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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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생 시인의 산문집을 1986년생 독자인 내가 읽는다. 1989년 초판이 나온 책을 2022년 개정판으로 읽는다. 


책에는 최승자 시인이 등단 이전인 1976년에 쓴 산문부터 2013년에 쓴 산문까지 실려 있다. 1976년. 스물일곱 살의 시인은 앳되다. 가난하고 엄혹했던 시대에도 시인이 되기를 꿈꿨고, 대학 졸업 후 회사에 다니면서 시를 써서 등단했다. 자신의 시가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읽힐지 걱정하면서도 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다른 시인들의 시를 부지런히 읽으며 예찬하고 비평했다. 


덕분에 한국에서 시인으로서는 드물게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고, 오랫동안 널리 읽히는 시인이 되었다. 그러나 1998년 조현병이 발병해 그 후로 지금까지 정신과 병동을 오가는 생활을 하게 되면서 작품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오로지 시를 읽고 쓰고, 시를 위해 공부하는 일만 하면서 살아온 시인으로 보이는데, 자신이 쓴 시로 인한 영광을 누리기는커녕 창작 과정에서 얻은 병과 싸우며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고 안타깝다. 


쓴다는 건, 산다는 건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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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송지현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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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에 송지현 작가님이 나오신다고 해서 부랴부랴 책을 사서 읽었다. 산문집 <동해생활>로 박상영 작가님과 함께 영노자에 출연하셨을 때 무척 재미있었는데 이번에는 또 얼마나 재미있을까 기대하면서. (지지난 주말에 녹음분이 올라왔고, 기대한 대로 재미있었다.)


송지현 작가님의 소설을 읽은 건 이 책이 처음인데, 이 책도 기대한 대로 재미있었다. 유럽 여행을 갈 예정인 이모 대신 뜨개방을 지키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간 '나'의 짧은 연애를 그린 표제작 <우리가 여름에 먹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가족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가족들이 좀처럼 이상하다. ​ ​ ​ 


아버지는 무능하거나 부재하고, 어머니는 계속해서 새로운 애인을 데려온다. 할아버지는 누워서 지내면서도 정력을 신경 쓰고, 할머니는 남편의 영정 사진 앞에서 고스톱을 친다. 이들이 맡고 있는 가족 내 역할에 비추어 보면 이들은 분명 이상하고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개개인을 역할로 보지 않고 인간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싶다. 이상한 것을 이상한 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상성에 집착할수록 나만 괴로워질 뿐이다. 남을 보면서 이상하다고 느끼는 나는 얼마나 정상인가. 나도 남들 눈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타인일 것이다. ​ ​ 


인생도 마찬가지다. <삼십 분 속성 플라멩코>에는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남자친구와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보험 회사에서 계약 해지가 되었는데도 불안해 하기는커녕 가진 돈을 다 털어 여행을 떠나는 '나'가 나온다. 남자친구는 대책 없이 사는 '나'를 비난하지만, '나'는 보험료를 내기 위해 보험을 파는 정규직 직원들이 전혀 부럽지가 않다. ​그런 '나'는 스페인에서 몇 시간짜리 플라멩코 공연을 삼십 분으로 압축한 공연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 속에서 이질감을 느낀다. 


지루할 수 있고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부분은 제거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만족할 만한 부분만 간추려 놓은 공연을 진정한 공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는 실패와 좌절, 불안과 우울 등을 제거한 삶을 살고 싶어서, 가장 확실한 '현재'를 포기하는 삶의 태도와 무엇이 다를까.


모든 인간은 이상하고 모든 인생은 불안하다. 이상하지 않으려고 애쓸수록 이상해지고, 불안하지 않으려고 노력할수록 불안해진다. 이런 문장을 쓰고 있는 나도 이상해 보일까 봐 하루에도 몇 번씩 두렵고, 일주일에 며칠은 불안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곤 한다. 그래서 이런 소설을 쓰지 못하고 읽고 있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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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원 이야기 - 춤과 반려동물과 패션을 금지해도 마음의 불꽃은 꺼지지 않아
깊은굴쥐 지음 / 왼쪽주머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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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재미있고, 수녀원의 일상을 보면서 당시 역사와 문화, 풍습 등을 알 수 있어서 유익하기도 합니다. 깊은굴쥐 작가님의 다음 책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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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원 이야기 - 춤과 반려동물과 패션을 금지해도 마음의 불꽃은 꺼지지 않아
깊은굴쥐 지음 / 왼쪽주머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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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개그 만화라고 하면 어릴 때 책이 닳도록 읽었던 <데굴데굴 세계 여행>이 떠오른다. 남자 교사 두 명과 초등학교 남자아이 두 명이 유럽 전역을 여행한다는(현실에선 보기 힘든) 설정의 만화였는데, 유럽 각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재미까지 준 책이었다. (비슷한 카테고리의 만화 <먼 나라 이웃나라>도 읽었지만, 내 취향은 <데굴데굴 세계 여행>쪽이었다.) 


깊은굴쥐 님의 역사 개그 만화 <수녀원 이야기>는 중세 영국의 수녀원이 배경이다. 수녀원이라고 하면 경건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떠올릴 법한데, 만화 속 수녀원은 여중이나 여고가 떠오를 만큼 시끌벅적한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게 당시 수녀원은 현대의 수녀원처럼 신심이 깊은 여성들이 주님을 섬기기 위해 가는 곳이라기보다는, 여러 사정으로 결혼을 할 수 없거나 이혼 후 갈 곳이 없어진 여성들이 찾는 곳이었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수녀들을 타락으로 이끄는 세 악마(Devil) - 춤(Dance)과 반려동물(Dog)과 패션(Dress) -의 유혹에 쉽게 굴복했다. 미사 시간에는 원장 수녀님의 눈을 피해 수신호로 대화를 나눴으며, 틈만 나면 마을로 내려가 땡땡이를 쳤다. 로맨스 소설을 읽고, 결혼을 꿈꿨으며, 야구를 하고, 토끼를 잡으러 다니기도 했다. 심지어 교황의 칙령을 거부하고 그 칙서를 주교의 머리를 향해 던지기도 했다고. (이건 많이 과격한데...) 


수녀와 수녀원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는 내용이 놀랍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도 여성이고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인데 속세와 얼마나 다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물론 오늘날의 수녀님들은 신심이 깊으시고 현대의 수녀원은 엄숙한 공간입니다만...). 더불어 당시 여성들의 생활과 사회 문화, 관습과 전통에 대해 알 수 있어서 유익했다. 


전에는 딸을 시집보낼 때 지참금을 함께 보내는 문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 따르면 지참금은 아버지가 결혼하는 딸에게 미리 나누어 주는 유산 같은 개념이라고 한다. 나중에 딸이 이혼할 경우 남편이 아내가 결혼할 때 가져온 지참금을 돌려줘야 할 뿐 아니라 그와 비슷한 액수의 재산을 위자료로 줘야 하므로 지참금이 많을수록 딸에게 좋은 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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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탱 게르의 귀향
장 클로드 카리에르.다니엘 비뉴 지음, 고봉만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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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현실적이지 않은 일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흔히 '소설 같다'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때로 현실은 소설을 능가하고, 사람들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16세기 프랑스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기반으로 쓰인 책 <마르탱 게르의 귀향>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 ​ 


1560년. 프랑스의 어느 시골 마을이 한 남자 때문에 발칵 뒤집혔다. 남자의 이름은 마르탱 게르. 아버지와 크게 싸우고 집을 나갔던 마르탱 게르는 8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를 반겼지만, 3년 후 그가 진짜 마르탱 게르가 아니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급기야 그가 진짜 마르탱 게르인지 아닌지를 두고 재판까지 열린다. 


그가 진짜 마르탱 게르가 아니라면 마르탱 게르의 아내는 남편 아닌 남자와 한 침대에서 잔 죄를 추궁당하게 된다. 마르탱 게르가 집을 나간 후, 마르탱 게르의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서 마르탱 게르의 몫으로 남겨놓은 재산을 탈취한 식구들 또한 입장이 난처해진다. 과연 그는 진짜일까 가짜일까. 가짜라면 왜, 어떻게 진짜 행세를 한 걸까. ​ ​ 


처음에는 아무리 옛날이라도 8년 전까지 알고 지냈던 사람을 못 알아본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을 통해 드러난 진실과 재판을 둘러싼 사람들 각자의 욕망을 알고 나니 그가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그렇게 중요했나 싶고, 재판 결과가 과연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결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마르탱 게르의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은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았을까. 행복했을까. ​ 


한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누구의 자식, 누구의 배우자, 누구의 친구, 이웃... 이런 것들로만 어떤 사람을 기억한다면, 이 책에서처럼 그 사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리는 상황이 되었을 때 구분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수록 오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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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2-06-13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틴 기어의 귀향 영화도 괜찮습니다. 함께 보시면 좋을 듯 해요. 베르뜨랑드가 젤 가여웠어요.

키치 2022-06-14 07:54   좋아요 1 | URL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도 베르뜨랑드가 너무 불쌍했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