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나
이소영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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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세밀화가 이소영 작가님의 신간이다. 확인해 보니 이제까지 출간된 이소영 작가님의 책을 거의 다 읽었다. <식물 산책>을 시작으로 <식물의 책>, <식물과 나>를 읽었고, 공저로 참여한 <나의 복숭아>,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는 읽고 있거나 읽을 예정.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같은 작가의 책들인 만큼 비슷비슷한 내용이 많은데도, 읽을 때마다 좋고 읽을수록 새롭다. 이소영 작가님의 식물 관련 책이 또 나온다면, 나는 어김없이 사 읽겠지. 그리고 또 좋아할 거야... 


<식물과 나>는 <식물 산책>, <식물의 책>에 비해 분량이 많고 식물세밀화의 비중도 높다. 내용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저자가 관찰하고 기록하는 식물들에 관한 이야기와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있다. 마음이 포근해지는 이야기, 어디선가 꽃향기가 나는 것 같은 이야기도 많았는데, 다 읽고 나니 안타까운 감정이 들었던 이야기가 더 많이 생각난다. 식물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식물을 상하게 하는 사람들, 하루에도 엄청난 양의 농산물을 먹고 마시면서 정작 농사는 경시하는 사람들, 할미꽃이라는 이름 때문에 꽃 자체의 아름다움을 보지 않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또한 여성 혐오, 노인 혐오가 아닐까). 


영국 큐가든에서의 일화도 생각난다. 조용한 그곳에서 웬일로 크게 말하는 사람이 있어서 자세히 봤더니 시각장애인에게 주변에 있는 꽃과 나무를 설명하는 중이었다고. 그 모습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다가, 음성으로 식물의 세계를 설명해 주는 네이버 오디오클립 <식물 라디오>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좋았다. 덕분에 눈은 보이지만 식물은 보이지 않았던 나까지 식물을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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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기분
박연준 지음 / 현암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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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하는 박연준 시인님의 책이다. 제목이 <'쓰는' 기분>이라서 글을 쓰는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글 중에서도 시 쓰는 일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시 쓰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박연준 시인님의 남편인 장석주 시인님을 비롯해 대학 은사인 김사인(라임을 맞춘 것처럼 보이지만 아닙니다...) 시인님, 저자와 함께 시를 쓰는 동인들, 제자들, 강연에서 만난 - 한때 시인을 꿈꾸었고 지금도 시를 읽는 어르신들... 


시를 전혀 쓰지 않고 읽지도 않는 나로서는, 이렇게 시를 쓰고 싶어 하고 계속해서 읽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글 잘 쓰는 사람 중에 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상기하게 된다. 김연수 작가님도 원래는 시인을 지망하셨다고 하고, 어제 읽은 정지돈 작가님도 시를 좋아하신다고 하고, 박연준 시인님은 뛰어난 산문가이자 소설가이기도 하시니. 결국 글을 잘 쓰고 싶으면 시부터 배워야 하는 걸까. 


시 쓰는 법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시 잘 쓰는 기술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저자의 시와 저자가 소개하는 시를 읽으니 잘 써진 시들이 공유하는 특징이란 건 분명 있는 것 같다. 무심히 볼 것들을 유심히 보기. 말로 쉽게 내뱉지 말고 여러 번 머릿속에서 굴리기. 더욱더 분명하고 정확한 비유가 없을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기. 그러고 나서 그냥 쓰기. 조금이라도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좋은 시를 꾸준히 찾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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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
서보 머그더 지음, 김보국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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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름도 책의 존재도 몰랐는데, 얼마 전에 읽은 황정은 작가님의 에세이집 <일기>에서 알게 되어 별로 고민하지 않고 바로 샀다. 추천의 글을 무려(!) 문학평론가 신형철 님이 쓰셨고, 2003년 프랑스 페미나 상 수상했으며, 2015년 <뉴욕 타임스>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를 연상시킨다고 인터넷서점 책 소개 란에 쓰여있는데,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떠올렸다. 찾아보니 서보 머그더와 아고타 크리스토프 모두 헝가리 작가네... 


이야기는 작가인 '나'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남편과 단둘이 살고 있는 '나'는 집안일을 돌봐줄 가사도우미를 찾다가 동네에서 일 잘하기로 소문난 에메렌츠라는 여성을 알게 된다. 과연 소문대로 일은 잘했지만, 보통의 가사도우미와 달리 무례하고 때로는 괴팍하기까지 하며 자기만의 규칙이 많은 에메렌츠에게 '나'와 남편은 잘 적응하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나'는 에메렌츠가 어떤 삶을 살았고 그 결과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를 점차 이해하게 된다. 나아가 교육받은 지성인이자 저명한 작가이자 성실한 교인이라고 믿었던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모순적인지를 깨닫는다. 


거칠게 요약하면 '나'와 에메렌츠의 20년간의 우정을 그린 소설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 이상의 교훈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아마도 나를 비롯해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대부분은 '나'에 가까운 사람일 것이고, 일상에서 에메렌츠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겉으로는 공손하게 대해도 속으로는 불쾌함을 느낄 것이다. 자신이 세운 규칙은 곧 죽어도 지켜야 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는 에메렌츠. 상대가 고용주라도 할 말은 해야 하고 안 하고 싶은 일은 절대 안 하는 에메렌츠.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정말 피곤하고 힘들 것이다. 


하지만 에메렌츠가 관통해온 삶을 안다면 생각이 바뀔지 모른다. 생각이 바뀌지는 않더라도, 에메렌츠가 그토록 자신의 신념을 내세우며 주체적으로 살기를 바라는 이유를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에메렌츠는 지옥을 보았고, 또다시 지옥을 보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른 나이에 깨달은 사람이다. 배웠다는 사람이, 신을 믿는다는 사람이, 실제로는 어떤 불합리와 부도덕을 저지르는지를 똑똑히 목격한 사람이다. 그리하여 배운 척, 믿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지 않고 일하며 믿지 않고 행하는 삶을 사는 에메렌츠를 오해한다는 건 얼마나 큰 오만인가.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싶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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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 :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 띵 시리즈 10
배순탁 지음 / 세미콜론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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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콜론 '띵' 시리즈 신간이자 애정하는 유튜브 채널 중 하나인 <무비건조>의 패널 배순탁 작가님의 책이다. 주제가 평양냉면이니까 작가님의 개인적인 평양냉면 맛집 순위나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음식점에 대한 평가 등등이 주를 이룰 줄 알았는데(나오기는 한다), '띵'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그렇듯이, 주제인 음식에 관한 내용보다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훨씬 더 많다(그래도 '띵' 시리즈의 다른 책들에 비하면 음식 이야기나 맛집 정보가 꽤 많은지도...). 


이 책의 경우에는 배순탁 작가님의 본업인 음악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게 진짜 재미있다. 언젠가 배순탁 작가님의 음악 에세이가 나온다면 꼭 읽어 보고 싶다(라고 말하면서 인터넷 서점에서 배순탁 작가님을 검색해 봤는데 아는 책이 나왔다. 2014년에 나온 <청춘을 달리다>. 이 책을 쓰신 분이셨다니!). 방이역 근처에 있는 봉피양에서 냉면 한 그릇 먹고 올림픽공원에서 공연 보는 게 지고의 행복이라고 쓰셨는데, 얼른 팬데믹이 사라져서 이 행복 나도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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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영화 없는 날 - 차별을 넘어 차이를 잇는 페미니즘 영화관 쓰담문고 3
김수진.김시원.황고운 지음, 손희정 해설 / 서해문집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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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볼 영화가 많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매주 새롭게 개봉하는 영화가 이렇게 많은데도, 일부러 극장에 가지 않아도 OTT 서비스를 이용해 언제 어디서나 얼마든지 영화를 볼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변한 건 영화가 아니라 나다. 예전에는 흔히 말하는 알탕 영화, 조폭 영화도 잘 봤다. 관객이 천 만 이상 들었다고 하면 아무 생각 없이 보기도 했다. 그 때마다 왠지 모르게 불편하고 찜찜한 이유가,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차별과 혐오 정서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볼 영화가 많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싫으냐고? 그럴 리가... 


이 책은 성평등 교육을 실천하는 현직 교사 3인이 함께 썼다. "다름이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며, 교실 안과 학교 밖에서 그 길을 찾다 영화를 만났다."라고, 김수진, 김시원, 황고은 저자는 밝힌다. 책에는 나처럼 볼 영화가 많지 않아서 고민인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영화가 소개되어 있다. <벌새>, <우리집>, <툴리>, <당갈>, <야구소녀>, <아이 필 프리티>, <피의 연대기> 등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 새로운 여성 캐릭터의 서사를 그린 영화, 성별에 대한 편견을 깨트리는 영화,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시선에 의문을 던지는 영화 등이다. 


현직 교사들이 공저한 책답게, 영화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과 그에 대한 교사들의 피드백이 실린 점이 좋았다. 여자로 태어났지만 여자로 보이는 게 불편한 소녀 미카엘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톰보이>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학생들과 성별 이분법에 관해 토론한 내용을 들려준다. '여자는/남자는 ~ 하다'는 생각에 익숙한 학생들에게 저자는 자신을 잘 드러내는 성격이나 생김새를 나열해 보게 했다. 파랑을 좋아한다, 핑크를 좋아한다, 운동을 좋아한다, 책을 좋아한다 등. 그러고 나서 나와 같은 특징을 가진 친구들을 찾도록 했더니, 그 중에는 여자도 있고 남자도 있었다. 여자만의 특징이나 남자만의 특징 같은 건 없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한 것이다.


1960년대 미국항공우주국 '나사(NASA)'에서 활약한 세 흑인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히든 피겨스>를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학생들과 함께 일상 속 불편을 개선한 과학자를 발견하는 시간을 가진 경험을 들려준다. 과학자 하면 대부분 남성일 것 같지만, 와이파이와 수정액, 자동차 와이퍼 등을 발명한 과학자는 모두 여성이며, 음식물 쓰레기 건조기를 발명한 사람은 가사노동 경력 20년 차의 전업주부라는 사실을 알고, 학생들도 놀랐지만 나도 무척 놀랐다. 이 밖에도 영화를 통해 현실에 남아 있는 차별과 편견, 혐오를 발견하고 이를 재생산하지 않기 위해 교사와 학생들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 좋았다. 영화평론가이자 페미니스트인 손희정 선생님의 해설이 덧붙여져 있어서 시네페미니즘(시네마+페미니즘)을 공부하기에도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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