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두 1 - 나는 왜 나일까? 비룡소 그래픽노블
국무영 지음 / 비룡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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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책읽아웃>에서 프랑소와 엄(엄지혜) 님이 추천해 주셔서 읽게 된 책이다. 프엄 님의 소개가 없었다면 이 책의 존재도 몰랐을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인연이 닿지 않을 뻔했던 책들을 발견하게 되고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만나게 되는 일이 참 소중하고 기쁘다. 


<똥두>는 주인공 동두희의 별명이다. 두희는 자신의 별명뿐만 아니라 외모, 성격, 가족 등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름이 안 좋아서, 얼굴이 안 예뻐서, 성격이 괴팍해서, 엄마 아빠가 허구한 날 싸워서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거라고 한탄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남자아이를 만난다. 기동이라는 이름의 그 아이는 두희의 이름이 멋지다고 말한다. 물건을 사고 천 원을 더 거슬러 받아서 괴로워하고, 싸우게 되더라도 할 말은 꼭 하고 넘어가는 성격도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나를 낳아준 엄마 아빠도 좋게 봐주지 않는 나를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 


두희는 기동을 만난 후 처음으로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게 된다. 기동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하룻밤 사이에 성숙할 수는 없는 법이라서, 때때로 미운 감정이 삐죽삐죽 튀어나오고 진심과 다른 행동을 하기도 한다. 나는 왜 이럴까. 이런 나라도 괜찮을까. 가볍게 스치는 바람에도 거세게 흔들리는 두희의 모습이 마치 이 나이 때의 내 모습(사실은 지금도...) 같아서 반가웠다. 두희는 커서 좋은 어른이 되었을 것 같은데, 나는 언제쯤 좋은 어른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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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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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터너라는 소문대로 이 소설을 다 읽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다음 장을 넘기면 이더리움 가격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모르고, 그로 인해 등장인물들의 기분이나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하니 도중에 멈추기가 힘들었다. 어쩌면 이건 가상 화폐를 비롯한 모든 투자의 속성인지도 모른다. 어제는 떨어졌어도 오늘은 오를지 모른다는 기대감, 오늘은 올랐어도 내일은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사람의 정신을 붙들어 매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말로만 들었던 인생역전이 내 인생에도 벌어질 수 있다고, 이건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내 발에만 꼭 맞는 유리구두를 찾는 것도 아니니 더 양심적이고 합리적이지 않느냐고 믿게 하는 것이다. 


책에는 가상화폐가 등장하지만, 현대인들이 중독되어 있는 대상은 이것만이 아니다. 주식, 부동산, 스마트폰, SNS, 마라탕, 커피, 각종 달다구리들까지 - 없으면 못 사는 것, 있어도 또 가지고 싶은 것 모두가 우리의 중독 대상이다. 그렇다면 매도하기로 약속한 고점을 넘기고도 이더리움을 팔지 못하는 은상 언니나, 하루에 커피를 세 잔 이상 마시고도 카페인 부족을 느끼는 나나 별로 다르지 않은 중독자들인 걸까. 대체 무엇이 별 볼일 없는 우리를 별난 중독자들로 만드는 걸까. 만족을 모르는 인간의 욕망? 살아있는 한 벗어날 수 없는 사회 시스템? 용하다는 점쟁이도 모르는 각자의 운명? 머리를 썼더니 커피가 고프다. 달게 읽었지만 뒷맛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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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이 - 무엇으로도 가둘 수 없었던 소녀의 이야기
모드 쥘리앵 지음, 윤진 옮김 / 복복서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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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인간은 없다. 하지만 완벽한 아이를 기대하는 어른은 있다. 나는 못 배웠지만 너는 충분히 가르쳤다. 나는 가난했지만 너는 풍족하게 키웠다. 이런 말들로 아이가 속한 환경에 대해 불만을 가지지 못하게 하고, 아이가 의심하거나 비판하는 것을 원천봉쇄하는 어른들을 불행히도 많이 봐왔고 겪기도 했다. 


모드 쥘리앵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책 <완벽한 아이>에도 그런 부모가 나온다. 1957년생인 저자는 부유한 아버지와 교육학을 전공한 어머니 슬하에서 태어났다. 경제력과 지성을 겸비한 부모와 사랑스럽고 총명한 딸로 이루어진 이 가족은 겉보기엔 화목하고 평안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아버지는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은 광부의 딸을 데려다 자신의 아이를 낳기에 적합한 여성으로 '키웠다'. 그리고 가장 적합한 출산일을 계산해 인위적으로 임신하고 원하는 날짜에 출산하도록 했다. 그렇게 태어난 딸에게 모드라는 이름을 붙여줬고, 공부는 물론 하루 종일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했다. 모드는 허락된 사람 외에는 말 한마디 나눌 수 없었고, 키우는 동물조차 자유롭게 만날 수 없었다. 화장실 가는 시간과 횟수마저 정해져 있었다. 


모드는 오로지 아버지가 바라는 완벽한 아이,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키워졌다. 하지만 모드는 아버지가 바라는 존재가 되지 않기를 택했다. 아버지가 아무리 심하게 감시하고 통제해도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 원하는 게 무엇인지 끊임없이 찾고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모드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모드의 영혼이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건 한참 후의 일이다.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모드는 아버지가 했던 말들과 아버지가 주입한 생각들에 시달렸다. 꿈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나는 이 책에서 모드의 어머니가 신기했다. 모드의 어머니는 모드와 마찬가지로 모드의 아버지에게 구속당하고 고통받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모드의 어머니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고 모드는 벗어났다. 모드의 어머니에게도 분명 달아날 기회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때는 지금보다도 여성이 고등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질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다. 여성에게는 보호자 역할을 할 남성(아버지 혹은 남편, 남자 형제 등)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기도 했다. 아마 모드의 어머니는 아버지/남편 없이 혼자서 살기는 어렵다고, 그러니 괴롭고 힘들어도 집에 남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 같다. 


그러나 모든 일에 대해 그럴 만했다, 다른 수가 없었다는 변명을 댄다면 어떻게 변화가 생길까. 모드가 장래를 정할 때에도 여성에게 허락된 일자리는 결코 충분하지 않았고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속해 있지 않은 여성을 백안시했다. 완벽한 인간이 없듯이 완벽한 기회도 없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할 수 있는 걸 하는 수밖에 없다. 모드의 어머니는 할 수 없어서 하지 않았고, 모드는 할 수 없어도 할 수가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 마침내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것을 해냈다. 


모드의 좋은 점은 모드의 부모가 해준 교육이나 훈육으로부터가 아니라 모드 자신에게서 나왔다. 자기보다 약한 동물들을 보살피는 마음,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감동하는 마음, 좋은 책을 읽으며 공감하는 마음,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는 마음. 이런 마음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오히려 억압하고 통제했는데도) 모드 자신에게 있었고, 모드는 이 마음들을 끝까지 지켰다. 모드는 이미 '완벽한 아이'였다. 아마 우리 모두도 그랬을 것이다. 아직 그 아이가 우리 안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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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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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은 왜 이렇게 재미있을까. <다시, 올리브>는 전작인 <올리브 키터리지>만큼 좋지는 않았지만, <에이미와 이저벨>, <버지스 형제>와 연결되는 이야기들이 실려 있어서 두 작품을 아끼는 독자로서 환호성을 지르고 싶을 만큼 좋았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물론이고 <에이미와 이저벨>, <버지스 형제>를 감명 깊게 읽은 독자라면 <다시, 올리브>도 꼭 읽어보시길.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이 좋은 건, 대상을 선 또는 악으로 재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올리브 키터리지만 해도 그렇다. 올리브는 선한 사람일까.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 그는 아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휘두른 적이 있고, 남편 몰래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기도 했다. 자신보다 가난한 사람을 낮추어 보기도 하고, 손주들을 차별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올리브가 악한 사람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아들을 열심히 키웠고, 남편이 죽을 때까지 오랫동안 병수발을 했다. 정치적 견해는 정반대이지만 그 외의 것들이 잘 맞는 남자를 만나 재혼했고, 당장은 가난해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올리브가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악마 같은 존재라면, 어떤 사람에게는 힘들 때 도와준 평생의 은인이자 사랑스러운 연인이라는 사실- 은 양립 불가능한, 말도 안 되는 모순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백인인 건 맞지만, 작가가 백인 일색인 사회를 긍정적으로 그리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작가는 백인 일색인 사회가 얼마나 취약하고 편협한지, 그 내부에 어떤 차별과 폭력이 숨어 있고 이를 교묘하게 은폐하는지를 보여준다. 겉보기에는 균질한 백인 사회도 내부를 깊이 들여다보면 민족, 종교, 재산, 학력, 직업 등을 근거로 다양한 형태의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 역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에 잘 나타난다. 심지어 헤어스타일이 세련되지 못하다고 차별하고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도 차별한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남과 같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남이 조금이라도 자신과 같지 않으면 경멸한다. 끊임없이 비교하고 평가하고 차별하고 혐오하는 게 일상이 되어 그게 자신의 삶을 좀먹는 줄 모른다. 


나아가 작가는 '남과 같다'는 사실이 어떤 의미인지 되묻기도 하는데, 이는 올리브와 이저벨의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 올리브와 이저벨은 나이도 비슷하고 태어나 자란 곳도 같고, 둘 다 약사와 결혼했고 자식들이 의사가 된 것도 똑같다며 기뻐한다. 물론 올리브와 이저벨은 노인 요양 시설에서 만나기 전까지 서로 모르는 사이였으므로 서로의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없었지만, 둘 다 여성이고 이성애자이고 정상 가족을 원했고 경제적 안정을 추구했으므로 결과적으로 비슷한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올리브와 이저벨의 자식들이 (어머니들의 말에 따르면) 효심은 지극하지만 결코 가까이 살지는 않는다는 것까지 닮았는데, 이런 걸 보면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는 것들이 정말 '스스로 선택'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개천에서 용 된 케이스라고 해도 - 결국 타고난 조건과 계급으로부터 영영 자유롭지 못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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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추는 춤 2
이연수 지음 / 호비작생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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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키워본 적도 없고 제주에서 살아본 적도 없는데 이 만화가 왜 이렇게 좋고 공감되는지 모르겠다. 2권을 읽으면서 1권을 읽을 때는 흘리지 않았던 눈물까지 흘렸는데, 그 에피소드를 다시 봐도 마음이 짠했고 마지막 장면에선 여지없이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 만화가 슬프기만 한 건 아니고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장면이 훨씬 많다. 마당에서 귤을 따먹고 마당에 생물 고등어가 떨어져 있는 장면을 볼 때는 역시 제주도구나 싶었다. 왕년의 토로는 종이 포장지를 벗기고 햄버거만 (훔쳐) 먹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웃겼다(ㅋㅋ). 아파서 그릉그릉 하면서도 고기를 주면 잘 먹었다니 너무 귀엽다. 식탐 대마왕 토로, 너는 존재 자체가 사랑이었구나.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였으면, 실제로 만난 적 없는 나조차도 널 그리워하게 만드니. 부디 더 좋은 세상에서 편안하게 지내고 있기를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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