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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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터너라는 동생의 말을 듣고 마음을 다잡고서 읽기 시작했다. 역시나,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졌지, 결코 느려지지 않았다.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 대학 졸업 후 의류회사 직원, 청년 해외 협력대 대원, 고등학교 교사 등 다양한 직업에 전전하다가 서른 살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했다는 그녀의 이력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수작(秀作)이다. 아니, 그동안의 이력과 다양한 경험 덕분에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일까?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교사로서의 경험은 분명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고백>의 배경은 학교이고, 한 명의 교사와 세 명의 중학생, 한 명의 어머니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어느 여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반 학생들 중에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이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여러분은 열세 살이지요. 그렇다면 연령이란 대체 뭘까요?" (p.29) 여교사의 고백 부분을 읽으면 소설 전체가 형사 처벌 대상 연령의 허점을 이용한 소년범죄의 증가를 지적하고 소년법 개정을 촉구하는 내용인 것 같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고백 부분을 읽으면 그렇지만도 않다. 미즈키, 나오키의 어머니, 나오키, 슈야로 이어지는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애초에 죄는 무엇이고 벌은 무엇인지, 선과 악은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는지 같은 근원적인 질문을 묻게 된다. 

 

 

먼저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기가 보고 싶은 면만 본다. 미즈키는 미즈키대로, 나오키의 어머니는 나오키 어머니대로, 나오키는 나오키대로, 슈야는 슈야대로, 심지어는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여교사 유코마저도 같은 현실을 두고 자신이 보고 싶은 면만 보고 자기 식대로 해석한다. 그러고는 자기 나름의 판단으로 타인에게 멋대로 죄를 씌우고 멋대로 처벌한다. 과연 누가 선인이고 누가 악인인가? 완전한 선인, 완전한 악인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또한 이 소설에 수차례 등장하는 단어 '제재'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딸이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살인을 당했다는 사실이 분명한데도 여교사 유코는 경찰에 알리지 않고(공적 제재를 거부하고) 사적 제재를 실행한다. 미즈키는 몰래 약품을 마련하는 식으로 사적 제재를 꿈꾸고, 나오키의 어머니는 아들의 살인을 알고나서 경찰에 알리지 않고 스스로 벌하려 했으며, 슈야는 어머니에 대한 애증을 역시 사적 제재로서 해소하려고 했다.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은 왜 공적인 제재에 의존하지 않고 사적으로 제재하려고 하는가? 공권력을 믿을 수 없어서? 공적 제재 수단이 그들 생각에는 부족하다고 느껴져서? 내 생각에는 공적 제재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사적 제재를 하려는, 개인적인 증오를 복수라는 행위를 통해 해결하려는 인간의 근원적인 폭력성이 문제인 것 같다. 일본 소설 중에는 유난히 사회 제도의 그늘, 체제의 사각지대를 비판하는 소설이 많은데, 이 소설은 그런 류의 소설이면서도 궁극적으로 사회로 문제를 돌리지 않고 인간 본성과 부정적인 본성을 다스리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 유약함에 대해 이야기한 점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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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 콤플렉스 - 내 인생의 치명적인 약점
전경원 지음 / 아주좋은날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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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의 두뇌는 처음에 새롭게 보이는 활동이라도 며칠 지나면 그것을 곧 지루해하는 속성이 있다. 따라서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다른 지루하지 않은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 창의력은 필수 요소이다. 창의력을 키운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몸속의 창의력을 깨우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p.7)

 

"인터넷에 이런 이야기가 떠돈다. '80년을 산 스위스의 한 노인이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계산을 해봤더니, 잠자는 데 26년, 일하는 데 21년, 먹는 데 6년, 차나 사람을 기다리는 데 5년, 담배 피우는 데 3년을 보냈는데, 행복했던 시간을 헤아려보니 불과 46시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괴테는 일생에서 정말 행복했던 시간은 15분이 채 되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천하를 호령했던 나폴레옹 역시 진정으로 행복했던 시간은 일주일도 안 된다고 했다.' 자, 당신의 인생을 돌아보자. 지금까지 살면서 행복했던 시간은 모두 몇 시간이나 되는가?" (p.48) 

 

 

아침에 뭘 입을지 고민하는 게 귀찮아서 매일 똑같은 옷을 입거나,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게 귀찮아서 매일 똑같은 음식을 먹을 때가 있다. 모처럼만의 휴일에도 뭘 할지 정하는 게 귀찮아서 다른 일 안 하고 방에 쳐박혀 멍하니 TV를 보거나 인터넷을 할 때가 종종 있다. 귀찮아서,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창의력 콤플렉스>의 저자 전경원은 '창의력'이 문제라고 말한다. 이 책은 평범한 사람이라도 창의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과, 이렇게 향상된 창의력을 업무, 인간관계, 일상생활 등에 적용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책이다. 흔히 창의력 하면 미술이나 음악 등 예술 창작 영역에서 주로 필요한 능력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자는 학생, 직장인, 전업주부 등 평범한 사람에게도 창의력이 필요하며, 누구나 창의력을 가질 수 있고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나도 전에는 창의력이 예술가나 디자이너, 기획자에게나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창의력은 적극성, 진취성, 도전, 아이디어 등과 치환될 수 있고, 일상이 지루하거나 주어진 일에 안주하고, 점점 평범하고 무기력한 사람으로 전락하는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능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 딱 이런 상태인 내가 꼭 필요한 책을 만난 셈이다.

 

 

창의력을 향상시키고 일상에 적용하는 여러가지 방법 중에서도 특히 시간관리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바쁘다, 시간없다는 말을 하는데, 오며가며 버려지는 시간이나, 스마트폰으로 SNS서비스 체크하고 인터넷 서핑하고, 다른 생각하는 시간을 모두 더하면 시간이 없기는커녕 남아돈다. 창의적인 사람은 이렇게 버려지는 시간, 남아도는 시간도 지혜롭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줄 안다. 당장은 빡빡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나중에 늙어서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는데 바빠서 못했다'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머리 굴려서 창의력을 발휘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밖에도 메모하기, 어제까지의 습관 버리기, 하루에 하나씩 새로운 일 하기, 아마추어 예술가 되기, 운동하기, 휴식하기 등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여러가지 조언들이 나와있다. 창의력 하면 예술가에게나 필요한 능력인 줄 알았는데 나같은 사람에게도 필요한 능력이라는 걸 깨달은 게 첫번째 수확이요, 운동이나 휴식, 습관 바꾸기 같은 아주 쉬운 노력을 통해서도 쉽게 창의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걸 알았다는 게 두번째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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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싶은 동네
정진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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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이 아니라 펜을 놀려 싸우는 평화로운 전쟁터는 지성과 감성이 다투는 터전이다. 거기에 자국 문화의 우수성을 주장하느라고 무리수를 두었던 애국적 필자들은 이제 인기가 시들하다. 교과서적인 명성을 날리던 저술도 죽을 쑤고 있다. 한때 박식한 사가들은 위증을 위한 증거 자료처럼 방대한 책을 써냈고, 이런 책들은 아군, 적군을 가리지 않고 다국어로 번역되곤 했다. 그런데도 한 세기도 안 된 지금은 헐값에도 찾는 사람이 없이 비만증에 걸려 병상에 누운 거물처럼 서가에 처박혀 있다." (p.208)

 

"번역은 다른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려는 것이므로 번역서가 번창하는 시대는 상호 이해에 더 다가설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이다. 상대방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그치지 않는 곳에서 상호 공존을 이야기할 수 있다. 영어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우리로서는 번역을 더욱 다변화해야 하는데도 되레 경시하는 풍조야말로 불길하기 짝이 없다. 모국어와 동시에 여러 외국어를 이해하는 번역가들이 많은 사회야말로 균형 잡힌 사회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외국어 잘하기보다는 모국어 죽이기를 서슴지 않는다." (pp.270-1)

  

 

정진국이 쓴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는 제목 그대로 스위스, 프랑스, 독일, 베네룩스3국,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 등 유럽 각지에 산재해 있는 책마을을 저자가 직접 방문하고 그곳의 역사와 실정을 기록한 책이다. 책마을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파주에 위치한 헤이리 출판문화단지가 유명한데, 저자는 이런 산업적인 목적으로 건설된 출판문화'단지'보다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들었거나 자생적인 책'마을'에 주목했다. '마을'이다보니 대부분이 책마을의 운영 방식과 각 서점의 성격, 취급하는 책의 종류 등이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특색이 있다. 

 

 

나라별, 지역별 특색을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영세중립국인 스위스는 예로부터 인접 국가의 사상범, 망명자들이 피난처로 즐겨 찾았던(?) 나라라서 사상에 관한 책이 유난히 많다. 예술로 유명한 프랑스와 베네룩스 3국은 화첩과 화가들의 일생을 다룬 책들이 많다. 북유럽의 스웨덴, 노르웨이 같은 나라는 동화, 환상문학 등이 발달한 나라답게 동화책, 판타지 문학책이 많다. 책마을이라고 해서 다 비슷비슷한 중고책들을 팔 줄 알았는데 각각 특색이 있어서 재미있고 신기했다. 여행기 형식인만큼 유럽에는 어떤 책마을이 있고 외국의 책마을은 어떤 모습인지 감상하기 위한 목적으로 읽는 것도 좋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마을'이라는 테마를 통해 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생각해보며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저자 역시 단순히 여행지에 대한 감상만 늘어놓지 않고, 책마을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인기있는 서점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으며, 그곳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일을 하고 어떤 사람들이 손님으로 오는지 등을 예리하게 관찰했다. 

 

 

좋은 책이란 무엇이며, 좋은 책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문화적 토양, 사회적 환경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뼈있는 말을 남겼다. 가령 시류에 편승하고 당대에만 주목받는 책보다는 영원히 사랑받을 수 있는 책이 좋은 책이라든가(), 한국의 출판문화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번역문화도 바뀌어야 한다는 대목이 그렇다. 번역에 대해서는 고인이 된 요네하라 마리도 같은 논지의 주장을 한 바 있다. 우리나라 출판 시장에서 번역서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고, 그 중에서도 영어, 일본어 번역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우리나라 출판계에, 나아가 문화계와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출판계까지 갈 것도 없이, 프랑스어나 독일어, 스웨덴어 같은 유럽 지역의 언어를 모르는 내가 유럽의 책마을에 간들 얼마나 볼 것이고 얼마나 느낄 것인가! 지금 우리나라 책이 처한 문제는 책 자체나 책마을보다도, 책 이전의 국민들의 문화적, 언어적 소양의 부족, 나아가 사회적 환경의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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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 - 이성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성적 신호의 비밀
오기 오가스 & 사이 가담 지음,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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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는 남성에 대한 호기심과 이성 교제에 대한 갈망을 드라마와 아이돌 영상으로 대신하던 나의 예전 모습을 정확히 설명하는 책이다. 공저자 오기 오가스와 사이 가담은 남성과 여성이 각각 성에 대한 호기심과 욕구를 어떻게 인지하며 어떤 방식으로 해소하는지를 다양한 관점과 차원을 통해 분석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성은 이미지, 즉 시각적인 자극에 취약해서 포르노와 같은 매체에 탐닉하고, 여성은 감정적, 심리적인 자극에 약하기 때문에 로맨스 소설, 드라마, 영화 등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 남성이 포르노, 야동에 탐닉하는 건 알겠는데, 여성이 로맨스 소설과 드라마, 영화로 성적인 호기심과 욕구를 해소한다고? 놀라지 마시라. 2008년 미국과 캐나다에서 로맨스 출판업의 수익은 온라인 포르노의 수익보다 높았다. (p.169) 우리나라에도 드라마, 영화에 탐닉하는 여성의 수는 엄청나게 많고, 아이돌, 만화, 팬픽, 라이트노벨 등 서브 컬처로 범위를 넓히면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여성이 포르노, 야동을 즐겨보지 않는다고 해서 성욕이 없는 건, 성욕을 해소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드라마, 영화, 만화, 아이돌 영상 등의 매체를 그저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팬덤을 통해 확산시키거나, 팬픽, 팬아트 등 창작 활동을 통해 재생산하는 기세를 보면 그 욕망이랄까 에너지가 더 크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남성은 여성의 가슴, 엉덩이말고도 발에 민감하다. 남성의 발모양에 민감하지 않은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과거 중국에 전족이라는 풍습이 있었던 것을 보면 드문 일은 아닌 것 같다. 남성의 성적 관심사는 어린 시절의 성경험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서, 어린 시절에 성적 자극을 준 여성이 뚱뚱한 여자라면 뚱뚱한 여자에게, 가슴이 작은 여자라면 가슴이 작은 여자에게 끌릴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니 남성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취향을 가졌으리라고 속단해서는 안된다. 남성과 달리 여성은 신체적 흥분과 심리적 흥분을 구분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신체적으로 흥분해도 심리적 흥분이 일어나지 않으면 끌리지 않는다고 한다. 여자 연예인의 얼굴과 외모를 주로 보는 남성들과 달리, 남자 연예인의 학벌, 가정환경, 교우관계, 학교생활, 장래희망부터 혈액형, 별자리, 좋아하는 음식, 선호하는 브랜드, 패션 스타일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알고 싶어하는 여성의 심리는 이런 데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외모가 별로인 남성이라면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어린시절에 어떤 상처를 입었고, 가족과 친구는 어떤 사람들이며,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같은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물론 과장이나 허세, 거짓말은 빼라. 솔직한 이야기, 슬픈 이야기, 불쌍한 이야기에 여자는 더 끌린다. 개인사, 가십을 좋아하는 보통의 여성이라면, 전부는 아니라도 반쯤은 당신에게 호감을 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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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팔리는가 - 뇌과학이 들려주는 소비자 행동의 3가지 비밀
조현준 지음 / 아템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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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불완전하고, 심지어 왜곡된다는 것은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기억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미국 서던 메소디스트 대학교의 연구팀은 <소비자연구저널>에 '팝콘 실험'에 대해 발표했다. 연구진은 피실험자를 두 집단으로 나눠 신제품 팝콘 광고만 보게 했다. 한 쪽은 생생한 이미지 광고였으며, 다른 쪽은 이미지가 없는 텍스트형 광고였다. 1주일 뒤 진행된 신제품에 관한 태도조사 결과는 놀라웠다. 생생한 이미지 광고를 본 집단은 자신들이 팝콘을 먹었으며 이는 확실하다고 대답했다(실제로 먹지 않았다). 이들은 실제 제품을 먹어본 집단과 동일한 정도의 확신과 호감을 보여주었다." (pp.133-4)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해야만 했던 여성은 빠른 판단이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우수한 자손을 낳기 위해서 훌륭한 남성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했다. 여성의 뇌는 정확한 판단을 위해 느리지만 좌뇌와 우뇌를 모두 사용해 많은 정보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한 마디로 듀얼 코어다). 양쪽 뇌를 모두 사용한다는 것은 감정 정보가 어느 뇌에 전달되든 감정 관련 정보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높은 감정 정보 처리능력으로 여성은 남성들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많은 것을 인지할 수 있다. 이러한 인지능력으로 인해 여성은 남성들이 전혀 보지 못하는 상품, 매장, 판매원 등의 세밀한 부분(디테일)까지 느낄 수 있으며, 이러한 디테일에 대해  여성의 감정의 뇌는 더 많은 자극을 받고 즐거워한다. 여성이 쇼핑 자체를 즐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p.282-3) 


   

녹차보다는 아메리카노 커피가, 아메리카노 커피보다는 프림이나 설탕이 잔뜩 든 인스턴트 커피가 몸에 훨씬 안 좋다는 걸 알면서도 마시는 이유는 뭘까? 그것도 모자라 커피전문점에서는 밥 한 끼 값에 달하는 커피를 사서, 거기에 크림과 시럽을 듬뿍 넣어 마시는 이유는 뭘까? 원가가 몇백 원, 몇천 원 밖에 하지 않는 외국 화장품을 몇만 원, 몇십만 원 주고 사는 이유는 뭘까? 결코 수지나 김태희처럼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들이 광고하는 제품을 사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SK 마케팅앤컴퍼니 틸리언 컨설팅 그룹 사업부장을 역임하고 있는 조현준이 쓴 <왜 팔리는가>는 이러한 소비자들의 비합리, 비이성적인 소비 행위에 주목하는 책이다. 저자는 그동안 마케팅에 관해 수많은 연구와 저술 활동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소비를 결정하는 근본적인 동기, 이유에 관한 설명이 부족함을 지적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뉴로마케팅'이다. 뉴로마케팅은 뇌과학을 이용하여 기존 마케팅 법칙들이 설명하지 못했던 소비자 행동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새로운 방식의 마케팅이다. 뉴로마케팅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소비자가 의식을 이용해 합리적, 이성적으로 소비를 결정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의식이 소비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그동안 소비자를 합리적인 소비 주체, '호모 이코노미쿠스'로 전제하고 마케팅을 한 기업의 입장에서는 맥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황당한 건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피땀흘려 번 돈을 꼼꼼히 따져보고 알뜰하게 써도 모자랄 판에,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무의식이라는 녀석이 제멋대로 지갑을 열고 있다니!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를 사마실 때, 큰맘 먹고 큰 돈 들여 화장품 살 때마다 챙겨야 할 것이 지갑만은 아닌 셈이다. (내 의식부터 챙기자!)



좋다면서 사지 않는 소비자, 방금 보고도 어느 제품의 광고인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소비자, 비싼데도 더 싸다고 말하는 소비자, 브랜드가 곧 차이라고 믿는 소비자, 제품은 사지 않으면서 프로모션, 이벤트 혜택만 누리려고 하는 소비자 등등 수많은 유형의 소비자들을 상대하느라 마케터들도 참 힘들 것이다. 오죽하면 애플은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다고 할까? (p.26) 그러나 이러한 비합리, 비이성적 소비 행위로 인해 가장 큰 손해를 보고 있는 사람은 소비자들 자신이다. 먹어본 적도 없는데 광고의 이미지를 본 것만으로도 먹어봤다고 착각하는 소비자들. 왜곡된 기억으로 인해 지갑을 여는 그네들이 애처롭다. 뭐, 나라고 다르겠는가? 광고에서 신제품 맥주를 들이키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먹어본 적도 없는 맥주맛이 입에서 맴돌고, 수지가 방긋방긋 웃으며 살랑살랑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본 적도 없는 화장품의 향과 촉감이 느껴지고...... 지갑이 안 열리는 게 이상할 정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업은 소비자들보다 한발 앞서 소비 행태를 철저하게 연구하고, 각 소비자 그룹에 맞는 마케팅 전략을 개발하고 있다. 여러가지 전략 중에서 나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노린 마케팅 전략이 인상적이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감정 정보 처리능력이 높아서 한꺼번에 많은 자극에 노출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고 즐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여성이 남성보다 쇼핑이라는 행위 자체를 더 즐기고, 물건을 구입할 때도 물건 자체의 기능 외에도 브랜드, 패키지, 매장, 서비스, 스토리텔링 등 부가적인 요소, 즉 디테일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고 한다. 기업들이 여성들의 이러한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여성으로서는 즐거운 일이지만, 이로 인해 소비의 노예로 전락하고, 과소비의 그물에 걸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일이다. '팔리는' 물건에 정신은 물론 인생마저 '팔리면' 곤란할테니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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