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없는 것 하영 연대기 3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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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주인공인 한국형 미스터리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서미애 작가의 '하영 연대기' 3부작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잘 자요 엄마>,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를 잇는 하영 연대기 3부작의 마지막 <나에게 없는 것>을 읽었다. 읽기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나도 주인공 하영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아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뉴욕에 사는 '유진'이 하영이다(출판사 제공 책소개에도 나오므로 스포 아님). <잘 자요 엄마>에선 열한 살 초등학생,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에선 열여섯 살 고등학생으로 나왔던 하영이 이제는 이십 대의 사회인이다. 


뉴욕의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고 있는 유진은 재벌가 사모님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에게 자신의 딸 '세나'를 지켜봐 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세나는 유진이 일하는 카페에 종종 오는 한국인 유학생으로, 유진은 급료를 훨씬 웃도는 수고비에 아파트까지 제공하겠다는 말에 혹해 제안을 받아들인다. 결국 세나와 언니 동생 사이가 된 유진은 착하고 순수한 데다가 자신을 잘 따르는 세나에게 호감을 느낄수록, 세나 엄마의 제안을 받아 세나에게 접근했고 세나 엄마의 돈을 받으며 세나를 만나고 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세나가 '완전 범죄'를 저지르는 현장을 목격한다.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여전히 해사한 얼굴로 자신을 대하는 세나에게 거리감을 느낀 유진은 세나도 자신과 같은 부류임을 깨닫고 세나의 인생에서 사라지기로 결심한다. 이를 위해 유진이라는 존재를 지우고 이번에는 '가인'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기로 한다. 가인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많이 사는 첼시에 방을 얻은 후 낮에는 그림을 그리고 저녁엔 근처 묘지공원을 산책하는 생활을 한다. 그러다 우연히 어떤 사건에 휘말리면서 인생이 바뀌게 되고, 그동안 자신이 도망쳐 왔던 사람들, 사건들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잘 자요 엄마>,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를 읽을 때는 미성년자이고 아직 어른들의 돌봄과 보호가 필요한 하영에게 계속해서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는 게 솔직히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나에게 없는 것>의 하영은 이제 성인이고, 그것도 별 볼일 없는 어른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구하고 남까지 구할 수 있는 너무 멋진 어른으로 커서, 보는 내내 안심이 되고 흐뭇하기까지 했다. 작가님이 하영을 참 많이 아끼고 사랑하신다고 느꼈고, 하영에게 공감하는 독자들에게 위로와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소설에서 하영 다음으로 비중 있는 화자로 등장하는 선경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다. 선경에게 하영은 죽은 남편이 전처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로, 직접적인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자신의 딸 '사랑'에게 하영은 배다른 언니가 된다. 시리즈 내내 선경은 하영에 대해 두려워하는 마음 반, 걱정하는 마음 반인 상태로 지내왔고, <나에게 없는 것>에서도 초중반에는 그렇다. 그랬던 선경이 최종적으로는 하영에 대한 의심을 거두고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장면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하영이 가장 바랐던 것도 결국 이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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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랑전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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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라면 작가나 주제,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지만, SF는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좋다는 말을 듣고 시도했다가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해 몰입에 실패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주목 받는 SF 작가이자 류츠신의 소설 <삼체>의 영어판 번역자로도 유명한 켄 리우의 작품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읽게 된다. 몰입도 좋고, 무엇보다 문장이 좋아서, 읽은 후에는 어김 없이 '좋다'는 말이 입에서 터져 나온다. SF라는 장르 형식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좋은 소설을 쓸 것 같은 작가랄까. 최근에 읽은 켄 리우의 두 번째 소설집 <은랑전>도 그랬다.


이 책에는 모두 13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SF 하면 과학 기술이나 우주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하는 독자들이 많을 텐데, 그런 기대를 충족해 줄 작품도 물론 여러 편 있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던 모녀 3대의 서사를 통해 인류의 미래와 우주의 질서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일곱 번째 생일>, 헤어진 여자친구 로런이 죽은 후 그녀가 남긴 자신의 딸 매기와 우주 여행을 하게 된 남자의 모험을 그린 <메시지>, 인간의 기억 중에 중에 범죄와 같은 부정적인 기억을 선택적으로 삭제할 수 있게 된 세상을 배경으로 하는 <환생>, 사고로 죽은 가족의 사진이나 개인 정보가 '인터넷 트롤링'의 대상이 되는 경우를 보여주는 <추모와 기도> 등이 그렇다.


중국계 미국인인 작가는 대표작 <종이 동물원>처럼 자신의 아시아인 정체성을 반영한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이 책에도 그런 작품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계 미국인 과학자인 여성이 오키나와에 스파이로 투입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맥스웰의 악마>, 고위 관료의 딸로 태어났으나 무술 수련 후 자객이 된 여자의 일대기를 그린 표제작 <은랑전>, 삼국지의 도원결의를 재해석한 <회색 토끼, 진홍 암말, 칠흑 표범> 등이 그렇다. <환생>의 경우, 작가가 작품에서 직접 언급한 건 아니지만, 기억을 지운다고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 없었던 게 되지는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2차 대전 때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저지른 만행과 그 후에 이어진 역사 왜곡, 사죄 및 반성의 부재 등을 비판하는 내용으로도 읽혔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단편은 <진정한 아티스트>이다. 영화학도인 소피아는 직접 만든 영화 관련 영상이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되어 영화사로부터 취업 제안을 받는다. 당연히 제작진으로 취업하게 될 줄 알았던 소피아는 영화 제작은 '빅 세미'라는 컴퓨터가 하고, 자신이 하게 될 일은 컴퓨터가 만든 영상을 보고 반응을 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당황한다. 예술을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자본과 예술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 결합하여 인간은 더 이상 예술가의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 관객이나 소비자로만 기능하게 된 미래(어쩌면 현재?)를 미리 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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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목편지
김보희 지음 / 터틀넥프레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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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책을 열심히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출판사도 여럿 생겼다. 그중 하나가 '터틀넥프레스'이다. 터틀넥프레스는 20년 가까이 편집자로 일해온 김보희 대표가 혼자서 운영하는 1인 출판사이다. 아마도 재작년에 우연히 터틀넥프레스의 존재를 알게 되어 김보희 대표가 (거북'목'이라서) 매주 '목'요일에 보내는 뉴스레터 '거북목편지'를 구독하기 시작했는데, 일반적인 출판사 뉴스레터보다 훨씬 다정하고 친밀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지금까지도 구독 중이다. 


2025년에 출간된 <거북목편지>는 뉴스레터 '거북목편지'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1인 출판사를 차리는 과정에서 뉴스레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 뉴스레터를 시작하면서 겪은 시행착오, 기쁨과 보람 등이 자세히 나온다. <터틀넥프레스 사업일기>가 저자 혼자만의 기록이라면 <거북목편지>는 저자와 객원 필자, 독자들이 함께 소통한 기록이기 때문에, 내용은 비슷한 듯해도 결이 조금 다르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로 대표님의 섬 여행기를 좋아해서 언젠가 책으로 꼭 내주셨으면 좋겠다. 국내 섬 여행, 나도 따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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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손턴 와일더 지음, 정해영 옮김, 신형철 해제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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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운명은 정해져 있을까, 그렇지 않을까. 애초에 운명이란 게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1897년생 미국 작가 손턴 와일더가 1927년에 발표한 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왜 어떤 사람은 오늘 생을 마감하고 어떤 사람은 내일도 사는지, 그것을 정하는 것이 운명인지 우연인지 질문하며 시작한다. 


1714년 7월 20일 금요일 정오,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로 불리는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무너지며 다섯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우연히 사고를 목격한 주니퍼 수사는 자칫하면 자신이 죽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들의 죽음이 단순한 우연인지 아니면 신의 의도인지 알아보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망한 다섯 명 각각의 사연을 알아보아야 했다. 사망한 사람은 스페인으로 시집간 딸을 그리워했던 어머니 몬테마요르 후작 부인과 그의 하녀 페피타, 쌍둥이 형제를 잃고 괴로워하던 청년 에스테반, 왕의 정부가 된 여배우의 스승이었던 피오 아저씨, 그리고 그녀의 아들 하이메다. 


주니퍼 수사는 각각의 사연을 조사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참 기구하고 특별한 인생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들은 살면서 늘 착한 행동만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쁜 행동만 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이들의 죽음은 선행에 대한 보상도 아니고 악행에 대한 징벌도 아닐 터였다. 그렇다면 이들이 한날한시에 같은 장소에서 생을 마감한 것은 오로지 우연의 작용이란 말인가. 우연에 의해 죽을 수도 있고 우연에 의해 살 수도 있다면, 대체 인간은 무엇에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 걸까. 이런 고민 끝에 주니퍼 수사는 중요한 건 이들이 운명 때문에 죽었는지 우연 때문에 죽었는지가 아니라, 이들이 결국 사는 동안 자신들이 행했던 '사랑'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몬테마요르 후작 부인은 사는 동안 많은 부와 명예를 가졌지만 사람들은 그를 딸에게 집착적인 사랑을 보였으나 끝내 보답받지 못한 불쌍한 어머니로 기억했다. 에스테반은 한 몸처럼 아꼈던 쌍둥이 형제가 죽은 후 슬픔에 빠져 지낸 존재로, 피오 아저씨는 제자를 딸처럼 사랑했던 스승으로 기억했다. 그 결과가 이별이든 배신이든 사람들은 그가 사는 동안 했던 사랑으로 그를 기억했다. 결국 사랑이다. 사랑만이 남는다. 그러니까 운명이나 우연에 대해 생각할 시간에 사랑에 대한 생각을 하라고, 아니 사랑을 하라고 말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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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포 투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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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출간된 에이모 토울스의 책은 모두 네 권이고 전부 읽었다. <모스크바의 신사>, <우아한 연인>, <링컨 하이웨이> 그리고 가장 최근에 출간된 <테이블 포 투>까지 하나 같이 벽돌책 두께인데 하나 같이 재미있다. 앞서 출간된 세 권이 모두 장편소설인데 반해 <테이블 포 투>는 작가가 쓴 짧은 이야기들을 모은 소설집이다. <테이블 포 투>에는 단편소설 여섯 편과 중편소설 한 편이 실려 있고, 단편 여섯은 뉴욕을, 중편 하나는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한다. 단편은 다소 고전적인 느낌이 들면서도 유머와 반전이 있는 작품들이고, 중편은 여성이 활약하는 추리 모험 활극이다.


이 책에 실린 단편은 20세기 초 러시아의 농민 부부가 모스크바를 거쳐 뉴욕으로 오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줄 서기>소설 쓸 거리가 없어서 고민인 소설가 지망생이 유명 작가들의 서명을 위조하는 일을 맡게 되면서 벌어진 일을 그린 <티모시 투쳇의 발라드>, 알코올 중독 치료 중인 남자와 호텔에서 보낸 하룻밤을 담은 <아스타 루에고>, 엄마로부터 새아버지를 몰래 미행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여자의 모험을 그린 <나는 살아남으리라>, 음악회에서 연주를 불법 녹음하는 노인과의 일화를 담은 <밀조업자>, 르네상스 작품의 마지막 조각을 찾고 있는 전직 경매사의 이야기를 그린 <디도메니코 조각> 등이다.


읽으면서 작가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와 역사에 대한 관심이 깊은 점, 인간 심리의 다양성, 복잡성에 주목하는 점이 그렇다. 특히 두 작가 모두 겉보기에는 평범하고 대체적으로는 선한 사람들이 자기 자신만은 잘못된 걸 모르거나 스스로도 잘못된 걸 알면서 결코 버리지 못하는 어떤 부정적인 특성(욕망, 집착, 중독, 수치심 등) 때문에 어떻게 자기 인생을 망치고 남들에게도 피해를 주는지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읽다 보면 '성격이 운명이다'라는 말이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로스앤젤레스가 배경인 중편소설 <할리우드의 이브>는 작가의 첫 장편소설 <우아한 연인>의 후일담이다. 1938년 뉴욕을 떠난 '이블린 로스(이브)'는 할리우드가 있는 로스앤젤레스로 향한다. 호텔 화장실에서 우연히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런드를 만나 친구가 된 이브는 '나쁜 남자들이 만든 함정'에 빠져 배우 생활이 끝날 위기에 놓인 올리비아를 도와주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할리우드에서(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많이 벌어질 거라는 생각은 했는데 공교롭게도 앱스타인 문건이 추가 공개된 시점에 이 소설을 읽어서 기분이 매우 더러웠다. 30년대에 이 정도의 일이 벌어졌다면 그 후에는 얼마나 더 많은 추악한 일들이 일어났을까. 그러고도 가해자들은 처벌 받지 않고 오히려 승승장구하고 피해자들만 고통 받았겠지. 생각할수록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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