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의 거짓말 - 여성은 정말 한 달에 한 번 바보가 되는가
로빈 스타인 델루카 지음, 황금진 옮김, 정희진 해제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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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평등에 찬성하는 사람 중에도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는 존재하며, 이로 인한 차별은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미국의 심리학 박사 로빈 스타인 델루카의 책 <호르몬의 거짓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여성의 부정적인 감정을 전부 호르몬 탓으로 돌려버리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관행인지를 지적하며 이러한 행태를 근절하자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예가 PMS(월경전증후군)이다. 많은 여성들이 생리할 때가 되면 짜증, 두통, 흉통, 복부 팽만감, 스트레스 및 긴장, 피로, 우울감, 요통, 부종 등 다양한 신체적, 정서적 증상들을 겪는다. 저자가 이러한 증상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러한 증상들을 호르몬 때문에 생기는 질병 내지는 정신 질환처럼 다루는 것이다. 임신, 출산이 질병이 아닌 것처럼 생리도 질병이 아니다. 생리 전 또는 생리 중에 신체적, 정신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면 호르몬 탓으로 돌리고 생리통 약을 먹을 게 아니라 병원에 가서 근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사와 약사는 생리 전 또는 생리 중의 여성이 겪는 증상들을 생리전 증후군 또는 생리통으로 일축하고 심각하게 들여다보지 않는다.


저자는 이러한 관행이 이어지는 이유 중 하나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약회사는 건강한 여성에게 매일 약을 먹어야 한다는 확신을 심어줌으로써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둔다. 매일 복용해야 하는 호르몬을 처방하면 여성 건강을 모니터 해야 한다며 자주 내원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들도 금전적 이익을 챙길 수 있다. 심리학자도 해당 환자에게 정식 진단을 내리면 치료에 대해서 보험 급여를 받는다. 또 남편에게는 부인의 분노를 농담으로 얼버무릴 수단이, 아내에게는 이렇게 살아선 안 될 것 같을 때 원망할 거리가 생긴다. 정치가들과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전통적 성 역할과 그에 따른 제약을 촉진할 동력이 생긴다." (30쪽)


여성 역시 생리전증후군으로 얻는 이득이 있다는 지적이 흥미롭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사회에서 분노를 표현하거나 싸움을 걸기가 쉽지 않다. 분노를 표현하거나 싸움을 하는 건 '여자 답지 못한' 행동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리 때가 되면 생리를 핑계로 분노를 표출하거나 싸움을 걸 수 있다. 만약 여성들이 평소에 더욱 자주 분노를 표출하고 짜증을 내고 싸움을 하면서 산다면 생리 때가 되었다고 특별히 감정이 격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밖에도 임신, 출산, 완경 등 여성의 생식을 질병으로 환원하는 사회에 철퇴를 내리치는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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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3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읽거나 말거나 - 쉼보르스카 서평집 봄날의책 세계산문선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봄날의책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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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시인'으로 불리는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서평집이다. 시인이니 시집으로 먼저 만나야 할 텐데, 시심이 부족한 나는 왠지 모르게 겁이 나 시집보다 서평집으로 먼저 그를 만났다. 부디 용서를.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가리켜 '비필독도서 칼럼(집)'이라고 부른다. 모두가 이건 꼭 읽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책이 아니라, 누군가 열심히 쓰고 정성을 다해 만들었지만 그에 합당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서가에서 밀려난 책들만 골라 읽었다는 뜻이리라. 그래서일까. 이 책에 나온 책 중에는 내가 읽은 책보다 읽지 못한 책이 압도적으로 더 많다. 책의 제목은 물론 작가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책도 많다. 작가가 폴란드인이라서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래서, 라고 하자니 변명 같지만, 서평집임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주목한 책보다는 그 책에 대한 저자의 평가에 주목하며 읽었다.


저자가 읽은 책 중에는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춘향전도 있다. 정확히는 할리나 오가렉 최가 옮긴 <열녀 중의 열녀 춘향 이야기>라는 책이다. 폴란드 출신 시인의 눈에는 춘향전의 세계가 어떻게 보였을까. 저자는 변 사또에게 온갖 고초를 당한 춘향이 종국에는 몽룡을 다시 만나 '해피엔딩'을 맞은 것으로 나오지만, 고초를 당할 때 쇠가 박힌 대나무 몽둥이에 맞아 으깨진 두 발이 완벽하게 나았는지에 관한 언급은 없다고 말한다. 모든 이야기가 현실을 반영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판타지가 너무 심할 경우 현실은 보이지 않거나 왜곡되는 폐해가 있다. 삼십 년 넘게 춘향전을 알았지만 이런 해석은 처음이라 신선했고 유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에치스와프 예지 퀸스틀러의 <한자>라는 책에 대한 감상도 흥미로웠다. 폴란드인인 저자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한자를 전혀 몰랐다. 아마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도 한자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자가 얼마나 "여성에 대한 적대감"이 반영되어 있는 글자인지는 안다. '싸움', '배반' 등 나쁜 뜻을 지닌 글자에는 어김없이 여자를 뜻하는 글자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나관중의 <삼국지>를 여러 번 읽으려고 시도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시아 사람들도 읽기 어려워하는 <삼국지>를 유럽 사람인 저자가 읽으려고 했다는 것에 우선 놀랐고, <삼국지>의 방대한 분량과 엄청난 등장인물 수, 비슷한 전투 장면의 반복 같은 장애물이 가로막혀 결국 다 읽지 못했다는 것에 위로받았다. (한국인인 내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이나 헤로도토스의 <역사> 같은 책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것과 비슷하달까 ^^;;) 이 밖에도 흥미로운 글이 많이 있다. 다음에는 시집으로 만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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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외국어 학습기 - 읽기와 번역을 위한 한문, 중국어, 일본어 공부
김태완 지음 / 메멘토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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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 많은 편은 아닌데 공부에는 욕심이 많다. 돈이나 물건은 내 것이 되었다가도 언젠가는 그 가치가 줄거나 사라지지만 공부는 한 번 내 것으로 만들면 영영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어서이다. 특히 외국어 공부에 욕심이 많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러 나라의 언어를 배우려고 노력하고, 되든 안 되든 꾸준하게 연습하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말을 비롯해 중국어, 일본어, 영어, 불어, 독일어 등 6개 국어에 능통한 외국어 능력자다. 저자가 처음부터 외국어에 능통했던 건 아니다. 경북 봉화 출신인 저자는 원래 동양 철학을 공부한 학자다. 동양 철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문을 익혔고, 한문을 잘 아니 중국어와 일본어 공부가 수월했다. 동양 철학도 인문학이다. 인문학자라면 모름지기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배울 수밖에. 영어는 세계 공용어이니 필수로 배웠다. 단순히 어학만 배운 게 아니라 번역도 공부했다. 수징난의 <주자평전>으로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 수상도 했다. 저자가 6개 국어를 마스터한 비결은 무엇일까.


저자는 '기계적 훈련'만이 왕도라고 말한다. 저자는 일본어를 배울 때 수업이 끝나면 무조건 그날 배운 책의 본문을 열 번씩 썼다. 내용을 암기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무조건 썼다. 그렇게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본어의 문형에 익숙해졌고 어떤 단어들은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외워졌다. 암기는 단어로 외우는 것보다 문장으로 외우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한 가지 언어를 배우면 그전에 배운 언어를 잊어버리지는 않을까. 저자 역시 이런 걱정이 들어서 두 가지 언어를 동시에 배우는 '교차 학습'을 했다. 예를 들어 일본어를 6개월 공부한 뒤 중국어를 공부할 때 한국어로 배우지 않고 일본어로 배우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하면 한 번에 두 가지 언어를 배울 수 있어서 일석이조다. 이때 주의할 점은 친연성이 큰 언어끼리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친연성이 큰 일본어와 중국어,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함께 배우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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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사연들 - 내가 모르는 단어는 내가 모르는 세계다
백우진 지음 / 웨일북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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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밀다'라고 할 때의 '때'는 영어로 어떻게 말할까. 국방색은 언제부터 카키색을 뜻하는 말로 쓰였을까. 윷놀이의 '도개걸윷모'의 '도'가 뜻하는 동물은 무엇일까. 20여 년 동안 활자 매체에서 기사를 썼고 요즘은 글쓰기 강사로 일하는 작가 백우진의 책 <단어의 사연들>에 그 답이 나온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말 단어의 사연들을 하나씩 하나씩 재미나게 소개한다. "외국어를 모르는 자는 모국어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독일의 문호 괴테가 남긴 말이다. 실제로 외국어를 배우다 보면 외국어에는 없고 모국어에는 없는 표현, 반대로 모국어에는 없고 외국어에만 있는 표현을 알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때'다. 영미권 사람들에게는 때를 미는 문화가 없다. 그러니 때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 군복의 색을 뜻하는 국방색이라는 말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사용되었다. 나라마다 국방색이 있지만, 국방색은 나라마다 다르다. 적도에 가까울수록 청색이 진하고 적도에서 멀수록 갈색이 진하다.


'아재개그'라고도 불리는 말장난은 사실 인류가 언어를 구사한 이래 꾸준히 해온 언어 관습이다. 심지어 성경에도 말장난이 나온다. 마태복음 16장에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라는 말씀이 나온다. 목사님이 이 구절에서 영감을 얻으셨는지, 교회 이름이 '반석 교회'인 경우도 엄청 많다. 그런데 사실 이 문장은 말장난이다. 베드로(Peter)는 바위를 뜻하는 그리스어 'petros'에서 나온 말이다. petros에서 생겨난 다른 단어로는 'petroleum', 석유가 있다. 다시 말해, 베드로가 원래 바위라는 뜻이니 바위 위에 교회를 짓는다는 말이다.


'도개걸윷모'에서 '도'가 뜻하는 동물은 바로 돼지다. 돼지의 옛 이름은 '돝(돋)'이다. 돼지가 도토리를 잘 먹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슴도치의 '도치'도 돼지의 옛 이름 중 하나다. 돌고래를 한자어로는 '해돈', '해저'라고 한다. '바다돼지', '물돼지'라는 뜻이다. 버스(bus)는 옴니버스(omnibus)에서 앞을 떼 만든 단어다. 자동차가 올라가는 경사면이 가파를 때 '고바위가 심하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일본어 '고바이'를 오용한 것이다.


'오줌을 눈다', '똥을 눈다'라는 말과 '오줌을 싸다', '똥을 싸다'라는 말은 어떻게 다를까. '누다'는 배설물을 몸 밖으로 내보낸다는 뜻이고 '싸다'는 배설물을 참지 못하고 내놓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오줌싸개'라는 말은 있어도 '오줌누개'라는 말은 없다. 이 밖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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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연습 - 부서진 심장과 고통과 상처와 당신에 관한 에세이
레슬리 제이미슨 지음, 오숙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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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레슬리 제이미슨은 작가가 되기 전에 '의료 배우'로 일한 적이 있다. 의료 배우란 의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에서 환자 역할을 맡아 어떤 질병의 표준 증상들을 연기하는 배우를 일컫는다. 똑같은 질병, 똑같은 환자인데 어떤 학생은 사무적인 어투로 형식적인 질문만 하고 끝낸 반면, 어떤 학생은 꼬치꼬치 캐물어 환자의 부모가 어떤 약을 복용했고 무슨 질병 또는 사고로 돌아가셨는지까지 알아냈다. 저자는 그 차이가 '공감'이라고 생각했다. "공감은 그저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답을 하게끔 질문하는 것이다." (20쪽)


이 책에는 저자가 작가로 유명해지기 전에 쓴 11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우선 소재가 다양하다. 의료 배우로 일한 경험, 낙태 경험, 이상한 모겔론스 병 취재, 니카라과 거주, 멕시코와 볼리비아 여행, LA 갱 투어, 울트라마라톤 취재, 교도소에 갇힌 수감자 면회, 국가에 착취당하고 버려진 지역 답사, 잘못된 재판으로 억울하게 옥살이한 소년들 등 저자의 직접 체험부터 간접 체험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알코올 중독, 섭식 장애, 자해벽 등 과거에 겪은 증상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글은 <여성 고통의 대통일 이론>이라는 글이다. 시, 소설, 미술, 영화, 뮤지컬 등 그 어떤 장르를 봐도 고통받는 여성의 이미지는 고통받는 남성의 이미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고통을 당하는 방식도 자연적으로 병들고 아픈 경우부터 타인(주로 남자)에 의해 상처 입고, 피 흘리고, 목 졸리고, 벗겨지고, 강간당하고, 죽임 당하는 경우까지 다양하다. 저자는 이러한 이미지 또는 스토리텔링이 "고난을 여성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여성 구조의 한 요소로 전환시킬 위험이 있다."라고 경고한다. (308쪽)


"여성이란 고통을 필요로 한다"라는 잘못된 인식은 급기야 여성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학자들과 연구자들이 남자의 고통은 심각하게 받아들인 반면, 여자의 고통은 '심인성', '스트레스', '히스테리' 같은 단어로 일축하며 무시하고 간과해 왔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 결과 밝혀졌다. 심지어는 여성들 자신도 극심한 통증을 겪으면서 이건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호르몬의 작용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들 대부분은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 통증이 약할 때 병원을 찾았다가 의사한테 '스트레스', '호르몬' 같은 말을 듣고 병원 출입을 안 하게 된 것이리라.


저자의 경우에는 그 대상이 남자친구였다. 저자는 한때 여러 사고를 당해 몸이 많이 아팠다. 그때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고통을 호소하면 남자친구는 '부상병동'이라고 놀리며 '아픔을 연기'한다고 말했다. 당시 저자는 남자친구의 말대로 자신이 고통을 과장해 연기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자해를 할 때도 '상처 어필'을 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지금은 당시 남자친구가 여성의 고통에 공감할 줄 모르는 - 보통의 남자들과 다르지 않은 - 사람이라는 걸 안다. "연기된 고통 역시 고통이다."라는 친구의 말을 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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