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 - 어느 수집광의 집요한 자기 관찰기
윌리엄 데이비스 킹 지음, 김갑연 옮김 / 책세상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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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수집하는 것이 없다. 한때는 책도 모으고 음반도 모았지만, 간소한 생활을 추구하는 미니멀 라이프를 만난 후로는 읽지 않는 책은 바로 처분하고 음반 대신 음원을 구입하거나 라디오나 팟캐스트를 듣는다. 수집하는 것이 없는 생활은 때로 아쉽고 쓸쓸하다. 윌리엄 데이비스 킹의 자전적 에세이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를 읽으며 부쩍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남들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잡다한 것들을 수집했다. 통조림, 생수병, 고양이 사료 등 온갖 종류의 라벨만 1만 8000개를 모았다. 시리얼 상자는 1579개, 우편봉투 속지 패턴은 800개, 병뚜껑은 500개, 치약 포장 상자는 120개를 모았다. 저자는 대체 왜 이런 잡다한 것들을 수집할까. 알고 보니 저자는 수집에 강박적으로 집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저자의 바로 위 누나 신디는 태어나면서부터 뇌성마비를 앓았고 정신박약이었다. 부모의 관심은 자연히 누나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누나는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저자를 미워했다. 저자는 부모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고 누나에게 미움받는 현실을 잊기 위해 수집을 택했다. 텅 빈 마음을 잡다한 물건으로 채웠다. 


다만 저자가 수집하는 것들은 '말 없고 빈약하고 실용적인 가치가 없는 물건들'에 한정된다. 해변 위를 굴러다니는 돌멩이, 남이 버리고 간 물통 뚜껑 같은 것이야말로 저자가 열광하는 수집 대상이다. 저자는 이런 물건들을 보면 '잃어버린 사랑'을 느낀다. 어쩌면 저자는 잡다한 물건들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 부모와 누나로부터 받지 못한 자신을 떠올리고 이내 안쓰러워지는 지도 모르겠다.


내 삶의 이야기. 또는 이야기들. 우리는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모든 사람은 수집가다. 경험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이야기들은 기억 속에서 더미를 이룬다. (358쪽) 


저자는 수집한 물건들을 보면서 과거를 떠올리고,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이 아주 무의미하지만은 않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수집하는 것이 없는 나는 과연 훗날 무엇을 보면서 지난날을 떠올릴까. 미래를 위해 현실을 희생해 가며 수집에 집착할 필요는 없지만, 현재 수집하고 있는 물건들을 보면서 과거를 떠올리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의미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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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 실패를 찬양하는 나라에서 71일 히치하이킹
강은경 지음 / 어떤책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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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드러진 사진과 가벼운 글로 채워진 여행 에세이에 지쳐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오랜만에 여행 에세이 읽는 즐거움을 느꼈다. 낯선 경험과 지난 시간을 교차시키는 저자의 글맛도 좋았다. 30년간 신춘문예에 도전한 내공이 괜한 것이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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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 실패를 찬양하는 나라에서 71일 히치하이킹
강은경 지음 / 어떤책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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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서양에 있는 '작은 섬나라' 아이슬란드. '작은 섬나라'라고 해서 제주도와 비슷한 줄 알았는데 면적은 남한과 비슷하고 인구는 제주도 인구의 절반도 안 된다고 한다. 얼마나 한적할까. 얼마나 여유로울까. 짐작한 대로 아이슬란드는 전 세계에서 행복지수 1위, 평균수명 1위를 자랑하고, 세계에서 범죄율이 가장 낮은 나라로 손꼽힌다. 뿐만 아니라 국민 열 명 중 한 명은 작가, 여섯 명 이상은 음악가이다. 1955년에는 할도르 락스네스가 아이슬란드인으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인이라면 아이슬란드에 반할 만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단 한 번의 실패도 용인되지 않는 한국과 달리 아이슬란드에선 실패가 낙인이 되지 않고 오히려 실패자를 찬양한다. 이 점에 혹해 아이슬란드 여행을 결심한 사람이 있다.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의 저자 강은경이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 30년 넘게 신춘문예에 도전한 저자는 어느 날 노안이 온 걸 깨닫고 신춘문예를 포기했다. 글을 쓰는 동안 제대로 된 직업도 가지지 않았고 결혼도 사랑도 실패했다. 이제 평생의 꿈인 신춘문예까지 포기했으니 '내 인생은 실패했다'는 좌절감이 밀려들었다. 


그러다 저자는 우연히 에릭 와이너의 <행복의 지도>라는 책을 읽고 아이슬란드가 실패에 관대한 나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슬란드에서 찬양받아 마땅한 '인생 실패자'로서 아이슬란드에 꼭 가보고 싶었다. 그때부터 저자는 '아이슬란드 여행'이라는 새로운 꿈에 도전했다. 아이슬란드에 관한 책을 읽고, 아이슬란드 출신 뮤지션의 음악을 들었다. 한옥 짓기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고 보험까지 깨면서 여행 자금을 모았다. 그렇게 모은 돈이 300만 원. 살인적인 물가로 유명한 아이슬란드에서 히치하이킹과 야영만으로 두 달여를 보내는 가혹한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당신 실패한 사람 맞아요?" 

"네?" 

"당신은 쓰고 싶은 글 쓰며 살았잖아요. 그랬으면 됐지, 왜 실패자라는 거죠? 지금 여기에 앉아 있는 당신이 인생을 다 실패했다니, 난 당신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당신에겐 사는 게 뭐죠?" (454쪽) 


아이슬란드가 실패에 관대하다 못해 실패를 찬양하는 나라라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한국에선 가족조차 저자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숨겼지만, 아이슬란드에선 이혼이 드문 일이 아니었고 오히려 용기 있는 선택을 했다며 칭찬을 받았다. 어떤 할머니는 저자가 왜 자신을 실패한 사람이라고 규정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쓰고 싶은 글 실컷 썼고,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서 연애하고 결혼도 해봤고, 아이를 셋이나 가졌고, 이렇게 건강한 몸으로 여행도 다니는데 '인생을 다 실패했다'고 말하는 이유가 뭐냐고 되물었다. 


할머니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아서 친구들에게도 들려줬다. 얼마 전 애인과 헤어진 친구, 경제적으로 어려운 친구,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 좌절한 친구. 너희들 모두 실패하지 않았다고. 그 무엇도 인생을 포기하거나 스스로를 실패자로 규정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할머니의 말을 나 자신에게도 들려줬다. 나 역시 저자처럼 글을 쓰고 공부하며 돈과 명예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지만, 좋아하는 일을 맘껏 하고 있으니 실패한 건 아니라고. 그러다 정말 아무 것도 안 되면 저자처럼 아이슬란드로 훌쩍 떠나야겠다고. 나도 저자처럼 전보다 더 단단해져서 돌아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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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출판사 창비에서 <공부의 시대>라는 이름의 시리즈가 출간되었다. 원로 역사학자 강만길, 미학자 진중권, 작가 유시민, 전 대법관 김영란, 정신과 의사 정혜신 등이 각자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기까지 체득한 공부법과 독서법을 소개하여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올여름 창비에선 <정치의 시대>라는 이름의 시리즈를 출간할 예정이다. 작년 말 불거진 박근혜,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대통령 탄핵, 조기 대선 등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충족시켜줄 만한 시리즈로 보인다. 미학자 진중권, 국회의원 은수미, 변호사 최강욱, 역사학자 한홍구가 필자로 참여했다. 시리즈 출간을 앞두고 <정치의 시대> 시리즈 중 한 권을 먼저 만나 보았다. 내게 주어진 책의 필자는 은수미 전 국회의원. 오랜 시간 노동 문제에 대해 연구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현대 사회에서 노동의 의미와 현실의 노동 문제,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 청년 실업 문제 등에 대해 심도 있게 풀어놓는다. 


다시 강조하지만 기술이 발전해서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술이 발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산재로 죽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의자를 없애는 극소수가 교묘하게 책임을 회피하면서 노동자를 쥐어짜고 있습니다. 사회가 의자놀이의 규칙을 따르면서 벌어지는 비극입니다. (26쪽) 


저자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 현실을 의자놀이에 비유한다. 의자가 10개 있고 사람이 10명 있으면 모두가 의자에 앉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사람 수와 똑같은 수의 의자를 제공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죽어라 경쟁하고, 대학교에서 스펙을 쌓아도 사회에 나오면 앉을 자리가 없는 것을 그 때문이다. 경기가 좋아지고 국민 소득이 높아져도 의자는 늘지 않는다. 내 자리 어디 갔냐고 물으면 '저기 너보다 능력 좋은 정규직이 앉아 있다', '공기업 철밥통이 앉아 있네', '네 부모가 차지하고 있잖아',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 '지방대 나왔으면서 눈만 높다'라는 답이 돌아올 뿐이다. 최근에는 정리해고, 성과연봉제, 명예퇴직, 비용 절감, 민영화 등 기업 입장에서 의자 수를 보다 쉽게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늘고 있다. 


백화점은 출퇴근, 매출, 접객 태도 등 모든 것을 통제하면서, 고용에 대해서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물론 백화점에도 정규직이 있긴 합니다. 10퍼센트를 넘지 않지만요. 아무런 근로계약 없이도 노동자를 지배할 수 있는 사회, 이게 하청 사회입니다. (21쪽) 


사회가 의자놀이의 규칙을 따르면서 두 가지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첫째는 하청 사회, 둘째는 포스트 민주주의이다. 하청 사회의 특징은 '노동자는 있는데 고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배달 대행업체나 백화점에서 직원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파견 회사에 소속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하청의 형태로 고용하고 고용에 따르는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그 예다. 포스트 민주주의는 '시민은 가상 정치에 끌려들어 가고, 정치인은 판촉행사를 열고, 실제 정치는 기득권 1퍼센트가 밀실에서 진행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10여 년 전 사회학자 콜린 크라우치가 쓴 책에 나오는 개념인데, 한국에선 2016년에 박근혜,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드러나면서 정치가 밀실에 숨은 비선 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난 바 있다.

 

삼성이 정유라에게 주려던 220억 원만 있으면 배달로 생계를 유지하는 2만 명에게 최소 21년 동안 산재보험을 지원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벌 대기업은 박근혜 정권에, 최순실에게 돈을 줘서 대대손손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할 뿐이지요. (70쪽) 


저자는 노동 전문가이자 정치가로서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헌법 조항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실생활의 규칙으로 보장하는 '국민 기본선'을 비롯해 최저임금 인상, 실업급여 마련, 비정규직 노조 조직 등이 그 예다. 또한 저자는 어떻게 하면 광장의 촛불을 어떻게 일상으로 옮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모두가 자기 몫의 의자를 지니는 사회, 헌법이 생활의 규칙으로 적용되는 사회, 국민 개개인이 일상적으로 정치에 의견을 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 이 밖에도 국회의원 은수미의 이름을 대중에게 깊이 각인시킨, 2016년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제정을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 후일담과 현재 한국 정치에 대한 조언, 일상에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 등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강연록을 엮은 책이라서 문장이 어렵지 않고, 강연 말미에 진행된 질의응답 내용이 실려 있어 내용의 이해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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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일본에 갔을 때 한창 화제를 모으던 애니메이션이 두 편 있었다. 하나는 한국에서도 크게 흥행한 <너의 이름은>이었고, 다른 하나는 최근 개봉한 <목소리의 형태>였다. <목소리의 형태>는 일본 방송에서 신작 영화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고 즉시 흥미를 가졌다. 아무도 모르게 자살을 준비하고 있는 고등학생 이시다 쇼야.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니시미야 쇼코라는 아이를 괴롭혔다는 이유로 현재까지 따돌림을 당하며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 하나 없이 고독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쇼야와 쇼코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쇼코에게는 청각장애가 있었다. 쇼코가 전학온 날, 쇼야네 반 아이들은 청각장애가 있는 쇼코를 따뜻하게 맞았다. 하지만 반 아이들은 점점 쇼코를 불편하게 여기고 따돌리기 시작했다. 가장 짓궂은 아이가 쇼야였다. 쇼야는 쇼코를 밀치거나 보청기를 억지로 떼내어 던지는 등 크고 작은 '장난'을 일삼았지만 당하는 쇼코에겐 '괴롭힘'이었을 터. 그러나 쇼코는 울거나 화내는 대신 미소로 화답하거나 도리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 때마다 쇼야는 당황했고 쇼코를 더욱 짓궂게 괴롭혔다. 결국 쇼코가 전학가기로 결정하자 학교측은 가해자를 찾아 나섰고 담임 교사와 반 아이들은 일제히 쇼야를 지목했다.


담임 교사가 쇼코를 괴롭힌 가해자로 쇼야를 지목한 것은 반 아이들에게 쇼야를 괴롭혀도 좋다는 허가를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날부터 쇼야가 새로운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반 아이들 누구도 쇼야 곁으로 오거나 쇼야에게 말 걸지 않았다. 어제까지 쇼야와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은 누구보다 가혹하게 쇼야를 괴롭혔다. 작은 동네이다 보니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쇼야가 초등학교 시절 장애가 있는 아이를 괴롭힌 가해자라는 소문이 금방 퍼져서 쇼야는 새로운 친구를 한 명도 사귈 수 없었다. 쇼야로선 이대로라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리하여 쇼야는 자살하기로 마음 먹지만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결국 쇼야는 다시 한번 쇼코를 만나 사과하기로 한다. 쇼코에게 사과하기 위해 수화까지 배운 쇼야는 긴 망설임 끝에 쇼코를 만나러 간다. 쇼야는 쇼코가 자신을 만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쇼코의 동생에게 위선자라는 말까지 듣지만, 정작 쇼코는 쇼야가 자신을 위해 수화를 배운 것에 감탄하며 헤어질 때에는 "또 보자"라는 수화까지 한다. 과연 쇼코는 쇼야를 용서한 것일까? 쇼코와 쇼야는 이대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쇼야와 쇼코가 다시 만나도 주변 사람들은 그들을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우선 쇼코의 가족인 쇼코의 어머니와 쇼코의 여동생 유즈루는 쇼야를 용서하기 어렵다. 초등학교 시절 쇼야와 함께 쇼코를 괴롭힌 우에노 나오키와 카와이 미키는 쇼야에 비하면 자신들이 쇼코를 괴롭힌 죄는 가볍다고 변명하지만, 쇼야에게 있어 이들은 같이 쇼코를 괴롭혔고 나중에는 자신까지 괴롭힌 이중 가해자이다. 쇼코의 유일한 친구였지만 끝까지 쇼코를 지켜주지 못하고 도망친 사하라 미요코의 심정도 편하지 않다. 쇼야와 쇼코는 그들의 재회가 오랫동안 덮여 있었던 문제를 들춘 것 같아 또 다시 괴롭다.


청각장애인에 대한 집단 따돌림이라는 소재 탓에 이 영화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불편함을 느낀 지점은 청각장애인에 대한 집단 따돌림이 아니라 어느 사회나 집단마다 존재하는 배척과 무시, 불통의 기억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교실 풍경은 내게도 익숙했다. 조금 튀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면 사정 없이 공격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꾸짖기는커녕 방관하는 교사. 어릴 때도, 어른이 되어서도 어느 집단에나 그런 사람들이 있고 그런 리더가 있었다. 그 때마다 나는 직접적으로 배척하지도, 배척하는 사람들을 비판하지도 않고 수수방관했다. 그러나 배척당하는 사람에게 과연 나의 태도가 '수수방관'하는 것으로 보였을까. 그에겐 배척하는 것이나 나처럼 수수방관하는 것이나 자신의 고통을 몰라준다는 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배척 당한 사람의 고통을 이해한 건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배척당하고 무시받는 일을 몇 번인가 겪고나서야 그들이 느꼈을 고통을 짐작했다. 쇼야는 보다 빠르게, 분명하게 쇼코의 고통을 느꼈다. 쇼코의 자리가 비워지고 그 자리에 자신이 들어가 따돌림을 당하는 입장이 되자 그동안 쇼코가 느꼈을 고통을 알 수 있었다. 그제서야 쇼코가 언젠가 자신에게 친구가 되고 싶다고 했던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고, 이제는 자신이 쇼코에게 친구가 되자고 손을 내밀어야 할 차례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쇼코를 찾아가 사과할 용기를 내지 못했던 쇼야는 쇼코의 언어인 수화를 배우기로 한다. 마침내 고등학생이 되어 쇼코를 찾아갔을 때, 쇼코가 의외로 너무 쉽게 쇼야의 사과를 받아들인 것은 쇼야가 쇼야의 언어가 아닌 쇼코의 언어로 사과했기 때문이다. 가족 이외의 사람과는 제대로 소통해본 적이 없는 쇼코가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렸던, 자신에게 말 걸어주고 자신의 말에 귀기울여줄 친구. 바로 그 사람이 쇼야라는 사실에 어쩌면 쇼코는 두려움보다 고마움을 더 느끼지 않았을까. 나는 왜 이제서야 배척 당하는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나보다 힘든 사람에게 손내밀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고, 그 기억이 나를 찔렀다.


이 영화에는 쇼야와 쇼코 외에도 제대로 소통해본 적이 없거나 소통하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쇼야처럼 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다가 쇼야와 친구가 되는 나가츠카 토모히로, 청각장애가 있는 언니를 챙기느라 정작 자기 자신은 돌보지 못하는 쇼코의 여동생 유즈루, 초등학교 시절 쇼코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았던 사하라 미요코 같은 인물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다른 인물들은 영화를 보다가 '이런 XX'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싫은 구석이 없지 않지만, 그들에게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영화를 끝까지 보면 알 수 있다(그렇다고 용서할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니다. 특히 쇼야와 쇼코의 5학년 때 담임 교사는 보는 내내 욕이 나왔다. 원작에선 더 심하다는데 과연 눈 뜨고 볼 수 있을지).


나는 그동안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케이온>, <빙과>, <타마코 마켓>, <FREE!>, <울려라! 유포니엄> 등 다수의 쿄애니 작품들을 봐왔고, 재작년에는 교토에 있는 쿄애니 본사에도 가보았을 만큼(내부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외부만 자체 견학 ^^) 쿄애니 작품을 좋아하는 팬이다. 쿄애니 팬으로서 <목소리의 형태>는 이제까지 본 쿄애니 작품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작화나 연출, 내용 면에서 훌륭했다. 영화도 좋았는데 원작 만화는 더 좋았다고 하니 어서 구입해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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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7-06-09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와 만화 모두 보니
영화의 특성이 제대로 보여주기는 좋으나
원작 만화가 더 내용이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쇼타의 어머니역을 맡은
성우분 목소리를 들어서 좋았습니다..우히히

키치 2017-06-10 13:03   좋아요 0 | URL
저도 영화를 먼저 보고나서 원작 만화를 보니
원작 만화가 내용 면에서 훨씬 충실하고 풍부해서 좋았습니다.
말씀하신 분은 쇼야의 어머니 역을 맡은 유키노 사츠키 성우분 맞나요?
이력을 찾아보니 제가 본 만화에도 많이 나오셨네요!
덕분에 좋은 성우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