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페스
콜린 후버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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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엉망진창인 내 삶, 바꿀 수 있을까?' 콜린 후버의 소설 <컨페스>의 주인공 오번은 열일곱 살 때 첫사랑을 잃고, 그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들의 양육권을 그의 어머니에게서 되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미용사가 된 오번은 변호사 선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일을 찾다가 구인광고를 본다. 사람을 찾는 곳은 'CONFESS(고백)'를 주제로 그린 그림들을 전시하는 갤러리. 오번은 한 시간에 100달러를 준다는 말에 수상함을 느끼지만, 의심을 하기에는 갤러리의 주인이자 화가인 오언 젠트리가 자상하고 매력적이라서 일자리를 받아들인다. 


오번은 사랑 때문에 인생을 망친 것처럼 보인다. 열일곱 살 때 첫사랑 때문에 학교를 무단으로 결석하는 소동을 벌이고 그와의 사이에서 아들까지 얻으면서 부모와 멀어지고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설상가상으로 첫사랑의 어머니가 오번의 아들을 데리고 텍사스로 떠나는 바람에 오번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텍사스로 와야 했다. 그런 가운데 오언을 만난 건 행운을 넘어 기적이었다. 오언은 오번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었고 사랑의 떨림을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하지만 오언이 감추고 있던 비밀이 밝혀지면서 오번은 좌절한다. 이번에도 사랑을 잃고 사랑 때문에 아들까지 잃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가엾은 오번은 얼마나 더 울어야 할까. 


흔하디흔한 게 사랑 이야기이지만 <컨페스>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이십 대 초반에 이미 많은 시련을 경험한 주인공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단단하게 성장해가는 과정은 여성들의 공감을 살 만하고, 말 못할 비밀을 안고 있는 두 남녀가 오로지 몸과 마음만으로 서로에게 끌리고 가까워지는 과정은 그 자체로 달콤하고 매혹적이다. 오번과 오언이 각각 상대가 감추고 있는 비밀이 무엇인지 알아나가는 과정은 한 편의 추리소설 같고, 생판 남인 줄 알았던 두 사람이 특별한 인연으로 이어진 관계라는 반전은 작품에 여운을 더한다. 사랑 때문에 인생을 망치고 사랑 때문에 다시 구원받은 오번처럼, 나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에 읽어서인지 더욱 울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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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27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로 선정돼서 축하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키치 2016-12-29 20:28   좋아요 0 | URL
cyrus 님도 선정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먼저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나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그 나이 먹은 당신에게 바치는 일상 공감서
한설희 지음, 오지혜 그림 / 허밍버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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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다. 행여나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이나 교훈, 하다못해 작은 힌트라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책을 들었다면 미리 사과하고 싶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어떠한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런 내 모습에 작은 희망을 품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아무것도 모른 채 이 삶을 살아 내고 있으니까. (프롤로그 중에서) 


방 청소를 하다가 꽤 괜찮은 대기업 명함을 발견하고 전화해 보니 예전 남자친구였다. 외출하던 중 코트 속에 치마 입는 걸 깜빡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집으로 뛰쳐 들어왔다. 목욕탕에서 때를 밀고 있는데 생전 처음 보는 아이가 "엄마"라고 부르며 뒤에서 와락 끌어안았다. 엄마 손에 이끌려 가는 아이 왈, "저 아줌마도 엄마처럼 아가 가진 거야?" 오 마이 갓......! 


tvN <막돼먹은 영애 씨> 작가 한설희의 첫 에세이집 <나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영애 씨가 직접 썼나 싶을 만큼 코믹하고 진솔하다.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고 돈도 애인도 없이 사십 대에 접어든 저자. 자기보다 앞서 결혼하는 후배를 보면 부럽고,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친구를 보면 안쓰럽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결혼 언제 하니?" 같은 독촉을 받으면 짜증이 치솟지만, 막상 어머니가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꼭 결혼하지 않아도 되지 뭐~." 같은 말을 하면 서운하다. 


저자처럼 '이렇게 사는 게 좋다!' 싶다가도 마음 한구석에서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쳐드는 건 왜일까. 이 책에는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이나 교훈, 하다못해 작은 힌트'조차 없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된다. 


나이 마흔하나에 적당한 자산이란 어느 정도일까? 

나이 마흔하나에 내 스스로 든 적금이 하나도 없으면 비정상인 걸까? 

나이 마흔하나에 몇 년 째 건강검진을 받지 않고 있는데 괜찮은 걸까? 

나이 마흔하나에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가 가당키나 한 걸까? 

나이 마흔하나에 삼십 대에 입던 스타일로 입어도 되는 걸까? 

나이 마흔하나에 일주일에 서너 번 술을 마시는 건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일일까? (125쪽) 


짠한 여운을 남기는 대목도 있다. 친구들보다 심지어 가족보다 <막돼먹은 영애 씨>팀 작가들과 더 가깝게 지내던 어느 날, 저자는 막내 아이디어 작가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작가가 몽땅 결혼을 해 버리는 초유의 사태에 봉착했다. 


임신, 출산, 시집살이, 부동산, 교육 문제 등등 유부녀들이 깊이 공감할만한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왕따'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낀 저자는 레즈비언 친구에게 하소연을 늘어놓다가 자신의 무신경함을 깨달았다. 결혼하지 않은 자신보다 결혼할 권리조차 무시된 레즈비언이 사회에서 더 깊은 절망감과 소외를 맛본다는 것을 안 것이다. 급기야 레즈비언 친구가 10년 동안 사귄 애인 이름조차 까먹은 저자를 비난하며 친구 왈, "세상이 널 왕따시킨다고 생각하지 말고 네가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 좀 가져 봐라! 이 세상을 왕따시킨 년아!" 


결혼을 해야 한다, 안 해도 된다 하는 생각은 사회적, 법적 제한 없이 결혼을 할 수 있는 사람들만의 논쟁이 아닐까. 몇 살엔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생활이 안정되고 장래를 계획할 수 있는 형편인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배부른 소리가 아닐까. 다큐라기보다 시트콤 같은 이야기가 예상외의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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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곽 안내서 - 제137회 나오키 상 수상작
마쓰이 게사코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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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흔한 이야기를 색다른 구성을 이용해 새롭게 풀어냈다. 소설 자체로도 재미있고, 제목 그대로 ‘유곽 안내서‘의 역할도 충실히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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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곽 안내서 - 제137회 나오키 상 수상작
마쓰이 게사코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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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크, 손님. 이쪽으로 오십쇼. 헤헤헤, 조급한 마음이야 알지만, 그렇게 허둥대면 안 됩니다요. 그쪽은 돌아가는 길입니다. 예에? 이곳을 한 바퀴 돌아보고 싶으시다고...... 예이, 그러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구경하시라고 하고 싶지만 비슷비슷한 방이 줄줄이 있어서 헷갈리기 쉽습니다요. 방을 잘못 찾았다가는 다른 손님의...... 이거 참, 이렇게 과분한 행하를 주시다니 송구합니다요. 헤헤헤, 그러면 감사히 받고 안내를 해 드립죠. (133쪽) 


2007년 제137회 나오키 상을 수상한 <유곽 안내서>는 에도 시대에 존재했던 대규모의 유곽 '요시와라'가 배경이다. 유곽이 배경인 이야기가 흔한 가운데 이 소설을 돋보이게 만드는 건 '구성'이다. 소설은 은퇴한 유녀, 침소 시중꾼, 유곽 주인, 게이샤, 거상 등 유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시와라가 어떤 곳인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며 어떤 사람들이 이곳에 와 어떻게 살아가는지 하나씩 하나씩 정보가 제공되는 가운데 이야기의 정체가 드러난다. 


이야기의 정체란,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오이란(요시와라 유곽의 유녀 중에서 등급이 높은 유녀를 가리키는 말) '가쓰라기'가 유녀 생활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에치고의 상인의 낙적 약속까지 받은 상태에서 돌연 사라진 사건을 가리킨다.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라서 아무도 입을 함부로 열지 않지만 누구나 할 말은 있다. 인터뷰하는 사람들의 말속에 숨겨진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면서, 독자는 가쓰라기가 이곳에 흘러들어온 배경과 바람처럼 사라지게 된 경위를 저절로 알게 된다. 


요시와라, 그중에서도 요시와라의 꽃으로 불리는 오이란을 다룬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안노 모요코의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니나가와 미카의 영화 <사쿠란>이 떠오르고, 얼마 전에 읽은 <청루 오페라>라는 만화도 떠오른다. 이런 흔해빠진 이야기를 일반적인 소설의 형식으로 서술했다면 얼마나 지루했을까. 소설 자체로도 재미있고, 제목 그대로 '유곽 안내서'의 역할도 충실히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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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
사노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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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제는 몸이 안 좋아서 광화문 촛불집회에 못 나가고 집에서 쉬었다. 올겨울 추위에 대비해 새로 산 양모 이불을 덮고 뜨끈뜨끈한 방바닥에 누워 책을 읽는 기분이 편치만은 않았다. 


편치 않은 기분으로 집어 든 책은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의 수필집 <느낌을 팝니다>였는데, 여러모로 의외인 점이 많은 책이지만 중간에 사노 요코의 이야기가 나와서 반가움 반, 놀라움 반(사노 요코가 암으로 여명 이 년을 선고받고 돌아오는 길에 재규어를 구입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최근 사노 요코가 쓴 첫 번째 수필집 <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를 읽고 서평을 쓰지 않은 게 생각났다. 


사노 요코는 한국에서는 수필집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등이 잇달아 출간되며 최근 몇 년 유명해진 작가이지만, 일본에서는 1990년대에 이미 수필가로 인기를 끌고, 그전에는 <100만 번 산 고양이>라는 동화책으로 스타덤에 오른 그림책 작가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는 사노 요코가 40대에 처음 발표한 수필집으로 작가의 불우했던 유년 시절과 다사다난했던 학창 시절, 유학 시절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린 내가 저지른 무수한 실수, 어른들이 내게 한 많은 질타와 비난을 나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어쩌면 부모님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내게 혀를 찼을지도 모르고, 나도 들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여름 초저녁, 수박을 깬 내게 혀를 찬 삼촌이 싫지는 않았다. 내게 보이는 것은 덜렁거리다 수박을 깬 혐오스러운 아이인 나였다. 나는 삼촌 눈에 비친 나를 혐오했다. (50쪽) 


저자는 학창 시절 고향인 시즈오카를 떠나 도쿄에 있는 이모 집에서 하숙을 했다. 어느 날 아침, 창을 여니 눈이 와 있었고, 가난한 집 부유한 집 할 것 없이 지붕마다 새하얀 눈이 쌓인 것을 보며 저자는 <마쿠라노소시>를 쓴 세이 쇼나곤을 떠올렸다. '가난하고 지저분하고 추접스러운 집에 눈이 내려 운치가 나는 것은 건방지다.' 라고 '너무나 솔직하게' 감상을 밝힌 세이 쇼나곤을 저자는 좋아했다. 


세이 쇼나곤의 글과 마찬가지로 저자의 글도 '너무나 솔직하'다. 어린 시절 정원에 피어 있던 달리아의 목을 꺾었을 때 아버지가 "너도 그렇게 해줄까" 하고 팔을 비틀었던 일, 저자의 오빠가 죽은 후 어머니가 웃음을 잃고 남은 자식들에게 구박과 학대를 일삼았던 일, 전학 간 학교에서 '때려도 울지 않는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남자아이들한테 얻어맞았던 일, 대학 시절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으나 짝사랑하던 남학생에게 일을 미루고 농땡이를 부렸던 일 등 부끄러운 일, 감추고 싶은 일을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왜 어린이 그림책을 그리는가. 내 결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나는 객관적인 어른으로서 어린이를 관찰하고 이해하고 어린이에게 말을 거는 게 아니다. 나는 어김없이 내 속에 있는 어린 시절의 나를 향해 얘기하고 있다. 나는 소처럼 삼켰던 것을 되새기고, 되새긴 것을 삼키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내가 어린이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어린이 속에서 어린 나를 발견했을 때뿐이다. (153쪽) 


저자는 가난하고 무능력했던 아버지와 어린 자식들을 구박하고 학대했던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는다. 울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타를 정당화했던 아이들, 자신을 여자로 봐주지 않았던 남자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저자는 자신을 질타하고 비난하고 무시하고 혐오했던 이들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을 기억한다. 사랑받고 싶었던 상대에게 사랑받지 못한 나, 사랑받을 수도 없고 사랑받으려고 애쓰지도 못한 나를 향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저자가 어린이 그림책을 그리게 된 것도 같은 이유다. 저자의 오빠는 그림을 잘 그렸다. 그림을 그릴 때의 오빠는 뭔가에 빙의된 것 같았다. 열두 살이 되던 해에 오빠는 죽었고, 저자는 오빠가 남긴 크레파스와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미대에 입학하고 그림책 작가가 되었지만 "그림 그리는 일이 사실은 오빠 같은 사람에게만 허락된 일이라는 환상"을 오랫동안 지우기 어려웠다. 저자는 일찍 세상을 떠난 오빠와 오빠만 그리워하고 자기는 예뻐해 주지 않았던 부모를 탓하지 않는다. 다만 오빠보다 오래 산 나, 끝내 오빠 같은 자식은 될 수 없었던 나를 생각한다. 그것은 위로일까, 저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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