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실격 4
와카마츠 타카히로 지음, 원성민 옮김, 노다 히로시 원작 / 대원씨아이(만화)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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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밭에 궁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있지만, 오늘처럼 월요병 때문에 안 그래도 힘든 아침이 더 힘들게 느껴지는 날이면 과연 이승이 좋은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승에 대한 미련이 옅은 인물 하면 <이세계 실격>의 주인공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사는 게 수치스러워서 죽기를 결심하기를 여러 번. 그러다 뜻하지 않게 이세계로 건너온 선생은, 내 편 네 편의 구분이 모호하고 매일이 전투와 싸움인 이세계에서 특유의 무기력하고 시니컬한 태도로 어찌어찌 연명하는 중이다. 


목숨을 부지하는 데 큰 관심이 없는 선생의 태도가 오히려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이 이 만화의 재미 포인트인데, 4권에서도 그렇다. 술집에서 여주인과 술을 마시며 한가로운 한때를 보낸 선생은, 마을 사람들이 술집 여주인을 '마녀'라고 비난하며 괴롭힐 궁리만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다 결국 마을 사람들이 여주인을 공격하자, 선생은 그답지 않게 적극적으로 마녀를 두둔하고 나서며 마을 사람들이 빠져 있는 함정을 지적한다. 진짜로 공격해야 할 상대에게는 아무 말 못 하면서 약한 여성만을 공격하는 사회에 대한 지적 같아서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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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국의 재봉사 로즈 베르탱 5
이소미 진게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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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프랑스가 배경인 이야기는 아무리 읽어도 새롭게 느껴진다. 그만큼 다양하고 다채로운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18세기 프랑스 혁명 전야가 배경인 만화 <경국의 재봉사 로즈 베르탱>이 그렇다.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총애를 받은 세계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 로즈 베르탱의 일대기를 그린 이 만화를 보면서, 나는 당시 역사는 물론이고 사교계의 분위기나 패션의 역사 같은 것도 많이 배운다. 


가령 18세기 프랑스에는 세계 최초의 패션지라고 불리는 <주르날 데 담(여성의 잡지)>라는 신문이 있었다. 미용 전문 학원이 있을 만큼 미용 기술에 대한 수요가 컸으며, 훗날 그랑 마가쟁(백화점)으로 발전하는 대형 재봉소도 있었다. 오늘날의 패션 디자이너에 해당하는 재봉사 베르탱과 헤어 디자이너에 해당하는 미용사 레오나르가 협업하는 모습은 현대의 연예인들에게 전속 스타일리스트와 헤어 디자이너가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밖에도 당대의 문화와 생활 양식을 알 수 있어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야기적으로는 마침내 자신의 재봉소를 가지게 된 베르탱이 왕태자비(마리 앙투아네트) 전속이 된 레오나르와 본격적으로 협력하기 시작한다. 레오나르는 베르탱도 왕태자비 전속으로 만들기 위해 사교계에서 영향력이 있는 샤르트르 공작부인과 뒤 바리 백작부인의 힘을 빌리기로 한다. 한편 마리 앙투아네트는 가면무도회에 참석했다가 그곳에서 스웨덴 백작 한스 악셀 폰 페르센을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점점 흥미진진해지는 이야기. 과연 다음 권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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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자이언트 익스플로러 2
이시즈카 신이치 지음, 장지연 옮김, Number 8 스토리 디렉터 / 대원씨아이(만화)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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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실을 희생하는 삶과 미래는 보지 않고 눈앞의 즐거움만 좇는 삶. 둘 중에 무엇이 더 나을까. 이시즈카 신이치의 만화 <블루 자이언트 익스플로러> 2권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세계 최고의 재즈 뮤지션이 되기 위해 일본과 유럽을 거쳐 미국으로 온 주인공 다이는 시애틀에서의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포틀랜드로 향한다. 미국에서의 운전은 처음이라 잔뜩 긴장한 다이 앞에 히치하이커 제이슨이 나타나는데, 이 만남이 다이에게 예상 밖의 충격을 준다. 

세계 최고의 재즈 뮤지션이 되기 위해 미국에 왔다는 다이에게 제이슨은 묻는다. "전혀 이해가 안 되는데? 지금이 즐거운데도 거물이 되고 싶다는 게." 최고가 된다느니 승패 운운하는 건 할아버지 세대나 추구했던 낡은 가치관이라는 제이슨의 말에 다이는 그답지 않게 평정심을 잃는다. 감정이 동요한다는 건, 다이도 내심 자신의 사고방식이 낡았다는 걸 인정하는 걸까. 이런 식으로, 재즈와 음악 외에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만화라서 이 작품이 좋다. 어서 3권이 나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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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이반지하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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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에 처음 이반지하 님이 출연하셨을 때를 기억한다. 처음에는 그의 말투나 태도가 불편했지만, 진행자 셀럽맷 님의 안목을 믿고 계속 들었다. 그랬더니 곧 그의 차가운 말투와 거만한 태도 안에 뜨거운 열정과 다정한 마음이 담겨 있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그를 좋아하게 되고 그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고 싶어졌다. 나와 같은 청취자가 많았는지, 그가 출연하는 '월간 이반지하'는 금세 인기 코너가 되었고 다른 매체에서도 종종 그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책이 나왔을 때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대로 그는 역사적 사건처럼 그냥 외워야 하는 '전설'이라는 것을. 


팟캐스트에서는 청취자들을 주로 웃겨주었던 이반지하이지만, 이 책에는 고통과 상처로 얼룩진 그의 과거와 그로부터 생존하고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 과정이 담겨 있다.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집에서 태어났지만 가정폭력이 일상이었고,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지만 안정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편의점, 호텔 등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했던 이반지하. 전공은 회화인데 월세방에 더는 캔버스를 보관할 자리가 없어서 컴퓨터만 있으면 작업 가능한 영상으로, 음악으로, 글쓰기로 계속해서 다른 분야에 도전하다 보니 어느새 미술, 영상, 애니메이션, 음악, 에세이, 소설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는 전방위 예술가가 되어 있었다. 이걸 고진감래라고 해야 할지,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지... 


읽는 내내 즐겁고 행복한 기분이 드는 책은 아니지만(저자의 감정에 이입해 슬프고 힘들어지는 순간도 많았다), 이반지하라는 인물의 생애와 그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데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이 많이 담겨 있어 좋았다. 이반지하를 잘 모르고 그에게 큰 관심이 없어도, 우리 주변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얼마나 복잡하고 아름다운지를 확인할 수 있는 이 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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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작가입니다 - 딴 세상 사람의 이 세상 이야기
배명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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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그야 인세와 원고료로 살겠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SF 문학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일천했던 한국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SF 문학을 써왔던 작가에게는 남다른 꿈 내지는 야망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펼쳐든 이 책에는, 과연 한국에서 SF 작가로 산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등단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고, 인세와 원고료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작업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고, SF에 대한 대중의 오해와 문단의 차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흥미로운 글이 아주 많은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삼국지>에 나오는 '천하삼분지계'에 대한 해석이었다.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가 삼고초려를 하는 그 유명한 장면에 나오는 이 말에 대해, 나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저자가 이 말에 의문을 품고 자기만의 추론과 분석을 더해 해설하는 대목을 읽으며 나는 저자가 참 대단하다고 느꼈고, 과연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사람답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생각을 하는 저자의 소설을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배명훈의 <삼국지>를 써보실 생각은 없는지...) 


SF를 쓰려면 과학보다 국제정치학을 공부하는 게 낫다는 말씀도 인상적이었다. 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하면 외무고시 과목을 공부하는 줄 아는데, 실제로는 세계와 세계관에 대해 공부하게 되며 이는 다양한 세계를 창조하고 다양한 세계관을 실험하는 SF 창작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의 이 말을 어디선가 듣고 정치외교학 전공자로서 솔깃했는데, 아직은 SF 창작은커녕 독해조차 어렵다. 그래도 저자가 지향하는 '과학기술이 아닌 사회과학이 중심이 되는 SF'에는 관심이 있고(진짜 빌런은 사람이 아니라 사회라는 지적도 좋았다), 그러한 SF 소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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