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제철은 지금
섬멍 지음 / 창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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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둘이 집에서 직접 음식 해 먹고 사는 이야기인데 참 좋다. 동성 커플이 주인공인 음식 만화라는 점에서 요시나가 후미의 만화 <어제 뭐 먹었어?>(이 만화도 참 좋다)를 떠올리는 독자들도 많을 텐데, <어제 뭐 먹었어?>의 시로, 켄지와 달리 <우리의 제철은 지금>의 섬멍, 망토는 나처럼 경제적,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비혼+여성+프리랜서라서 공감 가는 대목이 훨씬 더 많았다.


이 책은 매주 마감에 쫓기는 만화가 섬멍이 파트너 망토와 제철 음식을 해먹는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마감을 하느라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져도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는 섬멍은 직접 구입하거나 남이 가져다준 제철 식재료를 활용해 도루묵구이, 죽순게살밥, 스튜, 마라샹궈, 해파리냉채 등 다양한 음식을 해먹는다. 푸드트럭에서 산 목삼겹 바비큐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모든 음식은 집에서 직접 해먹는다. 


(고향의 맛) 다시다로 냉면 육수 만드는 법, 둥글게 국수 마는 법, 비닐 묶는 법 등 소소하지만 유용한 살림 팁도 종종 나온다. 섬멍, 망토 커플의 이야기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음식 이야기도 맛있어서 2권, 3권...n권도 보고 싶다. 그 때까지 섬멍 작가님의 다른 만화를 읽으며 기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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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레모사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8
김초엽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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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성숙도는 나이에 비례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요즘은 나보다 어린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김초엽 작가의 책을 읽을 때도 그렇다. 김초엽 작가가 나이는 나보다 7살 어린데, 사고의 넓이와 통찰의 깊이는 7배 이상이다. 인생 2회차, 아니 7회차 느낌. 


<므레모사>는 김초엽 작가의 첫 호러 소설이자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한쪽 다리를 잃은 무용수 '유안'은 공장에서 유독성 화학물질이 유출되는 사고가 있은 후 사람들은 죽고 좀비들만 남았다는 소문이 무성한 이르슐의 도시 므레모사로 여행을 가게 된다. 유안과 함께 여행을 간 사람들은 관광학 연구자, 다크 투어리스트, 여행매거진 기자, 여행 유튜버, 의문의 남자까지 모두 다섯 명. 힘들게 므레모사에 도착한 이들은 계속해서 이상한 일들을 겪는다. 


소설 초반부터 '다크 투어리스트'라는 단어가 등장하기도 하고, 작가 자신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다크 투어리스트 : 어둠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소설의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기도 해서, 나는 이 소설이 다크 투어리즘의 실체나 폐해를 폭로하는 전개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다크 투어리즘은 소설의 소재일 뿐 핵심이 아니었다. 


오히려 핵심은 소설에서 재난 또는 장애로 대표되는 '비정상'의 상태를 그 자체로 인정하지 않고 '정상성'을 수호하기 위해 제거하거나 은폐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끔찍한 사고로 인해 폐허가 된 지역으로 '놀러'오고, 의족을 달고 춤을 추는 무용수를 보면서 내 처지가 저 사람보다는 낫다고 위로하는 사람들의 무신경함과 오만함,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어떤 이들은 그렇게 적극적으로 삶을 거부하는가. 왜 비이성적으로 스스로를 해치려 드는가."(174쪽)라는 질문에 "내가 바라는 건 죽음이 아니었다. 나는 삶을 원했다. 누구보다도 삶을 갈망했다. 단지 다른 방식의 삶을 원할 뿐이었다."(175쪽)라고 답하는 인물과 이 문장들을 쓴 작가와 이 문장들을 읽고 공감하는 나. 여기가 재난지가 아니라면, 대체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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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심령학자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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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의 즐거움 중 하나는 소설에 나오는 공간을 상상하는 것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상상하는 재미도 크지만, 실재하고 직접 가본 적도 있는 공간이 등장할 때는 그 기분이 남다르다. 일상의 배경으로만 여겼던 공간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떠올리면서 잊고 있던 감각이 되살아나는 느낌을 느낀달까. 현실이 소설 같고 소설이 현실 같아서 황홀하고도 어지럽달까. 


배명훈 작가의 소설 <고고심령학자>를 읽으면서 그런 기분을 자주 느꼈다. 이 소설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 높이가 30미터 이상인 거대한 성벽이 갑자기 출몰하면서 시작된다. 문제 해결을 위해 고고학적인 문제를 심령학적인 수단으로 해결하는 고고심령학자가 소환되는데, 그가 바로 조은수다. 은수는 한국고고심령학계를 대표했던 문인지 박사의 유일한 제자로, 사건 해결을 위해 스승이 남긴 자료들을 살피기 시작한다. 


문 박사의 자료를 살피던 은수는 성벽이 출몰하는 '위치'에 주목한다. 성벽이 나타나는 장소는 서울 종로도 강남도 아닌, 용산이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용산이 어떤 곳인지 밝힐 수 없지만, 용산이 한강변이라는 지리적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수도가 되지 못한(될 수 없었던) 이유를 알고 나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새 대통령은 왜 하필 거기로 집무실을 옮겼을까 싶고... 


이 소설에는 용산 이야기 외에도 소백산 천문대, 장기와 코끼리, 구전동요 등 다양한 소재가 등장한다. 조은수 외에도 김은경, 문인지, 한나 파키노티 등 멋진 여성 캐릭터들이 활약을 펼친다. 그러나 소설을 다 읽고 가장 많이 생각나는 건 용산이라서, 앞으로 용산에 가거나 용산을 지나갈 때마다 이 소설이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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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 읽는 교수 2
안그람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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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에 1권을 읽고 너무 좋아서 다음 권 모두를 장바구니에 넣어두었으나 결제를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2권을 사서 읽었다. 3권부터 5권까지는 웹툰으로 읽었는데, 웹툰이 훨씬 저렴하기는 하지만 종이책으로 읽는 게 나는 여러모로 더 좋은 것 같다(눈도 편하고 그림도 훨씬 크게 볼 수 있고...). 


만화의 주인공은 연애소설 읽는 교수 '장준우'이지만, 감정을 이입하며 읽게 되는 인물은 준우의 딸 '제경'이었다. 제경은 아버지가 자신의 동성 애인 '성민'과 독자 대 작가로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다. 제경보다 성민이 먼저 준우가 제경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평소 온화하고 침착한 성민이 뭔가를 숨기는 것 같은 모습에 제경은 성민이 바람을 피는 줄 오해하고 만다. 


사실 그동안 성민은 제경과 준우 몰래 제경의 어머니, 그러니까 준우의 죽은 아내 '은정'의 과거를 조사하고 있었다. 은정은 가족이라는 미명 아래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학대와 폭력을 고발하고, 완벽한 모성은 허구라는 내용의 데뷔작을 발표해 문단 내에서 큰 주목을 받았던 소설가이다. 그런 대단한 인물이 왜 지금은 쉬쉬하는 존재가 되었는지, 남편조차 자식들에게 은정의 존재를 비밀에 부쳤는지가 이 만화의 핵심이다. 


이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가족 관계의 피해자들이다. 준우와 은정이 그렇고, 제경과 성민이 그렇고, 제경의 동생 재은과 성민의 동생 성우도 그렇다. 준우를 힘들게 한 아버지와 은정을 학대한 어머니 역시 자신의 부모들로부터 고통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대물림된 고통과 상처가 개인을 만났을 때, 누구는 마음의 문을 닫고, 누구는 우울증을 앓고, 누구는 폭력 성향을 가지고, 누구는 집착하는 성격이 되고... 이런 식으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 건 왜일까. 


아내가 소설 쓰는 걸 싫어했던 준우가 아내를 여읜 후 연애소설에 빠지고, 연애소설에 빠질 만큼 사랑을 희구하지만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자들은 전부 차갑게 거절하고, (자신도 아버지가 반대하는 여자를 사랑했으므로) 사랑은 누가 강요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감정이라는 걸 잘 알면서 정작 제경에게 동성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이토록 약하고 어리석고 모순적으로 만드는 사랑.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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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기담 수집가 헌책방 기담 수집가
윤성근 지음 / 프시케의숲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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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이 배경이거나 서점 주인이 쓴 책들은 대체로 재미있다. 미국인 작가가 영국 서점 직원과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 <채링크로스 84번지>,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는 이야기를 담은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속초에서 3대째 운영 중인 동아서점 김영건 대표의 책 <당신에게 말을 걸다>, 대학로에서 시집 서점을 운영하는 유희경 시인의 책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 등이 생각난다. 


서울 은평구에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는 윤성근 대표의 책 <헌책방 기담 수집가>는 서점 주인이 쓴 서점 이야기 그 이상이다. 헌책방을 찾는 손님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찾는 책은 없지만 헌책방을 구경하다 눈에 띄는 책을 사는 손님이고, 다른 하나는 찾는 책이 있어서 일부러 헌책방을 찾아온 손님이다. 이 책에 나오는 손님들은 후자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잊을 수 없는 책. 개정판이 나왔지만 그때 그 판본으로 가지고 싶은 책. 그 사연을 들려주면 저자는 그 사연으로 수고비를 받은 셈 치고 그 책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나눠 받은 이야기가 모이고 엮여서 이 책이 되었다. 


책에 실린 사연들은 크게 사랑, 가족, 기담, 인생이라는 테마로 엮여 있다. 책 제목에 '기담'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어서 기담의 비중이 높을 줄 알았는데 기대에 비해 적다. 하지만 사랑이나 가족, 인생이라는 테마로 엮인 글들도 기담 못지 않게 신비롭고 환상적이다. 헌책방이 배경인 일본 소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이나 기담을 수집하는 주머니 가게의 이야기를 그린 미야베 미유키의 <미시마야 시리즈>가 생각나기도 했다. 하지만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과 <미시마야 시리즈>와 달리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모두 실화라는 거... 역시 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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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7-04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현실이 더 소설같아서 깜짝 놀랐어요. 책에 얽힌 이야기들이 참 애틋한 게 많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