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 - 영화가 끝나고 도착한 편지들
조해진.김현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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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두세 번은 갔던 영화관에, 팬데믹 이후로는 한 달에 한 번도 못 가고 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겨도 두 시간 넘게 마스크 쓰고 답답한 상태로 호흡할 생각을 하면 단념하게 된다.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가는 단순하고 흔한 취미가, 어쩌다 이렇게 어렵고 귀한 여가 활동이 된 것일까. 소설가 조해진과 시인 김현이 함께 쓴 책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를 읽는 내내 하루빨리 팬데믹이 끝나서 예전처럼 자유롭게 영화관을 드나들 수 있게 되기를 소망했다. 


이 책의 1부는 조해진과 김현이 서로에게 쓴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인생 영화로 차이밍량의 <애정만세>와 시드니 루멧의 <허공에의 질주>를 든 조해진은 추상미의 <폴란드로 간 아이들>,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 김보라의 <벌새> 등을 보고 느낀 감상을 나눈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보면서 저자는 탈북자가 나오는 자신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를 떠올린다. 영화와 소설은 모두 허구지만, 실재하는 인간이 나오고 현실의 문제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인간에 대한 책임과 윤리 의식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식으로 다른 장르의 창작물을 보면서 자신의 일을 생각한 점이 작가로서 프로답고 인간으로서도 미덥다고 느꼈다. 


누구와도 함께 보고 싶은 영화로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을 고른 김현은, 전업 작가인 조해진과 다르게 직장에 다니며 출퇴근하는 입장이라서 그런지, 새로운 영화를 언급하기보다는 조해진이 본 영화에 대해 코멘트하거나 과거에 본 영화를 주로 소개한다. 그중에는 <일일시호일> 같은 계절감이 풍부한 영화들도 있고, <굿바이 마이 프렌드>나 <천장지구>처럼 한 시절을 풍미한 옛날 영화들도 있다. 


이 책의 2부에는 서로가 아닌 모모라는 이름의 허구의 독자를 상대로 쓴 편지들이 실려 있다. 대상은 바뀌어도 '영화를 보고 편지를 쓴다'는 설정은 그대로라서 읽기에 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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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 괴테와 마주앉는 시간
전영애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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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건 팔 할이 흠모였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마음보다 좋아하는 사람을 닮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나는, 지금도 책에서 흠모할 만한 사람을 찾고 그에게서 흠모할 만한 점을 배우려 한다. 이 책은 내가 흠모하는 독서가 중 한 명인 팟캐스트 <책읽아웃>의 '캘리' 님이 추천하셔서 알게 되었다. 내가 흠모하는 캘리 님이 흠모하는 전영애 교수님의 존함은 오래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그의 책을 읽은 건 부끄럽게도 이번이 처음이다. 


다행히 이 책은 전영애 교수님을 잘 모르는 나 같은 독자가 읽기에 적합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편한 문장으로 소개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전영애 교수님은 한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괴테 연구자로,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2011년 바이마르 괴테학회에서 수여하는 '괴테 금메달'을 수상했다. 현재는 경기도 여주에서 '여백서원'을 운영하며 괴테의 모든 저서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괴테가 60년을 쓴 작품 <파우스트> 전체를 한 줄로 요약한 문장이다. 저자에게 있어 인생 전체를 방황하게 한 지향은 단연 괴테였다. 학창 시절 공부하는 틈틈이 읽은 독일 문학에 이끌려 독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저자는, 군사 독재 정권이 학교를 점거하고 공부하는 여자는 "비극의 씨앗" 취급 당하는 사회 분위기에 굴하지 않고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교수로 임용이 된다는 기약이 없어도 공부하고, 팔릴 가망이 보이지 않아도 책을 쓰고 번역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비결로 저자는 '10년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든다. 괴테의 책을 원어로 읽고 싶다는 열망이 그를 독문학의 세계로 이끌었고, 제대로 된 번역본이 없는 괴테의 책들을 한국에 소개하고 싶다는 꿈이 그로 하여금 번역하고 책을 쓰게 했다. 이제는 한국에 괴테를 읽고 연구하는 배움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여백서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곳이 많은 사람들의 '10년 후'를 상상하게 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는 저자. 앞으로 그를 따라 괴테를 읽어갈 생각에 마음이 설레고 나의 10년 후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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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요조 (Yozoh)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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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보다 글 때문에 더 사랑하게 된 뮤지션 출신 작가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이 책을 쓴 요조다. 대학 시절 요조의 노래를 종종 들었지만(요조가 부른 노래들이 싸이월드 미니홈피 bgm으로 한창 인기 있었던 시기다) 팬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다 요조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를 듣기 시작하고, 요조가 쓴 글이나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하면서, 점점 요조의 매력에 빠졌고 그의 팬을 자처하게 되었다. (이제는 요조의 음악도 아주 좋아한다.)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은 요조가 2021년에 발표한 에세이집이다. 뮤지션으로, 작가로, 책방 주인으로, 비건으로, 러너로 살아가면서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이 깊은 인상을 준 책이나 영화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실려 있다. 주된 내용은 예술가로 사는 일의 어려움이다. 뮤지션이지만 오랫동안 신곡을 내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불안감과 초조함, 전보다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잠을 잊을 정도로 노력하지만 늘 이도 저도 아닌 '중간 작가'로 분류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 등이 책 이곳저곳에 솔직하게 담겨 있다.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생활인으로서의 어려움도 이 책 곳곳에 나온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책방 무사가 종로에 있었을 때 주차 문제 때문에 매일 곤욕을 치렀다는 대목이다. 주차한 사람에게는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사소한 일이겠지만, 그 일을 매일 겪는 사람에게는 하루 종일 정신을 곤두서게 하고 인류애를 잃어버리게 만들 중대 사건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에서, 다시 홍대에서 책방 무사를 계속하시는 걸 보면, 책방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보다 책방 운영이 주는 즐거움과 보람이 더 크기는 한가 보다(홍대에 생긴 책방 무사 서울점, 가보고 싶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문장은, 책 앞머리에도 나오는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도 나뉜다."이다. 베스트셀러 <죽은 자의 집 청소>의 저자이기도 한, 유품정리사 김완 님과의 만남에 대해 쓴 글에 나오는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이 참 요조 작가답다고 생각했다.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자신을 인정하는 사람.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지 않고 다가가는 사람을 동경하는 사람. 그래서 마침내 방향을 돌려 다가가는 한 걸음을 떼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서 이런 책을 쓰고 이런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역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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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3-08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조씨의 음악은 좋아하는데 아직 책은 못읽어봤어요.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던데 책에서 만나는 요조씨도 역시 매력적일듯하군요.
 
아녜스 바르다의 말 - 삶이 작품이 된 예술가, 집요한 낙관주의자의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아녜스 바르다 지음, 제퍼슨 클라인 엮음, 오세인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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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를 다루는 일을 오랫동안 해왔고 여전히 애정하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이미지를 다루는 일을 해보고 싶은 소망이 있다. 특히 영화는 텍스트를 이미지로, 영상으로 구현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한층 더 복잡하고 어렵고, 그래서 더 매력적인 일처럼 보인다.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 그중에서도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이 있고 호기심이 있다. 


아녜스 바르다의 인터뷰집 <아녜스 바르다의 말>을 읽은 것은, 그런 동경과 호기심에서이다. 사실 나는 아녜스 바르다의 엄청난 팬은 아니다. 그의 영화 중에 본 작품이라고는 2017년작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 유일하다. 이 책은 내가 아는 바르다의 영화 세계를 확인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이제부터 알아갈 바르다의 영화 세계를 미리 공부하기 위해 읽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실제로 이 책을 통해 바르다에 대해 알게 된 사실들이 매우 많다. 


첫째는 바르다가 처음부터 영화감독을 지망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1928년생인 바르다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졸업 후 사진가로 일했다. 그러다 우연히 영화계 인사들과 사귀게 되었고, 1954년 첫 영화 <라 푸앵트>를 발표하며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때까지 바르다가 본 영화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다섯 편이 고작이었다. (이때만 해도 영화는 지금처럼 주류 미디어가 아니었다.)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아서 영화 문법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 자신을 누벨바그의 대모로 만든 것 같다고 바르다는 말한다. 


둘째는 바르다가 자신의 삶에서 창작의 영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1972년 아들 마티외가 태어나면서 몇 년 간 집에서 육아에 전념하게 된 바르다는, 어머니가 되었다는 사실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구속하고 제한하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를 만들었다. 집 창고에 있던 90미터 길이의 전선을 꺼내 집안 콘센트에 꽂고 '탯줄'처럼 쥔 채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만든 영화 <다게레오타입>이 그것이다. 


2000년 작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도 바르다가 길거리에서 음식물을 줍거나 집어 드는 사람들을 본 경험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요즘에는 보기 힘든 광경이지만 과거에는 저런 사람들이 많았다는 생각을 하다가 어릴 적의 기억을 떠올렸고, 그 기억은 그를 장 프랑수아 밀레의 명작 <이삭 줍는 사람들>로 데려갔다. 이런 식으로 일상에서 어떤 광경을 보고 흥미를 느끼고, 흥미로부터 의미를 찾아내는 발상의 방식, 사고 과정이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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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츠오베르타 1
오노 츠토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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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의 꿈을 커서도 품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시절의 꿈을 이룬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오노 츠토무의 만화 <테츠오베르타>는 어린 시절 꿈꿔왔던 헌츠맨의 꿈을 포기하고 라멘 가게에서 일하던 주인공 테츠가 우연한 계기로 어릴 적의 꿈을 되찾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액션 모험 활극 만화이다. 


고아원에서 자란 테츠는 세계를 구한 영웅 '빅원 쿠로가네'의 팬이었다. 어른이 되면 자신도 빅원 쿠로가네 같은 헌츠맨이 되어서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13년이 흐른 지금, 먹고 살 길을 고민하는 평범한 청년이 된 테츠는 꿈을 포기한지 오래다. 빅원 쿠로가네는 이미 고인이 되었고, 테츠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이 빅원 쿠로가네의 뒤를 잇는 헌츠맨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 테츠 앞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난다. 테츠의 영웅, 빅원 쿠로가네의 파트너였던 도베르만이 테츠에게 온 것이다. 우연히 테츠가 나쁜 사람들과 싸우는 모습을 보고 헌츠맨의 잠재력을 느꼈다나 뭐라나. 헌츠맨과 개가 한 팀을 이뤄 싸운다는 설정이 재미있고, 무엇보다 평범한 청년 테츠가 과거의 꿈을 되찾고 새로운 길을 걷게되는 과정이 드라마틱해서 좋았다. 2권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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