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읽는 동의보감 - 한의사 엄마가 깐깐하게 고른 최고의 양육처방 : 태어나서 열 살까지
방성혜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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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아를 치료하는 것은 더욱 어려우니 이는 그 장부가 취약하고 피부와 뼈가 연약하며 혈기가 왕성하지 못하고 경락이 실과 같고 맥과 호흡이 가느다란 털과도 같으며 비워지기도 쉽고 막히기도 쉬우며 싸늘해지기도 쉽고 뜨거워지기도 쉽기 때문이다. 또한 입으로 말을 할 수가 없고 손으로 가리킬 수가 없어서 어디가 아픈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p.42) 

 

"작은아들을 키울 땐 내게 큰 변화가 생겼다. 한의과대학에 입학해서 한의학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 시기였다. 특히 동의보감의 내용 중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한 구절을 만나게 되었다. 그 내용은 바로 아이의 신체 발육 속도에 관한 것이었다. "일찍 앉고 일찍 걸으며 일찍 치아가 나오고 일찍 말하는 것은 모두 불길한 성정이므로 아름다운 사람이 되지 못한다." 이 구절은 충격 그 자체였다. 큰아이를 키우면서 그렇게 기대하고 시도했던 그 '빨리'라는 것이 실은 좋지 못한 성정이라는 것이다. 신체 발육이 다른 아이보다 유난히 빠르면 커서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했으니, 나는 정반대로 큰아이를 키운 것이다. (p.86)" 

 

  

 

최근 몇 달 사이에 동의보감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다. 그 중 가장 좋았던 책을 고르라면 한의사 방성혜가 쓴 <마흔에 읽는 동의보감>을 들고 싶다. 도서관에서 보고 부모님 읽으시면 좋겠다 싶어 빌렸는데 내가 더 열심히 읽었다. 동의보감에 대한 해설과 함께 서울대 영문과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해 잘 살다가 돌연 사직하고 한의대에 입학, 육아와 가사를 병행하며 한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져 있어서 그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의 신간이 나왔다. 제목은 <엄마가 읽는 동의보감>. 나는 아직 엄마가 되기는커녕 결혼도 안했지만, 마흔도 아닌데 <마흔에 읽는 동의보감>을 재미있게 읽었으니 이 책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싶어서 읽어보았다. 읽어보니, 일단 빨리 결혼해서 엄마가 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고(파이팅!), 친구와 선배, 사촌언니, 새언니 등 주변의 기혼 여성들, 아이가 있는 여성들에게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묵직하고 내용도 탄탄한데 가격은 겨우 1만6천원이니 백일잔치, 돌잔치 선물용으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지 싶다. 

 

 

저자는 먼저 아이를 치료하는 것이 성인을 치료하는 것과 얼마나 다르고 어려운지를 동의보감을 인용해 설명한다. 아이들은 성인에 비해 몸이 훨씬 민감하고 연약해서 아프기 쉬운데도 자신의 상태를 말로 설명하지도 못해서 치료하기가 갑절로 힘들다. 아이를 가장 잘 알고 아이의 곁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어머니가 아이의 상태를 잘 파악하고 있으면 때로는 의사나 약사보다 더 훌륭한 진단과 처방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은 일때문에 아이를 할머니나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고, 육아, 가사 스트레스 등등의 이유로 아이와 어머니가 같이 지내도 아이를 충분히 보살피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다보니 아이가 아파도 왜 아픈지 정확히 알지 못해 무조건 병원에 달려가거나 약에 의존하거나, 때로는 그마저도 못하고 방치하는 일도 생긴다. 

 

 

저자 역시 한의대 공부를 하고 한의사로 바쁘게 지내다보니 두 아들을 키우면서 충분히 신경을 쏟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로 인해 큰아들은 불안정한 생활 때문인지 크고작은 병치레를 자주 했고, 작은아들은 고지혈증이 우려된다는 진단을 받을 만큼 비만이었다. 저자는 한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건강에 신경쓰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그동안 쌓은 한의학적 지식과 진료를 하면서 얻은 경험과 지혜를 집에서 실천해보았다. 그랬더니 아이들의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졌고, 심리적으로도 안정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학교생활도 잘하게 되었다. 한의사의 마음과 어머니의 마음, 두 가지 마음이 더해져서 쓰인 책이라서 그런지 내용이 두배로 깊고, 구절 하나하나가 읽고 있는 내 마음까지 절절하게 와닿았다.  

 

 

아이의 양육과 병, 성정, 음식 등 다양한 주제에 신경을 쓴 점도 좋다.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이를 키울 때에도 자기 아이가 다른 집 아이들보다 뭐든 빨리 하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는데, 동의보감에 따르면 빠른 것은 느린 것보다 결코 좋지 않다고 한다. 저자는 이를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사실 나도 어릴 때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걷고 빨리 말을 하고 글도 일찍 깨우쳐서 부모님이 좋아하셨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제 보니 좋아하실 일이 아니었다 싶다. 뭐든 빨리 익히고 빨리 지치는 성격이 이 때 비롯된 것 같다. 반대로 내 동생은 뭐든 느리게 뗐는데 지금도 성격이 느긋하고 일도 차분하게 한다. 경거망동하지 않고 느리게, 천천히 하는 것. 이는 양육뿐 아니라 아이의 병을 다스리고 성격을 파악하고 음식을 먹이는 데에도 통하는 진리다. 동의보감은 어렵다, 한의학은 난해하다 생각지 말고, 쉽고 재미있게 쓰인 <엄마가 읽는 동의보감> 같은 책으로 아이를 보다 지혜롭게 키우는 어머니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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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브랜딩 공부하라 지금 당장 경제 시리즈
엄성필 지음 / 한빛비즈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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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전 백화점에서 몇십만 원에 파는 유명 해외 브랜드 화장품의 통관 가격이 고작 몇 백원, 몇 천원 밖에 하지 않는다는 텔레비전 보도를 보았다. 가격에 거품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몇배, 몇십배 수준이 아니라 몇백배, 몇천배 수준이라니...... 거품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거품이 생기는 이유로는 유통구조의 문제라든가 임대료, 인건비, 홍보비, 모델 출연료 등을 들 수 있지만, 소위 말하는 '브랜드 값'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비싼 줄 알면서, 거품인 줄 알면서 명품 브랜드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일까? '낙인'이라는 브랜드의 뜻처럼, 명품을 쓰면 마치 나한테 명품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 같아서일까? 비싼 제품을 쓰면 내 몸값도 비싸지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일까? 



<지금 당장 브랜딩 공부하라>의 저자 엄성필 역시 유명 해외 브랜드 화장품의 사례처럼 브랜드의 힘이 부정적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경계한다. 그러면서도 브랜드가 가진 고유의 힘이 제대로 쓰일 때의 무한한 가능성은 부정하지 않는다. "필자는 브랜딩을 좋게 말하면 '마법', 나쁘게 표현하면 '사기'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예를 든 에비앙도 솔직히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선달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브랜딩을 사기가 아닌 마법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강점은 부각하고, 약점은 감추며, 소비자에게 감정적 애착을 끌어내는 것이 브랜딩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어내는 것처럼 대단한 마법이 어디에 있을까요?" (서문 중에서) 사실 값비싼 명품 브랜드만 브랜드의 힘을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유니클로, 자라 같은 SPA브랜드 제품이나 로드샵 화장품 등 명품에 비해 훨씬 저렴한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추세인데, 이들은 저렴하지만 품질 좋고 유행에도 뒤떨어지지 않은 제품을 구매하는, 합리적인 소비자의 이미지를 함께 구매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비싼 제품은 비싼 대로, 싼 제품은 싼 대로, 소비자는 제품을 구입할 때 제품 그 자체만이 아니라 브랜드까지 함께 구입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브랜드를 마냥 사기다, 거품이다 비난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감정적 욕구를 충족하는 마법 같은 힘을 가진 것으로 너그럽게 보아도 좋겠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에르메스, 구찌, 프라다, 루이비통 등 유명 패션 브랜드에 대한 설명에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브랜드 이미지를 잘 구축하여 성공한 브랜드 중 하나로 에르메스를 들 수 있다. 그레이스 켈리가 들어서 화제가 된 '켈리백'과 영국 출신 프랑스 여배우 제인 버킨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서 만든 '버킨백'은 지금도 사려면 적어도 2년은 대기해야 하는 명품 중의 명품, 브랜드 중의 브랜드다. (막상 버킨백의 뮤즈인 제인 버킨은 무거워서 버킨백을 안 쓴다고 하니 아이러니다.) 몇 년 사이에 새롭게 떠오른 명품 브랜드로는 멀버리가 있다. 멀버리는 오랫동안 품질은 좋지만 인기가 없어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영국 출신 모델 알렉사 청이 들어서 일약 화제가 되었고, 최근에는 영국의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비가 애용하는 브랜드로 알려져 주가가 급등했다. 패션 브랜드 대부분이 유명한 스타를 모델로 기용하거나 그들을 통해 강력한 홍보 효과를 누린 것을 보면 브랜드 이미지의 형성에 스타 마케팅의 몫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최근에는 출판계에서도 어떤 연예인이 읽었다더라, TV에서 애독서로 소개했더라 하는 것이 그 어떤 마케팅보다 강력한 홍보 효과를 가져다주고 있는데, 홍보가 되어서 좋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좋기만 한 일일지는 모르겠다.  



뜨는 브랜드가 있으면 지는 브랜드도 있는 법. 저자는 신규 브랜드에 밀려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진 브랜드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대표적인 예가 노키아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노키아는 휴대폰 시장 수위를 점하는 브랜드였다. 그러나 휴대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업계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노키아가 여기에 대처하지 못하면서 브랜드 이미지 하락은 물론 기업의 존속까지 위협받는 상황이 되었다. 어디 노키아뿐이랴. 식품, 화장품 같은 저가의 일용품도 인기 브랜드가 몇 년 사이에 휙휙 바뀐다. 경영, 브랜드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한 브랜드에 애착을 가지면 오랫동안 충성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안타깝고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점점 그 추세가 빨라지니 아쉬움이 더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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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좀 빠진 것 같은데? 오늘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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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하는 내 마음 다시보기
혜민 지음, 이영철 그림 / 쌤앤파커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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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로 하도 많이 받아서 집에 이 책이 쌓여 있었다. 한번쯤 읽어보아도 좋으련만, 잘 팔리고 인기 많은 책은 왠지 꺼려지는 못된 심보(!) 때문에 통 읽을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이번에 지인이 대화 중에 이 책의 어느 구절을 인용했는데, 그 구절이 좋아서 이 책을 제대로, 그야말로 '각 잡고' 읽어보았다. 읽어보니 생각보다는 괜찮은 책이었다. 스님이 쓰셔서 잠언집, 명상집 같은 책일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저자인 혜민 스님의 출가 전후의 이야기도 많고(특히 출가 전 학생 시절의 경험담과 첫사랑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잠언 비슷한 구절들도 저자 본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아서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스님이 쓴 책인데도 불법(佛法)에 대한 인용이 많지 않고, 명상이나 수련 같은 마음 공부법에 대해 깊이 파고들지 않은 점은 아쉽지만, 일반 대중을 겨냥한 책으로서는 적절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적기는 해도, 마음공부를 하는 자세,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마음 공부는 일반 공부와는 정반대로 해야 해요. 일반 공부는 모르는 것을 배워서 지식으로 채워가지만, 마음공부는 반대로 '안다'는 생각을 쉬고 또 쉬면서 텅 빈 채로 이미 충만한 마음자리를 밝히는 것입니다.(p.41)" 마음 공부는커녕 그냥 공부하기에도 바쁜 보통의 현대인들에게는 이런 구절도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내용을 보면 욕심이나 욕망을 경계하라는 구절이 많다. 가령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중략)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 (p.71)", "무릇 재물을 비밀스레 간직하는 것은 베풂만한 것이 없다. 내 재물로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흔적없이 사라질 재물이 받은 사람의 마음과 내 마음에 깊이 새겨져 변치 않는 보석이 된다. (p.84)" 등 인간관계에 있어서든, 사회생활에 있어서든, 돈 관리에 있어서든 욕심을 버리고 나누고 베풀라는 내용이 많다. 먼 듯 하지만, 앞서 말한 '마음공부는 채우는 공부가 아니라 비우는 공부다'라는 내용의 문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런 식으로 각 장의 내용들이 결국에는 하나의 주제로 수렴되는 점도 좋았다.  



물론 저자의 역량이 컸겠지만, 이만한 내용으로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고 사회적으로 '혜민 스님 신드롬'까지 낳은 것을 보면 편집자, 출판사의 공이 컸겠다 싶다. 책의 만듦새와 엮임새 면에서도 흠잡을 데가 없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자칫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는 구절들을 혜민 스님의 독특한 경험 - 평범한 학생에서 불자가 되기 위해 출가를 하고, 출가 후 평범한 불자로서의 길을 걷지 않고 미국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는 점 등 - 과 잘 조합해서 읽기 좋게 잘 만들었다. 마치 안 그래도 귀한 옥을, 더 값이 나가도록 잘 연마하듯이 만든 책 같달까? 어쩌면 그 연마하는 마음이 마음 공부하는 자세와도 비슷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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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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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보다 자신의 그림자가 더 아름다운 여자는... 그림자로서 세상을 살아야 해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나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여자에요.(p.211)" 남자는 '자신보다 자신의 그림자가 더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했다. 친구는 동정으로 시작된 사랑은 무관심이나 증오보다 더 나쁜 것이며 말렸다. 남자도 자기 자신을 의심했다. 유난히 잘생겼던 그의 아버지는 유난히 못생겼던 그의 어머니를 버렸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어머니에 대한 동정심의 발로로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끝내 용기를 내 여자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할 줄 알았다.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사실 몇 달 전 책을 구입하자마자 읽기를 시도했는데 문체가 생경하기도 하고 작중 상황이 이해가 안 돼서 몇 장 읽고 덮어버렸었다. 그러다가 며칠 전 <창비 라디오 책다방> 박민규 작가님 편을 듣고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날 당장 읽기 시작했는데, 오 마이 갓! 내가 이 책을 그냥 포기했다면 큰일 났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찔했다. 한 남자의 인생 이야기 같기도 하고, 두 연인의 러브 스토리 같기도 하고, 세 남녀의 젊은 시절을 그린 청춘물 같기도 한 이 소설은 그냥 읽으면 마치 80년대 청춘 영화를 보는 듯 그저 재미있지만, 진지하게 읽으면 그 속에서 2010년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아니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여성의 미(美)'에 대한 사회의 야박한 시선과 이로 인한 사회적인 계급의 형성, 외모에 대한 비관 때문에 생긴 내면의 장애 같은 것에 대한 저자의 일갈을 읽을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끔 케이블 채널에서 보는 <렛 미 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방송에서 외모 때문에 각종 사회적 차별을 당하고, 그것 때문에 외모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면까지 고통받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면서도, 그러한 차별과 고통이 성형수술이라는 과정을 통해 여배우나 걸그룹 같은 외모를 가짐으로써 해소될 수 있다고 보는 프로그램의 시각에는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그 방법밖에 선택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고, 출연자 중에는 외모와 관련하여 신체적인 고통을 겪고 있어서 의학의 도움을 받는 것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지만, 외모라는 것이 하나의 사회적인 자본처럼 다뤄지고, 외모가 아름다우면 자본이 있는, 소위 말하는 갑(甲)이고, 아름답지 못하면 자본이 없는 을(乙)처럼 취급되는 현실 자체의 개선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비단 외모의 문제만이 아니다. 넓게 보면 외모뿐 아니라 모든 것을 자본화하는 자본주의사회의 모순과 폐해, 또한 그러한 자본의 유무를 통해 계급이 정해지는 사회의 폐단, 그러한 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더라도 무시하고 살아가는 '현대판 노예'나 다름없는 일반 시민들의 아이러니를 이야기 하는 것이 이 소설이다. "고대의 노예들에겐 노동이 전부였다. 하지만 현대의 노예들은 쇼핑까지 해야한다." (p.310) 자본주의 사회의 '노예'들은 그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도 잘해야 하고, 외모도 아름답게 꾸며야 한다. 세상의 눈에 고깝게 보이지 않도록 때 되면 대학가고, 때 되면 취직하고, 때 되면 결혼하고 아이낳고, 때 되면 퇴직하며 살아야 한다. 내 인생은 왜 고달플까? 못생겨서? 공부를 못해서? 좋은 대학을 못나와서? 직장이 별로라서?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해서? 애가 없어서?... 그런 것들을 고민하기 전에, 먼저 그런 것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이 사회와 구조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궁극적인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두 시간을 기다려 5분 열차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며 아마도, 하고 나는 얘기했었다. 그런 걸 거야. 여기까지 왔는데 이건 꼭 타고 가야지, 그런 심리가 되는 거지. 두 시간 줄서서 5분 열차, 두 시간 줄서서 5분 회전바퀴, 두 시간 줄서서 5분 바이킹... 우와, 거의 하루인 걸. 한적한 느낌의 참으로 시시한 회전 커피 잔에 앉아 나는 생각했었다. 누구나 그럴 듯한 인생이 되려 애쓰는 것도 결국 이와 비슷한 풍경이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이왕 태어났는데 저건 한번 타봐야겠지, 여기까지 살았는데... 저 정도는 해봐야겠지, 그리고 긴긴 줄을 늘어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버리는 것이다. 삶이 고된 이유는... 어쩌면 유원지의 하루가 고된 이유와 비슷한 게 아닐까. (p.200)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의 열린 결말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해피엔딩이었다면 현실에서는 평생을 응달에서 살아야했을 여자의 운명을 비현실적으로 마무리지었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고, 새드엔딩이었다면 못생긴 여자와 그 여자를 사랑한 남자의 운명은 결국 비극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하고 한탄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작가는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을 모두 취하는 독특한 결말을 통해 독자가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게끔 결말을 열어두었다. 그렇다면 이 사회의 운명도 열린 것일까? 마냥 행복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비극적이지도 않을까?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보다는 덜 팍팍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더 관대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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