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궤적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랫동안 오쿠다 히데오라고 하면 '닥터 이라부'가 나오는 <공중그네>, <인 더 풀> 같은 휴먼 드라마풍의 소설을 떠올렸다(사실 이 소설들도 읽은 지 너무 오래되어 내용이 가물가물하다). 그러다 작년에 오쿠다 히데오가 쓴 본격 범죄 소설 <리버>를 읽고 그가 범죄 소설도 매우 잘 쓴다는 걸 알게 되었고, <리버>보다 먼저 발표한 범죄 소설 <죄의 궤적>을 구입해 읽어 보았다. 읽어보니 과연 기대한 대로 재미있다. 다양한 인물이 나와서 몰입하기 힘든 면이 없지 않았으나, 각 인물의 캐릭터를 파악하고 서사의 줄기를 이해하고 난 후에는 다음 전개가 궁금해 잠을 잊을 정도로 정신없이 읽었다(그래서 지금 좀 피곤함...).


이야기의 배경은 도쿄 올림픽 준비가 한창인 1963년의 일본. 도쿄 아사쿠사의 한 저택에서 전직 시계상인 남성이 죽은 채로 발견된다. 수사에 투입된 경시청 형사 오치아이 마사오는 주변 탐문을 통해 얼마 전 이 동네에 홋카이도 방언을 쓰는 남성이 나타났으며, 그 남성은 동네 아이들에게 바보라고 불릴 만큼 지능이 낮아 보인다는 정보를 얻는다. 한편 아사쿠사에서 멀지 않은 산야라는 지역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어머니를 돕고 있는 마치이 미키코는 야쿠자인 남동생 아키오가 얼마 전 데려온 우노라는 청년이 신경 쓰인다. 재일조선인 출신으로 온갖 차별을 당하며 살아온 미키코는 아키오가 데려온 청년이 자신의 가족을 위험에 빠뜨릴까 봐 불안하다. 


소설은 형사인 오치아이와 여관 집 딸 미키코, 그리고 문제의 청년 우노 간지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우노 간지는 일본 최북단에 위치한 홋카이도에서도 북쪽으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레분토라는 지역에서 온 청년이다. 어릴 때 계부에게 심한 학대를 당했고 물장사를 하는 친모에게는 방치 당했으며, 빈집털이로 소년원을 들락날락하다가 방화 사건에 휘말리는 바람에 도망치듯 도쿄로 왔다. 도쿄에서도 빈집털이로 연명하던 그는 도둑질을 하러 들어간 집에서 야쿠자의 소동을 목격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불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점점 더 큰 범죄에 연루된다. 아마도 우노를 통해 작가는 범죄 피해자인 사람이 범죄 가해자가 되는 '궤적'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은데, 범죄 피해자여도 가해자가 되지 않고 바르게 잘 사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나로서는 이 소설에 나오는 범죄자의 변명 또는 입장을 이해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보다 이 소설에서 재미있었던 부분은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준비가 한창인 1963년 일본의 풍경과 그 시절 범죄 수사 과정에 대한 묘사다. 당시 일본은 휴대폰, 인터넷이 없는 건 당연하고 텔레비전, 집 전화도 널리 보급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경찰 간에 연락을 주고받을 때에도 공중전화를 이용해야 했다. 시즈오카나 홋카이도 같은 먼 지역에 있는 경찰과 문서라도 주고받을 때에는 편지를 쓰거나 일일이 사람을 보내야 했다. 인터넷이 보편화된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다. 정확하기로 유명한 일본의 기차 시간표를 이용해 범인을 추리하거나 체포하는 과정은 마츠모토 세이초의 소설 <점과 선>을 연상케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매를 예방하는 뇌활동 창작 종이접기 - 뇌를 깨워 100세까지 활기차게!
다테 히로미츠 지음, 니시 타케유키 감수 / 이은북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종이접기가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니 처음 알았어요! 가족들과 해봐야겠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할머니, 개, 그리고 죽도록 쓰기
앤 패칫 지음, 정소영 옮김 / 복복서가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저자는 앤 패칫이다. 1992년 첫 소설 <거짓말쟁이들의 수호성인>으로 데뷔했고, 2001년 출간한 소설 <벨칸토>가 미국에서만 백만 부 이상 판매되고 전 세계 서른 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2012년에는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대단한 이력을 가진 작가인데, 부끄럽게도 나는 이번에 이 책을 읽고 앤 패칫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저자가 어떤 이력을 가진 작가인지, 얼마나 유명한 작가인지 몰랐고, 이 책 한 권으로 저자의 팬이 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국내에 출간된 앤 패칫의 책 전부를 주문했거나, 주문하려고 장바구니에 넣어둔 상태다. 에세이가 이렇게 좋은데 소설은 얼마나 좋을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앤 패칫을 알았던 사람은 당연하고, 나처럼 앤 패칫에 대해 몰랐던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으면 앤 패칫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되고, 좀 더 알고 싶어질 것이다. 저자는 현재 미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작품이 널리 읽히는 작가이지만, 여섯 살 때부터 장래희망이었던 작가가 되기 위해 경력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소설로는 생계를 해결할 수 없어서 잡지사로부터 청탁 받은 온갖 글을 썼다. 그는 이 시절을 매문을 해야 했던 불행한 기억이 아닌, 돈을 받으면서 (돈 주고도 못 받을) 글쓰기 훈련을 한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한다. 그 시절이 없었다면, 부모의 이혼과 가난으로 순탄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이나 자립과 창작, 연애와 결혼(그리고 이혼) 문제로 분주했던 청년 시절, 우여곡절 끝에 작가로 성공하고 완벽한 반려자까지 얻었으나 가족과 친구, 반려견을 잃는 과정에서 느낀 심적 고통을 글에 담을 용기를 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저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나는 내가 사랑했던 이런저런 사람들과 오랜 기간 떨어져 살았다. 언쟁과 실망이 생겼고, 그중 대부분은 사소하고 쉽게 화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서로를 향한 사랑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멀어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타인과의 관계를 정의하는 것은 바로 갈라섬과 화해를 통해서, 사랑과 사랑에 대한 의심을 통해서, 섣부른 판단과 재회를 통해서인 것이다." (457쪽)


이 책에는 저자의 엄마쪽 할머니와 사별한 이야기도 나오고, 열여섯 해를 함께 산 반려견 로즈를 무지개 다리 너머로 떠나 보낸 이야기도 나온다.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데, 저자의 초기 경력이었던 논픽션 작가로 사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어린 시절 저자를 매혹했던 이야기, 대학 시절 자신에게 영향을 준 스승들과 식당에서 일하며 소설을 구상한 이야기, 작가를 위한 보조금을 받아서 마침내 첫 장편 소설을 완성하고, 첫 책을 출간하고 북투어를 다니고 독자를 만나고 직접 독립서점을 차린 이야기 등등이 다채롭게 실려 있다. 글쓰기 또는 작가 되기에 관심이 있는 독자를 위한 실용적인 정보 사이에 저자의 사적인 이야기 - 가족, 친구, 연애, 결혼, 이혼 등 - 가 적절하게 담겨 있어서, 마치 앤 패칫이라는 미국인 여성의 일생을 담은 미국 드라마 시리즈를 보는 것 같았다. 문장도 좋아서, 오래 곁에 두고 다시 읽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좋아 보여서 다행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주란 지음, 임수연 그림 / 마음산책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에 나는 고통의 원인을 찾아서 그것을 제거하는 방식의 서사를 좋아했다. 그러나 지금은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 또한 욕심이라는 걸 받아들이고(인생은 원래 고통의 연속이다), 고통의 비중을 낮추기 위해서 자신의 세계를 전보다 넓히는 사람의 이야기에 더 끌린다. 이주란의 소설들이 그렇다. 이주란의 소설에는 작거나 크거나 오래되거나 새로운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긁으며 통증을 확인하는 대신 사람을 만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새로운 장소에 가면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회복의 힘을 채운다.


이주란의 짧은 소설 모음집 <좋아 보여서 다행>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헤어진 남자의 개를 돌보러 간 여자, 한 번도 본 적 없는 친부를 만나러 간 남자, 요양병원에 입원한 이모를 만나러 간 여자, 오랜만에 연락 온 언니의 아이가 하는 공연을 보러 간 여자 등등. 이들은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그래서 얼마나 힘든지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고 그저 눈앞의 음식을 먹고, 나무들을 관찰하고, 절판된 시집을 찾는다. 이따금 자신을 깎아내리는 말을 했던 사람의 기억이나 불합리한 대우를 당하고도 사과받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라 괴롭기도 하지만 그걸 밖으로 꺼내지는 않는다. 그저 버티면서 시간의 흐름이 고통까지 씻어가 주는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 


이런 기다림의 자세가 누군가에게는 수동적이고 회피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정말 고통스러울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다른 생각을 하면서 고통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 아닌가. 그러다 보면 왜 고통스러웠는지조차 잊게 되고, 어쩌면 행복이라는 걸 느낄 수도 있게 되는 것 아닌가. 말로 표현된 감정만이 감정의 전부는 아닌 것처럼, 소설로 쓰인 내용만이 내용의 전부는 아님을, 사람도 인생도 그렇다는 사실을 이주란의 소설은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부족한 게 아니라 그래서 충분하다고 느끼게 하는 점. 이 점이 내가 생각하는 이주란의 소설의 매력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듣는 사람
박연준 지음 / 난다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들어 고전 읽기에 관한 책이 많이 보인다. 그중 몇 권을 읽으면서 사람마다 어떤 책을 고전으로 여기는지, 고전이라 불리는 책 중에서도 어떤 책을 주로 읽는지가 조금씩 다르다는 걸 느꼈다. 박연준 시인이 읽은 고전 서른아홉 권을 소개하는 책 <듣는 사람>이 대표적이다. 이 책에는 다른 작가들이 쓴 서평집에선 보기 힘든 분야의 책이 상대적으로 많이 보인다. 바로 시집이다. 박용래 <박용래 시선집>, 김소월 <진달래꽃>, 서정주 <화사집>, 페르난두 페소아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앤 섹스턴 <밤엔 더 용감하지> 등 시인이 특별히 애정하는 시와 시집, 시인 이야기는 만날 기회가 드물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서평집 읽기의 장점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하면 첫 번째는 그동안 몰랐던 책을 알게 되는 것, 두 번째는 이미 읽은 책을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다시 보는 것이다. 첫 번째에 속하는 책 중에는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모자>와 로맹 가리의 <흰 개>가 있고, 둘 다 얼른 읽어보고 싶어서 바로 장바구니에 추가했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아닌, 다시 말해 제목은 알고 있었지만 읽어보지는 않은 책들 중에서는 이상의 <봉별기>와 장자 <장자>를 읽어보고 싶다. 이상을 비롯해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문인들이 쓴 시나 소설을 그동안 많이 안 읽은 것 같다(아무래도 학교 다닐 때 지겨울 정도로 많이 봐서 졸업 이후로는 의도적으로 피한 것 같다). <장자>도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으니 읽어보는 것으로. 


오래전에 읽은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을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은 아주 큰 수확이다. 제목만 보면 요리책 같고 나도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저자의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간단한 요리가 좋다고, 재료 그대로를 먹는 건 더 좋다고 말"하는 "반(反)요리책"이다. "나는 요리하는 여성이 아니다. 나와 생각이 같은 다른 여성들을 위해 한마디 하자면, 나는 여성이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화덕 앞에 머물며 음식을 만들고 가사에 매여 있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 나는 요리보다는 좋은 책 읽기(혹은 쓰기), 좋은 음악 연주, 벽 세우기, 정원 가꾸기, 수영, 스케이트, 산책 등 활동적이고 지성적이거나 정신을 고양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책 40~41쪽 인용)"(65쪽) 한 줄 한 줄이 밥보다 맛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