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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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의 <증언들>과 함께 2019년 부커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해서 구입한 책이다. <증언들>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공동 수상할 만한 작품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기대가 없지 않았는데, 기대만큼 훌륭했고 어떤 면에선 <증언들>보다 좋기도 했다. 


<증언들>이 백인+여성인 마거릿 애트우드의 정체성이 반영된 작품이라면,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은 흑인+여성+성소수자(레즈비언)+이민자 가정 출신인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정체성이 반영되어 있어서 관점이나 문제의식이 더욱 다양하고 복잡하다. 


작가는 이토록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자신의 정체성을 영국에 사는 여성이라는 점 외에는 공통점이 별로 없어 보이는 12명의 여성들을 통해 보여준다(등장인물 다수가 흑인 레즈비언이며 '소수이지만' 백인도 있고 이성애자도 있다). 이들은 서로를 온전히 공감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원수처럼 대립하기도 하지만, 백인+남성들에게 무시당하고 차별받은 경험이 있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주체성을 가지고 살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많이 닮았다. 


12명의 여성이 있으면 12개의 페미니즘이 있다는 것, 페미니즘의 핵심은 자유와 다양성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라서 좋았다.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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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게이징 - 2021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 Wow 그래픽노블
젠 왕 지음, 심연희 옮김 / 보물창고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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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노블 <왕자와 드레스메이커>의 작가 젠 왕의 신간이라고 해서 고민하지 않고 구입한 책이다. 아시아계 미국인 아이들이 주인공인 것으로 보아, 같은 아시아계 미국인인 작가 자신의 경험과 고민이 적잖이 반영되어 있는 작품으로 짐작된다. 


이야기는 중국계 미국인 여자아이인 크리스틴의 집에 문이 세 들어 살게 되면서 시작된다. 처음에 크리스틴은 엄마와 단둘이 살고 가정 형편이 어려우며 나쁜 소문도 있는 문을 경계한다. 그러다 문과 대화도 해보고 같이 놀기도 하면서, 크리스틴은 문이 재미있고 예술가 기질이 넘치는 아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동안 모범생으로만 살았던 (그러기를 강요받았던) 크리스틴으로서는 문의 모든 것이 신기하고 매력적이면서 동시에 두렵고 불안하다. 


크리스틴처럼 이민자 가정의 아이로 자란 것은 아니지만, 중산층 가정의 장녀로서 항상 바르고 얌전하게 행동할 것을 강요받았던 사람으로서 크리스틴이 문을 보면서 가지는 동경과 혼란의 감정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도 어릴 때 문처럼 사고방식이나 행동이 자유롭고 공부 외의 분야에 재능이 많은 친구들을 동경했던 것 같다. 그때 그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 후기에 작가가 어릴 때 큰 수술을 받았다는 내용이 나와서 놀랐다. 작가는 물론이고 작가의 부모님과 다른 가족들 모두 얼마나 놀라고 걱정했을까. 다행히 지금은 건강해져서 당시의 경험을 작품에 반영할 만큼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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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 - 시인이 보고 기록한 일상의 단편들
최갑수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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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기 힘든 시절이 길어지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날 기회만이 아니다. 평소라면 출근해야 할 시간에 늘어지게 자고 평소라면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에 밤거리를 누비는 즐거움. 별생각 없이 들어간 식당이 의외로 맛집이었다거나 어쩌다 말을 건 사람이 너무나 친절해서 그것만으로도 여행이 근사해지고 완벽해진 것만 같은 기쁨. 기다리는 버스는 오지 않고, 힘들게 찾아간 숙소가 예상보다 별로여도 '괜찮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여유. 이런 것들을 가장 극적으로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여행이었음을 새삼 깨닫고 아쉬워하는 요즘이다. 


나처럼 여행하고 싶지만 여행할 수 없어서 몸과 마음이 근질근질한 독자들을 위한 책이 나왔다. <밤의 공항에서>, <잘 지내나요, 내 인생>,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등의 여행책을 쓴 20년 경력의 여행작가 최갑수의 신간 <오래전부터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이다. 이 책에는 베테랑 여행작가이자 1997년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한 시인이기도 한 저자가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과 그에 관한 추억에 대해 쓴 시와 짧은 글이 실려 있다. 


책을 펼치고 목차를 넘기면 비행기 안에서 찍은 하늘과 바다 사진이 보인다. 끝이 없을 듯 보이는 바다를 건너 저자가 도착한 곳은 열대의 섬, 유럽의 소국,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 등 다양하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전혀 유명하지도 않았지만, 저마다 나름의 개성이 있고 멋이 있었다. 누군가는 기타를 끝내주게 잘 치고, 누군가는 캐리커처를 끝내주게 잘 그렸고, 누군가는 주어진 재료로 뚝딱뚝딱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다. 그들의 '평범한' 재주가 머나먼 외국에서 온 이방인의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는 걸 그들이 알았기를 바란다. 


여행을 하면서 만난 것은 새로운 풍경, 새로운 사람만이 아니다. 너무 오래되어서 폐차 직전인 차, 몇백 년은 버틴 것처럼 보이는 건물 등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것들을 마주칠 때마다 저자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만든 것들은 저렇게도 불완전하고 유한한데, 산과 바다, 돌이나 바람처럼 자연이 만든 것들은 어쩌면 저렇게 완벽하고 영구적일까.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부자인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자연 앞에선 똑같이 약하고 한계가 있는 존재임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다.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는 여행. 언제쯤 다시 떠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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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에서 웅진 당신의 그림책 1
안경미 지음 / 웅진주니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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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열어도 열어도 끝이 없는 문을 통과하는 과정이 아닐까. 안경미 작가의 그림책 <문 앞에서>를 읽고 든 생각이다. 책을 펼치면 길고 좁다란 문 하나가 보인다. 책장을 넘기면 문 앞에 서 있는 세 자매가 보인다. 세 자매는 눈앞에 있는 문을 연다. 그러자 또 하나의 문이 보이고, 그 문을 열자 또 하나의 문이 보인다. 열어도 열어도 계속해서 나타나는 문 앞에서, 세 자매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것은 세 자매 각자의 운명이 되고 인생이 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문이 인생을 비유한 것이라면, 하나하나의 문은 우리가 살면서 끊임없이 겪게 되는 문제 혹은 위기를 의미할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문 앞에서 무릎 꿇을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문을 창조할 것인가. 여러 번 책을 반복해 읽고 세 자매의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살면서 지나쳐 온 크고 작은 문제나 위기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 돌이켜 보기도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반응하며 살지도 생각해 보았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문을 만드는 사람,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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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완전판 - 양장판
타니구치 지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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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터인가 마음이 소란하거나 머릿속이 복잡해지면 모든 걸 내려놓고 무작정 걸었다. 때로는 공원, 때로는 하천변을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평소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하늘의 색깔이나 나무의 생김새, 꽃의 모양 등이 눈에 들어오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흐려져 있던 마음이 개운해졌다. <고독한 미식가>의 작화가로 유명한 만화가 타니구치 지로의 대표작 <산책 완전판>은 그러한 산책의 묘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한 남자가 아내와 함께 새로운 동네로 이사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남자가 이사 온 동네에는 친근한 분위기의 주택가가 있고, 소담스러운 폭의 하천이 있으며, 그 주변에는 하늘을 향해 높게 뻗은 나무들과 그 가지 위에 앉아 쉬는 새들이 있다. 남자는 우연히 버드워칭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마주치고 그와 함께 새 구경을 한다. 박새, 찌르레기, 티티새 같은 다양한 새들을 근방에서 볼 수 있다는 말에 남자는 마음이 설렌다. 낯선 동네가 편안하게 느껴지고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감이 차오른다. 


남자가 동네 산책을 하면서 마주친 소박하지만 감동적인 풍경은 이뿐만이 아니다. 마을 공터에서 개와 함께 뛰놀았던 기억, 동네 꼬마들이 날린 연이 나뭇가지에 걸려서 대신 빼주었던 기억, 우연히 발견한 동산에 올랐다가 난데없이 고된 등산을 하게 되어 진땀을 뺀 기억, 산책 도중 소나기를 만나 이참에 목욕이나 할까 하고 대중목욕탕에 들른 기억 등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한가득이다. 마음 편히 산책하기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는 모든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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