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 읽는 교수 2
안그람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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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에 1권을 읽고 너무 좋아서 다음 권 모두를 장바구니에 넣어두었으나 결제를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2권을 사서 읽었다. 3권부터 5권까지는 웹툰으로 읽었는데, 웹툰이 훨씬 저렴하기는 하지만 종이책으로 읽는 게 나는 여러모로 더 좋은 것 같다(눈도 편하고 그림도 훨씬 크게 볼 수 있고...). 


만화의 주인공은 연애소설 읽는 교수 '장준우'이지만, 감정을 이입하며 읽게 되는 인물은 준우의 딸 '제경'이었다. 제경은 아버지가 자신의 동성 애인 '성민'과 독자 대 작가로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다. 제경보다 성민이 먼저 준우가 제경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평소 온화하고 침착한 성민이 뭔가를 숨기는 것 같은 모습에 제경은 성민이 바람을 피는 줄 오해하고 만다. 


사실 그동안 성민은 제경과 준우 몰래 제경의 어머니, 그러니까 준우의 죽은 아내 '은정'의 과거를 조사하고 있었다. 은정은 가족이라는 미명 아래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학대와 폭력을 고발하고, 완벽한 모성은 허구라는 내용의 데뷔작을 발표해 문단 내에서 큰 주목을 받았던 소설가이다. 그런 대단한 인물이 왜 지금은 쉬쉬하는 존재가 되었는지, 남편조차 자식들에게 은정의 존재를 비밀에 부쳤는지가 이 만화의 핵심이다. 


이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가족 관계의 피해자들이다. 준우와 은정이 그렇고, 제경과 성민이 그렇고, 제경의 동생 재은과 성민의 동생 성우도 그렇다. 준우를 힘들게 한 아버지와 은정을 학대한 어머니 역시 자신의 부모들로부터 고통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대물림된 고통과 상처가 개인을 만났을 때, 누구는 마음의 문을 닫고, 누구는 우울증을 앓고, 누구는 폭력 성향을 가지고, 누구는 집착하는 성격이 되고... 이런 식으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 건 왜일까. 


아내가 소설 쓰는 걸 싫어했던 준우가 아내를 여읜 후 연애소설에 빠지고, 연애소설에 빠질 만큼 사랑을 희구하지만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자들은 전부 차갑게 거절하고, (자신도 아버지가 반대하는 여자를 사랑했으므로) 사랑은 누가 강요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감정이라는 걸 잘 알면서 정작 제경에게 동성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이토록 약하고 어리석고 모순적으로 만드는 사랑.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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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기담 수집가 헌책방 기담 수집가
윤성근 지음 / 프시케의숲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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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이 배경이거나 서점 주인이 쓴 책들은 대체로 재미있다. 미국인 작가가 영국 서점 직원과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 <채링크로스 84번지>,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는 이야기를 담은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속초에서 3대째 운영 중인 동아서점 김영건 대표의 책 <당신에게 말을 걸다>, 대학로에서 시집 서점을 운영하는 유희경 시인의 책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 등이 생각난다. 


서울 은평구에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는 윤성근 대표의 책 <헌책방 기담 수집가>는 서점 주인이 쓴 서점 이야기 그 이상이다. 헌책방을 찾는 손님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찾는 책은 없지만 헌책방을 구경하다 눈에 띄는 책을 사는 손님이고, 다른 하나는 찾는 책이 있어서 일부러 헌책방을 찾아온 손님이다. 이 책에 나오는 손님들은 후자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잊을 수 없는 책. 개정판이 나왔지만 그때 그 판본으로 가지고 싶은 책. 그 사연을 들려주면 저자는 그 사연으로 수고비를 받은 셈 치고 그 책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나눠 받은 이야기가 모이고 엮여서 이 책이 되었다. 


책에 실린 사연들은 크게 사랑, 가족, 기담, 인생이라는 테마로 엮여 있다. 책 제목에 '기담'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어서 기담의 비중이 높을 줄 알았는데 기대에 비해 적다. 하지만 사랑이나 가족, 인생이라는 테마로 엮인 글들도 기담 못지 않게 신비롭고 환상적이다. 헌책방이 배경인 일본 소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이나 기담을 수집하는 주머니 가게의 이야기를 그린 미야베 미유키의 <미시마야 시리즈>가 생각나기도 했다. 하지만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과 <미시마야 시리즈>와 달리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모두 실화라는 거... 역시 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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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7-04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현실이 더 소설같아서 깜짝 놀랐어요. 책에 얽힌 이야기들이 참 애틋한 게 많더라구요.
 
예술과 중력가속도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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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작가 6인이 참여한 앤솔로지 <팬데믹 : 여섯 개의 세계>에 실린 배명훈 작가의 단편 <차카타파의 열망으로>를 읽고 너무 좋아서 배명훈 작가의 책들을 여러 권 사놓았던 적이 있다. 사놓기만 하고 읽지 않다가, 최근에 유튜브 <겨울서점>에서 김겨울 작가님이 배명훈 작가님에 대한 팬심을 토로하는 영상을 보고 마침내 읽기 시작. 아 근데 이 책, 재출간되면 잘 팔릴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다. 


키보드 자판에서 한글 자음 'ㄷ'을 사용할 수 없게 된 상황을 그린 데뷔작 <스마트D>, 조개 껍질에 적힌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나오는 <조개를 읽어요>, 작가가 직접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을 해본 경험에 기반해 쓴 <티켓팅과 타겟팅>, 달에서 온 무용가가 지구에서 무중력 상태의 공연을 실현하는 과정을 그린 표제작 <예술과 중력가속도> 등 SF 문학을 오랫동안 좋아해온 독자들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독자들도 흥미를 느낄 만한 작품이 다수 있다. 


SF 문학은 '과학'과 관련이 있지만,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을 보면 과학뿐 아니라 언어학, 사회학, 정치학, 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흔적이 느껴진다. 국가 제도나 정치 체제 같은 거시적인 크기의 사회 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인간의 삶을 규제하고 구속하고,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인간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지를 상상한다는 점에서, 배명훈 작가의 전공인 (국제) 정치학의 영향이 많이 느껴진다. 같은 정치학 전공자로서 너무나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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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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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을 오랫동안 읽어왔지만 성실하게 읽어온 독자는 아니라서, 출간되었을 때 만나지 못하고 나중에야 만나게 되는 책이 참 많다. 조해진 작가의 책들도 그렇다. 2004년에 등단한 작가인데 이제야 만나다니. 이래서 한국문학 좀 읽는다 하는 사람들은 다들 문예지를 구독하나 싶고, 나도 한 권 구독해야 하나 싶고... (참고로 이번 달 Axt 악스트 조해진 작가님 특집이라고 해서 바로 구입했다 ㅎㅎㅎ) 


아무튼 조해진 작가님의 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 요즘이고, 세 달 만에 <단순한 진심>, <완벽한 생애>, <환한 숨>, <빛의 호위>를 읽었는데, <빛의 호위>가 너무너무너무 좋았다(그 다음은 <환한 숨>). 특히 표제작 <빛의 호위>는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을 만큼 좋았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이나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연상케하는, 앞을 차분히 응시하며 천천히 나아가는 느낌의 작품이랄까. 현실의 고통을 담담하게 서술하면서도 왠지 모를 따뜻함이 느껴지는 내용이랄까. 아주 작은 호의가 절망에 빠져 있던 한 사람의 삶을 구하고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라는 점도 지극히 조해진 작가의 작품답다. 


최근작들의 단초가 아닐까 짐작되는 작품도 여럿 있다. 단편 <문주>를 확장한 이야기가 장편소설 <단순한 진심>인 것은 분명하고, <산책자의 행복>은 직장을 잃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한국인 주인공이 중국인과 소통하며 회복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완벽한 생애>와 연결된다. 1975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에서 착안해 쓴 <사물과의 작별>, 1967년 동베를린(동백림) 공작단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은 <동쪽 伯의 숲> 등은 역사적 폭력과 개인의 관계에 관심이 많은 조해진 작가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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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타오르다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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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덕질이지만, 덕질을 하는 매 순간이 행복한 건 아니다. 특히 남자 연예인을 덕질하는 경우에는, 덕질의 대상이 연예면이 아닌 사회면에 나올까 봐 늘 두렵다(열애설, 결혼 발표보다 더 두렵다). 경험자로서 말하건대, 최애가 사회면에 나올 때의 기분은 놀람, 충격 정도가 아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는 배신감,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나에 대한 실망, 그동안 쏟아부은 시간과 애정이 쓸모없게 되었다는 좌절... 그런데도 대상은 바뀔지언정 덕질은 계속되고, 하고 싶다는 것. 그게 가장 공포스럽고 환멸적이다. 


우사미 린의 소설 <최애 타오르다>는 아카리의 최애 남자 아이돌인 마사키가 팬을 때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시작된다. 논란이 커지면서 탈덕하는 팬이 속출하고 마사키의 팀 내 인기순위가 하락하는 상황이지만, 아카리는 소문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덕질을 한다. 팬들이 탈덕하면서 내놓은 마사키의 굿즈를 열심히 사들이고, 악플에 개의치 않고 마사키의 팬 블로그를 운영한다. 급기야 덕질에 빠져서 학업을 등한시하고 아르바이트도 게을리한다. 그런 아카리를 보다 못한 가족들마저 등을 돌린다. 


아카리와 마찬가지로 남자 아이돌을 덕질한 적이 있고, 최애가 사건 사고를 일으켜 논란의 중심에 서는 걸 본 경험도 있지만, 소설 초반에는 아카리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라면 아무리 최애라도 사람을(그것도 팬을) 때렸다는 소문을 들으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사실이라면 바로 탈덕할 것 같은데, 사실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더욱 맹목적으로 최애를 옹호하는 아카리의 모습이 신기했다. 하지만 이후 학교에서 쫓겨나고 가족들에게 버림받는 아카리를 보면서, 아카리에게 최애는 단순한 덕질의 대상이 아니라 의지할 곳 없는 세상에서 유일한 버팀목이자 계속 살아갈 이유를 제공하는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라는 이유로 딸을 속박하는 외할머니와 그런 엄마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 그런 엄마에게 사랑받는 딸이 되려고 기를 쓰고 사는 언니, 타지에서 산다는 핑계로 외도를 하는 아빠. 혈연인데도 나에게 고통을 주는 이들에 비하면, 아무 인연이 없는데도 나에게 기쁨을 주는 최애가 낫다고 여기는 마음. 나도 모르지 않는다. 아카리가 논란의 중심에 선 최애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옹호한 것은, 결점이 있고 사고를 치더라도 무조건적으로 보호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자기 자신의 마음이 투영된 것 아니었을까. 


최애와 함께 아카리 자신도 타오르는 결말이지만, 나는 이 결말이 새드엔딩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화상이 두려워 내내 미지근하게 사는 사람보다는 화상을 입을지라도 타오르는 것에 다가갈 용기가 있는 사람, 살면서 한 번은 스스로 뜨겁게 타오른 적 있는 사람이 훨씬 더 멋지고 '인간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카리가 부디 이 에너지로, 다음에는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뜨겁게 살아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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