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 테리 이글턴의 아주 특별한 문학 강의
테리 이글턴 지음, 이미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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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이글턴이 당대 최고의 문학 비평가라고 해서 호기롭게 구입했는데 읽기가 쉽지 않았다. 문학 이론을 전혀 모르거니와 언급되는 작품들도 죄다 영미권 작품뿐이어서 아는 작품에 관한 설명 위주로 띄엄띄엄 읽을 수밖에 없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은 것은 이동진 작가님이 <이동진 독서법>에 소개한 추천도서 500권 중 한 권이기 때문 ^^). 


몇 가지 수확이 있기는 하다. 첫째는 반드시 직접 경험했거나 알고 있는 사실을 작품에 담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직접 경험했거나 알고 있는 사실만 글로 쓸 수 있다고 믿으며,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작품에 나오는 일들을 직접 경험했거나 적어도 자세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오해한다. 저자에 따르면 "독신자가 인간의 성에 대해 세 번 결혼한 난봉꾼보다 더 섬세하게 묘사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작가는 글을 쓰는 행위 너머의 그 어떤 경험도 하지 못할 수 있지만, 그가 하지 못한 경험을 글로 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둘째는 독자 없이는 문학이 없으며, 작품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독자의 능력과 역사적 상황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처음 상연되었을 때 당대 영국인들이 복수의 도덕성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현대인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한때 노처녀 노총각의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로 읽혔지만, 현대 여성들은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읽으며 비혼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편견과 압박, 가부장제의 모순과 폐해 등을 생각한다. 


셋째는 비평 또는 평론의 역할이다. 비평가 또는 평론가는 문학 작품에서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보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보는 것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들 역시 창작의 주체이며 예술가의 반열에 들 만하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글은 <해리 포터> 시리즈와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비교한 글이다. 두 작품 모두 고아 소년이 주인공인데, 두 소년이 겪게 되는 상황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어떻게 다르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책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분석 내용 자체도 훌륭하지만, <해리 포터> 시리즈와 <위대한 유산>을 전부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걸 보면 테리 이글턴이 확실히 대단한 사람이기는 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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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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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일제 강점기에 살았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운 나쁘게 한반도 이남이 아닌 이북에서 태어났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정의와 자유를 위해 이 한 몸 기꺼이 바쳤을 것,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는 내가 그렇게 용감하지 않고 이타적이지 않은 인간이라는 것을 잘 안다. 기껏해야 부역자가 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피하면서 목숨을 부지하는 데 급급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싶다. 


줄리언 반스의 신작 <시대의 소음>의 주인공이자 러시아의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떨친 쇼스타코비치가 처한 상황도 비슷하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두각을 보였으며 젊은 나이에 이미 천재 작곡가로 추앙받았던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이 정권을 잡으면서 정권의 취향에 맞는 음악을 만들거나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목숨을 버려야 하는 궁극의 선택 앞에 놓인다. 결국 쇼스타코비치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음악가로서의 자존심을 꺾는 쪽을 택하고, 이후 권력과 양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삶을 살게 된다. 


어떻게 권력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어, 라고 비난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쉽지 않다. 쇼스타코비치가 처한 상황만 봐도 그렇다. 쇼스타코비치는 열아홉 살 때 스탈린 앞에서 연주를 하다가 단 한 번 실수했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겨우 목숨을 부지해 소비에트 대표단의 일원으로서 미국에 가지만, 자신의 우상을 자본주의의 하수인이라고 비판하도록 강요받는다. 마침내 명예를 회복해 금지된 곡들을 연주할 수 있게 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괴롭힌 공산당에 가입해야 한다. 어느 누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과거 러시아에서 쇼스타코비치처럼 고생한 문화 예술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수십 년 후 대한민국에서 얼마 전까지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못해 뜨악하다. 그 이름도 흉악한 블랙리스트다. 


정권에 충성하지 않거나 방해가 되는 문화 예술인들의 목록을 만들도록 대통령(과 비선실세)가 지시하고 관료와 공무원들이 정연하게 움직였던 것이 불과 몇 달 전까지의 일이다. 블랙리스트에 가담한 부역자들이나 정권에 납작 엎드리는 쪽을 택한 문화 예술인들 -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 에게도 그들 나름의 피치 못할 이유가 있겠지만, 양심과 자존심을 택한 대가로 입에 재갈이 물려지고 생계를 위협당한 블랙리스트 문화 예술인들을 생각하면 역시 용서하기 힘들다. 용서할 수 없다.


쇼스타코비치, 당신은 당신 나름대로 '시대의 소음'과 맞서 싸우느라 고생했어, 라고 위로하자니 마음이 석연치 않다. 그렇다고 당신은 부당한 권력 앞에 복종했으니 예술을 말할 자격이 없어, 라고 비난하자니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 비겁하지 않은 내가 민망하고 부끄럽다. 그렇다고 쇼스타코비치처럼 기꺼이 자존심을 꺾거나 목숨을 바칠 만큼 소중한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체 난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걸까. 새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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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장 행복한 탐정 시리즈 4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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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탐정 시리즈 4탄 기다렸습니다. 에피소드 하나하나 재미있고 인상적이네요. 앞으로 동일본 대지진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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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장 행복한 탐정 시리즈 4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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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 하면 어떤 작품이 유명할까? <화차>? <모방범>? 실제로 대중성 면에서나 작품성 면에서 <화차>와 <모방범>을 따라잡을 만한 작품은 많지 않다. 신작이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화차>와 <모방범>만큼 하드보일드한 성격이 강한 작품이 많지 않은 것을 보면, 앞으로 미야베 미유키가 <화차>와 <모방범> 같은 작품을 쓸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그렇다고 <화차>와 <모방범> 단 두 작품만 읽고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세계를 속단해선 곤란하다.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세계는 훨씬 넓고 방대하다. 현대물뿐만 아니라 시대물도 수십 권을 발표했고, 현대물 안에서도 현실을 충실히 반영한 사회성 짙은 작품들이 한 축을 이루는가 하면, SF적인 요소가 가미된 독특한 내용의 작품들도 다른 한 축을 형성한다. 


현대물 하면 '행복한 탐정 시리즈'를 빼놓을 수 없다. 행복한 탐정 시리즈는 <누군가>, <이름 없는 독>,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으로 이어지며, 최근 4탄에 해당하는 <희망장>이 출간되었다. SF적인 요소는 없는 대신 사회성이 짙지만, <화차>와 <모방범>에 비해 사건의 스케일이 작고 호흡이 길지 않은 단편을 연결하는 구성을 취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읽기 좋다. 


주인공은 스기무라 사부로. 대기업 회장 딸과 결혼해 사내 잡지 편집자로 일하다가 이혼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둔 그는 <희망장>에서 마침내 탐정 사무소를 개업하며 전업 탐정으로 변신한다. 손님이 찾아올까 반신반의하던 그에게 드디어 첫 손님이 찾아왔으니 손님은 바로 동네 아주머니. 사건이 해결되면 쓰레기장 청소를 대신해준다고 해서 살짝 김이 빠지기는 하지만, 첫 손님인 만큼 흔쾌히 사건을 수락하고 해결에 나선다. 


<희망장>에는 '성역', '희망장', '모래 남자', '도플갱어' 이렇게 총 네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대부분 동네 주민이 의뢰한 사건인 만큼 시작은 소소하고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건을 깊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예사롭지 않은 사건임이 밝혀지고 현대인들이 안고 있는 병적인 심리나 사회 문제와도 관련이 있음이 밝혀진다. 


네 편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도플갱어'다. 3.11 동일본 대지진이 배경인 이 이야기에서 작가는 작중 인물의 입을 빌려 "앞으로 꽤 오랫동안 그 지진의 영향을 받은 안건을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언젠가 동일본 대지진을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보일 것이라는 예고로 받아들여도 될까. 사고 이후 안심하라는 정부의 발표를 일단은 믿는 척하지만, 방사능에게 오염되었을지도 모르는 수돗물을 자식에게는 먹이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미야베 미유키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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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가 부도칸에 가 준다면 난 죽어도 좋아 1
히라오 아우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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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아이돌을 좋아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음반을 구입하거나, TV 프로그램을 녹화하거나, 화보나 기사가 실린 잡지를 스크랩하는 게 전부였다. 지금처럼 아이돌 콘서트가 많지도 않았고, 사인회나 악수회 등 아이돌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드물었으며, 공개방송이나 공항에 따라다니는 건 학업 또는 생업을 포기한 열성팬이나 할 수 있는 일로 여겨졌다. 


지금은 다르다.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의 포토카드를 모으기 위해 똑같은 음반을 열 장, 스무 장씩 구입하고, 음원 순위를 올리기 위해 하루 종일 스트리밍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음원을 선물하기까지 한다. TV뿐 아니라 인터넷, 모바일 방송도 빠짐없이 챙겨 보며, 아이돌이 직접 운영하는 SNS를 구독하고, 해외 방송까지 섭렵한다. 콘서트 참가는 기본이고, 크고 작은 공연이며 촬영, 행사, 공항 입출국을 모두 따라다니면서 그들의 사진과 일화를 실시간으로 중계해야 '팬질 좀 한다' 소리 듣는다.


팬질 좀 해본 사람은 물론이요, 누군가의 팬이거나 팬이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한 공감할 만한 만화가 나왔다. 제목은 <최애가 부도칸에 간다면 난 죽어도 좋아>. 히라오 아우리의 최신작으로, 일본 오카야마 현에서 활동하는 마이너 지하 아이돌 'ChamJam'에서도 비인기 멤버인 '마이나'를 좋아하는 열혈팬 '에리피요'의 이야기를 그린다. 


에리피요가 팬질하는 모습은 한국의 여느 아이돌 팬 못지않다. 마이나의 악수회 티켓을 얻기 위해 음반을 수십 장씩 사는 것은 기본이요, 공연 때마다 온갖 수를 써서 맨 앞줄을 사수한다. 행사가 있을 때면 누구보다 빨리 입장하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는 것은 물론이고, 어쩌다 다른 지역에서 공연이 있을 때는 비싼 교통비와 숙박 요금을 감수하며 원정을 감행한다. 남자친구는 당연히 없음. 직업은 있지만 수입은 마이나에게 다 바치기 때문에 늘 빈털터리 신세이고, 가진 옷을 다 팔아치웠기 때문에 고교 시절에 입었던 체육복을 입고 다니는 것으로 팬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에리피요의 꿈은 마이나의 호감을 사는 것도 아니고, 마이나와 잘 되는 것도 아니다. 에리피요는 오카야마 현의 마이너 지하 아이돌인 마이나가 그룹 내에서 센터가 되고, 언젠가는 전 국민이 다 아는 존재가 되어 일본 대중문화의 성지인 부도칸에서 화려하게 공연하는 것이 자신의 꿈이자 목표다. 자신의 최애인 마이나가 전 국민의 최애가 될 수 있다면 자신은 죽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당사자인 마이나조차 에리피요를 외면한다는 것(ㅋㅋ). 에리피요는 자신의 못난 행색을 마이나가 부끄러워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지나친 열정을 마이나가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면서도 마이나에 대한 애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마이나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대체 마이나는 왜 에리피요를 외면하는 걸까. 에리피요는 언제쯤 마이나의 진심을 알게 될까. 아이돌 팬 문화 고발로 시작해 아이돌과 팬 사이의 백합향 물씬 풍기는 사랑 이야기로 이어지는 전개가 흥미를 돋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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