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 때때로 외로워지는 당신에게 보내는 따스한 공감 메시지
다츠키 하야코 지음, 김지연 옮김 / 테이크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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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가 인기라서 그런가, 주말에 교보문고에 갔더니 만화 코너에 비슷한 분위기의 신간들이 많이 보였다. 그 중에 다츠키 하야코의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도 있었다. 읽지 않았다면 마스다 미리의 책과 비슷한 내용이겠거니 하고 넘어갔을텐데 다행히도 나는 이 책을 읽었고, 주변 사람들한테 꼭 읽어보라고 강추까지 한 상태라서 눈에 하트를 담아 한번 쓰다듬어주고 왔다. 아, 진짜진짜 강추!!!



저자이자 주인공 다츠키 하야코는 서른여섯 살 싱글 여성이다. 직업은 교사. 지방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고, 하나뿐인 여동생은 진작에 결혼했다. 퇴근 후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휴일에는 반려묘와 산책하는 게 그녀의 유일한 낙. 이상형도 딱히 없다. 그냥 말 잘 통하고 적당히 남자다웠으면 좋겠고, 남들이 말하는 조건같은 건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엉겁결에 주변 싱글녀들과 결혼 동맹을 결성하고,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해 몇 번 선을 보고 단체 미팅에 참가하는 게 이 책의 큰 줄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흔한 타입의 여성, 흔한 사건들이라서 크게 신선할 게 없는데도 읽는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음... 그건... 바로 내 얘기라서??? ㅋㅋㅋ



하야코는 동료 미카와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하지만 결과는 미친놈(?)들의 향연을 보는 것뿐이었고, 결혼 동맹 멤버들과 돌아가면서 주최한 단체 미팅에서는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돈과 시간만 날렸다. 사실 하야코는 결혼에 대한 욕망이랄까 열정 자체가 없는 여성이다. 소위 말하는 연애 세포가 죽은 여자? 여자 사마천? 근데 그렇게만 볼 수 없는 게, 연애 세포라든가 욕망, 열정이라는 게 나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일단 연애할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하야코는 직업도 (여자만 득실득실한) 초등학교 교사인 데다가 취미도 없어서 남자를 만날 일이 별로 없고,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결핍된 부분이 없어서 그걸 보완해줄 남자를 찾을 의욕이 나지 않는 게 아닐까 싶다. 게다가 연애라는 게 한 번에 딱 되는 게 아니라 여러 번 연습하고 경험해가면서 익혀가는 것인데, 현대사회는 한창 에너지 넘치는 청소년기에는 연애 금지, 공부만 하게 하고, 성인이 된 후에는 취업이다 뭐다 해서 청년들을 몰아붙이는 구조다. 교사라서 일자리 없어질 걱정도 없고, 돈 걱정도 없고, 어릴 때는 공부하느라, 커서는 선생님 되느라 이렇다 할 연애도 못 해봤을 그녀가 이제와서 연애를 시작한다는 게 불가능해보이기도 한데... 놀랍게도 결혼동맹의 멤버 중에 결혼에 골인하는 멤버가 생긴다! 와, 이거 완전히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구나. 좋은 사람이 있기는 있구나! 하야코에게나 나에게나 희망이 보인다 ㅋㅋㅋ



마스다 미리를 시작으로 일본 여성 작가들의 만화가 요즘들어 눈에 띄게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은 이들이 2,30대 싱글녀들의 도시 생활을 예리하면서도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내기 때문이다. 이 책에도 그런 장면들이 자주 나온다. 월요일 출근길에 '일 같은 건 다 때려치우고 낯선 곳으로' 가버릴까 하는 충동이 들었다가 그만둔다든가, 선배, 언니, 친구들이 줄줄이 결혼하더니 어느덧 후배와 동생들까지 앞지르는 것을 보며 우울해 한다든가, 남자 만나러 갈 때 입을 만한 옷을 고르느라 옷장을 전부 헤집고도 못 골라서 급 쇼핑을 결정한다든가 등등... 이런 장면들은 평범하기도 하고 너절하기도 한 일상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것에 불과한 것 같기도 하지만, 같은 여성이자 삼십대를 눈 앞에 둔 싱글인 내 눈에는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구나, 나만 이런 고민을 안고 있는 게 아니구나 싶어 위로가 되고 감동까지 들었다. (그래도 이젠 이런 싱글녀 만화 말고 결혼 만화, 육아 만화에 공감하고 싶다!!!)



연애와 결혼이 삶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죽어라 일만 하는 게, 돈만 버는 게 행복인 것도 아니다. 공부나 일을 하면서 자아를 실현하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사는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가족을 이루고 살며 삶의 균형을 잡는 게 요즘은 더 간절하다. 연애도 결혼도 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무한히 타협하고 싶지만은 않은 평범한 싱글녀의 속내를 재치있게 담아낸 강추하고픈 만화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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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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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이 독서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추천 도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목록을 만드는 것이다. 진중권이 책을 읽는 이유는 감동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맥락 속에서 자기만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이런 상상의 도서관 놀이를 통해서 그는 그런 책 한 권 쓰고 나면 '죽어도 좋아'라고 말할 만한 책을 몇 권 찾아냈는데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과정>, 프레이저의 <황금가지>, 아리에스의 <죽음 앞에 선 인간> 같은 책이다. (p.30, 진중권 인터뷰 중에서)


"20대 후반에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여러 가지 일들이 잘 안 되었어요. 대학원 논문도 좌절되고 지도 교수는 돌아가셨지요. '이대로 삼성 다니는 애 하나 잡아서 결혼이나 해야 할까?' 생각하며 답답해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나온 고등학교가 있던 남산순환도로를 지나가는데 뭉클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서울예대 신입생 모집 공고였어요. 그때 문득 '저거 한번 해볼까?' 생각한 거죠. 한 학기 다닐 등록금 정도는 있으니까 만약 된다면 열심히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때 시가 쓰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합격하니까 정말로 너무 좋아서 눈을 반짝이며 죽을힘을 다해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p.52, 정이현 인터뷰 중에서)


"당시 소련이 궁핍하진 않았어도 물자 공급은 제한된 사회였는데 책 공급은 좋았다는 거였어요. 원하는 도서는 다 살 수 있었고 웬만한 세계 고전은 다 번역되어 있었어요. (중략) 나중에 북한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해보니 북한 사정은 소련에 비해 어려웠어요. 북한은 70년대 이후 세계 고전 문학을 새로 찍어내지 않았어요. 일부 지식인들만이 60년대까지 인쇄된 서양 고전을 갖고 있었죠. 북한의 보통 사람들은 디킨스나 또 다른 작가들을 전혀 모르고 삶을 마감하는 거죠." (pp.259-60, 박노자 인터뷰 중에서)



나의 책읽기는 <데굴데굴 세계여행>이라는 책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시절, 아직 삼십대였던 젊은 아버지는 월급날이 오면 어머니가 읽을 여성 잡지와 나와 동생이 읽을 만화책이나 책을 선물해주셨다. 그 중에 <데굴데굴 세계여행> 1권이 있었다. 젊은 남자 선생님 두 명과 초등학생 남자아이 두 명, 도합 네 명이(지금 생각해보면 대체 어떤 젊은 남자 선생님이 제자들을 데리곡 여행을 가며, 어떤 아이들의 부모님이 이런 여행을 허락하시나 싶다)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유럽 전역을 누비며 각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가는 내용의 이 책은, 아마도 <먼나라 이웃나라>의 유사품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먼나라 이웃나라>보다도 초등학생 수준에 더 맞는 이 책이 무척 좋았다. 얼마나 좋아했느냐면 하도 많이 읽어서 나중에 책이 걸레처럼 변했을 정도.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나의 꿈은 역사학자, 국제 전문 PD, 외교관 등등 주로 역사와 정치, 외국에 관련된 것이었고,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지금까지도 그 언저리에서 일하며 꿈을 키우고 있는 게 다 이 책 덕분이 아닌가 싶다.



CBS라디오 PD 정혜윤이 쓴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에는 나처럼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이 바뀐 11명의 명사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진중권, 정이현, 공지영, 김탁환, 임순례, 은희경, 이진경, 변영주, 신경숙, 문소리, 박노자 등 인터뷰에 참여한 명사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이들 모두 나같은 범인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읽었는데, 신기하게도 책에 얽힌 경험은 비슷비슷했다. 대부분이 어린 시절 친구보다는 책을 좋아했으며, 운동장에서 뛰놀기보다는 학교 도서관이나 마을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 읽는 것을 즐겼고, 좋은 책을 소개해주는 선생님이나 선배 또는 친구, 글쓰기를 장려해주는 멘토를 만나 독서 수준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었다. 다른 점은 나처럼 책을 닥치는 대로 읽지 않고 일정한 기준을 정해 가려가며 읽었다는 것. 미학자 진중권은 남이 만들어준 독서 목록을 따라 읽지 않고 자신만의 독서목록을 만들어가며 읽었고, 소설가 신경숙은 작가 지망생 시절 도서관에서 관심 작가의 책을 모두 빌려 일정 기간 동안 그 책들만 읽었다고 한다. 그저 좋아서, 흥미 위주로 읽는 것도 좋지만, 작가가 된다든가, 책을 쓴다든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든가 하는 목적 의식을 가지고 그 목적에 맞게 책 읽기를 하는 게 앞으로 내가 책을 읽어나가야 할 방향인 것 같다.



끝으로 정혜윤에 대해서. 나는 정혜윤의 책을 읽을 때마다 반한다. 책을 대하는 태도, 문장을 읽어내리는 감성의 예민함, 이성의 영민함, 풍부한 상상력, 글의 재기발랄함 등이 너무나 멋지고 닮고 싶다. 게다가 책은 또 얼마나 많이 읽은 것인지. 11명의 명사들이 각자 활동하는 분야도 다르고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 관심사가 다른데도 어떤 화제가 나오든 막힘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저자의 능력에 새삼 감탄했다. 대체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으며 지금도 읽고 있는 걸까. 얼마나 읽어야 이런 사유를 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데굴데굴 세계여행>이 세계에 대한 관심을 내게 처음 심어주었다면, 정혜윤의 책은 성인이 된 후 내게 글쟁이로 살고 싶은 꿈과 전문적인 독서가가 되고싶은 열망을 가지게 한 씨앗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도 아직 그녀의 책 중에는 읽은 책보다 사놓고 다 읽지 못한 책이 더 많다. 부지런히, 그러나 쉼없이 읽고 배우고 닮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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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인문학자 - 타클라마칸에서 티베트까지 걸어서 1만 2000리 한국 최초의 중국 서부 도보 여행기
공원국 지음 / 민음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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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인문학자>를 읽으면서 저자가 서문에 왜 <논어>에 실린 유명한 글귀 "그를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보다 못하다."를 인용했는지를 깨닫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일단은 내가 지금 중국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너무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단순한 여행기인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중국의 역사서와 고전 등이 다수 인용되어 있어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이 여럿 있었다. 저자가 중국지역학을 전공한 중국전문가라기보다는 내가 모르는 게 많아서가 아닐까 싶다. 그동안 중국 하면 중국 가수, 중국 드라마, 중국 영화 등등 대중문화 중심의 피상적인 것들만 보았지, 중국의 역사나 정치 문제 같은 건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않았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듯이 뭐라도 보려면 어느 정도 아는 게 있어야겠다 싶었다.



내용이 다소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건, 비록 아는 건 별로 없어도 중국을 좋아하고 즐길 준비가 되어서이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 역사는커녕 가까운 청나라 시대에 대해서도 잘 몰랐는데, 최근 중국 사극 <보보경심>을 보면서 청나라에 급 관심이 생겼다. 드라마이기는 하나 영화 속 무대가 되는 중국의 전통 건축물이라든가 복식, 문화, 관습, 심지어는 말씨조차도 하나하나 새롭게 발견하고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드라마에 나오는 강희제, 옹정제 등 청나라 황제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마침 이 책에 두 황제의 민족 정책에 대해서도 나와있어 반가웠다. 드라마에서 내가 받은 인상과 달리 두 황제 모두 실제로는 이민족들에게 썩 좋은 이미지가 아니었으며, 드라마에는 낭만적으로 그려진 이민족 간의 교류가 실은 수많은 이들의 피로 물든 슬픈 역사라는 것을 알고 가슴 아팠다. 이렇게 몰랐다면 그냥 넘어갔을 내용들이 내게 하나하나 유의미하게 다가온 다 지금 내가 중국에 관심이 많아서일 것이다역시 아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을 못 이긴다.



저자의 여행기도 재미있었다. 저자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8년 동안 총 네 번의 장기 여행을 했다. 여행지는 위구르, 준가르, 티베트 등 중국의 서부 지역. 대체로 중국의 주류를 이루는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라서인지 여행 여건이 무척 안 좋았다. 비록 결코 좋게 넘어갈 수 없는 사고(!)가 몇 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곳에 사는 민족들이 중국 정부의 차별과 억압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터전을 일구며 살고 있는 모습을 좋게 평가했다. 학자가 쓴 글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좋은 문장들도 많았다. 저자는 이 척박한 지역을 자동차나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 도보로 이동했는데 직접 두 발로 걷고 살로 느꼈기 때문인지 문장 한줄 한줄이 날 것처럼 생생했다. 인문학을 포함해 학문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이렇게 현실에 맞닿아있고 체험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것인데, 요즘의 학문과 학문하는 사람들은 책상 앞에 앉아 데이터화된 자료만 보고 있으니 한계가 있지 않나 싶다. 아는 사람보다는 좋아하는 사람, 즐기는 사람이 학자의 진정한 의미가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밑줄 그은 문장들



별을 보기 위해서는 약간의 서늘함과 적막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부터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밖으로 나가 하늘에 있는 별을 보여 주는 대신, 방 안에서 별에 관한 그림책을 보여 주는 것이 오늘날의 교육이다. 사고는 피상적이며, 말은 많고, 그리고 끈기 없는 어린이들을 방 안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낸다. 그러면서 어린이를 사랑한다고 한다. 책에 쓰여 있는 '별'과 내가 바라보고 있는 저 별은 같은 것일까? 그리고 밤하늘을 바라보는 어린이가 보는 별은 같은 것일까? 분명히 840년 그날 밤에도 에너지 넘치는 위구르 소년들은 낙타 가죽 아래서 함께 별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알 수 없는 날것의 감성을 교류하며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p.100)



공자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초나라 왕이 활을 잃어버리고도 태연히 "초나라 사람이 줍겠지."라고 대답한 것을 높게 사면서도, "'사람이 잃어버린 것을 사람이 줍겠지.'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걸."이라고.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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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거기, 머물다 - 공경희 북 에세이
공경희 지음, 김수지 그림 / 멜론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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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유나라는 딸아이가 있다. 그 아이가 모리 교수처럼 강하고 고운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며 엄마로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번역했다. 아니, 그보다 내 자신이 그처럼 강하고 고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 될 각오로 번역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이 책은 나를 다시 깨어나게 해준 글이었다. (p.113) 

 

대학 입학 면접시험 때 면접관은 내게 "왜 어문학 계열에 진학하려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다른 문화권과 우리 문화 사이의 다리가 되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미리 마음 먹었던 것도, 면접시험용으로 생각해둔 그럴듯한 대답도 아니었다. 그냥 그 자리에서 떠오른 일종의 '재치'였는데 영문과 졸업 후 전혀 뜻하지 않게 번역 작업을 시작해서 십오 년 가까이 일하고 있는 요즘, 그 대답이 '재치'를 넘어 나도 모르게 운명을 말해버린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p.153)  

 

정신분열증을 끌어안고 그림 속으로 빠져들었던 고흐 덕분에 우리는 그의 강렬한 그림들을 볼 수 있다. 또 로트렉이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며 물랭루주의 무희들을 그림으로써 우리는 세상의 낮은 존재들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화가의 마음에 다가설 수 있다. 결국 예술가의 고통을 딛고 예술을 즐기는구나 싶어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p.235) 

 

이 작품(달팽이는 왜 길을 떠났을까)을 번역하면서 나는 줄곧 '떠남'에 대해 생각했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을 일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매일 떠나는 여행은 아닐까 묻기 시작했다. 번역을 하면서 대하는 글, 거기 담긴 글쓴이의 생각과 그 글을 읽는 나의 느낌, 그것을 나의 이해력과 문화적 경험에 실어 우리말로 담아내는 일. 읽고 옮기는 글의 내용과 작가의 생각이 늘 바뀌고, 나의 표현도 늘 바뀐다. 혹시 그런 게 떠남이고 여행이고, 새로운 세계로의 모험이 아닐까. (pp.345-6)



읽는 책이 대부분 번역서임에도 불구하고 번역가에게까지 관심을 가진 건 최근의 일이다. 아마도 일본어 번역가 권남희 님이 쓰신 에세이집 <번역에 살고죽고>를 읽고나서부터가 아닌가 싶은데, 특히 저자가 역자후기마다 딸 정하에게 보내는 문장을 남긴다는 부분이 인상에 남아 그 때부터 권남희 님이 쓰신 책을 읽을 때면 본문이 아닌 역자후기부터 살피는 특이한 버릇까지 생겨버렸다.



앞으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등을 번역한 영미 번역의 대가 공경희 님이 번역한 책을 읽을 때는 역자 후기에 혹시나 딸 유나의 이름이 언급되지는 않았는지 찾아보는 버릇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25년 이상의 경력을 자랑하는 공경희 님의 역자 후기를 모은 에세이집 <아직도 거기, 머물다>를 읽으면서 나는 번역가로서의 저자보다도 번역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한 아이의 엄마, 한 여자의 아내,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도 열심히 살고 끊임없이 성장한 저자의 모습에 더 많은 감동을 받았다. 특히 딸 유나와 얽힌 에피소드들이 인상적이었는데, 십여 년 전만 해도 어린 딸에게 읽히고 싶은 동화책을 번역하던 저자가 이제는 숙녀가 된 딸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인물들을 소개하는 대목들을 보면서, 이렇게 어머니의 마음으로 책을 대하고 글을 쓰는 저자라면 독자로서 믿고 따를 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번역한 책 중에 내가 읽은 것을 꼽아보니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파이 이야기>, <우리는 사랑일까>, <행복의 추구> 등등 제법 많았다. 공통점은 하나같이 감명 깊게 읽은 책들이라는 것. 특히 <파이 이야기>와 <행복의 추구>는 페이지가 넘어가는 게 아까울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는데 두 권 다 저자가 번역한 책들이라니 반갑고 고마웠다. 나도 언젠가 좋은 책을 번역해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소개해보고픈 꿈이 있는데 언제쯤 이루어질지...... 데뷔 이래 하루도 쉬지 않고 번역을 했다는 저자의 노고를 생각하니 꿈만 꾸고 노력을 안 해서는 택도 없는 일이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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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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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는 게 뭐라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왜 이혼했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다면 그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다만 며칠 굶은 짐승의 내장처럼 어둡고 습하고 꾸불꾸불한, 그러나 텅 비어 막히지 않고 계속 어디론가 이어지는 골목길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 제중원 뜰에는 나무 한그루가 서 있었다. 박지원의 집앞에 있었던 나무, 홍영식의 집앞에 있었던 나무, 그날 길 잃은 아이들처럼 그녀와 함께 걸어다녔던 그 골목길들, 그 가운데 서 있던 나무. 그 나무 한그루 말이다. 그녀와 내가 헤어진 지금, 이 모든 일이 과연 우연일 뿐이라고 생각하는가? (p.21)

  

역사학이란 내게 진실을 다가가는 도구였다. 하지만 역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나는 거짓말이 들통나는 게 아니라 들통난 것들이 거짓말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p.43)

  

그런 역사책은 하나도 의심하지 않고 믿으면서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거짓말이라고 내 얼굴에 침을 뱉지. 고작 일백년도 지나지 않아 휴짓조각으로 버려진 믿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내게 마구 발길질을 하지. 그게 바로 자신이 사내라고 믿는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하는 일이지. 왜냐하면 내 손이 바로 진실을 말해주니까. 역사책에 나와 있지 않은 진실을 말해주니까. (p.76)

 

 

불면의 밤. 새벽 세 시가 되어도 잠이 안 와 할 수 없이 책을 꺼내들었는데, 그게 하필이면(!) 김연수의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였다. 김연수 작가를 무척 좋아해서 신간이 나오는 대로 구입은 하고 있지만 읽은 책은 사실 얼마 안 된다. 이 책도 사놓고 읽지 않은 채로 놔둔 지 꽤 된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죄책감 비슷한 것을 안고 있었는데, 마침 이 책이 손에 잡혔고 밤은 길고 잠이 안 오니 읽을 수밖에(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도 잠이 안 와서 밤을 꼴딱 새웠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은 주로 최근작들만 읽어서일까. 2005년작에 나온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만 해도 왠지 거칠고 투박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기는 좋았는데, 그건 김연수 하면 떠오르는 특징들, 그만의 작품 세계가 잘 드러났기 때문이다. 내가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세계관이 아주 넓다는 것이다. 시대적으로는 근현대부터 조선시대를 넘나들고, 공간적으로는 외국을 무대로 하는 것도 많고 아예 외국인이 주인공인 경우도 있다.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 실린 작품들을 보면, 맨처음에 실린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는 전철에서 우연히 전처를(말장난?) 만난 남성이 안국동과 가회동 주변을 걷다가 박지원을 떠올리고,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는 한 청년이 자살한 여자친구가 죽기 직전에 <왕오천축국전>을 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서울 시내, 특히 경복궁 근처의 북촌 주변을 걸을 때마다 불과 백 여 년 전만 해도 갓 쓰고 도포 입은 사람들이 이 거리를 걸어다녔다는 생각을 하며 설레고, <왕오천축국전>처럼 몇백 년도 전에 쓰인 글을 보며 감격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감각이 아닌가 싶다. 



이국의 정서가 녹아있는 것도 김연수 소설의 특징 중 하나다. <그건 새였을까, 네즈미>의 주인공은 일본인, <뿌넝숴>의 주인공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중공군 노인, <거짓된 마음의 역사>의 주인공은 19세기 말 조선에 파견된 미국인 탐정이다. 주인공이 한국인이고 한국이 배경이어야 한국소설로 분류될 수 있다면 이 소설들은 한국소설로 분류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타자를 인식함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더욱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이 소설들을 읽고 있노라면 외국과 다른 한국만의 정서와 문화, 전통이 더욱 뚜렷하게 보여 오히려 한국소설임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 비슷한 원리로 오로지 자기 안에만 침잠하지 않고 외부로 시선을 돌림으로써 오히려 자아를 드러내는 것도 김연수 소설의 특징 중 하나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대부분이 역사나 세계 같은 거창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막상 읽어보면 역사 속의 개인, 세계 속의 개인이 보이고 궁극적으로는 사람, 그리고 내가 보인다. 시공간뿐 아니라 자아와 타자, 작가와 독자 사이의 경계까지 자유로이 누비는 김연수의 작품 세계가 나는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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