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송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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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현 작가님의 첫 소설집이다. 산문집 <동해 생활>,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을 먼저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었는데, 연결되는 점이 많아서 재미있었다.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을 읽고, 이 작가님은 가족 드라마를 잘 쓰신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도 그랬다. 우울증에 걸린 언니가 나오는 <선인장이 자라는 일요일들>, 제목 그대로 좀비가 되어버린 아버지가 나오는 <좀비 아빠의 김치찌개 조리법>, 엄마와 목욕탕에서 만난 이모들의 이야기를 그린 <흔한, 가정식 백반> 등 소위 '정상 가족'이라고 보기 힘든 형태 또는 상태의 가족들이 등장하는 소설이 꽤 있고, 재밌었다. 


표제작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구석기 식단의 유행이 돌아올 때>, 데뷔작 <펑크록 스타일 빨대 디자인에 관한 연구> 등은 송지현 작가의 또 다른 주특기라고 할 수 있는, 청춘 드라마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탐정과 오소리의 사건 일지>라는 연작도 실려 있는데, 이 작품들도 재미있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얄궂게도 문학평론가 신샛별 님이 쓴 평론 중에서도 마지막 글이다. "나는 이 작가에게 눈물을 빚진 적이 있다."로 시작하는 글인데, 이 글에 묘사된 상황과 정서가 너무나 송지현 작가님의 소설 속 그것 같아서 신기했다. 역시 글은 사람을 닮고, 사람은 글을 닮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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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는 거절하지 않습니다
김남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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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듣는 팟캐스트 <오지은의 이런 나라도 떠나고 싶다>에 여행작가 김남희 님이 출연하셨다. 한때 김남희 작가님 책을 열심히 읽었더랬지, 라고 생각하면서 신간이 있나 찾아보니 마침 있었다. 작년 11월에 출간된 산문집 <호의는 거절하지 않습니다>. 팬데믹 때문에 여행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여행가로서 여행작가로서 프리랜서 노동자로서 겪은 어려움과 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 기쁨들에 관해 쓴 책이다. 


저자가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한 건 서른네 살 때의 일. 그 전까지는 착실하게 회사에 다니고 결혼도 하는 등 남들 눈에 '정상적'으로 보이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이혼과 퇴사를 겪으며 자신이 진정으로 살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고, 생각 끝에 여행이라는 답을 얻어 그 길로 전세금을 빼서 무작정 배낭을 매고 외국으로 떠났다. 다행히 여행을 하면서 쓴 몇 권의 책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넘치지는 않아도 부족하지는 않게 살았는데, 팬데믹 때문에 여행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여행가, 여행작가로서의 삶도 멈추어버리고 말았다. 


이 시기에 저자를 살린 건 주변 사람들의 '호의'였다. 그 전까지 저자는 스스로를 혼자라고 생각했다. 남편도 없고 아이도 없고, 직장에 매인 몸도 아니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하지만 팬데믹이 시작되고 벌이가 없어진 저자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주변의 여러 사람이 자진해서 돈을 빌려준다고 하거나,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거나, 돈 대신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을 보내준 것이다. 늘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호의와 친절에 기대어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걸 여실히 깨닫는 경험이었다. 


주변으로부터 받은 호의와 친절을 기반으로, 저자는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방과후 산책단과 에어비앤비다. 방과후 산책단은 저자처럼 여행하고 싶은데 코로나 때문에 여행하지 못해서 몸과 마음이 드릉드릉한 여성들을 모집해 전국 방방곡곡을 산책하듯 여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에어비앤비는 베테랑 여행가인 저자가 그동안 경험한 숙소들의 장점만 모아서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산책단 멤버들도 그렇고, 에어비앤비 손님들도 그렇고, 정말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있단 말야? 싶을 정도로 좋은 사람들뿐이라 신기했다. 저자가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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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랫동안 못 갈 줄 몰랐습니다 - 신예희의 여행 타령 에세이
신예희 지음 / 비에이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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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데믹이라지만,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확진자 수를 보면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도, 예전에 비해 턱없이 높아진 여행 물가를 내 텅장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그래서 요 며칠 동안 여행 에세이를 열심히 읽었다. 제일 먼저 완독한 책은 신예희 작가님의 <이렇게 오랫동안 못 갈 줄 몰랐습니다>. '여행 타령 에세이'라는 부제답게, 팬데믹 시기에 여행을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마음을 담아서 쓴 책이다. 


이 책에 실린 글은 크게 두 개의 주제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저자의 여행 이력이다. 대학생 때 한 달 동안 유럽 배낭 여행을 떠난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수많은 나라를 수많은 형태로 여행해온 저자.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진짜' 첫 번째 여행은 1999년 11월의 태국 방콕 여행이라고 한다. 살면서 처음으로 혼자서 2주라는 긴 시간을, 그것도 한 도시 안에서 보낸 이후로 여행 스타일이 크게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바뀌었다고. 대체 태국에 어떤 매력이 있길래, 다들 태국에 갔다 온 후로 인생이 달라졌다고 하는 걸까. 나도 가보고 싶다...! 


두 번째는 저자의 여행 취향이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고 취향이 다른 만큼, 여행 스타일도 다를 수밖에 없다. '엄격한 관리자'로 불리는 ESTJ 유형인 저자는 출발하기 전에 숙소를 싹 다 예약해두지 않으면 마음이 안 놓이고, 가고 싶은 곳과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미리 만들어놔야 직성이 풀린다고. 계획에 없는 일, 즉흥적인 일을 싫어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기억에 남는 일은 대체로 바로 그 계획에 없는 일, 즉흥적인 일인 걸 깨닫고, 요즘은 융통성 있게 일정을 짠다. 


여행은 다른 나라, 다른 지역의 문화와 풍습을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여행 초보 시절, 저자는 다른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배낭을 매고 맥가이버 칼을 가져갔다. 여행 경험이 쌓인 지금은 무겁고 불편한 배낭 대신 캐리어를 애용하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현지에서 조달하는 편이다. 한국에선 시도해 본 적 없는 노브라와 레깅스를 시도해 봤고, 이제는 여행지에서 입던 화려한 드레스를 한국에서 평상복으로 입고 다닌다. 이런 즐거움과 깨달음을 주는 여행을 언제 다시 떠날 수 있을까. 떠나고 싶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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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작귀 1 (그림책 포함 특별판) - 먼가 작고 귀여운 녀석
나가노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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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곰> 시리즈의 나가노 선생님의 또 다른 대표 캐릭터 '치이카와' 시리즈가 <먼작귀(먼가 작고 귀여운 녀석)>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정식 출간되었다. <먼작귀> 1권과 그림책이 결합된 특별판과 <먼작귀> 1권으로만 구성된 일반판이 있는데, 나는 특별판으로 읽었다. 그림책만 따로 구입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구입하고 싶은 분들은 얼른 특별판을 구입하셔야 할 듯...! (초판 한정 PP 스탠드도 증정한다. 이것도 매우 귀여움 ㅎㅎㅎ) 







이야기의 주인공은 치이카와, 가르마, 토끼다. 이들 셋은 '먼가 작고 귀여운 녀석'으로서 평생 사랑받고 대접받는 것이 소원인데, 현실은 이들을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매일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 원하는 만큼 늘어지게 자고 싶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서 괴로워지고 힘들어진다. 그래도 또 다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늘어지게 자고 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방긋방긋 웃으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먼작귀들. 너무 귀엽다 ㅎㅎㅎ 







농담곰 시리즈도 음식 이야기가 많은데 먼작귀 시리즈도 만만치 않다. 초반부터 피자 호빵, 푸딩, 밤만쥬, 핫케이크, 타코, 연어포, 치즈, 야쿠르트, 쿠키, 컵라면 등등 온갖 맛있는 음식들이 줄줄이 나와서 공복에 보면 살짝 힘들지도. 먼작귀 그림책 <와삭 냠 꿀꺽>도 음식 이야기, 먹는 이야기라서 뭐라도 먹고 나서(혹은 먹으면서) 책을 보는 걸 추천한다. 버터 바른 식빵과 신선한 회초밥, 갓 구운 쿠키의 공격을 나만 못 이겨낸 게 아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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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삶
정소현 지음 / 창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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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삶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고 믿는 진실들은 과연 사실일까. 정소현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질문이다. 2019년에 출간된 소설집 <품위 있는 삶>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이 책에는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혹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표제작 <품위 있는 삶, 110세 보험>의 화자는 알츠하이머병 환자이고, <어제의 일들>의 화자는 과거를 잃어버린 상태다. <어제의 일들>과 이어지는 <지옥의 형태>의 화자 역시 딸과 관련된 중요한 기억을 잃었거나 흑은 스스로 잊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그 밑, 바로 옆>의 화자는 자신을 납치한 여자를 할머니처럼 따르며 평생을 살았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고, <엔터 샌드맨>의 화자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를 죽게 한 사람을 남편으로 맞았다는 걸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알게 된다. 심지어 <꾸루루 삼촌>의 화자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깨닫는다. 


이러한 소설들을 읽다 보면, 나는 나를 선별된 기억 또는 망각에 의해 부분적으로만 인식할 수 있을 뿐이고, 나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인식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나 자신도 똑바로 보지 못하면서 남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고 오해하고 미워하고 싸우는 일은 얼마나 오만하고 어리석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걸 알면서, 오늘도 남을 함부로 재단하고 평가하며 살아가겠지. 그래도 그 빈도와 속도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어서, 매일 틈틈이 소설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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