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책 - 책은 삶이 되고 너는 내가 된다
이은혜 지음 / 마음산책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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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읽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데 주변에 그럴 사람이 없어서, 열심히 읽은 책의 내용이나 감상이 휘발되는 게 아까워서, 개인 블로그에 독후감 비슷한 리뷰를 남기기 시작한 게 17년 전의 일이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다른 취미 활동은 쉬거나 그만두어도 책 리뷰 쓰기만은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첫째로 책을 계속해서 읽었기 때문이고, 둘째로 지금보다 더 나은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글이 지금보다 더 나은 글이고 내가 쓰고 싶은 서평의 형태일까. 인문출판사 글항아리 편집장 이은혜의 서평집 <살아가는 책>을 읽으며 나도 이런 글을, 이런 서평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독자가 읽고 싶게 만드는 서평의 기본적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뿐 아니라 저자가 직접 경험했거나 인터뷰를 통해 취재한 내용을 더해 책 속의 현실과 우리(저자와 독자)가 속한 현실을 연결한 것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영국의 역사학자 시어도어 젤딘의 책 <인간의 내밀한 역사>를 읽으며 이 책에 나오는 가사도우미 쥘리에트의 사연과 자신의 살림을 도와주는 가사도우미 이성미 씨의 사연을 겹쳐 본다가사도우미와의 관계를 고용주와 고용인의 그것으로만 생각했다면, 그와 대화를 나눌 생각도 못했을 것이고, 그가 이 집에서 일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험난한 과정을 거쳤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중년, 여성, 가난, 육체 노동자 같은 일종의 태그들로 그를 납작하게 보고 얄팍한 판단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독일의 철학자 한스 블루멘베르크의 책 <난파선과 구경꾼>을 읽으며 자신이 만난 친족 성폭력 피해자를 떠올리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당한 고통을 글로 써서 책으로 낼 만큼 강한 사람이었지만, "단말기에 카드를 '삽입'하라"는 일상적인 문장에도 얼굴이 파래질 만큼 피해를 현재 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글을, 그가 겪은 피해와 고통을, 이야기로 사연으로 책으로 교훈으로 소비하는 것은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가. 스스로 '구경꾼'이라고 자조하면서도 계속해서 이런 책을 찾아 읽고(저자의 경우 '만들고') 또 그래야 하는 이유는 뭘까. 


이탈리아의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의 책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읽다가 출판인들과 함께 영국의 에든버러를 여행했을 때의 일화를 떠올리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어떤 장소는 실제로 그 장소에 존재하는(또는 존재했던) 지형이나 지물뿐 아니라 그 장소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나 사건 등으로 더 오래 기억되기도 한다. 나에게도 그런 장소들이 있는데, 인간은 왜 기억하고 싶은 건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잊으면서 잊고 싶은 건 계속해서 기억할까. 이런 식으로 어떤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읽은 책에서 그 답을 찾는 데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새로운 질문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책 읽기, 글쓰기를 한 점이 멋지고 본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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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 황인찬의 7월 시의적절 7
황인찬 지음 / 난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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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은 2024년 7월의 '시의적절' 시리즈로 나온 황인찬 시인의 산문집이다. 산문만으로 이루어진 책은 아니고 산문도 있고 시도 있는데, 시인이 썼지만 시집은 아니라는 이유로 산문집이라고 썼다. 시의적절 시리즈는 매달 새로운 작가의 책이 나오는 콘셉트이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해당하는 달의 특징을 부각하는 내용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책은 7월에 출간되는 것을 목표로 제작된 책이지만 7월 또는 여름의 정서가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시, 시 쓰기, 시인으로 산다는 것에 관한 내용이 많아서, 저자가 얼마나 시에 진심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생각한 것은, 저자는 시를 너무 사랑해서 시만 생각해도 마음이 벅차고, 시 앞에서 자신은 한없이 작고 무용하고 무력한 존재인 것 같고, 그래서 시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넘어 죄의식마저 느끼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도 시를 쓰지 않는 삶은 상상할 수 없고("다시 태어나도 나는 아마 시를 쓰겠지. 시쓰기에 매번 절망하고 실망하면서도, 스스로의 한계를 절감하면서도 또 쓰고야 말겠지"), 기왕 쓰는 것 제대로 쓰고 싶어서, 오래된 시 새로운 시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읽고, 존경하는 시인들을 만나 가르침을 청하기도 하는 것 같다. 저자 자신은 괴로울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나보다 더 소중하고 다시 태어나도 헌신하고 싶은 대상이 있다는 것이 그렇지 못한 나로서는 그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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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1톤의 독서
스가 아쓰코 지음, 김아름 옮김 / 에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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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1톤의 독서>는 1929년 일본에서 태어나 1998년 타계한 일본의 학자이자 작가인 스가 아쓰코의 독서 에세이집이다. 이 책의 제목이 <소금 1톤의 독서>인 이유는 서문에 나온다. 저자는 이탈리아 유학 시절에 만난 주세페 리카라는 이탈리아인 남성과 결혼했는데, 어느 날 시어머니가 며느리인 저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한 사람을 이해하기까지는, 적어도 1톤의 소금을 함께 핥아 먹어야 한단다." 저자는 이 말이 독서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매일 한 이불 덮고 자는 배우자도 1톤의 소금을 함께 먹기 전까지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듯이, 책도 한 번 읽어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번 반복해 읽어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저자가 여러 해에 걸쳐 다시 읽으며 그 의미를 다채롭게 인식한 책들이 나온다. 저자가 영문학 전공자이고 유럽에 거주한 적이 있어서인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앨리스 B 토클러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등 서양 작가들의 책이 주를 이룬다. 저자가 이탈리아에서 살 때 일본 문학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면서 다시 읽은 히구치 이치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 이야기도 있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로부터 난민과 약자의 문화를 읽고,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다시 읽으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의 의미를 실감한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이 책에 나온 책들을 전부 다 읽고 이 책을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부지런히 읽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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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이랑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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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이랑 하면 2017년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의 일화가 떠오른다. 최우수 포크음반상이라는 큰 상을 받았지만, 이 상은 트로피만 주고 상금이 없어서 월세 50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 트로피를 팔겠다고 했던, 시상식 조크인가 했는데 정말로 그 자리에서 관객에게 현찰 50만 원을 받고 트로피를 팔았던 그 사건은, 예술이라는 엄연한 노동을 하고 있지만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예술가, 창작자들의 현실을 보여준 사례로서 지금도 회자되곤 한다. 


나 역시 이랑의 팬으로서 그 일이 일어났을 때 그의 용기와 재치에 박수를 치며 환호했지만, 그에게 그런 기개 넘치는 면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건 아무래도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 덕분이다. 이랑은 이 팟캐스트에 종종 게스트로서 출연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줘 왔다. 그중에는 한국을 넘어 일본, 대만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기분 좋은 소식도 있었지만, 예술가가 되기 위해 분투하는 동안 부모에게 지지는커녕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당했고, 사랑하는 언니가 죽고, 자궁경부암 선고를 받고, 반려묘 준이치를 무지개다리 너머로 떠나보내는 등 그의 인생에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걸 알 수 있는 이야기도 많았다. 


그래도 그 정도면 이랑이라는 사람에 대해 꽤 많이 아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출간된 이랑의 산문집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를 읽고 어림도 없는 생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명문대를 나온 부모, 교사인 아버지, 부유한 외가, 단란한 삼 남매. 남들 눈에는 행복에 가까운 조건을 갖춘 가족으로 보였겠지만, 부모의 결혼에는 남모를 사정이 있었고, 아버지는 폭력적이고 어머니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했으며, 외가의 부는 친척들을 분열시키는 원인이 되었고, 언니는 K-장녀 콤플렉스에 시달렸고 남동생은 어려서부터 장애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 예술을 한다는 건 어떤 사람들 눈에는 이기적이고 무모하게 보였을지 몰라도, 이랑 자신에게는 살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이게 아니면 살 수 없는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어린 나는 보호자인 어른들 앞에서 화내면 안 됐고, 울면 안 됐고, 좌절하면 안 됐고, 슬프면 안 됐다. 그래서 얼굴을 쥐어짜서 웃고, 웃고, 그저 웃었다. 감정 표현의 자유, 기록의 자유, 상상의 자유가 없는. 그저 눈앞의 어른들에게 '모든 것이 무사하고, 그중 내가 제일 무사하다'는 신호를 발신해야만 하는 시간들이었다. (중략) 울지 않으면서도 몸 안에 있던 무거운 뭔가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다를 방법이 없을까. 금방 동나는 체력을 아낄 전략이 필요했다. 나는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20-1쪽) 


이 책은 원래 이랑과 친구들의 커뮤니티에 관한 책이 될 예정이었지만, 2021년 언니가 죽은 후 이랑과 언니, 엄마 이렇게 모녀 3인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되었다고 한다. '죽기 살기로' 썼다는 저자의 고백이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만큼 가슴 아픈 내용이 많지만, 책을 다 읽은 후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개운하고 후련했던 것은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쌓여 있던 가족에 대한 애증이나 원망 같은 감정이 책을 읽는 동안 정화되었기 때문일까. 죽음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삶으로 귀결되고, 미움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사랑으로 마무리되는 이 책을 많은 독자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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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31 12: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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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31 20: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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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31 22: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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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2 10: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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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쓰는 직업 - 국립중앙박물관 연구원, 일과 유물에 대한 깊은 사랑을 쓰다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신지은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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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국중박'이라는 줄임말로 주로 불리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지금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 전인 2022년에 나온 책이다. 저자 신지은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와 소장품을 소개하는 뉴스레터 <아침 행복이 똑똑>을 만드는 연구원이다. 박물관에서 일하는 사람이니까 유물이나 미술에 대해 잘 알겠지, 뉴스레터를 만드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글을 잘 쓰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글이 훨씬 더 좋았다. (나처럼) 유물이나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유물이나 미술에 관심이 가고, 가까운 주말이나 휴일에 박물관 나들이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글이다.


이 책은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로 나온 만큼 직업, 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대학에서 예술학,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으니 저자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좋아하는 일로 한다고 해서 밥벌이의 고달픔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일을 하면서 소모되는 부분을 일 덕분에 채울 수 있는 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누리지 못하는 복임에 분명하다. 가장 부러웠던 부분은 일하다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사무실에서 도보로 몇 분 거리인 전시실로 이동해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다는 것. 남들은 일부러 시간 내서 가야 하는 박물관이 직장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 아닐까.


저자가 뉴스레터로 전시와 유물을 소개하는 일을 하는 만큼, 책에 전시 보는 법, 유물 보는 법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저자는 오랫동안 유물에 대해 공부하고 글을 쓰는 일을 하면서 유물뿐 아니라 유물을 만든 사람, 유물을 만든 환경, 자연 등에도 두루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마음으로 이것을 만들었을까 상상하다 보면 그 어떤 유물도 특별해 보이고, 그것에 관해 쓴 글도 내용이나 표현이 더욱 생생해진다. 지금 내가 무심하게 대하는 사물 또는 대상이 미래에는 유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대하는 마음 또한 귀해진다. 이런 태도를 배울 수 있는 곳 또한 박물관이라니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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