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 거짓과 혐오는 어떻게 일상이 되었나
미치코 가쿠타니 지음, 김영선 옮김 / 돌베개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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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2017년까지 <뉴욕타임스>의 서평을 담당한 미치코 가쿠타니의 책이다. 전부터 미치코 가쿠타니의 서평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주로 미국 문학을 평론하고 영어로 쓰여있다 보니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미치코 가쿠타니의 신간이 우리말로 번역, 출간되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정통 문학 평론이 아니라 정치, 사회 평론인 점은 아쉽지만, 우리말로 그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현재 미국 사회 전역에 거짓말과 가짜 뉴스, 반지성주의, 혐오 등이 판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있다고 지적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을 일삼고, 우파 언론과 손잡고 가짜 뉴스를 양산하며, 고등 교육을 받은 엘리트를 조롱하고, 여성, 소수자, 이민자, 외국인에 대한 혐오를 조장한다. 저자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식의 믿음이 팽배해졌고, 그 결과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기 입장에 부합하는 의견만을 취사선택하며 극단주의로 향하고 설명한다.


물론 이러한 흐름이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에 비로소 발생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로 통칭되는 상대주의, 해체주의, 주관주의, 반이성주의 등의 흐름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트럼프라는 괴물이 탄생했으며 점점 그 흐름이 강해지고 있고 있다고 분석한다.


문학도 예외가 아니다. 윌리엄 포크너, 버지니아 울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등의 작가들이 만들어낸 다중시점, 신뢰할 수 없는 화자, 뒤엉킨 이야기 구성 등의 장치는 오늘날 줄리언 반스, 길리언 플린, 로런 그로프, 돈 드릴로 같은 현대 작가들의 작품에서 더욱 세련된 방식으로 발전되었다. 어디에도 진실이나 정의는 없고, 삶은 그저 허무하고 무의미하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문학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 퍼져 있다. 저자는 미셸 우엘벡의 소설과 영화 <파이트클럽>,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HBO <트루 디텍티브> 시리즈 등을 예로 든다.


이 책의 해제는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이 썼다. 정희진은 미치코 가쿠타니의 관점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저자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잘못을 비판하기보다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고도 최고의 부와 권력을 누린다는 사실에 열광하며 그를 '욕망한다'. "모두가 트럼프가 되기 전에"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정희진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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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의 윤무곡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4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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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지은 사람을 향해서 손가락질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 손가락이 자신을 향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잘 모른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미코시바 레이지' 시리즈는 소년범 출신의 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를 통해 죄의 무거움과 벌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미코시바 레이지는 열네 살 때 같은 동네에 살던 한 여자아이를 토막 살인하는 죄를 지었다. 그 후 소년범으로 징역형을 받았고, 이나미라는 간수와의 만남을 통해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고 공부에 매진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미코시바가 살인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지만, 미코시바는 그런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에만 전념한다. 변호사로서 맡은 일을 잘 해내는 것이 살인이라는 무거운 죄를 저지른 그에게 남겨진 유일한 속죄의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코시바 레이지 시리즈 제4권 <악덕의 윤무곡>에서는 미코시바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등장한다. 미코시바가 소년원에 들어간 후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어머니와 여동생은 행방을 감췄다. 살인자인 미코시바에게 쏟아져야 할 비난이 미코시바의 가족에게까지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0년 넘게 가족의 존재를 잊고 살았던 미코시바는 사전 연락도 없이 여동생이 사무실로 찾아와 적잖이 놀란다. 오랜만에 만난 여동생이 전해준 소식에는 미코시바 답지 않게 크게 동요한다. 미코시바의 어머니가 재혼한 남편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수감된 상태라는 것이다.


미코시바는 어머니가 피고인인 사건의 변호를 맡을지 말지 고민하다 결국 맡는다. 처음에는 미코시바가 망설인 까닭이 혈육에 대한 정이나 연민이 남아 있어서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미코시바는 말한다. 열네 살 어린 나이에 살인을 저지른 것은 후천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선천적인 기질 때문이라고 밝혀지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말이다. 이런 고민을 하면서, 미코시바는 어머니의 참모습을 알기 위해 그동안 어머니가 살았던 장소들을 찾아간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로 인해 가족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알게 된다.


미코시바 레이지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미코시바는 열네 살에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다. 현실에서라면 이런 범죄자를 용서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미코시바 레이지 시리즈를 읽다 보면 과연 나에게 범죄자를 용서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내가 만약 미코시바 레이지와 같은 범죄자라면, 미코시바 레이지만큼 고통스럽게 속죄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절대 성인(聖人)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악인도 아닌, 미코시바 레이지의 이야기를 계속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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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게 해 주시겠어요? 4
핫토리 미츠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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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이 빨아서 햇볕에 말린 세탁물처럼 기분 좋은 느낌의 만화를 만났다. 핫토리 미츠루의 <깨끗하게 해 주시겠어요?>이다. 아타미에서 작은 세탁소를 운영하는 '킨메 와카나'는 '지역에 뿌리내린 진심 어린 서비스'라는 가게의 모토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킨메가 이웃들의 옷을 세탁하면서 그들과 인연을 맺고 이어가는 과정이 만화의 주 내용이다.


킨메의 일상은 대체로 별일 없이 편안하게 흘러간다. 때로는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일이 있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이웃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그들이 맡긴 옷을 책임지고 세탁한다. 읽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힐링 일상물인 것만으로도 좋은데 깨알 같은 세탁 팁까지 얻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인상 좋고 성실한 킨메가 2년 전의 기억이 없는 이유는 뭘까. 궁금해서 1권부터 정주행 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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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목 사축과 4
후지사와 카미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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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목 사축과>는 우선 귀여운 그림체로 한 번 심쿵하게 만들고, 기발한 줄거리로 두 번 심쿵하게 만드는 만화다. 블랙 기업에 고용되어 사축으로 생활하는 싱글 직장인 츠다 신지로의 집에는 '일하지 않으면 죽는' 습성을 지닌 달에서 온 토끼 후와미와 모후코가 있다. 비정상적인 노동 의욕을 지닌 후와미와 모후코는 요리나 설거지 같은 평범한 일상을 전부 극한의 노동으로 바꾼다.


4권에서 츠다는 후와미와 모후코에게 자격증 공부를 해볼 것을 제안한다. 츠다는 후와미와 모후코가 다른 곳에 취업하면 이 집에서 나갈 거라고 생각해서 자격증 공부를 제안한 건데, 츠다의 기대와 달리 후와미와 모후코는 비정상적인 노동 의욕을 자격증 공부에서도 발휘해 단기간에 엄청난 학습 성과를 올린다. 급기야 현직 직장인인 츠다가 달토끼인 후와미와 모후코의 실력에 밀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후와미와 모후코를 집에서 내쫓을 방법을 궁리하던 츠다는 같은 회사에 다니는 히메카와에게 후와미와 모후코를 소개한다. 후와미와 모후코는 히메카와가 츠다와 비슷한 타입의 고용주인 줄 알고 열심히 노동을 하지만, 히메카와는 후와미와 모후코가 그저 자신과 함께 가만히 앉아서 자신에게 응석을 부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귀여움 최강자 라파나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도 좋았다. 취향 저격이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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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후보이 친미 개정판 4
마에카와 타케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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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현재까지 절찬리에 연재 중인 무협 액션 만화 <쿵후보이 친미>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4권에서는 리키의 밑에서 매일 봉술 수련에 매진하는 친미 앞에 평생의 라이벌 '시후앙'이 나타난다. 그동안 자신의 실력을 능가하는 또래를 만나본 일이 없는 친미는 시후앙과의 첫 대련에서 아쉽게 패하고 마음에 큰 동요를 느낀다. 그런 친미에게 소슈 선사가 주는 가르침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소슈 선사는 친미에게 각각 벼룩이 한 마리씩 들어있는 상자를 건네준다. 상자 안에 든 벼룩은 크기가 비슷해 언뜻 봐선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한 마리는 아주 높이 뛰는 반면, 다른 한 마리는 그의 반에도 못 미치는 높이밖에 못 뛴다. 소슈 선사는 친미에게 벼룩을 관찰하다 보면 시후앙에게 진 이유를 알게 될 거라고 말한다. 대체 벼룩 두 마리와 친미, 시후앙이 무슨 관계인 걸까.


마침내 소슈 선사가 주려고 했던 가르침을 알아낸 친미는 자신이 그동안 스스로 정해놓은 한계에 갇혀서 더 크게 성장할 기회를 잃었음을 깨닫는다. 이제부터는 자신의 한계를 정하지 않고 더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불철주야 노력하는 친미의 모습은 나에게도 많은 자극을 주었다. 이 맛에 다들 그렇게 오랫동안 <쿵후보이 친미>를 읽어온 걸까. <쿵후보이 친미>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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