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반점
정미진 글, 황미옥 그림 / 엣눈북스(atnoonbooks)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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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봤는데 얼굴에 검은 반점이 나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놀라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겠지만, 제일 먼저 무섭지 않을까. 사람들이 내 검은 반점만 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정미진이 글을 쓰고 황미옥이 그림을 그린 동화책 <검은 반점>의 주인공 소녀가 딱 그런 상황이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봤는데 얼굴에 검은 반점이 나 있다. 사람들이 내 검은 반점만 쳐다보는 것 같아서 손으로 가려도 보고 마스크를 써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검은 반점은 더 짙어지고 커지는 것 같다. 소녀는 자신의 검은 반점 때문에 고민하다가 다른 사람들의 반점을 보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엄마의 등허리에도 나와 똑같이 생긴 검은 반점이 있고, 좋아하게 된 남자아이의 얼굴 위에도 검은 반점이 있다. 검은색만이 아니다.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파란색. 저마다 다른 색상, 다른 모양의 반점을 다들 하나씩 가지고 있다. 


소녀가 자신의 검은 반점만 의식할 때는 무채색이었던 세상이, 소녀가 다른 사람들의 반점을 의식하기 시작하자 총천연색으로 바뀐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은 모두 저마다의 반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은 내가 가진 반점과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같으면 같은 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 아름답고 위대하다. 검은 반점 하나로 이런 이야기를 펼치다니. 어제 읽은 <깎은 손톱>에 이어 또 한 번 예상치 않은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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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te
최은영 그림, 차재혁 글 / 엣눈북스(atnoonbooks)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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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동안에도 수많은 말과 소리가 내 귀를 스쳐간다. 키보드 소리, 음악 소리, 스마트폰 진동 소리, 카톡 알림 소리,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등등. 이 소리 저 소리 다 시끄럽고 제발 좀 조용히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이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차재혁이 글을 쓰고 최은영이 그림을 그린 책 <MUTE>는 2016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작품이다. '무언의, 말 없는'이라는 뜻을 가진 제목에 맞추어 책에는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문장은커녕 단어조차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흩어져 있는 알파벳과 숫자, 자음과 모음뿐. 작가는 이를 통해 우리 일상에 얼마나 많은 말이 넘치고 허무하게 사라지는지를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지난밤, 식구들은 모두 잠들고 시계 초침 소리만 들리는 방 안에서 이 책을 읽었다. 평소에는 문장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으면서 잠드는 편인데, 문장은커녕 온전하게 읽을 수 있는 단어조차 없는 이 책을 읽으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귀에 들리는 말뿐만 아니라 눈으로 읽는 글자도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걸까. 가끔은 이 책처럼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동화책을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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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 코코
정미진 글, 안녕달 그림 / 엣눈북스(atnoonbooks)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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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잠을 자도 자도 부족한데 어릴 때는 잠드는 시간이 그렇게 싫었다. 자고 있는 동안 나 모르게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고, 한 번 잠이 들면 영영 깨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잘 자서 키가 쑥쑥 크기는 했지만.


<잘 자, 코코>는 잠드는 것을 무서워하는 아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이는 이부자리에서 잠드는 대신 코코라고 이름 붙인 옷장 안에서 잠드는 걸 좋아한다(나도 도라에몽처럼 벽장 안에서 자는 게 소원이었다). 어느 날 아이는 옷장을 타고 날아서 모두가 잠들 때에만 갈 수 있는 쿠루의 나라에 가게 된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는 엄마 아빠한테 쿠루의 나라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하지만, 엄마는 믿어주지 않고 아빠는 시간이 없다고 한다. 


엄마는 왜 자꾸 화만 내고 아빠는 왜 자꾸 시간이 없다고 할까. 아이는 궁금해하지만 지금으로선 알 도리가 없다. 아이는 그저 밤마다 코코와 함께 쿠루의 나라에서 신나는 모험을 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린다. 쿠루의 나라에선 엄마도 화를 내지 않고 아빠도 시간이 없다고 보채지 않는다. 얼마 후 아빠는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잠만 자기 시작한다. 아빠도 아이처럼 코코와 함께 쿠루의 나라에서 신나는 모험을 하는 걸까. 얼마 후 아이는 아빠와 긴 이별을 하게 된다. 


아이는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 아이에게 옷장은 더 이상 코코라고 이름 붙인 친구도 아니고, 쿠루의 나라로 통하는 입구도 아니다. 옷장 안에는 비슷비슷한 무채색의 정장이 걸려 있고, 아침이 되면 그중 하나를 골라 입고 출근해 저녁이 되면 혼자 텔레비전을 보면서 끼니를 때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오랜만에 쿠루의 나라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오랫동안 보지 못한 아빠를 만난다. "아빠, 나는 지금 정말 행복해요. 그래서 두려워요. 이 순간이 지나고 난 뒤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 거죠?"


아이는 코코와 함께 쿠루의 나라를 모험하는 시간이 영원할 줄 알았다. 모험에서 돌아오면 엄마 아빠가 다정한 얼굴로 맞아주는 날들이 계속 이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은 아이에게 가르쳐줬다. 행복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고, 한 번 지나가면 좀처럼 다시 오지 않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내 곁에 있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였을 때가 그립다. 행복이 영원할 줄 알았던 그때.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원히 내 곁에 있을 줄 알았던 그때가. 언제부터 나는 행복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을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을까. 어른이 된다는 건 희망과 멀어지고 절망과 친해지는 일일까. 마음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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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은 손톱
정미진 지음, 김금복 그림 / 엣눈북스(atnoonbooks)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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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깎은 손톱>은 손톱 하나로 여자의 생애와 자연의 질서를 포괄하는 장대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펼친다. 동화는 손톱을 깎는 세 사람의 모습을 비추면서 시작한다. 소녀는 좋아하는 소년이 혹시나 자신의 손을 잡을까 봐 손톱을 깎는다. 할머니는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위해 할아버지의 손톱을 대신 깎는다. 엄마는 곧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며 손톱을 깎는다.





깎은 손톱이 자라나는 동안 소녀는 사랑을 경험하고, 할머니는 죽음을 경험하고, 엄마는 탄생을 경험한다. 소녀의 사랑은 이별로 이어지고, 할아버지의 죽음은 할머니의 성찰로 이어지고, 아기의 탄생은 엄마의 성숙으로 이어진다. 소녀는 언젠가 엄마가 되고, 엄마는 언젠가 할머니가 되고, 할머니는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깎은 손톱이 자라나고, 자라나면 다시 깎이는 것처럼.





이야기의 결을 따라 그림도 결이 바뀐다. 처음에는 손톱을 깎는 모습만 단출하게 비췄다면, 나중에는 소녀가 데이트를 하는 모습이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함께 밥을 먹는 모습, 엄마가 아기를 돌보다가 지쳐서 잠드는 일상적인 풍경까지도 환상적인 연출을 더해 화려하게 표현한다. 깎은 손톱 하나로 이렇게 장대한 이야기와 아름다운 그림을 탄생시키다니. 책을 처음 펼쳤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한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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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콩달콩맘 2017-06-30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특한 소재와 상상이네요
 
있잖아, 누구씨
정미진 글, 김소라 그림 / 엣눈북스(atnoonbooks)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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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극장에서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서 나는 눈물 콧물을 다 흘렸다. 특히 나를 울린 건 주인공 라일리의 상상 속 친구 '빙봉'이었다. 라일리는 어렸을 때 상상 속 친구인 빙봉에게 열광했지만,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빙봉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러나 빙봉은 라일리의 두뇌 속 기억 저장소 한구석에 있으면서 언젠가 라일리가 자신을 다시 떠올려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애처롭던지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있잖아, 누구씨>는 빙봉처럼 누구에게나 한때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상상 속 친구에 대한 동화다. 아이는 부모의 이혼과 학대를 겪으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게 된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혼자일 때가 많은 아이는 어느 날 벽에 있는 작은 얼룩을 발견하고 '누구씨'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날 이후 아이는 누구씨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누구씨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누구씨와 모험을 떠나는 꿈을 꾼다. 누구씨는 아이가 가장 아끼는 형제이자 친구가 된다.


얼마 후 아이는 사람들에게 누구씨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거짓말쟁이라고 한다. 상처받은 아이는 누구씨를 잊기로 한다. 다시는 아무에게도 누구씨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어른이 된다.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지만 생활은 나아지지 않는다. 마음을 터놓을 친구조차 생기지 않는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의점에선 물건이 없어질 때마다 의심한다. 거짓말쟁이라고 한다. 어른이 되면 사는 게 좀 쉬워질 줄 알았는데.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 세 번 마음이 짠했다. 첫 번째는 친구들한테 외면당하는 아이를 볼 때였고, 두 번째는 누구씨와 정답게 지내는 아이를 볼 때였고, 세 번째는 마침내 누구씨를 떠올린 (어른이 된) 아이를 볼 때였다. 비록 상상 속 친구이기는 해도 누구씨는 아이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그만큼 소중한 존재를 잊으려 했으니 안 그래도 힘든 세상살이가 더욱 힘들었을 터. 아이와 누구씨를 떼어 놓은 사람들이 밉기까지 했다(저렇게 좋아했는데). 


나에게도 빙봉이나 누구씨 같은 존재가 있었을 것이다. 열광했던 만화, 표지가 닳도록 읽었던 책, 늘어지도록 들었던 테이프, 아니면 그전에 만나서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추억 속의 내 친구들. 이 책을 읽으니 그 친구들이 몹시 그리워진다. 만나고 싶어도 이제는 만날 수 없기에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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