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 - 뇌과학, 착한 사람의 본심을 말하다
김학진 지음 / 갈매나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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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경제학에선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 본다. 여기서 이기적이라 함은 경제적 이익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과연 인간이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존재인가. 일제 시대에 민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독립운동가나 군사 독재 시대에 민주화 운동에 발 벗고 나선 이들은 인간이 아니란 말인가. 이러한 사례만 보아도 인간을 움직이는 동기는 경제적 이익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경제적 이익보다 더욱 강력하고 원초적인 동기는 무엇인가. 고려대 심리학과 김학진 교수가 쓴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에 따르면, 그것은 바로 '인정 욕구'다. 인정 욕구란 말 그대로 타인으로부터 주목받고 관심을 얻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구를 일컫는다. 인정 욕구는 신생아 때부터 발달한다. 아기들은 엄마라는 대상을 향해 웃는 표정을 지으면 기본적인 욕구 - 따뜻함, 편안함, 안전함 등 -를 충족시킬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을 배우면서 인정 욕구를 발달시킨다. 이렇게 발달된 인정 욕구는 자라면서 육체적, 지적, 감성적, 예술적 차원으로 분화하면서 자신의 우수성을 드러내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고자 하는 심리로 자리 잡는다.


문제는 대부분의 욕구가 그렇듯이 인정 욕구 또한 끝이 없고,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인정받지 못할 때의 좌절감 또한 커진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갑질'이다.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들은 일상적인 인사나 매너, 서비스에도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받기 쉽고, 이로 인한 분노를 막말이나 폭력 등으로 표출하기 쉽다. 타인에 대해 험담하는 것도 인정 욕구의 또 다른 표현이다. 흔히들 뒷담화는 작은 집단에서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행위라고 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고 가치를 확인받기 위함이다. '우리 때는 어땠는데 요즘 아이들은 어떻다'는 식의 '꼰대' 발언 또한 젊은 사람들 잘 되라고 하는 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주장)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나 잘났다. 인정 좀 해달라'는 표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능력이나 인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얻는 일은 좋은 것인데 왜 멈춰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물론 뛰어난 능력과 인성은 그 자체로 장려되어야 하고 누구나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임이 분명하다. 단, 이러한 가치를 추구하는 인정 욕구가 또 다른 어두운 얼굴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62쪽)


그렇다면 타인을 인정하지도 말고 타인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지도 말라는 말인가. 물론 아니다. 저자는 문화권에 따라 사람들이 반응하는 보상 유형이 다르다는 것에 주목한다. 한국처럼 경쟁이 일상화된 문화권에서는 상대적인 만족감에 반응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내가 만 원을 벌었는데 남이 천 원을 벌면 기분이 좋지만, 내가 만 원을 벌었는데 남이 십만 원을 벌면 기분이 나쁘다. 재벌 총수라도 되지 않는 한 평생 기분이 나쁘다.



(사진 출처 : 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0640)



반대로 경쟁이 일상화되지 않은 문화권에서는 절대적인 만족감에 반응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만 원을 벌면 그뿐. 그 돈으로 뭘 할지만 생각한다. 반드시 문화권에 따른 차이는 아닌지도 모른다. 작년 리우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중국의 수영 선수 푸위안후이는 자신의 최고 기록을 경신해 기쁘다고 말해 화제가 되었다. 만약 한국 선수가 동메달을 따고 나서 이런 태도로 인터뷰를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은메달을 따도 금메달 못 딴 죄인 취급 당하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좋은 반응이 안 나올 게 뻔하다.


지나친 공감 능력은 집단의 리더들에게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처럼 성공한 CEO 중에는 공감 능력이 낮은 사람이 많다는 주장이 있다. 놀랍게도 정치와 종교 분야의 지도자들 중에도 타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가 존재할 확률이 다른 분야에 비해 현저하게 높다고 한다. 심지어 이들을 일반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부류와 구분해서 일종의 '성공한 사이코패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186쪽)


이 책에는 이타주의자의 인정 욕구 외에도 성공한 사이코패스,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뇌 차이, 중2병의 실체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이 실려 있다. 이것도 저것도 관심 있는 주제라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각 주제에 관해 더욱 자세하게 분석한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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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쇼 소녀 전래동화 2
키리오카 사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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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만화 너무 재밌고 귀여워요! 2권 결말 때문에 3권이 몹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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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경험 - 유발 하라리의 전쟁 문화사
유발 하라리 지음, 김희주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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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읽고 이해가 잘 안 되었는데 알라딘에서 어떤 분이 쓰신 서평을 읽고 겨우 이해했다. (북다이제스터 님 서재 http://blog.aladin.co.kr/713413104/9473632) 이렇게 잘 쓴 서평이 있는데 굳이 나까지 서평을 쓸 필요가 있을까 싶지마는, 나는 나대로, 이해가 딸리는 대로 서평을 써보는 것으로. 


이 책은 유발 하라리의 전작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가 워낙 좋았기에 출간되자마자 구입해 읽었다. 구입해 놓고 보니 이 책은 신작이 아니라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가 출간되기 7년 전인 2008년에 나온 구작이었다. 유발 하라리가 역사 학자인 줄은 알았지만 역사 중에서도 중세 역사, 그중에서도 군사 문화 전공인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이 책이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에 비해 주제가 좁고 내용이 깊은 것은 이때만 해도 저자가 전공 분야에서 자리 잡기 바쁜 '초보' 학자이자 작가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전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경험'이다. 저자는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다양한 문헌 자료를 통해 고증한다. 중세만 해도 전쟁은 특별한 경험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중세 시대 사람들은 신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신의 뜻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에 전쟁 또한 신의 섭리이며 전쟁에 나가는 것은 신의 섭리에 따르는 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전쟁에 나가 생사를 넘나들고 치명적인 부상을 입어도 그뿐이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다. 


이러한 풍조가 바뀐 것은 18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사이다. 이 시기 유럽에서는 신이 아닌 인간을 중심으로 사유하는 인문주의가 자리 잡고, 낭만주의와 계몽주의, 감성 문화가 유행했다. 근대인들 사이에서 전쟁에 나가면 개인적 성숙을 경험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는 소문이 퍼졌고, 전쟁 체험이 아무나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으로 여겨지기 시작하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너나 할 것 없이 전쟁에 나가려고 했다. 이들에게 전쟁은 아무나 할 수 없는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계시(revelation)'로 여겨졌다. 


이렇게 된 것은 전쟁이 실제로 특별한 경험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전쟁을 특별한 경험으로 해석하면서 지식으로서의 가치를 부풀리기 때문이다. 군대에 갔다 온 사람들이 몇십 년에 걸쳐 군대 이야기를 우려먹거나, 전쟁을 체험한 세대가 틈만 나면 "전쟁을 못 겪어봐서 배부른 소리 한다." 같은 말을 꺼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 사람이 실제로 특별한 경험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사람이 그 경험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특별하고, 누구나 할 수 없는 강렬하고 숭고한 경험으로 가치를 높였을 가능성은 부인하기 어렵다. 


전쟁을 긍정적으로 보는 체험담뿐 아니라 전쟁을 부정적으로 보는 체험담도 마찬가지다. 전쟁에 대한 환멸이나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고백하는 체험담 역시 주관적인 것에 불과하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 경험을 했는지 알 수 없고, 안다 한들 그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느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사람이 '주관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보기에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지 않았을 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겪은 것을 남이 그대로 겪을 순 없다. 내가 겪은 것을 남에게 이야기한들 그대로 알 순 없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체험하거나 이해하고, 남을 이해하고 남에게 이해받고 있을까. 내게 이 책은 전쟁 그 자체를 다룬 책이라기보다, 전쟁을 통해 소통과 공감의 암울한 민낯을 보여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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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5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6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 (합본, 특별판)
존 르 카레 지음, 최용준.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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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품의 순서만 바로잡으면 아쉬움이 없었을 듯. 작품 자체는 좋습니다. 책에 함께 실린 후기와 해설도 만족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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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 (합본, 특별판)
존 르 카레 지음, 최용준.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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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 남이 쓴 서평을 반드시 읽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읽기 전에 남이 쓴 서평을 먼저 읽는 편이 좋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책의 구성이 잘못되었다. 이 책은 존 르카레의 소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와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를 함께 실은 합본이다. 문제는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가 먼저 나오고(1961년 작),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가 나중에 나왔다는 것이다(1963년 작). 두 소설이 아무 관련이 없으면 모를까, 등장인물도 일부 겹치고 줄거리도 연결되는데, 굳이 나중에 나온 작품을 앞에 배치하고 먼저 나온 작품을 뒤에 배치한 출판사의 의도는 무엇일까. 현명한 독자라면 (나처럼) 책에 실린 순서대로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읽고 나서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를 읽지 말고, 331쪽부터 나오는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를 읽고 나서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읽기를 간곡히 권한다. 


둘째, 내용이 어렵다. 존 르카레의 소설은 똑같이 동서 냉전기의 영국이 배경인 첩보물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달리 선악 구분이 모호하고 다른 요소 없이 오로지 두뇌 싸움에만 치중한다. 그러니 책을 읽기 전에 간략하게라도 내용을 알아두면 좋다. 


먼저 존 르카레의 데뷔작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는 존 르카레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조지 스마일리가 주인공이다(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게리 올드만이 맡은 역할이 조지 스마일리다). 영국 정보부 소속 첩보원인 조지 스마일리는 공산주의에 가담한 혐의가 있는 외무부 직원 페넌을 면담하게 된다. 면담 결과 스마일리는 페넌이 결백하다고 확신하지만, 이튿날 페넌이 자살한 채 발견되어 스마일리는 충격을 받는다. 페넌의 집에 찾아간 스마일리는 자살이 아닌 이유를 몇 가지 찾게 되고 이를 상사에게 보고하지만, 상사는 사건을 묻으려고만 해 결국 스마일리는 사표를 낸다(이 소설 뭔가 국정원 마티즈 사건과 비슷하다. 왜인지는 소설에서 확인하시길...) 


존 르카레의 세 번째 작품이자 출세작이자 대표작인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의 주인공은 영국 정보부 소속 첩보원인 앨릭 리머스다(조지 스마일리는 조연으로 나온다). 한때 독일 지부 제일의 실력자였던 리머스는 동독 정보부 소속 첩보원 문트에 의해 첩보망이 파괴되어 한직으로 밀려난다. 이때 영국 정보부로부터 '관리관'이라는 자가 나타나 이 기회를 역으로 이용해 문트를 제거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이를 받아들인 리머스는 긴 준비 끝에 영국 정보부에서 쫓겨나 원한을 품은 인물로 보이는 데 성공하고, 자신에게 접근한 첩보원을 이용해 동독 정보부에 잠입한다. 과연 그는 무사할 수 있을까?


첩보전을 치르면서 서방은 개인을 희생시켜 왔다. 집단에 대한 개인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미명 아래 그렇게 한 것이다. 이것은 분명 서방의 위선이다. 나는 그것을 철저히 비난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개인의 사회적 위치를 평가하는 데 점점 더 공산주의적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558쪽)


셋째, 존 르카레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면 작품이 더 잘 보인다. 알려져 있다시피, 존 르카레는 영국 정보부 M16에서 근무한 적 있는 전직 첩보원이다(제임스 본드가 M16 소속이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쓴 이언 플레밍 역시 영국 해군 첩보원 출신이지만, 존 르카레는 이언 플레밍처럼 영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지도 않고 첩보원을 영웅시하지도 않는다. 동서 냉전에 대해서도 어느 한 쪽을 편들지 않고 양쪽 모두 단점이 있으며, 정확히는 자유 진영이 점점 공산 진영을 닮아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로 인해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비슷한 첩보물을 기대한 독자에게는 존 르카레의 소설이 다소 심각하고 암울하고 비관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장벽은 무너졌고 냉전은 끝이 났으며, 제임스 본드 시리즈조차 원작자 이언 플레밍이 아닌 존 르카레의 세계관에 점점 가까워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최근 개봉된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대부분 적이 내부에 있고, 제임스 본드는 자신을 영웅으로 인식하기 보다 구시대의 퇴물로 여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서 이 소설을 읽으면 훨씬 잘 읽힐 것이다(아니어도 돌은 던지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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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7-08-15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

키치 2017-08-15 21:25   좋아요 1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