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주식회사
잭 런던 지음, 한원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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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은 죽여 마땅한 사람을 죽이고 있다고 믿는 암살 조직(암살국)이 있다. 이 조직의 수장인 이반 드라고밀로프는 어느 날 백만장자 청년 윈터 홀에게 암살 의뢰를 받는다. 암살 대상은 바로 드라고밀로프 자신. 자신이 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득 당한 드라고밀로프는 조직원들에게 자신을 암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단, 의뢰는 1년 간 유효하고 그동안 조직원 중 누구도 의뢰 대상을 제거하지 못하면 의뢰가 철회된다는 조직의 규약에 따라 드라고밀로프 또한 1년의 도주 기회를 얻는다. 갑자기 보스를 죽이라는 명을 받은 조직원들과 하루 아침에 조직원들을 피해 도망 다니는 신세로 전락한 드라고밀로프의 대결. 승자는 누구일까.


미국 작가 잭 런던의 유작이기도 한 <암살주식회사>는 1910년대에 쓰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내용이 흥미진진하다. 소설의 전반부는 도주하는 드라고밀로프와 그를 추적하는 조직원들이 서로 쫓기고 쫓는 모습을 중점적으로 그리면서 마치 범죄 영화나 스릴러 영화처럼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후반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조직이 정한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드라고밀로프와 조직 구성원들의 합의가 있으면 원칙을 바꿀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윈터 사이에 일종의 논쟁이 벌어진다. 조직이 원칙을 준수하면 자신이 죽게 되는데도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드라고밀로프의 모습이 평범한 인간인 내 눈에는 모순적으로 보이는데, 잭 런던이 이 소설을 집필하다 완성하지 못하고 포기한 것도 어쩌면 그래서가 아닐까(아닐 수도).


모순적으로 보이기는 해도, 실제로 어떤 조직(특히 정부와 기업)에서 법이나 규칙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이 정도로 엄격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현실에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으로 자신에게는 규칙을 느슨하게 적용하고 남에게만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인간들이 허다하다. 현실에 암살국이 존재한다면 남아 나는 인간이 없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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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스 킹!!!
김홍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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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구'는 평범하다 못해 지루한 시골 마을에서 평생을 살았다. 그런 마을에 어느 날 '킹 프라이스 마트'가 생긴다. 킹 프라이스 마트란 무엇인가. 그것은 천재적 장사꾼 혹은 최악의 사기꾼으로 불리는 '배치 크라우더(본명 박치국)'가 세운 창고형 마트로, 천구는 왜 이런 대형 상업 시설이 자신이 살고 있는 허름한 시골 마을에 생기는지 의문을 품는다. 한편 천구의 엄마이자 마을의 '탑티어' 무당인 '억조창생 이진솔'은 멀쩡한 몸으로 놀고 먹는 막내아들 천구를 보다 못해 킹 프라이스 마트에 취직시키는데 여기에는 모종의 음모가 있다. 이를 알 리 없는 천구는 손님들의 부당한 요구를 처리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데...


김홍의 장편소설 <프라이스 킹!!!>은 제29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이다. 이 소설에는 기발함을 넘어 엉뚱하게 느껴지는 설정들이 다수 나오는데, 처음에는 좀 억지스럽다고 느껴졌지만 나중에 보니 무속인이 정치인들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이라든가, 돈으로 코끼리도 사고 득표율도 사고 사람의 마음도 사고 다 살 수 있지만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상태로('그냥' 신라면 다섯 박스를 하자 없는 상태로) 사는 건 어렵다는 게 너무나 현실적이라서 웃펐다. 결국 천구는 세상의 '진실'을 알게 된 후에 엄마에게도 박치국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자기만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는데, 정치 권력(엄마)과 자본 권력(박치국)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만의' 삶을 산다는 건 뭘까. 그게 가능할까. 나도 답을 찾고 싶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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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낙천적인 아이 오늘의 젊은 작가 50
원소윤 지음 / 민음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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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를 좋아해서 관심 가는 책이 나올 때마다 구입해서 읽는다. 원소윤의 <꽤 낙천적인 아이>는 저자에 대해 잘 몰라서 책이 처음 나왔을 때는 구입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이 책에 대한 반응이 좋은 걸 보고 호기심이 동해서 읽어 보았다. 읽어보니 과연 반응이 좋을 만하다. 저자가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서 그런지 술술 잘 읽히고 재미있다. 


저자는 서울대 종교학과를 나왔다. 서울대를, 그것도 종교학과를 나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런저런 생각을 할 텐데 일부는 틀리고 일부는 맞다. 일단 서울대를 나왔다고 하면 부유한 집안에서 고학력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공부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저자의 부모는 육체노동자이고 집안에 서울대는커녕 대학을 나온 사람도 손에 꼽는다. 조부모, 부모가 천주교 신자이고 저자도 어릴 때부터 성당에 다녔지만, 저자의 부모가 종교 생활에 열심인 건 세 살 때 사고로 세상을 떠난 저자의 오빠 때문이기도 하다. 눈앞의 딸을 끔찍이 사랑하지만 죽은 아들을 더 그리워하는 엄마 아빠를 원망할 수도 없고 온전히 받아들이기도 힘든 마음을 평생 안고 산다는 건 뭘까. 내 눈에 저자는 철이 든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을 때 이미 철이 든 사람처럼 보인다. 


소설은 저자의 어린 시절, 학창 시절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과감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솔직하게 보여준다(남자친구가 저자의 복통을 해결해 주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ㅋㅋㅋ). 다 읽고 나서 이 소설이 '소설' 맞나 에세이 아닌가, 자전 소설과 에세이의 경계는 무엇인가 같은 질문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정답이 무엇이든 간에 이 책이 재미있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두 번째 책도 나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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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혼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4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황종민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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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온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 <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를 읽은 이후로 츠바이크의 팬이 되어 그의 작품을 야금야금 찾아 읽고 있다. 그 책의 뒤를 이어 마찬가지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온 츠바이크의 단편집 <감정의 혼란>에는 네 편의 중편이 실려 있다. 


네 편의 중편은 츠바이크의 작품답게 하나같이 극적이고 재미있다. 스위스의 한 호텔에서 어머니에게 수작을 거는 바람둥이 남작 때문에 뜻하지 않은 모험을 하게 된 열두 살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불타는 비밀>, 인도네시아에서 의사로 일하다 귀부인과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배에서 숨어 지내는 신세로 전락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아모크 광인>, 도박장에서 만난 청년을 구원해 주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노부인의 이야기를 그린 <어느 여인의 인생의 스물네 시간>, 국가적으로 인정 받는 학자가 과거에 품었던 비밀스러운 애정을 보여주는 <감정의 혼란> 등 모든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고 자극적이다(넷플릭스 왜 보나, 슈테판 츠바이크 책 보면 되는데).


특히 <감정의 혼란>은 이성애 관계를 중점적으로 그린 앞의 세 편과 달리 (남성 간의) 동성애를 그린 점이 다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난봉꾼으로 지내다 우연히 듣게 된 강연 덕분에 영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마침 그 강연을 한 교수의 집에서 하숙생을 구하고 있어서 그 집에서 같이 살게 되는데, 점점 교수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일반적으로 스승이 제자를 바라볼 때의 눈과 다름을 느낀다. 어찌할 바를 몰랐던 주인공은 교수의 젊은 아내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으로 관계의 변화를 꾀하는데, 그때 그의 본심이 무엇이었는지는 나중에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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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투맨 오늘의 젊은 작가 46
최재영 지음 / 민음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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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대 중반의 시나리오 작가 '영호'는 아직 이렇다 할 만한 작품을 내놓지 못한, 사실상 백수나 다름없는 상태다. 그러던 어느 날 영호는 친분이 있는 피 PD로부터 3년 전에 쓴 <맨투맨>의 시나리오가 장편 영화로 만들어질 것 같다는 연락을 받는다. 기쁨도 잠시, 시나리오를 영상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대대적인 각색이 이루어질 건 불 보듯 뻔했는데, 피 PD는 각색을 맡은 시나리오 작가 '혜진'을 소개해 줄 테니 원작자로서 의견을 제시하라고 한다. 영호는 혜진과 기싸움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예상했지만, 예상과 달리 혜진은 영호와 마찬가지로 잘나가는 작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자신의 글에 대한 확신도 없고 창작에 대한 의욕이 많이 꺾인 상태였다. 그런 혜진의 모습에서 자신의 현재 상태를 본 영호는 이제 정말 뭐라도 해야겠다고 느낀다. 


최재영의 두 번째 장편소설 <맨투맨>은 오늘날 창작자들의 현실을 사실적이면서도 유쾌하게 보여준다. 영호는 어릴 때 보고 가슴이 뛰었던 영화 <록키>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지만, 업계는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가 아닌 작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취향, 트렌드에만 신경 쓰고 그들의 비난, 외면을 받지 않는 일에만 골몰한다. 결국 영호와 같은 창작자들은 소비자들에게 더 많이 선택받으면서도 더 적게 비난받을 만한 작품을 만들라는 압박을 받게 되는데, 영호는 이런 상황이 답답하지만 이 길 말고는 살 길이 없다는 생각에 더 큰 답답함을 느낀다. 이런 영호의 상황이나 감정은 작품 속 작품, 소설 속 시나리오 <맨투맨>에 반영되는데, 각각의 요소가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식으로 서사가 전개, 발전되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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