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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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 시인의 산문집 <계절 산문>을 읽다가 한 대목이 마음에 걸렸다. 어린 시절 누나가 한 행동에 대해 누나에게 이유를 묻고 싶은데 '영원히' 물을 길이 없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누나가 살아있다면 물을 길이 있을 텐데, 물을 길이 없다는 걸 보면 누나가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갔다는 것일까. 아마도 그 사연이 박준 시인의 다른 책에 나와있을 것 같아서, 박준 시인의 첫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황급히 구입해 읽었다. 나온 지 5년이나 지난 책을 여태 읽지 않은 건, 아마도 이 책이 너무 유명해서 스스로 읽었다고 착각한 탓이리라. 


책을 읽어보니 예상대로 누나의 죽음에 대한 언급이 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누나. 남겨진 가족들은 황망한 마음을 어찌해야 할 줄 모른 채 주어진 삶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나 역시 갑자기 잃은 사람이 있고, 몇 년이 지나도록 그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상태라, 이 책에 실린 글이 남의 이야기처럼 읽히지 않았다. 그와 함께 걸었던 길, 그와 함께 먹었던 음식들. 그와 나누었던 미래의 꿈들... 그 모든 게 나만의 것으로 남았다는 게, 저자의 표현대로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울지 않고는 말할 수 없을 만큼 괴롭고 슬프다. 


이 책은 첫 번째 산문집이라서 그런지, 저자의 개인사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가족과 유년 시절에 대한 이야기도 많고, 시인이 되기까지 생계를 위해 했던 일들이나 영영 시인이 되지 못할까 봐 불안해 했던 날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저자가 수학능력시험을 보기 전 날 아버지에게 들었다는 말 - "내일 시험을 보면 대학에 갈 것이고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을 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을 공산이 큰데 얼핏 생각하면 그렇게 사는 것이 정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너무 불행하고 고된 일"이며 "더욱이 가족이 생기면 그 불행이 개인을 넘어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번져나가므로 여기에서 그 불행의 끈을 자르자"라는 - 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중요한 시험을 앞둔 자식에게 그런 말을 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것이며, 그런 말을 하기까지 그가 살아온 삶은 어떠했을지, 듣지 않아도 들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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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제로 - 마음의 중심을 잡고 평온을 찾는 시간
박현순 지음 / SISO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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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나는 명상, 마음챙김 등의 키워드에 매우 관심이 많다. 이 책은 예스24 북클럽 인기 도서 목록을 보다가 명상에 관한 책처럼 보여서 읽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저자 박현순은 고3 때 상담사가 되겠다고 정하고 대학,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학부 시절 우연히 게슈탈트 심리학에 기반한 상담을 받고 매료되어 지도자 과정을 수료했다. 


저자는 자신의 상담실로 찾아온 내담자와 상담할 때 실제로 행하는 5주 간의 상담 과정을 이 책에 담았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마음의 문제는 과거에 해소되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한 미해결 과제 때문인 경우가 많다. (저자는 이를 테트리스에 비유한다. 한 칸만 비어도 한 줄 전체가 제거되지 않는 테트리스...) 그리고 그 문제는 지금의 내가 그 문제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상당 부분 해소된다. 알아차리기 위해선 과거의 일들 위에 덮여있는 시간의 더께를 걷어내야 한다. 이 작업을 수월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상담과 명상이다.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실제 경험을 소개한다. 어린 시절 가정과 학교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던 저자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20년을 넘게 심리학을 공부해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그러다 상담 과정에서 초등학교 고학년 때 학교에서 겪은 일을 떠올렸고, 그 일이 바로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힌 미해결 과제임을 깨달았다.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간단치 않았다. 이제는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저자는 문제를 해결했다. (감동적인 대목이니 책으로 읽으시길...) 


이 책에 나오는 개념이나 용어들은 사실 새로운 것들이 아니다. 알아차림, 내면 아이, 게슈탈트 심리학 모두 예전에 들어본 것들이고 그 의미를 어렴풋이 알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가 20년 넘게 심리학을 공부하고 실제 상담을 하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정리한 내용을 읽으니, 비로소 심리학이 왜 필요하고,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내면 아이를 만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게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저자의 다음 책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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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여행으로 만난 일본 문화 이야기 2 - 책과 일본 여행으로 만나보는 스물두 개의 일본 문화 & 여행 에세이 책과 여행으로 만난 일본 문화 이야기 2
최수진 지음 / 세나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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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도 있지만, 일견이 불가능할 때는 백문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 일본에 직접 가기 힘든 요즘 같은 시국에는, 일본 작가가 쓴 소설이나 일본에 관한 책, 일본 여행 경험담 등을 접하면서 간접적으로나마 일본에 대해 공부하고 이해하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세나북스 최수진 대표의 책 <책과 여행으로 만난 일본 문화 이야기>가 바로 그런 책이다. 


저자는 20대 후반에 다녀온 일본 어학연수를 계기로 일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2015년부터는 1인 출판사를 설립해 일본 관련 에세이를 여러 권 출간하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저자는 일본에 관한 책과 기사를 꾸준히 읽으며 일본을 알아가는 중이다. <책과 여행으로 만난 일본 문화 이야기> 2권에는 바로 그러한 내용이 담겨 있다. 


저자는 자신의 관심사에 부합하는 일본 작가의 책이나 일본에 관한 책들을 부지런히 탐독한다. 출판사 대표로서 무인양품, 도큐핸즈 같은 기업들의 성공 비결을 배우기도 하고,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로서 무라카미 하루키, 아사다 지로 같은 유명 작가들의 인기 요인을 분석하기도 한다. 한국의 워킹맘으로서 일본의 워킹맘들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일본이 과학 분야에서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이유가 무엇이며, 한국도 과학 분야에서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 교육해야 하는지도 책으로 배웠다.


책의 후반부에는 저자의 일본 여행기가 나온다. 크게 미야자키 여행기와 도쿄 여행기로 나뉘는데, 미야자키는 아름다운 자연과 가족 단위 여행객들을 위한 온천, 료칸 시설로 유명하고, 도쿄는 알다시피 일본의 수도로서 다수의 관광 명소를 보유하고 있다. 볼거리 놀거리 먹을거리 등등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향후의 여행 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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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의 인생
카트린 퀴세 지음, 권지현 옮김 / 미행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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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 책을 사게 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데이비드 호크니라는 이름에 눈길이 갔을 테고, 유명한 화가이니 한 번쯤 제대로 그에 대해 공부해두면 언젠가 도움이 될 거라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이유로 샀을 거라는 짐작이 갈 뿐이다. 


그런데 이 책, 기대한 것보다 훨씬 좋았다. 내가 데이비드 호크니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그의 이름과 대표작 몇 점뿐이라서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데이비드 호크니의 출생부터 현재에 이르는 삶을 비교적 세세히 알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처음에는 어떤 식으로 작업했고 중간에 어떤 과정을 거쳐 변화했으며 현재는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까지 총체적으로 알 수 있어 유용했다. 


작가의 문장이 좋고 번역이 매끄러워서 잘 읽히기도 했겠지만, 데이비드 호크니라는 인물의 삶 자체가 워낙 드라마틱해서, 마치 드라마를 볼 때처럼 계속 다음 전개를 궁금해하며 읽기도 했다. 영국 북부 시골 마을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미술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지만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장학금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소년. 그런 소년이 우여곡절 끝에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하고, 금메달을 따고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인정받으며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이야기. 이보다 더한 드라마가 있을까. 


데이비드 호크니는 또한 성소수자다. 보수적인 영국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고 살다가, 미국에선 오히려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이 개성을 넘어 매력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때부터 자신의 성정체성을 감추지 않고 전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연애를 즐겼으며, 화가로서도 전통이나 시류, 평론가들의 지적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마음껏 표현한 점이 좋았다. (그러나 그 과정은 매우 자기 절제적이고 치열하다. 대단한 워커홀릭...)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작년에 서울에서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 & 줄리안 오피 전시회에 못 간 게 너무너무 아쉽다. 그 때 갈까 말까 고민하다 안 갔는데, 역시 할까 말까 고민되는 건 하는 편이 나은 건가. 불행 중 다행인 건, 국내에 데이비드 호크니 관련 책들이 제법 많이 출간되어 있어서, 다음 전시회가 열릴 때까지(열린다면) 그 책들을 읽으면 될 것 같다는 거... 근데 다들 비싸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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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처
파울로 코엘료 지음, 김동성 그림,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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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로 알게 되어 한동안 열심히 읽다가 십여 년 넘게 읽지 않았던 작가다. 그러다 최근에 이 책을 선물받아 읽게 되었는데, 그동안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아니면 그동안 열심히 책을 읽어서 그런가,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여서 신기했다. 


그 중 하나는 파울로 코엘료가 자신의 경험에 기반한 글을 쓴다는 것이다. <연금술사>를 처음 읽었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이 글을 쓰려고 조사하다 알게 된 사실에 따르면, 파울로 코엘료가 <연금술사>를 쓴 것은 그 자신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순례한 직후라고 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어디인가. 그곳은 내가 좋아하는 여행 작가 김남희 님이 오래 전 자신의 책을 통해 소개한, 산티아고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이다. <연금술사>를 처음 읽었을 때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몰랐는데 이제는 알고 있으니, <연금술사>를 다시 읽으면 느낌이 색다를 것 같다. 


<아처> 역시 파울로 코엘료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언젠가 저자가 생마르탱에서 궁도를 수련하던 중, 그 모습을 본 레오나르두 오이티시카라는 사람이 그에게 이 책의 아이디어를 주었다고 한다. <아처>는 마을에 도착한 이방인이 소년에게 이 나라 최고의 궁사인 '진'이라는 사내를 찾으러 왔다고 말하면서 시작된다. 소년은 마을에 같은 이름의 사내가 있지만 그는 평범한 목수이며 그가 활을 든 모습은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방인의 간청에 굴복한 소년은 결국 이방인을 진에게 데리고 간다. 


알고 보니 진은 이 나라 최고의 궁사가 맞았고, 진의 실력을 눈으로 확인한 소년은 진에게 궁도를 가르쳐 달라고 청한다. 진은 직접 활과 화살을 들고 가르치는 대신, 정제된 말로 궁도의 핵심을 전한다. 그리고 이는 다른 기술들의 핵심과도, 인생의 진리와도 통한다. 진은 가르침을 마무리하면서 "계속해서 화살을 쏘아야만 이 모든 것을 깨우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덧붙인다. 좋은 글, 좋은 책을 아무리 많이 읽은들 삶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는 말로 들려서 뜨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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