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약간의 변화
김래현 지음 / 유어마인드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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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머리를 질끈 묶고 다닌다. 머리를 길게 풀고 다니자니 머릿결이 좋지 않은 데다가 손질도 잘 못하고, 머리를 짧게 자르자니 짧은 머리는 짧은 머리대로 관리하는 데 품이 들어서 어깨까지 내려오는 어중간한 길이의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묶고 다닌다. 다른 헤어스타일은 웬만해선 시도조차 안 한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인 김래현의 장편 데뷔작 <아주 약간의 변화>는 주인공이 일 년 동안 짧은 머리를 기르면서 보내는 일상을 그린다. 주인공은 가족의 품을 떠나 서울에서 자취 중인 프리랜서다. 오랫동안 짧은 단발머리를 고수했던 주인공은 어느 날 머리카락이 제법 길게 자란 걸 보고 미용실 예약을 하려다 조금 더 길러보기로 마음을 바꾼다. 짧은 머리 묶기, 단발 디스코 머리 묶기, 단발 반묶음 묶기, 옆머리 포인트 양갈래 땋기, 머리끈 없이 머리 묶기 등 다양한 머리 묶기 방법을 에피소드마다 하나씩 선보인다. 헤어스타일이 바뀔 때마다 저자의 일상과 관계도 조금씩 바뀐다. 


주인공은 말한다. 머리카락을 정성 들여 묶을 때마다 나를 아주 소중히 돌보는 느낌이 든다고. 머리카락을 묶을 때만이 아니다. 몸을 씻을 때, 보디로션을 바를 때, 손톱 정리를 할 때, 마스크팩을 할 때,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을 때, 새 신발을 고를 때, 우리는 조금 더 우리 자신을 돌보게 되고 우리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거나 사회의 관습에 맞추기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보다 정성스럽게 돌보기 위한 단장은 즐겁다. 오늘은 늘 하는 대로 머리를 질끈 묶는 대신, 이 책에 나와있는 머리 묶는 방법 중 하나를 시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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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줄다리기 -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
신지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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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각하'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까, '대통령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까. '미혼'과 '비혼'은 어떻게 다를까. 남교사라는 말은 없고 여교사라는 말만 있는 이유는 뭘까. 우리말에 숨어 있는 이데올로기를 살펴보고 잘못된 표현은 바로잡는 책 <언어의 줄다리기>가 출간되었다. 이 책을 쓴 저자 신지영은 고려대학교와 런던대학에서 학위를 마치고 현재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자는 본격적인 설명에 앞서 우리가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언어 표현이 어떻게 우리의 의식을 장악하고 이데올로기를 지배하는지 소개한다. 알다시피 언어는 언어공동체 안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사회적 약속이다. 언어 사용자는 그 사회적 약속을 배우고 따라 해야만 언어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러다 보니 우리는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언어공동체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언어 표현과 함께 학습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언어는 가히 '관습의 총화'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언어공동체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언어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가치도 꾸준히 변한다는 것이다. 환경이 바뀌고 사람들이 변화하면 기존의 언어 표현으로는 변화한 환경이나 생각을 더 이상 표현할 수 없게 된다. 즉 기존의 언어공동체가 가르쳐준 대로 무조건 따라 했던 표현들이 더 이상 내가 믿고 추구하는 생각을 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존의 언어 표현이 담고 있는 낡은 가치와 질서를 폐기하고,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담은 새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저자는 새로운 시대상과 가치관을 담지 못하는 잘못된 언어표현의 예로 대통령 각하, 쓰레기 분리수거, 미혼, 미망인, 여교사 등을 제시한다. 지금도 심심찮게 논란이 되는 표현인 '각하'는 '폐하', '전하', '저하', '합하' 등과 함께 조선시대에 사용되었던 경칭 중 하나였다. 왕조 시대의 유물이 고착된 건 경술국치(1910) 이후다. 조선은 일본 왕이 파견한 조선총독의 통치를 받게 되었는데, 조선총독에 해당하는 경칭이 각하였기 때문에 각하가 조선에서 가장 높은 경칭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이것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남았다. 즉, 각하라는 표현은 왕조시대와 일제 강점기로부터 전해진 악습인 것이다. 


쓰레기 분리수거는 관(官)의 관점만 반영하는 잘못된 표현이다. 주민들이 쓰레기를 배출할 때 분리해서 배출한다는 뜻을 표현하려면 분리'수거'가 아니라 분리'배출'이라고 정정하는 것이 맞다. 혼인 상태를 미혼 또는 기혼으로 표기하는 것도 잘못이다. 이 분류법은 기혼도 아니고 미혼도 아닌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결혼을 했었는데 현재는 결혼 상태를 유지하지 않고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미혼이라고 칭해야 하는가, 아니면 기혼이라고 칭해야 하는가. 


여교사, 여검사, 여의사, 여고생, 여중생처럼 여성의 경우에만 성별을 특정하는 언어표현도 잘못이다. 수많은 언론 보도에서 해당 인물의 성별이 남성인 경우에는 따로 성별을 표기하지 않는 반면, 여성인 경우에만 따로 성별을 표기한다. 청소년이나 청년 같은 표현도 마찬가지다. 청소년이나 청년 같은 표현은 성별을 특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페르소나를 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로 인해 청소년 문제, 청년 문제를 다룰 때 여성 청소년, 여성 청년의 문제는 배제되기 일쑤다. 


저자는 이 밖에도 한국어의 표현과 관련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들을 심도 있게 다룬다. 시대의 변화에 걸맞은 올바른 한국어 표현을 사용하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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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대 (리커버 특별판)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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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헤르타 뮐러의 데뷔작 <저지대>를 리커버 특별판으로 읽었다. <저지대>가 줌파 라히리의 장편 소설 제목인 줄로만 알고 있었던 나로서는 이 책을 통해 헤르타 뮐러의 생애도 처음 접했다. 1953년 루마니아 니츠키도르프에서 태어난 헤르타 뮐러는 독일계 소수민족 가정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이차대전 당시 나치 무장친위대로 징집되었고,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의 강제수용소에서 오 년간 노역했다. 이후 뮐러는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으며, <저지대>가 루마니아 정부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고 비밀경찰의 감시와 압박이 심해지자 남편 리하르트 바그너와 함께 1987년 독일로 망명했다. 


<저지대>는 1982년 루마니아의 크리테리온 출판사에서 처음 출간되었다. 당국의 엄격한 검열로 인해 출간하기까지 무려 4년을 기다려야 했으며, 그나마도 <그 당시 5월에는>, <의견>, <잉게>, <불치만 씨>가 삭제된 채로 출간되었다. 이번에 내가 읽은 한국어판 <저지대>는 검열로 삭제된 네 편의 이야기가 실린 것은 물론, 작가의 검토와 수정까지 거쳤다. 검열을 통과한 <조서>, <슈바벤 목욕>, <우리 가족>, <저지대> 같은 작품들은 작가 자신이 나고 자란 루마니아 시골 마을의 정경을 담고 있다. 일인칭 화자인 어린 소녀의 눈에 비친 식구들의 일상과 마을 사람들의 모습 - 가난과 폭력, 도살과 강간 - 을 예리하고 자세하게 묘사한다. 


검열을 통과하지 못한 <그 당시 5월에는>, <의견>, <잉게>, <불치만 씨>에는 사회주의 정부 치하의 답답하고 경직된 생활이 잘 표현되어 있다. 정부 입장과 다른 글을 썼다는 이유로 공장에서 퇴직을 종용당하고 결국 해고당하는 이야기가 작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이라는 걸 알고 놀랐다. 작가는 루마니아의 정부와 국민들을 비판하는, 자국의 명예를 더럽히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정부와 국민들에게 탄압당하고 결국 망명길에 올랐다. 당시 루마니아 정부의 입장이나 기조가 전부 틀렸다는 것이 밝혀진 지금도 루마니아 사람들은 뮐러를 배신자, 반역자라고 생각할까. 작가가 경험했을 핍박과 고통에 비하면 노벨문학상이라는 명예는 하찮은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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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걸어도 나 혼자
데라치 하루나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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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우정을 그린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를 좋아한다.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내 일처럼 환호해주는 친구. 슬프거나 화나는 일이 있으면 두 발 벗고 달려와 위로해주고 같이 화내주는 친구. 이제 더는 내게 그런 친구가 없지만, 언젠가 그런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 


일본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신예 작가 데라치 하루나의 소설 <같이 걸어도 나 혼자>에는 그런 친구들이 나온다. 남편과 별거 중인 서른아홉 살 유미코와 유부남과 연애 중인 마흔한 살 카에데는 낡은 맨션의 같은 층 옆집에 사는 이웃이다. 성격도 다르고 취향이나 관심사도 전혀 다르지만, 둘 다 결혼을 하지 않았고(유미코는 사실상 이혼한 상태) 아이가 없고 변변한 직업도 없다는 이유로 금방 의기투합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유미코의 남편 히로키가 고향인 작고 먼 섬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진작부터 이혼하고 싶었는데 남편이 실종되는 바람에 이혼하지 못했던 유미코와, 성추행을 일삼는 사장 때문에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했던 카에데는 히로키를 찾으러(만나서 따지러) 작고 먼 섬으로 떠난다. 


마흔 살 전후의 두 싱글 여성이 친구가 되고 여행을 떠나는 단순한 줄거리 속에는 예상외로 예리한 관찰과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입만 열면 '여자는 이래야 돼', '여자는 이런 존재야'라고 떠드는 유미코의 남편 히로키, 자기 주제도 모르고 카에데가 자신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예쁜 옷을 입고 화장을 한다고 착각하는 장아찌 회사 사장, 남자 없는 여자는 함부로 건드려도 되는 줄 알고 집적대는 술집 남자, 결혼이야말로 여자가 누릴 수 있는 지상 최대의 행복이라고 믿으며 비혼 여성을 무시하는 섬마을 여자 시즈 등 여자라면 누구나 겪어봤음직한 인물 유형이 줄줄이 등장한다. 


여자는 일정 나이가 넘으면 결혼 상대로서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고, 구직 시장에서도 외면받는 현실도 지적한다. 여자의 적은 여자, 나이 든 여자는 나이 어린 여자를 질투하고 괴롭힌다는 오해와 편견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같이 걸어도 나 혼자>를 읽고 홀딱 반한 독자로서, 앞으로도 계속 "왜?"라고 질문하겠다는 작가의 다짐이 변치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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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
박연준 지음 / 북노마드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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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명랑한 줄로만 알았던 사람의 어두운 맨얼굴을 봤을 때의 기분이 이럴까. 이제까지 나는 박연준 시인에 대해 밝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에서 남편인 장석주 시인과 시드니에서 대판 싸우고 와인 먹고 쓰러져 토한 이야기도 그렇고,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에서 글 쓰려고 토지 문학관까지 내려갔다가 쓰라는 글은 안 쓰고 읍내에서 예쁜 플랫 슈즈나 샀다는 이야기도 그렇고, 어쩌면 그렇게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친한 언니 입에서 흘러나오는 수다 같은지,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유쾌한 기분으로 책장을 덮었다. 


박연준 시인이 2014년에 발표한 첫 산문집 <소란>을 읽은 지금은 저자에 대한 인상이 퍽 다르다. 길게 늘여 쓴 시 같은 산문을 통해, 저자는 생모 슬하에서 자라지 못한 어린 시절과 가난한 뮤지션이었던 아버지의 오랜 투병 생활과 가까운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고통을 슬며시 고백한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유년기와 청년기를 살아내면서 저자는 대체 무엇을 경험하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스스로 '소란'하다고 일컬을 만큼,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던 시절에 느낀 감정을 단정하고 예리한 단어들로 벼려서 사람들 앞에 선보이기까지 대체 얼마나 외로운 투쟁을 해왔을까. 


그동안 여러 권의 산문집을 읽으며 박연준 시인의 단편적인 모습만 봐왔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시집을 읽으며 박연준 시인의 내밀한 감정들과 치열한 사유를 들여다봐야겠다(요즘 들어 박연준 시인, 김소연 시인, 오은 시인 등 시인들에게 부쩍 관심이 간다). 어지러운 마음의 풍경들을 간결한 언어로 정제해 표현하는 솜씨도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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