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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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스릴러 작가 요 네스뵈의 대표작 '해리 홀레' 시리즈를 읽은 지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해리 홀레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이 어느새 열한 권을 넘었고, 신작이 나올 때마다 주인공 해리 홀레가 겪는 고통과 상실의 강도가 점점 높아져서 읽는 나도 괴로운데, 또다시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어김없이 읽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 ​이번에는 무슨 일이 해리를 힘들게 할지 궁금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저 해리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보다는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고 힘들게 만드는 시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살아남고, 살아가는 해리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이 시리즈를 계속 읽는 게 아닐까 싶다. 이는 해리 홀레 시리즈 12권에 해당하는 신작 <칼>을 읽으며 다시 한번 확인한 사실이다. 

해리 홀레 시리즈 11권 <목마름>에서 해리는 오랜 연인 라켈과 결혼하고, 경찰을 떠나 경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는 등 암울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새 출발을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오슬로에 전대미문의 연쇄살인범이 나타나는 바람에 해리는 또다시 경찰의 부름을 받고 결국 범인을 잡지만, 해리 자신의 삶은 수렁에 빠진다. ​ <칼>의 해리는 여전히 시름에 잠겨 있다. 라켈의 집에서 쫓겨난 해리는 한동안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한다. 절친 외위스테인이 일하는 바에서 술을 마시고 많이 취해서 사장 링달과 주먹다짐을 벌이기까지 한다. 문제는 그 후 언제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투성이가 된 손과 옷가지를 보아도 지난밤의 일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

한편 카트리네가 이끄는 오슬로 경찰청 강력반으로 복귀한 해리는 한 여성이 집에서 칼에 찔려 죽은 채로 발견된 사건에 투입된다. 남편이 범행을 자백했지만, 해리는 '약혼자'로 불리는 연쇄살인범 스베인 핀네의 소행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 며칠 후 카트리네의 부름을 받은 해리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듣게 된다. 또 한 명의 여성이 집에서 칼에 찔려 사망한 상태로 발견되었고, 피해자는 다름 아닌 라켈이라는 것을 말이다. 현장으로 달려간 해리는 크리포스의 수사팀장 올레로부터 해리가 피해자의 가족이라서 수사에 관여할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 별거 중이기는 해도 법적으로는 여전히 해리가 라켈의 남편이기 때문에 용의선상에 올랐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 ​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해리의 범인 찾기 과정은 전작들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그도 그럴 게 <칼>에서 해리가 잡아야 하는 범인은 해리가 가장 사랑한 연인이자 아내인 라켈을 죽인 사람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범인은 나(해리)일지도 모른다. 그 범인이 나여서는 안 된다... 또한 해리는 정직 상태라서 경찰 신분을 이용해선 안 되고, 혼자서 비공식으로 수사를 진행할 수 있을 뿐이다. 그야말로 사면초가, 암중모색이다. 

​ 사건 해결의 단초가 되는 것은 범인이 주로 사용한 흉기이자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칼이다. 칼이란 무엇인가. 칼은 총과 다르게 가해자와 피해자가 근거리에 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흉기다. 그러니 칼을 이용한 범죄 사건의 범인은 피해자와 가까운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이 점에 주목한 해리는 피해자 라켈의 주변인들을 중심으로 범인을 추리하기 시작한다. ​ 이 과정에서 해리는 자신이 알지 못했던 라켈의 삶과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라켈의 삶의 이면을 알게 된다. 그리고 라켈이 해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런 라켈에게 자신이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도 깨닫는다. 또한 해리가 그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무심결에 저질렀거나 고의적으로 했던 크고 작은 일들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 <폴리스>에서 올레그가 위험에 빠졌을 때 이 이상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는데(그러길 바랐는데), 나의 기대를 완전히 뒤엎는 이야기가 펼쳐져서 깜짝 놀랐다. 해리 홀레가 겪는 고통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더욱 점층되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계속해서 밀어닥치는 시련들에 비틀거리면서도 끝내 다시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가는 해리 홀레의 모습을 보는 것이 용기와 위안을 주는 면도 없지 않다. ​ 분량이 엄청난데도 읽기보다 읽기를 멈추는 게 힘들었을 정도로, 이야기 자체의 흡인력이 대단하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진행이 매력적이다. 아무래도 앞으로 해리 홀레 시리즈가 나오는 한, 끝까지 독자이자 팬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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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달리기
조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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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 조우리 작가님 편을 듣기 전에 구입한 책이다. 책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이 묘하게 낯익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작가님이 그동안 좋아해온 여자 연예인들의 이름에서 따왔다고(성희, 주현, 수영, 예리 등등) ㅎㅎㅎ 


이야기는 한 통의 초대장으로부터 시작된다. "살아서 하는, 저의 장례식에 초대합니다. 부디 저를 만나주세요." 발신인인 성희는 수신인인 일곱 조카들의 이모다. 이들은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서로를 이모 조카로 부르는 사이다. 레즈비언인 성희는 친자식은 없어도 자식처럼 아끼는 조카들에게 의지할 만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조카들이 어릴 때부터 그들에게 보탬이 되는 미션 편지를 보내고 그들이 미션에 성공할 때마다 보상을 제공했다. 마치 '키다리 아저씨'처럼. 또는 위기에 빠진 신데렐라에게 호박 마차를 보내준 마녀처럼. 


시한부 판정을 받은 성희는 조카들을 자신의 장례식에 초대하면서 그들 각자에게 마지막 미션을 제시한다. 폐업 위기에 놓인 가게를 구하라, 정성을 다해 유기된 거북을 돌보라, 장례식에 온 손님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라, 장례식 사회를 맡아라, 중학생 서퍼의 하와이 여행에 동행하라 등등. 갑작스럽게 미션을 통보받은 조카들은 당황하지만, 이내 성희 이모의 뜻을 헤아리고 미션 해결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조카들은 이어달리기의 주자가 배턴 터치를 할 때처럼, 그동안 안고 있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면서 한결 가볍고 후련해지는 경험을 한다. 


조카들보다는 성희 이모의 나이와 입장에 가까워서 그런가. 다 읽고 나니 성희 이모와 조카들의 관계보다 성희 이모 자신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 성희 이모는 어쩌다 이렇게 좋은 이모이자 어른이 되었을까. 돈이 많아서? 친구가 많아서? 그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성희 이모 자신이 비혼 여성 성소수자로 오십 가까이 살면서 온갖 '후려침'을 당했을 테고, 그때마다 다른 여성들은 이런 일을 당하지 않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을 것 같다. 그런 생각, 그런 마음이 여성들을 결국 미래로 데려간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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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5-30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온갖 후려침을 당하면 오히려 더 악착같아 지거나 독불장군이 되거나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보살필수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네요. 좋은 사람의 좋은 이야기를 읽는거 즐거울거 같아요. ^^
 
마침내 런던 - <채링 크로스 84번지> 헬레인 한프의 런던 여행
헬레인 한프 지음, 심혜경 옮김 / 에이치비프레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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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링크로스 84번지>의 작가가 쓴 런던 여행기라는 문구에 혹해 구입했다가, 며칠 전 도무지 잠이 오지 않던 밤에 책장에서 꺼내 읽었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자 너무 재미있어서 도리어 잠이 오지 않는 부작용이... 


저자 헬레인 한프는 1916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작가로 활동했다. 오랫동안 무명이었던 저자는 1949년부터 20년 동안 영국 런던 채링크로스 가에 위치한 마크스 서점의 직원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 <채링크로스 84번지>로 크게 성공했다. <채링크로스 84번지>가 영국에서 출간되면서 홍보를 위해 저자가 직접 영국에 가게 되었고, 이때의 기록을 담은 책이 <마침내 런던>이다. 


책 홍보를 위한 여행이었지만, 저자 자신에게는 생애 첫 영국 여행이었다. 오랫동안 문학, 특히 영국 문학을 애정해온 저자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기도 했다. 셰익스피어를 비롯해 영국인들조차 잘 모르는 영국의 작가나 문학 작품과 관련된 장소들을 찾아다니는 저자의 모습에서 '덕후'의 그것을 보았다고 말하면 실례일까(저도 덕후입니다...). 자신이 흠모하는 영국 문학을 읽고 자란 영국인들이 자신의 책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 느꼈을 기쁨과 감동을 상상하면 나까지 소름이 돋는다. 


좋은 책 한 권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여행이기도 했다. 무명작가였던 저자는 외국 여행을 꿈꾸기 힘든 형편이었다(여행을 위해 저축해온 돈도 병원 신세를 지느라 다 써버렸다). 그러다 <채링크로스 84번지>가 큰 성공을 거두자 영국의 출판사가 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영국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 여행 소식을 알리자 가족과 친구들은 물론이고 영국의 독자들과 영국에 지인이 있는 미국의 독자들까지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었다. 


실제로 저자의 런던 여행에는 <채링크로스 84번지>를 읽은 수많은 독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저자의 사인을 받거나 감사의 말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저자를 식사에 초대하고, 저자와 함께 연극을 보러 가고, 여행안내를 자청한다. 1970년대라서 가능했던 일인지 요즘에도 이런지는 모르지만, 부럽고 정겨운 풍경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책으로 연결되는 일만큼 멋진 일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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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티처 - 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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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서수진 작가의 단편이 마음에 들어서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다가 읽게 된 책이다. 등단작인 것 같은데(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아쉬운 점 하나 없이 너무 좋아서 왜 이제야 알게 되었나 싶다. 서수진 작가의 이전 작품들은 물론이고 이후에 발표될 작품들도 쭉 따라 읽을 생각이다. 


소설은 4명의 여성 비정규직 한국어 강사의 시점으로 대학 부속 한국어학당의 1년을 그린다. 석사 이상의 학력을 가진 이들은 몇 년 동안 취업 준비를 한 끝에 명문 H대 한국어 학당의 비정규직 상사로 채용되었다. 신입 강사인 '선이'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한국어 강사 시험에 합격해 겨우 취직했다. 어렵게 취직이 되었으니 무슨 일을 당해도 참겠다고 각오했지만, 선이가 맡은 베트남 특별반의 남학생이 불법 촬영한 선이의 사진을 '#Koreanhotgirl'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난처한 상황에 놓인다. 


이 밖에도 누가 뭐래도 할 말은 해야 하는 성격의 8년 차 베테랑 강사 '미주', 강의평가 1위를 놓치지 않는 인기 강사 '가은', 조산 위험이 있는데도 다음 학기 재계약이 안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책임강사 '한희'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채용 절벽 문제부터 비정규직 고용 문제, 시간강사 보호법 문제, 외국인 노동자 차별 문제, 임금 체불 문제 등 한국 사회의 노동 문제가 각각의 에피소드에 촘촘히 박혀 있다. 불법 촬영과 대학 내 성폭력, 임신과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문제 등도 나온다. 


일반적인 학교나 학원이 아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학당이 배경이라는 점에서 특수성이 엿보이지만, 이 소설은 대학을 비롯한 기업화된 조직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는 고학력 여성들의 보편적 삶을 그린 오피스물로 보인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취업 준비를 했지만, 안착한 직업은 비정규직 시간 강사. 이마저도 경쟁이 치열한 자리라서 임출육은 고사하고 병가 쓰기도 쉽지 않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 임용이 되지 않는 한 장래가 불안한 건 여느 비정규직 노동자와 마찬가지다. 


비슷한 조직에서 일해본 적이 있는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인물들의 이름 위로 아는 얼굴들이 떠올라서 혼났다. 일개 사무직이었던 내 눈에는 자격증도 있고 학위도 있는 강사님들이 부럽게만 보였는데, 이 소설을 읽고 그들에게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는 걸 알았다(다들 잘 계시려나). 문제는 고용주인 대학인데, 노동자들끼리 경쟁하고 싸우게 만드는 경향은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요즘 대학을 보면 (미래의 노동자인) 학생들조차 대학 노동자들을 적대시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라떼는) 대학 노조에서 집회하면 학생들이 도와주러 가기도 했는데... 


다시점 소설인 만큼, 같은 상황을 두고 인물들이 각자 자신의 성격이나 입장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보고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령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미주를 두고 누구는 분위기 흐린다고 불편해하는 반면 누구는 숨기는 것 없이 시원시원해서 좋다고 생각한다. 강의평가 1위를 놓치지 않는 가은에 대해 누구는 학생들에게 잘 보인 대가라며 질투하는 반면 누구는 그것도 실력이라고 존경심을 표한다. 다양한 여성들의 다양한 성격과 내면을 보여주는 점도 이 소설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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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트리플 8
최진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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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도시 같은 동네에 살아도 경험하는 세상은 각자 다르다. 하물며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살아도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최진영 작가의 소설 <일주일>의 단편 <일요일>에는 같은 동네에서 자라고 같은 성당을 다녔지만 각각 특성화고, 특목고, 일반계고에 진학하게 되면서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 세 친구의 이야기가 나온다. 


특성화고에 진학한 '나'는 처음엔 자기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하지만 주중 주말은 물론이고 방학에도 일만 하는 현실에 점점 지쳐간다. 현장 실습으로 가게 된 공장에선 어린 데다가 정식 직원도 아니라 어렵고 힘든 일만 떠맡는다. 이의를 제기하면 취업을 안 시켜주겠다, 앞으로 너희 학교 학생들은 안 받겠다 등등 협박 조의 말을 듣는다. 이런 직장에는 취업하고 싶지 않지만, 취업하지 않으면 다른 수도 없는 현실에 '나'는 점점 절망한다. 


이어지는 단편 <수요일>은 외국어고에 다니는 '나'가 실종된 친구 '지형'의 어머니로부터 추궁을 당하는 내용이다. 지형의 어머니는 지형이 공부밖에 모르는 모범생인 줄 안다. 하지만 지형의 가까운 친구인 '나'가 아는 지형은 다르다. 지형은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자신을 루저 취급하는 부모를 경멸하지만, 어느샌가 자신도 부모처럼 친구를 성적에 따라 사귀거나 버리고 있음을 깨닫고 환멸을 느낀다.


마지막 단편 <금요일>은 자퇴를 고민 중인 일반계고 학생 '나'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혼한 엄마와 여동생, 외할머니와 살고 있는 '나'는 학교생활이 너무나 괴롭다. 재미도 없고 왜 배우는지도 모르겠는 과목을 매일 몇 시간씩 공부하고 있는 현실이 지겹다. 차라리 이 시간에 자신의 적성을 탐색하고,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아서 그에 따른 준비를 하고 싶다. 그런 뜻을 전하자 엄마의 반응은 당연히 반대. 하지만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허락해 줄 듯도 한데... 


당장 생존하기도 힘든 상황에 놓인 <일요일>의 '나'에 비하면, 특목고에 다니는 '나'나 일반계고에 다니는 '나'의 상황은 일견 편하게도 보인다. 그러나 (특목고는 안 다녀봐서 모르겠고) 일반계고에 다녀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곳 또한 지옥이라는 것을... 고등학교 때는 대입만을 목표로 어찌어찌 견뎠다고 해도, 대학교에 들어가면 등록금 고민에 대출 빚에 취업 전쟁에... 이런 게 삶이라면 왜 살아야 하는 걸까,라는 고민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있다면 부럽습니다). 


처음 청소년 대상 소설을 썼을 때나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이나 별로 바뀌지 않은 현실에, 이제는 분노보다 미안함을 느낀다는 작가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나 또한 이제는 청소년이었던 시절에서 멀리 떠나온 어른이자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함을 느낀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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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24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