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의 인생
카트린 퀴세 지음, 권지현 옮김 / 미행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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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 책을 사게 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데이비드 호크니라는 이름에 눈길이 갔을 테고, 유명한 화가이니 한 번쯤 제대로 그에 대해 공부해두면 언젠가 도움이 될 거라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이유로 샀을 거라는 짐작이 갈 뿐이다. 


그런데 이 책, 기대한 것보다 훨씬 좋았다. 내가 데이비드 호크니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그의 이름과 대표작 몇 점뿐이라서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데이비드 호크니의 출생부터 현재에 이르는 삶을 비교적 세세히 알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처음에는 어떤 식으로 작업했고 중간에 어떤 과정을 거쳐 변화했으며 현재는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까지 총체적으로 알 수 있어 유용했다. 


작가의 문장이 좋고 번역이 매끄러워서 잘 읽히기도 했겠지만, 데이비드 호크니라는 인물의 삶 자체가 워낙 드라마틱해서, 마치 드라마를 볼 때처럼 계속 다음 전개를 궁금해하며 읽기도 했다. 영국 북부 시골 마을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미술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지만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장학금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소년. 그런 소년이 우여곡절 끝에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하고, 금메달을 따고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인정받으며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이야기. 이보다 더한 드라마가 있을까. 


데이비드 호크니는 또한 성소수자다. 보수적인 영국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고 살다가, 미국에선 오히려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이 개성을 넘어 매력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때부터 자신의 성정체성을 감추지 않고 전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연애를 즐겼으며, 화가로서도 전통이나 시류, 평론가들의 지적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마음껏 표현한 점이 좋았다. (그러나 그 과정은 매우 자기 절제적이고 치열하다. 대단한 워커홀릭...)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작년에 서울에서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 & 줄리안 오피 전시회에 못 간 게 너무너무 아쉽다. 그 때 갈까 말까 고민하다 안 갔는데, 역시 할까 말까 고민되는 건 하는 편이 나은 건가. 불행 중 다행인 건, 국내에 데이비드 호크니 관련 책들이 제법 많이 출간되어 있어서, 다음 전시회가 열릴 때까지(열린다면) 그 책들을 읽으면 될 것 같다는 거... 근데 다들 비싸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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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처
파울로 코엘료 지음, 김동성 그림,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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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로 알게 되어 한동안 열심히 읽다가 십여 년 넘게 읽지 않았던 작가다. 그러다 최근에 이 책을 선물받아 읽게 되었는데, 그동안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아니면 그동안 열심히 책을 읽어서 그런가,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여서 신기했다. 


그 중 하나는 파울로 코엘료가 자신의 경험에 기반한 글을 쓴다는 것이다. <연금술사>를 처음 읽었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이 글을 쓰려고 조사하다 알게 된 사실에 따르면, 파울로 코엘료가 <연금술사>를 쓴 것은 그 자신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순례한 직후라고 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어디인가. 그곳은 내가 좋아하는 여행 작가 김남희 님이 오래 전 자신의 책을 통해 소개한, 산티아고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이다. <연금술사>를 처음 읽었을 때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몰랐는데 이제는 알고 있으니, <연금술사>를 다시 읽으면 느낌이 색다를 것 같다. 


<아처> 역시 파울로 코엘료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언젠가 저자가 생마르탱에서 궁도를 수련하던 중, 그 모습을 본 레오나르두 오이티시카라는 사람이 그에게 이 책의 아이디어를 주었다고 한다. <아처>는 마을에 도착한 이방인이 소년에게 이 나라 최고의 궁사인 '진'이라는 사내를 찾으러 왔다고 말하면서 시작된다. 소년은 마을에 같은 이름의 사내가 있지만 그는 평범한 목수이며 그가 활을 든 모습은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방인의 간청에 굴복한 소년은 결국 이방인을 진에게 데리고 간다. 


알고 보니 진은 이 나라 최고의 궁사가 맞았고, 진의 실력을 눈으로 확인한 소년은 진에게 궁도를 가르쳐 달라고 청한다. 진은 직접 활과 화살을 들고 가르치는 대신, 정제된 말로 궁도의 핵심을 전한다. 그리고 이는 다른 기술들의 핵심과도, 인생의 진리와도 통한다. 진은 가르침을 마무리하면서 "계속해서 화살을 쏘아야만 이 모든 것을 깨우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덧붙인다. 좋은 글, 좋은 책을 아무리 많이 읽은들 삶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는 말로 들려서 뜨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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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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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이 자국의 정치 문제, 그것도 브렉시트를 비판하며 쓴 소설이라고 해서 읽게 된 책이다. 현실 정치를 조롱하고 풍자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쓴 소설이라서 그런지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차일드 인 타임>, <칠드런 액트>, <스위트 투스> 등에서 보여주었던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과, 데뷔 초기부터 시도했던 독특한 시도들의 연장선상에 있어서 아주 생경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이야기는 어느 날 아침 영국의 총리 짐 샘스가 눈을 뜨면서 시작된다. 겉보기에는 누가 봐도 짐 샘스인데, 사실 그의 내면은 짐 샘스가 아니라 바퀴벌레다. 바퀴벌레는 인간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당황했지만, 금세 현실에 적응하고 이 상황을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종족에게도 유리한 것으로 만들기로 한다. 그것은 바로 인류의 멸망과 바퀴벌레의 영생! 이를 위해 바퀴벌레는 샘스의 몸을 빌려 영국을 망하게 할 정책들을 하나둘 실현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역방향주의'다. 역방향주의란, 간단히 말해 돈의 흐름을 현재와 다른 방향으로 역행하는 것이다. 노동자는 노동의 대가로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기업에 돈을 낸다. 상점에서 물건을 구입하면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돈을 받는다. 저축을 하면 마이너스 이자가 붙기 때문에 아무도 저축을 하지 않는다. 누가 봐도 이상한 시스템인데, (바퀴벌레의 내면을 가진) 샘스는 이것을 실현한다. 심지어 (트럼프를 닮은) 미국 대통령도 혹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식으로 다른 나라들과 정반대인 경제 시스템을 채택할 경우, 무역을 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작가가 브렉시트를 반대한 이유이고, 역방향주의라는 특이한 개념을 만들어내면서까지 브렉시트의 문제점을 주장한 까닭이다. 이언 매큐언의 대표작 <속죄> 같은 작품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지만, 이언 매큐언의 작품 세계 전반에 관심이 있고 (사회과학적 지식에 기반한) SF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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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지기 2022-07-11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ㅋㅋㅋ 웃픈 내용이네요... 글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Sf 좋아하는데 찾아봐야겠네요
 
계절 산문
박준 지음 / 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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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쓴 산문은 높은 확률로 마음에 든다. 소설가가 쓴 산문이나 심지어 산문만 전문으로 쓰는 작가들의 산문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시인이 쓴 산문은 대체로 좋다. 일단 어휘가 좋고(유행어와 비속어 사용을 자제하고 생경한 우리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문장이 좋고(장황하지 않고 간결하고 담백하다) 소재가 좋고(기발하고 파격적인 것보다는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에 관심을 둔다) 태도가 좋다(들뜨지 않고 차분하다). 이 책도 그렇다. 


박준 시인의 산문집 <계절 산문>은 저자가 일 년 열두 달, 네 개의 계절을 통과하며 쓴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글마다 각 계절의 날씨와 풍물, 사건과 정서가 녹아 있고, 그와 관련된 사람들과 추억들이 호출되는 경우도 많다. 오로지 산문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시도 함께 실려 있어서, 시를 낭독하는 기분으로 산문을 읽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눈으로만 읽지 않고 입으로 읽고 마음으로도 읽어서, 훨씬 더 오래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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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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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민석 님이 진행하신 EBS 오디오천국 <양심의 가책>을 통해 알게 된 책이다. 책 소개가 워낙 흥미진진해서 사서 읽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나도 그런 리뷰를 쓰고 싶다...). 그러나 내가 늘 그렇듯 사놓고 1년이 지나도록 읽지 않았는데(왜 그런지 나도 몰라...), 열대야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던 며칠 전 밤에 운명처럼 이 책이 눈에 띄어 그 자리에서 읽기 시작했다. 와 근데 너무 재밌네... 재밌는 줄 알고 샀지만 역시 재밌네... 


이야기는 관찰자인 '나'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체스 챔피언 첸토비치에게 관심이 많은 '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는 배 안에서 첸토비치를 발견하고 그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웬만한 미끼로는 그의 관심을 끌 수 없었고, 고민 끝에 '나'는 배 안에서 체스 시합을 벌인다. '나'의 생각대로 첸토비치는 체스 시합에 흥미를 보였고, 우여곡절 끝에 '나'는 첸토비치를 아마추어 6인과의 시합에 끌고 오는 데 성공한다. 


여기까지도 <퀸스 갬빗>이 떠오를 만큼 충분히 재미있지만, 소설의 백미는 이 다음부터다. 체스 챔피언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아마추어 6인. 보다 못한 관중 한 명이 6인에게 훈수를 두는데, 이 자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알고 보니 그는 오스트리아 유력 집안의 자제인 B박사로, 과거의 '어떤 일'로 인해 체스를 익히게 되었고 그 결과 B박사의 성격은 물론 인생까지 크게 바뀌었다고 한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체스라는 소재를 통해 서로 상반된 삶을 살아온 두 남자의 이야기와, 각각이 대표하는 국가, 민족의 이야기를 엮어서 풀어낸 솜씨가 탁월하다. 군더더기 없는 건조한 문장도 몰입을 돕는다. 함께 실린 <낯선 여인의 편지>는 열세 살 때부터 평생 한 남자만을 사랑해온 여자가 돌연 그 남자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이 소설도 길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당대의 정치 사회 문화와 당시 사람들의 정서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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