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언트 - 영어 유창성의 비밀
조승연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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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내내 '시험과목'으로 열심히 공부한 영어. 막상 외국인을 만나면 간단한 인사말조차 입에서 나오지 않고, 영어권 국가에선 세 살짜리 아이도 보는 미드를 자막 없이 못 보는 이유는 뭘까? 지금까지 해온 영어 공부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라틴어, 중국어 등 6개국어를 구사하는 세계 문화 전문가 조승연은 일찍이 뉴욕대 유학 시절부터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왜! 그토록 엄청난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도 우리는 영어 습득에 실패하는 걸까?' 저자는 이후 20년에 걸쳐 영어를 비롯한 다른 서양 언어를 잇따라 공부하며 익히는 과정 속에서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도 외국어를 습득하는 비결을 터득했다. 


영어를 대하는 마음의 자세를 바꾸면 올바른 영어 공부 방법은 저절로 따라온다. 영어가 무엇이고 왜 필요하며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 이것이야말로 21세기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우리 아시아 대륙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며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논제다. (p.9) 


기존의 영어 교육은 '식민지 시대의 영어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영어를 의사소통에 필요한 '도구'로 보지 않고, 서양인과 대등해지거나 그들을 이겨야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보기 때문에 대부분의 영어 교육이 실패한다. 원어민의 발음을 흉내 내고 고급 영어를 익히려고 애쓰는 것이 그 폐해다. 


영어는 영미권 국가 외에 수많은 나라에서 공용어로 사용하는 21세기 '링구아 프랑카'이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영어를 사용하는 양태가 다르므로 원어민의 발음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영어는 오랜 시간 여러 민족, 여러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의사소통하기에 가장 쉽고 편리한 형태로 다듬어졌다. 고급 영어에 집착하기보다는 의사소통이 잘 되는 영어를 공부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저자는 책에서 영어가 무엇이고 왜 필요하며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영어적 머리와 한국어적 머리가 따로 있다. 이 차이를 이해하면 영어를 배우기가 훨씬 수월하다. 영어 문장의 구조와 단어의 비밀, 문맥의 비밀을 이해하면 독해는 물론 지겨운 단어 암기도 훨씬 재미있다. 저자는 책에서 팝송으로 영어 문장을 익히고, 영어 사전을 이용해 수백 개의 단어를 단시간에 외우는 방법 등을 소개한다. 


영어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콘텍스트, 즉 문맥을 알아야 한다. 문맥을 알기 위해선 영시를 비롯해 고전, 철학 등 다양한 책을 읽는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 혹자는 이렇게 공부해서 언제 영어를 다 떼냐고 묻기도 했다는데, 저자는 이 방법을 이용해 1년 만에 프랑스어로 논문을 쓰고, 20년 만에 6개 국어를 마스터했다. 멀리 돌아가는 듯 보였던 길이 가장 가까운 길이었다니. 언어 천재의 비결에 마음이 숙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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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수업 - 하루에 하나, 나를 사랑하게 되는 자존감 회복 훈련
윤홍균 지음 / 심플라이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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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를 잇는 심리학 베스트셀러가 탄생했다. 출간 한 달여 만에 10만 부를 발행하며 전 서점의 종합 베스트셀러 톱 3에 오른 윤홍균의 <자존감 수업>이다. 사람들이 이 책에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수많은 심리 책 중에서도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뭘까? 출간 직후 읽은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존감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과 자존감이 부족할 때 흔히 나타나는 사랑, 이별, 인간관계의 문제를 소개하고,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자존감의 기본적인 정의는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직업을 갖거나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면 자존감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자존감이 아니라 자존감의 한 축인 자기 효능감과 관련 있다. 


자존감은 자기 효능감 외에 자기 조절감, 자기 안전감이라는 세 축으로 구성된다. 자기 조절감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본능을 의미한다. 자기 안전감은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능력이다. 알아주는 직업을 갖거나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지 않아도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자기 조절감과 자기 안전감이 높은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살고 속한 무리에서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자존감을 흔히 '자신을 사랑하는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맞는 표현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 즉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을 그만큼 사랑할 수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 즉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타인을 그만큼 사랑하기 어렵다. 남에게는 잘 하지만 가족, 연인, 친구 등 가까운 사람에게는 소홀한 경우, 친구나 연인, 배우자, 약물이나 알코올 등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남을 배려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농경 사회에서 통하던 방식이다. (중략) 하지만 사회가 개별화되고 분리되면서 미덕의 개념도 변했다. 어설프게 남을 위했다가는 오지랖 넓다는 평을 듣기 쉽다. 나름대로 배려했는데 돌아오는 건 '눈치 본다'는 평가나 "왜 남들만 챙겨?" 하는 원망이다. (p.130)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이타적이기보다 이기적이다. 이타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자신이 즐거워서 하는 것이지 남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친절하거나 주변에 친절한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생각해보자. 자신을 돌보면서 친절한지, 남의 눈치를 보느라 일부러 친절한 건지. 친절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남을 위해서 하는 행동은 상대에게 부담을 주고 결국 배신감과 서운함만 남는다. 그런 친절은 누구도 원하지 않고 감사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자기만 고달플 뿐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도 의존적이다. 단, 세련되게 의존적이다. 세련되지 못한 의존이 끊임없이 사람을 갈구하고 약물이나 알코올처럼 누구에게나 공개할 수 없는 것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세련된 의존은 자기보다 강한 존재, 즉 전문가나 책을 신뢰하고, 여행이나 레저, 취미나 가족 등에 의지하는 것이다. 세련되게 의존하는 사람들은 의존한 만큼 보답한다. 저자가 예전에 일하던 병원의 원장님은 구내식당 직원들을 만나면 "나를 먹여 살리는 고마운 분!"이라면서 치켜세웠다. 이런 의존은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즐겁다. 


사랑은 무슨 조건을 갖추어야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사랑할 만한 외모를 갖추거나 좋은 성격과 인품을 갖출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자존감을 모두 회복한 다음에, 당당해진 다음에 나를 사랑해야지'하고 미룰 필요가 없다. 그저 오늘부터 지금의 나를 사랑하겠다고 결심하면 된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나의 성격과 행동, 사소한 버릇 하나하나를 다 사랑하기로 한다. 그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pp.274-5) 


자존감 수업의 목표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 뭘까? 간단하다. 자신을 사랑하면 된다. 조건을 달지 말고, 맹목적으로. 우리는 부모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원한다. 연인과 배우자가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해주길 바란다. 남들에게는 그런 사랑을 원하면서 정작 우리 자신에게는 어떤가. 이런저런 조건을 들어 미워하고 폄하한다.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나르시시즘'에 빠질까 걱정할 필요 없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건 마치 근육도 없고 체력도 약한 남자가 '너무 근육이 많아 몸이 울퉁불퉁해지면 징그럽잖아. 그게 더 건강엔 해로울 수도 있어'라며 운동을 기피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랑은 나를 망치지 않는다. 사랑은 나를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하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원동력이 된다. 자존감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끝나는 수업이라니! 이런 로맨틱한 수업이 또 있을까? 수많은 독자들이 이 책에 열광한 이유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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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기쁨을 길들이다 - 존재의 가장 강력한 경험, 기쁨으로 성장하는 지혜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이세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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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기쁨을 열망한다. 인생에 기쁜 순간이 많기를 바라고, 기쁨이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기쁨은 바란다고 찾아오지 않는다. 사람은 기쁨이 찾아오는 순간을 예측할 수도 없고 계획할 수도 없다. 어쩌다 찾아온 기쁨을 붙잡아둘 수도 없다. 


여기, 기쁨을 길들일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이 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종교사학자 프레데릭 르누아르다. 프랑스 국무장관을 지낸 아버지를 둔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자신이 지닌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철학과 영성에 관심이 기울어졌고, 더 나은 철학, 더 나은 사상을 찾다 보니 동서양의 철학과 종교를 두루 섭렵하게 되었다. 


저자는 기쁨을 쾌락 또는 행복과 구분한다. 쾌락이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마사지를 받을 때 느끼는 감정이고, 행복이 삶의 의미를 추구하거나 발견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라면, 기쁨은 고대하던 시험에 합격하거나 응원하던 축구팀이 승리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쾌락과 행복은 개인이 스스로 계획하고 건설할 수 있지만 기쁨은 예측할 수도 없고 기대할 수도 없다. 


저자는 기쁨의 중요성을 일찍이 간파한 스피노자와 니체, 앙리 베르그송을 공부하면서 기쁨으로 나아가는 세 가지 길을 찾았다. 첫째는 집중, 현존, 명상, 신뢰, 마음 열기, 자비, 대가를 바라지 않음, 감사, 끈기, 놓아버림과 동의, 육체적 희열 등이다. 


이 중에서 현존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와 닿았다. 현존은 존재 전부를 끌어들이는 고도의 집중을 일컫는다. 최대한 많은 나라, 최대한 많은 도시를 '찍는' 여행보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며 음미하는 여행의 질이 더 높은 것처럼, 인생의 가치도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느냐가 아니라 행위 하나하나에 얼마나 집중했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둘째는 인연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고, 셋째는 인연을 맺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인연을 맺기 전에 인연에서 벗어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말했다. '자기 정념을 극복하고 능동적 기쁨으로 변화시킨 인간은 결코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자기 내면의 이기심, 질투, 시기, 지배욕, 상실의 공포, 자존감의 결여 혹은 과잉을 이겨낸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족, 친구, 연인 등 주변을 둘러싼 온갖 인연으로부터 떨어져 철저하게 혼자였던 적이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고 보상을 기대하는 마음 없이 사랑할 수 있다. 그래서 싯다르타 같은 현자들은 세속을 떠나 혼자 여행하고 수행하는 삶을 택했던 것일까. 인연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벗어나는 마음이야말로 성숙이고 더 큰 사랑일까. 그렇게 얻어지는 기쁨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경험해본 적도 없고 짐작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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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이렇게 어려웠던가 - 관계 맺기 심리학
옌스 코르센.크리스티아네 트라미츠 지음, 이지혜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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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대 때만 해도 한 동네에 살거나 같은 학교에 다니면 누구와도 금방 친해졌지만, 이십 대를 지나 삼십 대가 된 지금은 그런 이유로 친해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알고 지내는 사람의 수는 전보다 비약적으로 늘었지만 '친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이는 한 줌도 안 된다. 어릴 때는 사람 사귀기가 어렵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어려워지는 이유는 뭘까.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원래 서로를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관계를 위한 지침서나 규정, 심지어 십계명도 사실을 필요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관계 맺는 법을 본능적으로 아는데도 관계 맺기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은밀한 동반자' 탓이다. 은밀한 동반자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작용하는 메커니즘을 의인화한 표현이다. 


은밀한 동반자는 시각, 청각, 촉각, 미각 등의 감각으로 존재하기도 하고, 직관, 감정, 사고, 뉴런의 그물망으로 존재하기도 하며, 엔도르핀, 세로토닌, 도파민, 아드레날린 등 다양한 체내 물질로 존재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은밀한 동반자를 각각 평가자, 경고자, 신호전달자, 연결자, 공감자, 비교자, 보호자, 자극자, 의지관철자, 권력자, 통제자 등으로 구분해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면 은밀한 동반자 중에서도 경고자의 힘이 센 것이다. 경고자는 우리가 창피를 당할지도 모른다고 여겨질 때 경고음을 울린다. 문제는 파티에 참석한 경우처럼 낯선 사람에게 꼭 다가가야 할 때에도 경고음을 울린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경고음을 억지로 통제하려 들지 말고 인정한다. '나는 왜 이리 수줍음을 많이 탈까?' 같은 생각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나는 당분간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을 것이다.' 라고 결심함으로써 내면을 다스린다. 단, 침묵하는 대신 주위 사람들을 면밀히 관찰한다. 때로는 말보다 눈빛이 사람을 움직이는 법. 사람들을 관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누군가가 말을 걸 것이다.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기가 힘들고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면 독서를 추천한다. 전문서적보다는 소설 읽기가 감정이입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소설을 읽으면 모든 사람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나름의 정당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사람 사귀기가 어렵고 힘에 부칠 때마다 책을 찾고 소설을 읽게 되는 건 다 이유가 있었나 보다. 소설을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읽는 수밖에 없는 걸까. 저자의 답변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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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 지음, 김경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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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리모컨을 잡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오래된 뮤직비디오 한 편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영국 록그룹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였다. 음악도 영상도 멋있지만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애절하면서도 파워풀한 목소리가 순식간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얼마 후 프레디 머큐리가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놀라지 않았다. 소수자라는 비애가 그의 음악성을 증폭하지 않았을까. 어린 마음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소수자 문제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건. 유난히 그런 문제들이 나의 눈에 들어오고 귀를 사로잡았다. 중학교 때 일본에서 온 친구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고 고백했을 때, 고등학교 때 친구가 가족 내에서 딸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내 마음은 평소보다 세게 뛰었다. 대학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페미니스트, 성 소수자, 장애인, 재외 동포, 이민자들을 만났을 때에도 그랬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여성 문제는 나와 무관하지 않지만, 성 소수자, 장애인, 재외 동포, 이민자 문제는 나와 직접 관련이 있는 문제는 아니다. 재일 코리안, 피차별 부락, 오키나와 문제도 관심은 있지만 상관은 없다. 다수자이면서 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건 괜한 오지랖이나 외부자의 관음증이 아닐까. 이 또한 당사자에게는 폭력이 아닐까. 그런 고민이 나를 늘 괴롭혔다. 



나는 재일 코리안이나 피차별 부락이나 오키나와 사람들에 대해, 또는 여성이나 장애인에 대해 누가 보더라도 다수자의 입장에 서 있다. 그러나 그러한 존재에 대해 잘 알고 싶다는 마음에 보잘것없지만 공부를 해 왔다. 또한 일이나 사생활 면에서 그런 사람들과 맺은 관계도 점차 늘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지점에서 역시 나는 다수자일 수밖에 없다. (p.179)


이 책의 저자 기시 마사히코는 소수자 문제를 연구하는 사회학자다. 오키나와인, 재일 코리안, 피차별 부락민, 장애인, 게이, 이주 여성, 복장 도착자, 조직폭력배 등이 저자의 연구 대상이다. 저자는 소수자가 아니다. 일본인이고, 건강한 사람이며, 이성애자이고, 남성이다. 그런데도 소수자 문제를 연구하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말을 흐린다. 대학 졸업 후 공사장에서 막노동꾼으로 일한 경험 때문일 수도 있고, 학창 시절 친구들한테 미움을 샀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무엇도 정답은 아니다. 


저자는 대체로 다수자이지만 때때로 소수자다. 저자는 무정자증이다. 사람들이 자녀들의 사진을 보여주거나 왜 아이를 가지지 않느냐고 물을 때 저자는 폭력을 당하는 듯하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저자에게 아이를 가진 사람은 다수자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은 아이를 가진 사람의 행복을 짐작하지만, 아이를 가진 사람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의 불행을 고려하지 않는다. 아이만이 아니다. 배제된 경험, 차별당한 경험, 고통을 겪은 경험이 더 적은 쪽이 다수이며, 다수는 소수에 대해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 


다행히 사람은 누구나 어떤 문제에 있어서 다수자이거나 소수자일 수 있고, 다수자로 살 것인지 소수자로 살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저자는 소수자로 살기를 택했다. 재일 코리안, 장애인, 성 소수자, 여성 문제에 대해 평생 모르거나 무관심할 수도 있지만 저자는 기꺼이 관심을 가지고 사는 길을 택했다. 소수자들의 눈에는 그가 다수자로만 비치겠지만, 저자는 삶에서 다수였던 경험보다 소수였던 경험이 지금의 자신을 규정한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누가 다수자이고 누가 소수자일까. 이 또한 정답은 없다. 


한쪽에 '재일 코리안이라는 경험'이 있고, 다른 한쪽에 '일본인이라는 경험'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한쪽에는 '재일 코리안이라는 경험'이 있고,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애초에 민족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일도 없는' 사람들이 있을 따름이다. (p.166) 


저자는 이제까지 만난 소수자들을 연구 대상이 아닌 '일기일회(一期一會)'의 인연으로 본다. 유치원에 다닐 무렵 돌멩이를 아무것이나 주워 바라보면서 "이 드넓은 지구에서 '이' 순간에 '이' 장소에서 '이' 나에게 주워 올려진 '이' 돌...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음과 무의미함"에 전율하고 감동했던 것처럼 그들과 만난 것에 감사한다. 그렇기에 논문이나 책에 포함되지 않은 이야기조차 쉽게 버리지 못한다. 이 책은 여러 이유로 버려야 했지만 끝내 버릴 수 없었던 이야기들의 모음집이다. 


버려질 뻔한 이야기를 모았다고 해서 낮추어 보면 곤란하다. 일본 사회의 소수자로 흔히 거론되는 오키나와인, 재일 코리안, 피차별 부락민, 장애인, 게이, 이주 여성 등을 취재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와 있어 일본 사회의 소수자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회학자로서 연구를 하면서 느끼는 딜레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연구해가는 이유 등도 자세히 나와 있다. 


현대 사회는 상이한 존재와 더불어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점점 나아가고 있다. 소수자 문제에 무심한 다수자는 소수자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까닭 없는 공포와 두려움을 가지기 쉽고, 이는 공격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누구도, 누구에게도 손가락질을 받지 않는, 평온하고 평화로운 세계, 자기가 누구인가를 완전히 망각한 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세계"를 꿈꾼다.


나도 꿈꾼다. 프레디 머큐리의 이력에 동성애자라는 말이 나올 필요가 없는 세계, 어린아이가 외국 학교에서 차별받지 않아도 되는 세계, 딸이라는 이유로 가족에게 미움받지 않아도 되는 세계, 장애가 있거나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2등 시민이 되지 않아도 되는 세계. 과연 그런 세계가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아니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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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6-10-17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이 책에 대한 리뷰가 올라오는군요.
˝2016년 기노쿠니야 인문 대상˝을 수상했다는 화려한 장식성을 갖추지 않고 소수자에 대한 내용만을 얘기하려고 한 키치님의 안배가 돋보입니다. 이 책 취지와 부합하는...
잘 읽었습니다^^

키치 2016-10-19 11:34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