 '한국 여자와 호주 남자의 국제 연애 이야기' 정도가 될 것이다. 처음엔 나도 딱 그 정도를 기대하고 읽었는데, 읽어보니 그렇게 단순히 요약할 만한 내용이 아니다. 유진과 데이브 사이에는 문화 차이만 있는 게 아니라 인종 차이, 계급 차이, 젠더 차이도 있다. 호주 안에서도 시드니의 문화와 태즈메이니아의 문화가 다른 것처럼 지역 차이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떤 커플이든 처음에는 사랑만으로 시작했더라도 어느 순간부터는 사랑만으로 버틸 수 없는 지점이 온다. 반대로 처음에는 사랑만으로 시작한 관계는 아닌데 점점 사랑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유진과 데이브는 전자일까 후자일까. 전자 같은 후자, 후자 같은 전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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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 눈물 참은 눈물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승우 지음, 서재민 그림 / 마음산책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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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 짧은소설 시리즈를 좋아한다. 이 시리즈로 나오는 책들에는 일반적인 단편보다도 훨씬 짧은 길이의 소설이 주로 실리는데, 그 짧은 길이의 소설에도 작가의 성향이나 특징이 드러나는 것이 재미있다. 이승우 작가의 <만든 눈물 참은 눈물>도 그렇다. 이승우 작가의 소설에는 비슷한 듯 다르거나 다른 듯 비슷한 것 사이에서 고민하거나 갈등하는 인간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책에서도 그렇다. 


가령 표제작 <만든 눈물 참은 눈물>에서 화자인 '케이'는 어떤 일 때문에 사죄하며 눈물을 참는 영화배우의 모습을 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참는 것과 안 나오는 눈물을 흘리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어려울지 생각한다. 출간 당시에는 주목을 못 받았지만 어느 명사의 추천을 받으면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있다면 그 책을 걸작으로 만든 것은 작가인가 명사인가(<걸작의 탄생>), 절판된 소설집의 개정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마음에 들지 않아 두 편을 제외한다면 그 책은 개정판인가 새 책인가(<훼손>), 개정판을 내면서 문장을 다 뜯어고치면 같은 글이라고 볼 수 있는가(<최선의 문장>) 등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들을 소설의 소재로 삼은 것이 흥미롭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집 이야기>라는 단편이다.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면, 부자가 자신이 살 호화 저택을 몇 년에 걸쳐서 짓는 동안, 목수는 검소한 모양의 자기 집을 몇 달 만에 완성하고 집 없는 사람들에게도 집을 지어줘 거대한 마을을 이루었다는 이야기이다. 옛날 동화 같지만, 돈이나 집 등을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고 그걸 자랑하는 걸 성공이나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많이 보다가 이런 이야기를 읽으니 위로가 되었다. 어차피 부자는 못 되니 목수라도 되어야 할 텐데 그조차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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