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리커버 에디션)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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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는 정치인에서 지식 소매상으로 변신한 작가 유시민이 20대 시절에 읽은 열네 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이다. 2009년 초판이 나왔을 때 분명히 읽었는데, 8년이 지난 지금 신장판이 나와 다시 읽으니 새 책을 읽은 것처럼 내용이 새롭다. 커버만 바뀌었을 뿐, 내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하니 새로운 건 내용이 아니라 나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소개된 책은 <죄와 벌>, <전환시대의 논리>, <공산당 선언>, <인구론>, <대위의 딸>, <맹자>, <광장>, <사기>,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종의 기원>, <유한계급론>, <진보와 빈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역사란 무엇인가> 등이다. 저자는 이 책 모두를 '필독 도서'로 추천하진 않는다. 한때는 열심히 읽었지만 세월이 흘러 다시 읽어보니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한 책도 있고, 젊어선 멋모르고 읽었는데 나이가 들어 다시 읽어보니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슴을 울린 책도 있다는 '감상(感想)'을 전하는 데 집중한다. 


저자의 감상이 8년 만에 이 책을 다시 읽는 내 마음에 와 닿았던 이유는 내가 바뀌기도 했지만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전환시대의 논리>에 실린 에세이의 한 대목 - '가장 어리석은 소년에 의해서 온 사회의 허위가 벗겨지기까지 그 임금과 재상들과 어른들과 학자들과 백성들은 타락과 자기부정 속에서 산 셈이다.' - 은 지난해 말 드러난 박근혜 -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떠올리게 하고, <공산당 선언>에 나오는 "권력을 쥔 적대 세력에게 공산당 같다고 비난받지 않은 야당이 어디 있으며"라는 문장은 한국의 보수 정당이 진보 정당에게 허구한 날 들이대는 칼날을 닮았다. 이를 깨달은 건 내가 (부끄럽게도) 지난해 말에야 한국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박근혜가 탄핵되고 새 정권이 출범하는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이지, 그전엔 깨닫지도 못했고 깨달았다 한들 현실 정치와 연결할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책의 전체적인 맥락이나 주제와 상관없이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대목은 이것이다. "하 걸왕과 은 주왕, 주 유왕의 폭정 책임을 말희, 달기, 포사라는 여인들의 책임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 여인들이 없었더라도 세 폭군은 다른 여자를 그 자리에 놓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랏일을 팽개치고 환락에 빠진 책임은 왕에게 있지 여자에게 있는 게 아니다. 중국 고대 역사 기록을 담당한 것이 남자들이었던 만큼 이런 기록은 당대 남자들의 여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120쪽) 


초판에도 위 대목이 나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초판에도 있었다면 다행이고, 신장판에만 추가된 대목이라면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니 반갑다. 특이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은 "그 여인들이 없었더라도 세 폭군은 다른 여자를 그 자리에 놓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마천의 <사기>를 포함해 여러 역사서를 읽었음에도 이를 눈치채지 못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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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변호사
존 그리샴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수첩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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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8세 여아 살인 사건 같은 범죄 보도를 접할 때마다 변호사는 어떻게 그런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변호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모든 사람에게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다고 해도,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공동체에 해악을 끼친 범죄자를 변호하는 건 뭔가 께름칙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인간쓰레기를 변호할 수가 있습니까?" 존 그리샴의 신작 <불량 변호사>의 주인공 서배스천 러드는 이 질문을 달고 산다. 러드는 변호사라면 누구나 꺼리는 소송만 담당하는 '불량 변호사'다. 아동 성추행 전과가 있는 악마 숭배 집단의 일원, 교도소 철창 안에서 사업을 하다가 유죄판결을 받자 판사를 살해한 무법자, 이종 격투기 경기에서 판정패하자 심판을 두들겨 팬 선수 등 누가 보아도 범죄자가 분명한, 유죄 판결을 받을 것이 거의 확실한 피고인이 러드의 담당이다. 


러드가 중죄로 기소된 피고인만 골라서 변호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요." 러드는 법이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표를 얻고자 하는 정치인, 자리보전을 해야 하는 관료, 승률을 올려야 하는 검사와 변호사가 합심해 무고한 사람을 범죄자로 찍고 거짓 증거를 만들고 실제 범죄를 은폐하는 현실을 잘 안다. 미디어가 진실을 가리거나 거짓을 부풀리고, 순진한 대중이 권력과 미디어를 믿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 역시 질리도록 봤다. 


러드는 선량한 척하는 불량배의 편에 서느니 대놓고 불량 변호사가 되는 편을 택한다. 불량배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운 나쁘게 불량배들의 먹잇감이 된 사람을 구하는 것이 그가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의다. "나 같은 변호사는 그림자 속에서 일하는 수밖에 없다. 내 적수들은 경찰 배지와 제복, 국가 권력이 준 무수한 장치로 보호받는다. 그들은 법을 준수하겠다고 맹세했으며 그럴 의무가 있지만, 빌어먹을 속임수를 엄청나게 써대므로 나로서도 어쩔 수 없이 더 심한 속임수를 써야만 한다." (183쪽) 


불량한 세상에 맞서기 위해 불량한 방법으로 응수하는 러드의 모습은 통쾌하기도 하지만 안쓰럽기도 하다. 옳은 일을 하고도 불량 변호사라는 딱지를 달고 살고, 유죄 판결을 받을 것이 거의 확실했던 피고인을 구하고도 마땅한 대가를 받지 못하니 안타깝다. 사생활에선 전처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하나뿐인 아들의 면접 교섭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는 등 불운이 잇따라 짠하기까지 하다. 


한국에도 러드처럼 겉보기에만 불량한 변호사가 많으면 좋으련만, 어쩐지 내 눈에는 무고한 어린아이를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한 사람도, 국민들이 낸 연금을 맘대로 사용한 사람도 돈이 있고 힘이 있으면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주는, 진정한 의미의 불량 변호사들이 더 많이 보인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법, 모두에게 공정한 재판을 실현하는 것보다, 밥벌이에 급급하고 부귀영화와 양심을 바꾸는 법률가들이 더 눈에 띈다. 


법률가뿐 아니라, 선량한 얼굴로 불량한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과 불량한 얼굴로 선량한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을 구분하는 지혜가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선량함의 가면을 쓰고 불량한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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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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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좋은 계절은 언제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름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낮에는 더워서 책 읽을 여력이 없고, 밤에는 지쳐서 자기 바쁘니 웬만큼 재미있지 않으면 책 읽기가 꺼려진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하루에 책을 두세 권씩 읽던 나 역시 요즘은 사나흘에 한 권 읽기도 벅차다. 이 와중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위험한 비너스>는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으니 재미있기는 했나 보다. 


동물병원 수의사 데시마 하쿠로는 어느 날 낯선 여자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하쿠로의 이부 동생 야가미 아키토의 아내라고 밝힌 여자는 아키토가 현재 행방불명이 되었으니 함께 찾아달라고 매달린다. 하쿠로는 아키토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사실보다 몇 년째 왕래가 없었던 아키토가 가족들 몰래 결혼한 사실과 아키토의 아내가 하필이면 자신에게 도움을 청한 사실에 놀란다.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결국 여자의 간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여자와 함께 아키토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때마침 아키토의 친아버지 야가미 야스하루가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하쿠로는 아키토의 아내 가에데와 함께 오랜만에 야가미가(家)를 찾는다. 유산 분배를 기대하던 야가미가 사람들은 몇 년째 왕래가 없던 하쿠로가 등장하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가에데의 정체를 수상하게 여긴다. 


불편한 분위기를 견디며 야스하루의 유산을 살펴보던 하쿠로는 자신의 친아버지이자 33년 전에 요절한 무명화가 데시마 가즈키요의 그림과 똑같은 그림을 야스하루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친아버지가 생전에 양아버지와 아는 사이였다는 걸 알게 된 하쿠로는 양아버지가 친아버지의 죽음은 물론, 16년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죽음에도 관련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어쩌면 아키토가 행방불명이 된 것도 이들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지도...? 


하쿠로는 복잡한 가족사 탓에 집안일에 무심했다. 친아버지는 요절해 기억도 잘 안 나고, 어머니는 명문가 출신 의사와 재가해 동생을 낳았으니 등돌리고 싶을 만도 하다. 그랬던 하쿠로가 동생의 실종을 계기로 친척들을 만나고 가족에 얽힌 비밀을 파헤친다. 왠지 모르게 친아버지가 준 성(姓)을 버리기 싫었던 것도, 야가미 가의 주요 사업인 의료 분야 대신 수의사의 길을 택한 것도 어릴 때 겪은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구보다 가족을 싫어했지만 누구보다 가족적인 남자였다. 하쿠로는. 


소설의 제목 <위험한 비너스>는 무엇을 뜻할까. 적어도 둘은 알겠다. 하나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하쿠로의 마음을 휘저은 여자 '가에데'. 다른 하나는 고도로 발전해 누구든 비너스(천재)로 만들 수 있지만 그만큼 위험한 '의학 기술'이다. 재미와 감동, 교훈까지 모두 잡은 이 소설. 하쿠로가 만나는 여자마다 얼평, 몸평을 해대는 시대착오적인 남자라는 점만 빼면 제법 괜찮은 대중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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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병동 병동 시리즈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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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하야미즈 슈고는 교외에 있는 한 병원에서 당직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별일이 없으면 당직실에서 대기만 하면 되는 이른바 '꿀알바'인 데다가 보수도 괜찮아서 하야미즈는 작년부터 정기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문제의 사건이 벌어진 날은 하야미즈가 당직을 서는 날이 아니었다. 선배의 부탁으로 대신 당직을 서기로 하고 병원에 온 하야미즈는 평소처럼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하룻밤을 새울 요량으로 당직실에 들어갔다. 그날 밤부터 새벽까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치넨 미키토의 소설 <가면병동>은 외과의사 하야미즈 슈고가 선배를 대신해 병원에서 당직을 섰다가 뜻밖의 인질 사건에 휘말리는 과정을 그린 미스터리 소설이다. 소설의 무대인 다도코로 병원은 한때 정신병원이었다. 그래서인지 일반 병원에선 볼 수 없는 시설도 있고, 왠지 모르게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 이 병원에 늦은 밤 편의점 강도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 인질을 데리고 침입해 병원 안팎을 연결하는 모든 통로를 폐쇄하고 병원 안에 있는 사람들을 인질로 잡는다. 


병원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봤자 깨어 있는 당직 의사인 하야미즈와 당직 간호사 두 명. 나머지는 모두 잠들어 있는 환자들이다. 하야미즈는 아르바이트를 했을 뿐 잘 알지 못하는 병원에서 몇 안 되는 사람들과 생존해야 한다는 본능과 잠들어 있는 환자들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을 안고 범인과 대치하거나 범인을 피해 도망다닌다. 그 과정에서 병원에 있지 않아야 할 인물이 나타나기도 하고, 하야미즈가 뜻밖의 인물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면서 이야기의 긴장은 점점 증폭된다. 


범인이 하필 다도코로 병원을 인질극의 무대로 선택한 이유를 추리하던 하야미즈는 다도코로 병원이 보이는 것과 다른 용도로 쓰이는 공간임을 알게 된다. 하야미즈는 이 병원이 숨기고 있는 비밀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아내려 하지만, 알아내면 알아낼수록 병원 안에 있는 사람들을 믿을 수 없게 되고 그만큼 하야미즈의 안위가 위태로워진다. 폐쇄된 병동 안에서 일어나는 인질극이었던 이야기가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둘러싼 의료 서스펜스로 돌변하는 대목이 이 소설의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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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연대기 클래식 호러
로버트 E. 하워드 외 지음, 정진영 엮고 옮김 / 책세상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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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비물과 친하지 않다. 좀비물의 대명사 격인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도 안 봤고, 천만 관객이 관람한 한국판 좀비 영화 <부산행>도 안 봤다. 굳이 떠올리자면 김중혁의 첫 장편 소설인 <좀비들> 정도. 그런데 최근 <왕좌의 게임>을 보면서 좀비물에 관심이 생겼다. <왕좌의 게임>에 '화이트 워커'로 불리는 일종의 아이스 좀비가 나오는데, 화이트 워커가 나올 때마다 너무 무서워서 이래서 다들 좀비물을 좋아하는구나 싶었다(죽여도 죽지 않고 죽어도 죽을 수 없는 존재라니.. 아아 오싹하다).


<좀비 연대기>는 로버트 어빈 하워드, 존 버거, 가넷 웨스턴 허터, 라프카디오 헌 등 세계적인 작가 12인이 남긴 좀비 소설을 엮은 단편집이다. 이렇게 유명한 작가들이 똑같이 좀비에 관심을 가지고 똑같이 좀비 소설을 썼다니 신기하다. 라프카디오 헌은 일본에 귀화할 만큼 일본의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일본 문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인데, 그런 그가 다름 아닌 좀비에 매료되었던 적이 있다니 묘하다. 


이들이 쓴 작품은 더욱 묘하다. 좀비 소설 하면 평화로운 마을에 갑자기 좀비가 나타나서 이유도 목적도 없이 사람들을 뒤쫓다가 끝내 좀비로 만들어버리는 줄거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줄 알았는데, 이 책에 실린 작품들 속 좀비는 좀비가 된 이유가 있고 죽어도 죽지 못한 채 사람들을 뒤쫓는 이유가 있다. 이를테면 백인 노예주에게 착취당하던 흑인 노예가 백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좀비가 되었다든가, 아버지의 실험 대상으로 이용된 아들이 좀비가 되어 아버지에게 피의 복수를 한다든가. 


어떻게 보면 좀비는 우리네 전설이나 민담에 등장하는 귀신을 닮았다. 증오에 의해 만들어지고 복수를 위해 다시 나타나는 존재가 좀비라면, 우리네 전설이나 민담에도 이승에서 억울하게 죽어서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구천에서 떠도는 원혼이나 귀신이 많이 나온다. 이를테면 <장화홍련전>의 장화와 홍련이라든가. 이 책을 통해 좀비의 원형과 좀비 이야기의 다양한 버전을 알고 나니 좀비가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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