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장국영 -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얼마나 좋을까 그대가 여전히 함께 한다면 아무튼 시리즈 41
오유정 지음 / 코난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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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왓차에 올라온 왕가위 리마스터링 버전 영화들을 보고 뒤늦게 장국영에게 입덕했다. 입덕이라고 해봤자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영상 몇 개를 틈틈이 볼 뿐이지만... 


팬질의 일환으로(?) 이 책도 읽었다. 첫 장을 펼치자마자 정신없이 빠져들어 읽었는데, 그도 그럴 게 스스로 그렇게 대단한 팬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인 것치고는 팬질의 넓이와 깊이가 상당했기 때문이다(원래 진짜 덕후는 자기가 덕후인 걸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장국영 콘서트에는 못 가봤지만 장국영 실물을 두 번이나 봤고, (내가 장국영이라면 좀처럼 잊을 수 없었을 것 같은) 선물과 편지를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장국영이 거쳐간 학교, 집, 촬영장, 장국영이 사랑했던 식당, 카페, 서점 등등을 거의 다 가봤다. 장국영 때문에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해 중국어로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고 현재는 대학에서 중국어를 가르친다. 이만하면 성덕 중의 성덕 아닌가. 


생각해 보니 나에게도 장국영과 관련된 추억이 몇 개 있다. 대학교 때 중앙도서관에서 <패왕별희>를 보고 엉엉 울었던 기억, 좋아하는 중국 가수의 최애곡이 장국영의 노래라고 해서 찾아 들었던 기억... 


장국영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좋아하게 되는 가수/배우라는 생각도 든다. 2003년 장국영이 사망했을 당시에는 내 나이가 어리기도 했고 장국영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해서 그의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다. 그때보다 한참 나이를 먹은 지금은 그의 선택에 대해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왕가위 감독과의 관계가 원만했다면, 그토록 염원했던 영화감독 데뷔의 꿈을 이뤘다면, 홍콩 영화가 좀 더 오래 인기를 유지했다면, 홍콩 반환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면, 장국영의 미래(와 우리의 미래)가 달라졌을까. 내가 가장 아쉬운 건, 장국영이 열렬한 팬이었다는 나카모리 아키나와 함께 작업하지 못한 것이다. 두 사람이 영화든 노래든 작품을 하나 했다면, 만나서 좋은 친구라도 되었다면 아시아의 대중문화 역사가 바뀌지 않았을까... 들어줄 이 없는 바람만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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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의미 부여 -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찾은 진짜 내 모습 일상이 시리즈 4
황혜리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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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의 마지막을 기념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여행한 기록을 담은 책이다. 저자 황혜리는 다니던 회사의 계약 만료와 서른 살 생일을 앞두고 뭔가 특별한 일을 해보고 싶었다. 세계 일주를 하기에는 예산이 부족했고, 가까운 나라로 가기에는 시간이 넘쳤다. 그래서 택한 게 시베리아 횡단 열차였다. 예산도 적절했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러시아라는 큰 나라를 횡단했다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며칠을 기차 안에서 보내면서 질리도록 바깥 풍경을 보고 밀린 잠을 실컷 잘 생각을 하니 들떴다. 


나라면 며칠 동안 비좁은 기차 안에서 생활하고 몇 시간을 달려도 변하지 않는 풍경을 보는 게 지겨울 것 같은데, 저자는 그렇지 않았다고 하니 신기했다. 기차 안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사람을 만난 적도 있지만, 대부분의 승객들은 피부색이 다르고 말이 통하지 않는 저자를 호의적으로 대했다. 서툰 영어로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자신들이 먹으려고 가져온 음식을 나눠주기도 했다. 러시아어로 물이 '바다'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멀게만 느꼈던 러시아가 조금씩 가깝게 느껴졌다. 


한때는 나도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다 보니 여행 자체를 할 수 없는 시기를 맞이하고 말았다. 상황이 나아져서 예전처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된다 한들 내 체력이 기나긴 기차 여행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살면서 한 번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꼭 타보고 싶다. 짧은 구간이라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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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없는 기분
구정인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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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절한 아버지가 고독사한 상황과 그 이후의 심경에 대해 그린 만화다. 혜진의 아버지는 돈도 없고 직업도 없으면서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바람까지 피웠다. 결국 어머니와는 이혼했지만 딸들과의 인연까지 끊어진 건 아니었는데, 나중에 아버지가 혜진과 혜진의 남편에게까지 손을 벌리려고 하면서 혜진은 아예 의절을 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고독사했다는 전화를 받고 혜진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장례식에 온 사람들은 혜진의 사정도 모르고 혜진을 위로하고, 혜진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혜진에게 한 소리씩 한다. 장례식이 끝난 후 혜진은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원래 상태로 돌아가기는커녕 점점 더 깊은 우울감과 무기력증에 빠진다. 마음은 어서 일도 해야겠고 남편과 딸에게도 잘해주고 싶은데, 하루 종일 누워서 울기만 하고 남편과 딸에게는 화만 내는 일상이 이어진다. 


슬프거나 화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쁘거나 후련한 것도 아닌 기분을 작가는 '기분이 없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오랫동안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나도 '기분이 없는 기분'을 느낀 것 같다. 이제 더는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그렇다고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하다고는 할 수 없는 기분이었달까.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걸 두려워하는 이유는 사랑 후에 찾아올 미움이라는 감정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미워하지 않기 위해 억지로 좋아하는 척을 할 수는 노릇이고... 


우울이라는 감정은 자책과도 관련이 깊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은 남을 원망해야 하는데, 남을 원망해도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자기를 탓하는 마음. 자기를 탓하는 사람은 사실 착한 사람인데 이런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리고 남 탓하는 사람들은 건강하게 잘 사는 것 같다. 뒤죽박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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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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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문제에만 관심 있는 작가처럼 인식되어 있지만, 이 책을 보면 노인, 청소년 문제에도 관심 있고 직장 내 갑질이나 학교 내 계층 갈등 같은 사회 문제에도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왔음을 알 수 있다. 숲은 안 보고 나무만 보는 건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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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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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있다. 여자라는 이유로 죽이지 말아 달라는 당연한 주장에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질 때마다, 여자도 사람이다, 아기 낳는 도구가 아니라는 말에 날선 표정이 돌아올 때마다 나는 그 말을 떠올리며 성난 마음을 가라앉힌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그럴수록 더 읽고 쓰기로 한다. 나를 일깨워준 작가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먼저 맞은 화살과 피 흘린 가슴과 여전히 낫지 않은 상처를 상상하며 어지러운 마음을 다잡는다. 당신도 이렇게 힘들었습니까. 아무도 가지 않으려고 하는 길을 먼저 걸으면서 얼마나 아팠습니까. 눈물이 차오르는 눈을 힘겹게 뜨고 당신이 겪은 일을, 목격한 현실을 기록해 남긴 뜻을 나는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 같은 말을 속으로 되뇌며 나를 밀어내는 세상 안으로 들어간다. 오늘은 어둡지만 내일은 좀 더 밝으리라는 희망을 붙들고.


조남주 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쓴 것>에는 나처럼 쓰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삶을 사는 다양한 여성들이 나온다. 남아 선호사상 때문에 환갑이 넘을 때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동주(<매화나무 아래>),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문제를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악플러들의 괴롭힘을 당하는 '나'(<오기>),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가서 난처해하는 '나'(<가출>), 회사 전체를 통틀어 업무 능력이 가장 우수하지만 여성이고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가장 적은 월급을 받는 미스 김, 나이가 어리고 지방 출신이고 학교 후배라는 이유로 남자 친구에게 지속적으로 가스라이팅을 당한 '나'(<현남 오빠에게>), 자신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느꼈던 압박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는 딸을 보며 착잡해하는 효경(<오로라의 밤>), 교내 성폭력 사건에 연루된 딸을 지켜보는 '나'(<여자아이는 자라서>), 팬데믹 때문에 학교에도 못 가고 집안의 재정 사정도 악화되어 첫사랑과 헤어질 위기에 처한 서연(<첫사랑 2020>) 등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자주 답답했고 끝내 울컥했다. 어떤 사람들은 성차별이 윗세대에나 있었고 지금 세대에는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80년대 중반에 태어났는데도 딸이라는 이유로 부모를 포함한 가족 모두가 서운해했고, 둘째도 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뱃속의 아이를 지우자고 말했다. 이번에는 아들일 거라고 기대하고 셋째를 임신했지만 이번에도 딸이란 걸 알게 되자 어머니는 아이를 지웠고 할머니는 씨받이를 들이겠다고 했다. 나와 내 동생이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모범적으로 학교생활을 해도, 할머니에게 우리 자매는 '남자로 태어나지 않아 종국에는 자기 아들 고생시킬 계집애들'에 불과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할머니와 같이 살지 않은 덕택에 할머니의 싸늘한 눈빛을 받는 건 명절이나 제사 때 정도였고, 나의 부모님은 차별 없이 우리 자매를 키워주셨다. 하지만 대학을 선택할 때 "여자는 공학보다 여대가 낫다."라는 말씀을 하셨던 기억, 직업을 고를 때 "여자 직업으로는 공무원이나 교사가 최고다."라는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선명하다. 외출할 때 조금이라도 멋을 부리면 "그렇게 남자한테 관심받고 싶냐?"라고 타이르고, 멋을 안 부리면 "그래서 어떤 남자가 데리고 가겠어?"라고 잔소리하신 것도 기억한다. 옛 애인에게 "너는 여자가 되어서 치마도 안 입고 머리도 안 기르냐"라는 말을 들었던 것도(헤어졌다), 예전 직장에서 남자 상사에게 "00씨, 여자가 늙으면 난자도 늙어."라는 말을 들었던 것도(그만뒀다) 기억한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마다 이불을 덮어쓰고 우는 대신 나보다 먼저 그런 일을 겪은 사람들이 쓴 글을 읽거나 내가 겪은 일을 글로 남긴다는 것. 나의 일을 우리의 일로, 여성의 역사로 치환해 생각해 본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괴로운 이야기도 많지만, 괴로움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 장면도 적지 않다. 동주는 결국 개명하고, 효경은 시어머니와 오로라를 보러 떠나며, 미스 김은 퇴사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복수한다. 이름 없이 어떤 작품의 작가, 가출한 남자의 딸, 현남의 여자친구, 주하의 엄마로만 등장한 인물들도 그들을 괴롭힌 악플러, 아버지, 현남, 가해자 모자(母子)로부터 끝내 등을 돌리며 자신의 삶을 되찾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오래전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손자를 지키기 위해 말 그대로 '칼을 빼고' 나섰던 동주의 언니 금주, 평생 가정 폭력 상담소에서 일하고 예순셋에 상담심리 석사과정을 시작한 주하의 할머니처럼 그 자체로 귀감이 되고 활력을 주는 여성 캐릭터들도 눈길을 끈다. 불법촬영 현장을 목격하고 증거를 남긴 자신을 도리어 가해자로 모는 가해자 모자에게 굴하지 않고 끝까지 맞서는 주하의 모습도 오래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다만 <첫사랑 2020>에서는 승민과 싸우고 나서 우는 서연에게 어른들을 대표해 사과하는 선생님 외에 그 어떤 희망도 발견할 수 없었다. 팬데믹과 이로 인해 더 벌어진 부모들의 경제력 차이 때문에 생애 첫 남자친구와 싸우고 헤어질 위기에 처한 서연이. 나도 학교 다닐 때 수업료가 비싼 학원에 다니고, 최신형 휴대폰을 가지고 있고, 비싼 요금제를 사용하는 아이들과 내 처지를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낀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남자) 친구와 싸우거나 헤어질 마음을 먹은 적은 없다. 이는 그만큼 부모의 경제력 격차가 요즘 아이들의 일상생활 및 관계 맺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뜻이 아닐까. 더 안타까운 건,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예전보다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격차가 해소될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팬데믹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각자의 자리에서 깊고 긴 밤을 보내고 있는 나와 너는 결국 우리가 되어 새벽을 맞이할 수 있을까.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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