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장의 살인 시인장의 살인
이마무라 마사히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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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인가 읽기에 도전했다가 두 번 다 포기한 책이다. 다시 읽는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얼마 전 듀나 님 책에서 이 책에 대한 추천사를 읽고 다시 읽기에 도전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완독하리라 다짐했고 결국 완독해냈다.


이야기는 대학에서 '미스터리 애호회' 회원으로 활동 중인 하무라와 아케치가 '영화 연구부'의 여름 합숙에 초대되면서 시작된다. 인적이 드문 호수 옆 대저택에서 묵게 된 이들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근처 야산에서 담력 시험을 하다가 갑자기 밀려든 좀비들을 피해 대저택에 피신하게 된다. 대저택의 사방이 좀비들에 의해 막힌 완벽한 밀실 상황. 하룻밤이 지날 때마다 부원이 한 명씩 참혹하게 살해당하는 연쇄 살인 사건까지 더해지면서 대저택 안의 공포가 극도에 달한다.


평론가들과 미스터리 장르 팬들이 이 소설을 극찬한 이유는 알 것 같다. 미스터리 장르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밀실 트릭과 요즘 유행하는 좀비물을 결합했다는 점이 신선하고, 통신 수단 및 전자 기기의 발달로 인해 더 이상 밀실다운 밀실이 존재하기 힘든 시대에 새로운 유형의 밀실 미스터리를 창조해냈다는 점이 눈길을 잡아끌었으리라.


하지만 작품 전반에 만연해 있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시선과 급기야 마지막에 성폭행 가해자를 두둔하고 범죄를 합리화하는 대목을 보면서 또다시 이 작품을 읽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품의 재미도 중요하지만 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 또한 중요하다. 아무리 재미있는 작품이라도(사실 그렇게 재미있지도 않았다) 그 작품이 견지하는 관점이나 옹호하는 주장이 올바르지 않다면 과연 그 작품을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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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여행, 바람이 부는 순간 - 퇴직금으로 세계 배낭여행을 한다는 것
이동호 지음 / 세나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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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 번은 세계 여행을 해보고 싶다.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언제 떠날지 생각만 하지 말고 그냥 한 번 떠나보라고 등을 밀어주는 책을 만났다. 이동호의 책 <청춘의 여행, 바람이 부는 순간>이다.


저자는 27세 때 공군 중사가 되었다. 그 후로 10년 동안 직업군인으로 열심히 살았다. 순조롭게 승진을 했고, 집도 사고 차도 샀다. 안정된 직장도 있고 사랑하는 여자친구도 있었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0년을 채우고 전역을 택했다. 아버지는 그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두느냐며 의절을 선언했다. 저자 역시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앞으로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할지, 보험금을 어떻게 낼지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잠을 잊은 적도 많았다. 그래서 한 달 만에 집을 떠났다. 기왕 일을 벌였으니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는 심산이었다.


2013년 3월의 마지막 날. 저자는 동해항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러시아에서 출발해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로 건너갈 생각이었다. 말로만 듣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친구가 있는 하바롭스크로 갔다. 기차 안에서 북한 말투를 쓰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북한 사람인가 싶어 경계했는데 알고 보니 소련에서 자라 현재는 한국 국적을 얻어 한국에서 생활하고 계신 분이었다. 할아버지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니 그동안 소설이나 영화로 접했던 한국 근현대사가 생생하게 다가왔다. 떠나지 않았다면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있었을까.


이후 저자는 몽골, 중국을 거쳐 캄보디아, 태국, 인도에도 가보고, 터키, 그리스를 거쳐 스위스, 런던, 이집트, 수단, 에티오피아에도 가봤다. 인도에선 물 한 병 사 먹고 버스 한 번 타는 것도 큰일이었다. 덕분에 설사병에 걸릴 염려 없이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것, 제시간에 버스가 온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캄보디아에선 주급 15달러를 받으며 1인당 12달러씩 내고 먹는 뷔페에서 일하는 남자를 만났다. 관광객들이 내는 돈은 대체 누구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걸까. 나의 여행이 이 나라 노동자들의 노동력 착취에 일조하는 건 아닐까.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왜 살아야 하는지 몰랐다. 길 위에서 죽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유서를 남기고 떠나는 불효까지 저질렀다. 그랬던 저자가 길 위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 내가 뭐라고, 먹을 것이 생기면 가장 좋은 부분을 나누어주는 사람들, 쉬거나 잘 때 가장 좋은 자리를 내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좀 더 살아봐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내 것만 챙기며 살지 않고 남의 것까지 살피는 사람, 남의 것이 부족해 보이면 내 것을 기꺼이 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저자는 현재 귀국 후 충남 홍성에서 새로운 삶을 꾸리고 있다. 다음번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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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세계사 - 세상을 뒤흔든 역사 속 28가지 스캔들 테마로 읽는 역사 3
그레이엄 도널드 지음, 이영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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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배운 역사는 전부 사실일까. 어쩌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하게 하는 책을 만났다. 그레이엄 도널드의 책 <미스터리 세계사>이다. 이 책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이 허구 또는 거짓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28가지 이야기가 실려 있다.


프랑스의 국민 영웅 잔 다르크는 실제로 존재한 인물일까. 이 책에 따르면 잔 다르크가 실제로 존재한 인물인 건 맞지만 구체적인 생애는 우리가 알고 있는 국민 영웅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잔 다르크는 1466년 동레미에서 태어났다. 동레미는 현재 프랑스 로렌 지방에 속해 있지만 1766년까지는 프랑스에 속하지 않은 독립 공국이었다. 잔 다르크가 성심이 매우 깊은 소녀였고 성녀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남성의 복장을 하고 전쟁에 나가 싸웠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했다는 설도 구체적인 근거가 없다. 저자는 잔 다르크의 이야기가 19세기에 나폴레옹이 국민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조작, 날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맞을까. 이 책에 따르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한참 전에 러시아 사람들이 알래스카를 통해 아메리카 대륙을 오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홋카이도의 토착 일본인인 아이누족도 후보가 될 만하다. 아메리카라는 이름은 피렌체의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에게서 따왔다는 설이 널리 퍼져 있지만, 저자는 브리스틀 출신 상인 로버트 아메리크에게서 따왔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주장한다. 지명을 정할 때는 탐험가나 후원자의 이름이 아닌 성에서 따오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드레퓌스 사건이 '투르 드 프랑스'의 기원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드레퓌스 사건은 1894년 프랑스 군의 포병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독일 간첩으로 몰려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고 옥살이를 한 사건을 일컫는다. 이 사건으로 프랑스가 드레퓌스파와 반드레퓌스파로 나뉘어 첨예한 대립을 벌였는데, 급기야 드레퓌스파와 반드레퓌스가 자전거 시합을 벌이기로 했고 그 시합이 지금의 '투르 드 프랑스'의 시초가 되었다는 것이다. 정치적 승부를 자전거 시합으로 판가름하려 했다니 기발하다고 해야 할지 엉뚱하다고 해야 할지. 이 밖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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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자들 - 한 난민 소년의 희망 대장정 미래그래픽노블 3
오언 콜퍼.앤드류 던킨 지음, 조반니 리가노 그림, 민지현 옮김 / 밝은미래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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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아마존 올해의 책, 2019 그래픽 문학상 최우수상에 빛나는 그래픽 노블 <불법자들>은 한국인들에게 아직은 낯선 난민 문제의 실체를 보여주는 책이다. 주인공 이보는 이제 겨우 열두 살인 소년이다. 아버지의 행방은 알려진 바 없고 어머니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삼 남매 중 맏이인 누나는 유럽으로 떠났고 손위 형마저 누나를 찾겠다고 떠났다. 이제 곁에 남은 건 술독에 빠진 삼촌뿐. 이대로는 살 길이 막막하다고 판단한 이보는 삼촌 몰래 집을 떠난다. 형과 누나를 찾으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희망을 품고. 


이보는 비록 집에서 돈 한 푼 챙겨 나오지 못했지만 운 좋게 버스를 얻어 타고 노숙을 하고 차를 얻어 타며 조금씩 조금씩 유럽 땅에 가까워진다. 그러다 마침내 먼저 떠난 형을 만나게 되고, 형과 함께 이탈리아로 향하는 배를 얻어 타게 된다. 말이 배지 실상은 강에서 래프팅을 할 때나 쓸 법한 고무보트다. 이런 보트를 타고 험난한 파도를 헤쳐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그만한 배조차 못 타는 사람이 많았기에 이보는 서둘러 배에 오른다. 그 배 위에서 무엇을 잃게 될지는 전혀 모른 채.


이보의 이야기는 작가가 지어낸 허구이지만 대체로 사실에 근거한다. 매년 이보처럼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본국에서 살 수 없게 된 수천 명의 성인과 아이들이 목숨을 걸고 유럽으로 향한다. 정식으로 체류 허가를 받기가 극도로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은 허가 없이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밀수업자에게 막대한 돈을 뜯기고, '죽음의 행로'로 불리는 바닷길을 건너다 목숨을 잃는다. 여성의 경우, 남성에게 강간을 당하거나 출산을 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일도 많다.


난민 문제가 심각한 유럽은 물론, 아직은 난민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한국에도 난민 또는 불법 이민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저자는 이런 사람들에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어떤 사람도 태어날 때 스스로 부모를 결정할 수 없는 것처럼 국적 또한 결정할 수 없다. 자신이 원해서 그 나라에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그 나라에서 벌어진 전쟁이나 빈곤 문제 때문에 생사를 위협받는다는 것은 불평 부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돌이켜보면 우리 역사에도 수많은 난민이 있었다. 삼국 시대에는 전쟁으로 나라가 멸망해 더는 한반도에 살 수 없게 된 고구려 유민, 백제 유민들이 가까운 만주, 중국이나 일본으로 건너가 살았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의 폭정을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만주, 연해주로 떠났다가 중앙아시아로 밀려나기도 했고, 이승만 정부 때는 4.3 사건으로 더는 제주도에서 살 수 없게 된 사람들이 배를 타고 일본으로 떠났다. 이 밖에도 내가 잘 모르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난민, 이민의 역사가 많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좀 더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관대한 생각을 품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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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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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동안 미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책이 마침내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책의 제목은 <배움의 발견>. 원제는 <Educated>이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아마존 올해의 책 1위,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등에 올랐고,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에 90주 동안 머무르며 최장기 베스트셀러 기록을 세웠다. 빌 게이츠와 버락 오바마가 올해의 책으로 이 책을 선정했고, 이 책을 쓴 타라 웨스트오버는 2019년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들었다. 어떤 책이기에 미국이 이렇게 들썩일까 궁금했는데, 읽어보니 그 이유를 확실히 알겠다. 


이 책을 쓴 타라 웨스트오버는 1986년 미국 아이다호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극단적인 모르몬교 신자인 부모는 성서 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았다. 그들은 공교육을 불신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고, 현대 의학을 불신해 아이들이 아프거나 다쳐도 병원에 보내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정부를 불신해 일곱 아이 중 네 명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저자는 아홉 살이 될 때까지 미국의 공공기관이나 학교, 병원 등 그 어디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사람으로 지내야 했다.


그런 저자의 삶이 극적으로 바뀐 건 열일곱 살 때의 일이다. 저자는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학교에 가본 적이 없었다. 저자의 부모는 자식들에게 학교에 가면 부정한 사상을 주입받고 정부의 노예가 된다고 가르쳤다. 저자는 부모의 말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친척이나 이웃이 저자의 부모가 틀리다고 해도 믿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저자의 오빠 중 하나가 집을 떠나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학에 진학했다. 그 오빠가 집으로 찾아와 저자에게 검정고시를 봐서 대학에 가라고 했다. 저자가 대학에 가고 싶다고 하자 저자의 아버지는 "여자에겐 교육이 필요 없다"라며 반대했다. 저자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열심히 공부해서 검정고시를 보고 브리검영 대학에 진학했다.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저자는 부모가 옳고 세상이 틀리다고 생각했다. 저자의 아버지는 저자가 긴팔 옷의 소매를 걷거나 발목이 보이는 치마를 입어도 '창녀'라고 야단쳤다. 저자의 오빠는 저자가 립밤을 발랐다는 이유로 저자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그런데 대학에 가니 민소매 티셔츠나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애들이 널려 있었다. 그때까지 아버지의 가르침을 의심하지 않았던 저자는 주변 여자애들이 전부 '창녀'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여자애들과 한 강의실에서 수업받고 같은 집에서 생활하는 자신이, 부모의 말대로 '미친년'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런 저자의 생각을 크게 바꾼 사건이 있었다. 서양 예술사 강의 시간에 교수님이 시켜서 교과서를 읽는데 모르는 단어가 있었다. 이 단어를 모른다고 말하는 순간 강의실이 잠잠해지고 같이 수업을 듣던 아이가 저자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 단어는 '홀로코스트'였다. 저자는 그때까지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들어본 적이 있다 해도 그것이 얼마나 참혹한 일이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홀로코스트뿐만이 아니었다. 저자의 집에선 '깜둥이' 같은 욕이 일상적으로 쓰였다. 저자의 아버지는 노예제도가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지 자식들에게 가르치지 않았다. 오히려 백인 노예주들이 흑인 노예들을 책임지느라 더 힘들게 살았다고 틀린 지식을 가르쳤다.


페미니즘의 정확한 뜻도 저자는 대학에서 처음 배웠다. 저자의 집에서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욕이었다. 그도 그럴 게 저자의 부모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며, 열등한 여성이 우월한 남성의 지배를 받는 건 당연하다고 믿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런 부모의 가르침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오빠들이 여동생인 자신은 물론 여자친구와 아내에게도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저자는 일부다처제를 용인하는 모르몬교의 방침에도 의문을 품고 있었다. 집을 뛰쳐 나와 대학 교육을 받기 전까지는 성서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이 믿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자기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던 지난날이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이후 저자는 브리검영 대학을 최우수 학부생상을 받으며 졸업했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하버드대학교에서 방문 연구원으로 지냈다. 다시 케임브리지 대학교로 돌아가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열일곱 살 때까지 학교 문턱도 넘어본 적 없는 사람이 10년 만에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이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식이 이만한 일을 해냈을 때 응당 칭찬하고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부모는 저자의 성취를 칭찬하거나 자랑스러워 하기는커녕 저자가 잘못된 사상에 물들어 거짓말로 자신들을 음해하고 있다며 비난하고 있다. 저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학력을 얻었고 이 책으로 엄청난 부와 명예까지 얻었으나 정작 부모와의 관계는 더 악화되고 가족과도 멀어졌다. 저자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저자의 사례는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특이한 것은 아니다.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한국 여성들은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고 어릴 때부터 노동을 하다가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집안에서 정해주는 남자와 결혼해 살림을 차리고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한 줄 알고 살았다. 만약 그들이 이 책의 저자처럼 기적적으로 교육의 수혜를 받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 기회를 얻었다면 이 책 같은 책이 수백, 수천 권은 쓰였으리라. 또한 저자의 부모는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나 복지 혜택을 '빨갱이'라며 비난했지만, 저자는 그 '빨갱이'들이 제공하는 학자금 융자와 장학금 덕분에 열악한 상황을 이겨내고 지금의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여전히 더 많은 공공 서비스와 복지 혜택이 필요한 이유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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