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필링스 - 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 앳(at) 시리즈 1
캐시 박 홍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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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이틀 앞두고 그동안 밀린 리뷰를 쓰기로 한다. <마이너 필링스>는 2021년에 나온 책이고,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고, 책 고르는 안목을 믿는 분들에게 이 책 좋다는 말을 많이 듣기도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제야 읽었다. 읽어보니 과연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책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과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책은 아무리 늦어도 읽어볼 가치가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저자 캐시 박 홍은 197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한국인 이민자 부부의 딸로 태어난 한국계 이민 2세대 작가다. 최근에 읽은 에드워드 리(이균) 셰프의 책 <버터밀크 그래피티>에도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같은 이민자 가족 안에서도 1세대와 2세대의 경험이 다르고, 2세대와 3세대의 경험이 다르다고 한다. 1세대는 이민 간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후천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자신의 언어와 문화로 느끼지 못하며 차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반면, 2세대는 그 나라에서 태어나 그 나라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함에도 불구하고 피부색이 다르거나 약간의 문화 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는 데에서 극복하기 어려운 무력감, 좌절감을 느낀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국에서 아시아인으로 살면서 느낀 크고 작은 차별에 대해 소개한다. 가령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인은 머리가 좋고 근면 성실하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이는 결코 칭찬이 아니다. '아시아인은 어떠하다'는 식의 '딱지'는 '흑인은 어떠하다', '백인은 어떠하다'는 식의 평가와 마찬가지로 인종 차별적이며, 그렇게 '우수하고' '유능한' 아시아인을 정부나 기업의 요직에 앉히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에서 기만적이기까지 하다. 아시아인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아시아인들이 스스로를 '볶아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가령 아시아인은 수학을 잘하고 명문대 진학률이 높다는 이미지 때문에 수학을 못하거나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한 아시아인들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차별은 어디에나 있고 범죄에 대해서도 그렇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과 같은 한국계 미국 이민 2세대 작가이자 시인인 차학경이 1982년 자신의 첫 저서 <딕테>를 출간한 지 3일 후 뉴욕의 한 건물 지하실에서 강간, 살해 당한 사건을 소개한다. 당시 경찰은 가족의 신고를 받고도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는데, 만약 백인 여성이 피해자였다고 해도 경찰이 같은 반응을 보였을까. 아니 애초에 차학경이 백인 남성, 아니 남성이기만 했어도 이런 일을 당했을까. 이 사건을 보면서  그 나라의 국적을 취득하고, 그 나라의 언어를 능통하게 구사하고, 남부럽지 않은 학업적, 직업적 성취를 해내도 이러한 폭력 앞에선 무력하다는 것에 저자를 비롯한 수많은 이민 2세대 여성들이 절망감을 느낀 것이 이해가 된다.


한 국가, 한 사회에서 약자, 소수자로 산다는 것은 강자, 다수자가 독점한 권리를 공유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이 행사하는 폭력에 그대로 노출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도 한없이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것이 내가 선택하지 않았고 바꿀 수도 없는 피부색이나 성별 같은 요인 때문이라면 더욱 괴롭다. 고통 받는 사람이 많은 나라가 과연 잘 사는 나라일까.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 사회를 과연 좋은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한국이 점점 더 미국을 닮아간다고 느끼는 시점에 이 책을 읽어보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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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한강을 읽는 한 해 (주제 2 : 인간 삶의 연약함) - 전3권 - 바람이 분다, 가라 + 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 내 여자의 열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을 읽는 한 해 2
한강 지음 / 알라딘 이벤트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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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인 '나'는 마감을 앞둔 상황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일한 혈육인 이모의 입원 소식을 듣고 K시로 향한다. 문병을 마치고 지친 몸과 마음으로 택시 정류장에 들어선 '나'는 우연히 근처에서 개최 중인 전시회의 포스터를 보게 되고 홀린 듯 그곳으로 향한다. 전시장에서 '나'는 인체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인체를 직접 석고로 뜨는 '라이프캐스팅' 기법으로 만든 장운형의 작품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로부터 일 년 후 거리에서, 또 다시 일 년 후 공연장에서 장운형의 작품을 마주친 '나'는 그에게 직접 이런 작품 활동을 하는 이유를 묻는다.


2024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두 번째 장편 소설 <그대의 차가운 손>은 액자식 구성으로 되어 있다. 장운형과의 첫 만남 이후 집필 활동에 몰두해 있던 '나'는 장운형의 여동생 혜숙으로부터 장운형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혜숙은 '나'에게 장운형이 남긴 스케치북 한 권을 전해주고, '나'는 그 스케치북을 통해 장운형의 지난 생애를 알게 된다. 


K시의 유복한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장운형은 아버지의 거짓과 어머니의 위선을 보며 사람들이 진실 또는 선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의심부터 하는 성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한 성정은 그를 거짓이나 위선으로부터 지켜준 한편으로 그 어떤 진실과 선도 믿지 못하는 고단하고 쓸쓸한 삶으로 내몰았다. 결국 그는 자신의 삶의 한가운데가 텅 비어 있다는 감각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이러한 감각을 표현함으로써 떨쳐내기 위해 조각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라이프캐스팅 기법은 인체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석고로 뜨기 때문에 인체를 실제에 가깝게 표현하지만 모델의 신체가 빠져나간 내부가 텅 비어 있다는 점에서 내부가 들어차 있는 실제 인체와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외삼촌과 어머니, 아버지 등 가까운 혈육의 죽음을 잇따라 겪으며 어릴 때부터 삶의 유한함을 인식하고 있었던 장운형은 자신이 만든 조각 내부의 동공(洞空)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느꼈다. 몸이라는 껍데기를 제외하고 인간이 자신의 고유함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은 얼마나 빈약한가. 그런 껍데기에 의지하며 사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허망한가.


'나'가 고작 몇 번의 마주침과 만남으로 장운형의 그러한 속내를 간파한 것은, 그가 예리한 관찰력을 필요로 하는 직업(소설가)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직전에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과 어머니처럼 따르는 이모의 입원이라는 슬픈 일을 겪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나'가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라서 다른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한 장운형의 슬픔을 알아챌 수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나'와 장운형에게 슬픔은 극복하거나 외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존재와 생의 의미를 반추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영혼의 쌍둥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닮았다.


실종 이전에 장운형은 L과 E의 신체에 매혹되었지만 그들의 영혼에는 교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매혹의 증거인 작품을 통해 '나'를 만날 수 있었고 '나'는 오랫동안 장운형을 잊지 못한다. 나를 비롯한 모든 존재가 언젠가 썩어서 없어질 껍데기에 불과할지라도 그 껍데기로 누군가를 매혹시키고 누군가에게 기억될 수 있다면, 나의 껍데기만 보는 것이 아니라 껍데기 아래의 텅 빈 공간까지 알아채줄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삶은 기꺼이 살아볼 만한 것이 아닐까. 그러니 어느 순간에도 절망보다는 희망을 택하라고 말 걸어주는 듯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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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을 처방해드립니다
루스 윌슨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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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책 읽기>. 취업 문제로 고민하던 시절에 우연히 읽고 삶의 경로를 전환하게 만든(제목 그대로 내 '삶을 바꾼') 책의 제목이다. 여기, 책으로 삶을 바꾼 또 다른 사람이 있다. 이름은 루스 윌슨. 1932년 오스트레일리아 그리피스 출신인 그는 예순 살 생일 무렵 그전까지 상상도 못한 신체적,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 일을 계기로 삶의 경로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 그는 예전 같은 애정은 식은 지 오래인 남편과 졸혼하고 시골의 작은 집에서 혼자 지내며 책 읽기에 몰두했다. 이때 그가 집어든 책이 마침 제인 오스틴의 책들이었다. 


윌슨은 십 대 시절 <오만과 편견>으로 제인 오스틴 읽기를 시작한 이래 평생 열렬한 제인 오스틴의 독자로 살아왔지만,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온갖 희로애락을 다 경험한 이후에 다시 만난 제인 오스틴은 과거에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기쁨과 감동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는 그렇게 제인 오스틴 읽기로 일종의 '독서 재활'을 하면서 외적인 성장도 이루었다. 여든여덟 살에 시드니 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아흔이 넘은 지금도 독서의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삶을 살고 있다. 그가 육십이라는 나이를 한계로 규정하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즐거움을 포기했다면 자신의 삶에서 이런 장면이 펼쳐질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윌슨이 제인 오스틴 읽기를 통해 얻은 기쁨과 감동은 외적인 성취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인 <오만과 편견>, <노생거 수도원>, <이성과 감성>, <맨스필드 파크>, <에마>, <설득>을 다시 읽으며 각각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자신을 떠올리기도 하고, 그 시절의 감상과 지금의 감상을 비교 대조하기도 한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나오는 매력적인 여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젊은 시절 자신이 동경하거나 추구했던 삶을 다시 떠올리기도 하고, 그들이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지금보다 훨씬 심했던 시대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나름의 행복을 찾은 것처럼 자신도 사회적 편견이나 자기 안의 검열을 무시하고 남은 삶을 나답게 잘 살아보기로 결심하기도 한다.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 <디 아워스>에는 아픈 친구에게 어떤 책을 선물할지 고민하는 인물이 나온다. "그에게 인생 책을 선물하고 싶다. 그가 놓인 위치를 알려주고 그를 양육하고 변화에 대비할 힘을 길러주는 그런 책"이면 좋겠다고. 양육이라는 게 자기 삶을 성찰하고 관계를 탐색하도록 격려한다는 의미라면, 내가 좋은 양육을 받았다고 느끼는 데에는 오스틴 소설의 공이 크다. (30-1쪽)


평생 사랑해온 책을 다시 읽는 행위는 나이가 들어도 처리되지 않은 감정이나 해묵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가령 윌슨은 십 대 시절 <오만과 편견>을 읽으며 열렬한 독서광인 엘리자베스 베넷에게 자신을 겹쳐 보면서 다아시 같은 남자와의 불같은 연애를 꿈꾸었다. 그러나 살아 보니 자신은 베넷이 될 수 없었고 자신이 결혼한 남자 역시 다아시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살아온 삶과 선택한 사랑이 실패인 건 아니다. "소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들은 가능성의 영역이고, 현실의 우리는 우리 나름의 선택을 내리고 이럭저럭 그 선택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407쪽) 이 책을 길잡이 삼아 내년에는, 아니 이제부터(!) 오랫동안 미룬 제인 오스틴 전작 읽기에 도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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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너머 한 시간
헤르만 헤세 지음, 신동화 옮김 / 엘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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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올 한 해도 어떻게든 살아냈다는 뿌듯함과 한 일도 없이 시간만 흐른 것 같다는 아쉬움을 동시에 느낀다. 더 늦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한다는 초조함과 현상 유지도 버겁다는 부담감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즈음, 이 책을 만났다. 독일이 배출한 세계적인 대문호 헤르만 헤세의 첫 산문집 <자정 너머 한 시간>이다.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독일 남부 도시 칼프에서 목사인 아버지와 신학자 가문 출신 어머니 슬하에서 태어났다. 보수적인 기독교 가정에서 엄숙한 생활을 했던 헤세는 문학을 만난 이후 시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학업을 중단했다. 시계 공장과 서점 등에서 일하며 글쓰기를 병행해 1899년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와 첫 산문집 <자정 너머 한 시간>을 발표했다. <자정 너머 한 시간> 출간 당시 헤세는 이제 겨우 이십 대 초반인 무명의 작가였다. 출판사는 육백 부를 찍자고 제안했고, 출간 첫해에 쉰세 부가 팔렸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04년 <페터 카멘친트>가 큰 주목을 받으며 유명 작가가 된 후에야 1쇄를 소진했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이 책을 읽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이는 저자인 헤르만 헤세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1941년 재간에 부쳐 쓴 서문에 따르면, 저자가 보기에 이 책에 실린 산문들은 지나치게 유미주의적인 면이 없지 않다. 나중에 그것을 깨닫고 중쇄 제작을 거부하기도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책을 출간하고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영향력 있는 인물들에게 서평을 받으면서 자신의 글에서 부족한 점, 고쳐야 할 점을 깨달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자신의 출세작인 <페터 카멘친트>와 <수레바퀴 아래서>, <크눌프>, <데미안> 등의 대표작들을 쓸 수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에는 작가 서문과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서문에서 저자는 "<자정 너머 한 시간>의 산문 습작들에서 나는 자신을 위해 예술가의 꿈나라를, 미(美)의 섬을 창조했고, 그 시적 특징은 낮 세계의 풍파와 저속함에서 밤과 꿈과 아름다운 고독으로 물러나는 것이었다."라고 설명한다. 그의 설명대로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요즘 독자들이 산문 또는 에세이 하면 떠올리는 신변잡기적인 글이 아니라, 소설이 되지 못한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단상들이나 은유적이고 암시적인 산문시에 가깝다. <데미안> 같은 성장소설이나 <싯다르타> 같은 구도소설을 기대한 독자라면 이 책을 읽고 조금 당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이 현실에 좌절하고 미래를 비관하는 어둡고 무거운 정서를 품고 있으면서도 현실과는 다른 세계가 세상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지금과는 다른 미래가 언젠가는 펼쳐질 거라고 긍정하는 이유를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토록 꿈을 소중히 여기고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사람이 무한한 비관에 빠져들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기다리는 시점에 이 책을 만난 것이 다행이다.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나는 새사람이 되었고, 나 자신에게는 또 기적이 되었다. 쉬는 동시에 활동하고, 받으면서 베푸는, 나는 재산의 주인이 되었는데, 그중 가장 값진 것을 나는 어쩌면 아직 알지 못한다. (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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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와의 7일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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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소년 쓰키자와 리쿠마는 도서관에서 이상한 체험을 한다. 어떤 여자가 멀리서 작은 공을 굴려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것을 막고, 갑자기 내리는 비 때문에 당황한 리쿠마에게 언제 비가 그칠 테니 그때 도서관을 나서라고 말해준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전직 경찰관인 리쿠마의 아버지가 강가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아버지 이외에 가족이 없는 리쿠마는 혼자서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숨겨온 어떤 비밀을 알게 되고, 그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일전에 도서관에서 만난 이상한 여자와 재회한다. 그 여자의 이름은 우하라 마도카. 평범한 여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인데...


<마녀와의 7일>은 2015년부터 현재까지 총 3권이 출간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라플라스 시리즈' 제3권에 해당한다. 어쩌다 보니 시리즈 1,2권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3권 <마녀와의 7일>부터 읽었는데 이 <마녀와의 7일>이 너무 재미있었다. 일단 도입부가 매우 흥미로웠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시리즈 1,2권을 읽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주인공 우하라 마도카가 가진 능력에 대해 알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주인공이 우하라 마도카인지조차 몰랐다. 사실상 리쿠마와 다르지 않은 상태에서 마도카가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니 그야말로 홀리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 초반에 제시되는 현대 일본 경찰의 모습도 흥미로웠다. 정보 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경찰 수사에 필요한 정보 수집 및 처리는 물론이고 수사 과정 자체에도 인터넷, 모바일, AI 등이 다방면으로 활용되는 것까지는 좋은데, 이 과정에서 인간의 역할이 줄어들어 수많은 경찰이 자리에서 밀려나고 인간 특유의 감이나 지혜 같은 것이 발휘될 여지가 줄어들었다. 이것이 지금 현재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지 아니면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작가가 예상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이 소설에 따르면 경찰과 최신 과학 기술의 만남은 긍정적인 면만큼 부정적인 면도 많은 것 같다.


리쿠마의 서사도 감동적이다.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다가 이번에는 아버지까지 잃은 중학생 소년 리쿠마는 갑자기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아버지의 죽음보다도 당장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지가 걱정이다. 이런 와중에 경찰과는 다른 방식으로 범인을 찾아내 사건을 해결해 주겠다고 나선 우하라 마도카라는 여성을 만나 이런저런 모험을 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며칠 전에 아버지를 여읜 소년이 이런 일들(카지노에 간다든지 여장을 한다든지)을 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지만, 유흥이나 현실 도피 목적이 아니라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을 찾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과정을 통해 리쿠마 자신이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니 불행 중 다행이랄까.


시리즈 1권 <라플라스의 마녀>와 2권 <마력의 태동>에서는 뇌의학을 통해 슈퍼컴퓨터에 상응하는 능력을 가지게 된 우하라 마도카를 통해 의학 또는 과학의 우수성 또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시리즈 3권 <마녀와의 7일>에 이르러서는 의학 또는 과학이 범접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나 잠재력을 보여주는 식으로 입장이 변화한 점도 인상적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 자신이 공학도 출신이기도 한 만큼 과학 지식을 활용하는 범죄 수사물을 다수 발표해 왔는데, 자신의 100번째 작품인 <마녀와의 7일>에 이르러서는 과학의 한계를 역설하니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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