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린 가이드
김정연 지음 / 코난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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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 못하는 음식 모형은 ‘가짜‘일까. 모형은 모형의, 음식은 음식의 역할이 있을 뿐, 어느것도 진짜와 가짜가 아니다. 삶도 그렇다. 누구의 삶도 있는 그대로 존재의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음을 담담하게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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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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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처럼 지구의 이곳저곳을 여행하던 저자가, 새를 위해 지구를 위해 여행을 자제하기로 마음먹게 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닮고 싶은 태도, 닮고 싶은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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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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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는 알고 있다. 지금의 내 삶이 나에게는 최선이라는 걸. 나로서는 매순간 심각하게 생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내린 선택들로 이루어진 결과라는 걸. 남들 눈에는 스카이 대학을 못 나왔고, 알아주는 회사에 취업하지도 못했고, 연봉도 쥐꼬리만하고, 그나이 먹도록 자식은커녕 결혼도 못한 루저로 보일지 몰라도, 나한테는 이게 최고의 삶이라고, 이보다 더 나은 삶은 상상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따금 나보다 좋은 스펙을 가졌거나 업계에서 잘 나가는 사람을 보면, 돈이 많거나 좋은 집에 살거나 비싼 차를 타거나 그럴 듯한 가정을 이룬 사람을 보면, 내 삶이 초라해보이고 과거에 내가 한 선택이 과연 맞나 하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는 내내 누가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귀가 간지럽고 몸이 배배 꼬였다. 주인공 노라 시드는 서른다섯 살 여성이다. 학교 다닐 때는 전도 유망한 수영 선수로 이름을 날렸고, 오빠와 밴드를 결성해 음반 계약 직전까지 가기도 했지만, 현재는 동네 음반점에서 일하면서 동네 아이에게 피아노 과외를 해주며 근근이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라는 음반점에서 잘리고 설상가상으로 과외마저 못하게 된다. 주변을 둘러보니 자기보다 못한 줄 알았던 친구들은 어느새 자리를 잡고 제대로 밥벌이를 하고 있고 가정까지 꾸린 상태였다. 이제라도 뭘 시작해 보기에는 나이도 많은 것 같고 학력도 변변하지 않다. 그렇다고 열정을 쏟아부을 정도로 하고 싶은 일도 없고,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일도 없다. 


급기야 노라는 죽기로 결심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사라졌어야 할 정신이 들었고, 눈을 뜨고 돌아본 공간은 노라가 생전 처음 보지만 왠지 모르게 익숙한 공간이었다. 그곳은 바로 도서관. 끝없이 이어지는 서가와 수많은 책들을 지나 노라는 반가운 얼굴을 만난다. 얼굴의 주인은 옛날에 노라가 다닌 학교의 사서 선생님이었던 엘름 부인. 엘름 부인은 노라에게 '후회의 책'이라는 책 한 권을 건네며, 노라가 그동안 살면서 한 후회들의 목록이 이 책에 전부 적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모두 노라가 한 후회가 실제로 이루어졌을 때 벌어졌을 법한 일들을 담고 있다고 전한다. 가령 수영을 계속 했다면, 밴드를 계속 했다면, 아빠를 실망시키지 않았다면, 친구에게 더 잘해주었다면 같은 일들... 


상상만 했던 미래를 실제처럼 경험하면서, 노라는 흥분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는 노라가 상상한 것보다 별로였고, 어떤 경우는 노라가 상상한 것보다 잘 풀렸지만 그에 따르는 고통이나 슬픔이 있었다. 딱 한 번 이대로 계속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그 때도 뭔가 빠진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집, 내가 원하는 직업, 내가 원하는 배우자와 자식, 친구들...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지만 왠지 모르게 내 삶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원래의 삶에서 노라는 평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다양한 삶을 경험해보니 나름 많은 일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살면서 좋은 사람은 한 명도 못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삶을 체험하면서 그들을 하나씩 잃는 경험을 해보니 그들 모두가 소중하고 의미 있는 존재였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노라가 피아노 과외를 했던 리오와 다시 만나는 장면이다. 원래의 삶에서 노라는 리오를 그렇게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저 리오 엄마의 부탁을 받아 리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고 약간의 용돈을 벌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리오의 피아노 선생이 되지 않은 삶에서 노라에게 피아노 과외를 받지 않는 리오가 안좋은 일에 휘말리는 모습을 보고 노라는 큰 충격을 받았다.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 일이 사실은 리오의 삶을 뒤바꿀 수 있는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노라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던 그 일이 리오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기일회(一期一會)'. 모든 만남이 일생에 한 번뿐인 만남이므로 후회하지 않도록 잘 대접하라는 불교의 말씀이 저절로 떠오른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귀인이라고 생각하고 잘 대접해야지. 나도 누군가의 귀인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늘 좋은 말과 바른 생각을 담아야겠다. 한 번뿐인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막막하지만, 매일이 한 번의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다양한 일에 도전해보고 싶은 용기가 생긴다. 나라는 책 한 권을 쓴다면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이 책처럼 다채롭고 재미있는, 그러면서도 교훈이 있고 감동이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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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시아의 여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5
윌리엄 트레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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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대 시절의 나는 좀처럼 미래의 나를 상상하지 못했다. 학교와 학원, 독서실만 왔다 갔다 하는 답답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날 수만 있다면, 공부 외에는 아무것도 허락되지 않는 생활을 끝낼 수만 있다면 그 방법이 대학이든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지금 생각해 보면 체념이나 포기에 가까운 생각을 했다. 상황은 다르지만, 펠리시아도 비슷한 심경이었을 것 같다.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펠리시아는 어머니를 일찍 여읜 탓에 어릴 때부터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해야 했다. 매일 아침 식구 중 제일 먼저 일어나 식사를 차리고, 아버지와 두 오빠의 출근 준비를 돕고, 몸이 좋지 않은 증조할머니의 병수발을 들고, 빨래와 청소를 하고 식사 준비를 하는 일은 모두 어린 펠리시아의 몫이었다. 


집에서 '노는' 딸이 밖에서 일하는 식구들을 위해 이 정도는 당연히 해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펠리시아한테는 직장이 있었다. 수녀원 학교를 졸업한 후 육가공 공장에 취직했다. 하지만 갑자기 공장이 문을 닫게 되었고 자연히 펠리시아도 실업자가 되었다. 마을 전체에 실업자는 넘치고 일자리는 부족한 상황. 남성도 아니고, 교육을 많이 받은 것도 아니고, 의지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닌 펠리시아에게 일자리를 제안하는 고용주는 없었다. 아버지와 오빠들도 펠리시아가 취직하지 않고 집에 있는 편을 원했다. 그 편이 펠리시아 대신 집안일을 해줄 식모와 간병인을 구하는 것보다 더 '싸게 먹혔기' 때문이다. 이때 조니라는 남자가 펠리시아 앞에 나타난다. 펠리시아와 같은 마을 출신으로 현재는 영국에 살고 있는 조니에게 펠리시아는 푹 빠진다. 외출도 자유롭게 못하는 펠리시아에게 조니와의 데이트는 꿈보다 달콤한 시간이다. 


자신의 뱃속에 조니의 아이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펠리시아는 앞으로 받게 될 고통과 비난을 염려하며 괴로워했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무작정 영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새장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무한히 자유로울 거라고 믿는 새처럼, 영국으로 가서 조니만 찾으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리 없다고 믿을 만큼 순진하진 않았지만,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순 없다고 생각할 만큼 절박했다. 집과 동네만 오가는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살림과 간병이 전부인 생활을 그만둘 수만 있다면, 가족들을 배신하고 그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결과가 되더라도 상관없었다. 


실상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영국에 왔지만, 영국에서의 여정은 기대 이상으로 힘들었다. 주소는 틀리고, 말은 안 통하고, 아는 사람은 없고, 돈은 떨어져 가고... 조니를 찾기 전까지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이제라도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가져온 돈을 전부 잃은 상태였다. 펠리시아가 도와달라고 손 내민 사람들은 펠리시아를 외면하고, 펠리시아를 도와주겠다고 다가온 사람들은 펠리시아를 이용할 생각만 했다. 임신한 여성을 위한 복지 혜택이나 외국인을 위한 긴급 구제 수단도, 불법 체류자인 펠리시아와는 무관했다. 결국 펠리시아는 처음 영국에 왔을 때는 상상도 못했던 결말을 맞는다. 


펠리시아가 어리석어서 안 좋은 선택을 한 걸까. 펠리시아가 운이 없어서 유난히 나쁜 사람들을 만난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무지와 불운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어리석고 운이 없는 사람도 최소한의 생활은 보장이 되는 사회, 미래를 다시 계획하고 인생을 스스로 꾸릴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아일랜드 출신 작가 윌리엄 트레버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한 여성이 얼마나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얼마나 불행한 일들을 겪었는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영국 내부에 어떤 병폐가 있는지, 더 자세히 말하면 - 과거 영국이 아일랜드를 침략하고 탄압한 역사로 인해 최근까지 얼마나 많은 아일랜드인들이 고통받고 있는지, 심지어는 침략을 경험해본 적 없고 전쟁과도 무관한 여성이 어떤 식으로 전쟁에 사로잡힌 가족에 의해 소외당하고 학대당한 결과 스스로 영국으로 도망치는 길만이 희망이라고 믿고, 그로 인해 영국에서 아일랜드 출신(인 데다가 임신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떤 절망스러운 경험들을 하게 되는지를 고발하는 것이야말로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작가는 이 소설의 최대 빌런인 힐디치가 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데, 나는 이러한 설명이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펠리시아와 유사한 일을 겪은 여성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느꼈다. 힐디치가 어릴 때 성폭력을 당했고 아버지 없이 성장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세상에는 어릴 때 성폭력을 당하고 아버지 없이 성장하고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모범적인 시민으로 사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리고 그러한 분노나 원한을 또 다른 범죄를 막거나 범죄자를 잡는 데 쓰지 않고, 자신보다 훨씬 약하고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괴롭히는 데 썼다는 점에서 그 자신의 비겁함 내지는 졸렬함을 증거할 뿐이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어쩌면 작가는 펠리시아에게서 조국인 아일랜드를, 힐디치에게서 아일랜드를 오랫동안 식민지로 삼고 탄압했던 영국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렇게 작정하고 집필했거나, 무의식적으로 그런 식의 구도를 상정했는지도. 어찌 됐든, 아니 그렇다면 더더욱, 펠리시아가 힐디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비록 길바닥 인생일지언정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결말을 택한 건 조금 약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힐디치도 그런 식으로 - 그에게는 과분한 동정을 받으며 - 죽음을 맞을 게 아니라 아주 비참하게, 기왕이면 펠리시아를 포함한 피해 여성들에 의해 처절한 복수를 당하는 식으로 죽었어야 하지 않나. (내가 보기에 남성 작가는 여성 캐릭터보다 남성 캐릭터에게 모질지 않은 경향이 있다.)


작가는 펠리시아가 결국 길 위에서 그토록 원했던 평화와 안정을 얻은 것으로 묘사했지만, 오늘날 길 위에 있는 '펠리시아'들의 사정이 그때보다 더 나아졌는지는 의문이다. 적어도 한국의 경우에는 같은 노숙자라도 남성 노숙자보다 여성 노숙자들의 형편이 훨씬 안 좋다. 노숙자가 아니라도 여성은 거리를 걸을 때 스토킹, 묻지마 폭행 등을 당하거나 성희롱, 성폭행 피해에 노출되는 경우가 남성에 비해 훨씬 더 많다. 길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는 공중화장실이나 공원, 지하철, 버스 등의 대중교통 수단에서 겪는 피해까지 더하면 그 수가 엄청나다.


나는 펠리시아처럼 가난한 여성,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한 여성,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 성희롱 또는 성폭력을 당한 여성 등에게 충분한 지원이 주어지기를 바란다. 그들 모두의 이야기가 펠리시아라는 한 여성의 이야기로 읽혔으니, 이 책은 과연 대단하다. 전 세계의 여성들에게 지금보다 나은 삶이 보장될 때까지, 이 책은 더 많이, 더 깊게 읽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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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일하는 무스부 씨 3
모리 타이시 지음, 이은주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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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용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영업 담당자로 일하는 고로 씨가 연구자로 일하는 무스부 씨를 좋아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성인 대상의 로맨스 만화. 3권에선 초과 근무를 하다가 막차를 놓쳐버린 두 사람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무스부 씨와 단둘이 밤을 보낼 생각에 흥분 MAX 상태가 된 고로 씨. 뭐라도 하고 싶은 흑심과 직장 동료끼리 이러면 안 된다는 이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불안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결국 무스부 씨의 의견을 존중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는 모습을 보니 '이 남자 의외로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 남자라면 착하고 순수한 무스부 씨와 이어져도 괜찮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무스부 씨도 고로 씨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어서 4권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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