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고 고른 말 - 카피라이터·만화가·시인 홍인혜의 언어생활
홍인혜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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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 때는 홈페이지로, 삼십 대 후반인 지금은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루나파크 님의 웹툰을 꾸준히 보고 있는 팬이다. 루나파크 님 하면 떠오르는 것은 그림체와 글씨체가 깔끔하고 귀엽다는 것과 더불어 N잡이 유행하기 전부터 낮에는 직장인(광고회사 카피라이터)으로 밤에는 웹툰 작가로 활동했다는 것, 민트가 유행하기 전부터 민트색 애호가였다는 것, 다꾸가 유행하기 전부터 자체 제작 다이어리를 출시했다는 것, 외국에서 한 달 살기가 유행하기 훨씬 전에 영국에서 무려 8개월을 살다 왔다는 것 등이다. 


그래서일까. 내게는 루나파크 님 하면 유행을 앞서가고 남들보다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정작 루나파크 님 자신은 스스로를 모범생 중의 모범생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살아오신 면이 있는 듯하다. 최근에 발표한 산문집 <고르고 고른 말>에 따르면 그렇다. 


저자는 휴학 한 번 없이 정규 교육을 마치고 대학 졸업을 하기도 전에 취업이라는 미션을 완수했다. '갓생'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부터 국내 유명 광고 회사 카피라이터인 동시에 잘나가는 웹툰 작가인 '갓생러'였다. 큰 일탈은커녕 작은 반항이나 사고도 없이 평생을 살아왔다. 그랬던 저자에게 여러 가지 시련이 한꺼번에 닥쳐왔다. 번아웃이 와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전세 사기를 당해 그동안 번 돈을 모두 잃을 위기에 놓였다. 가까운 가족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결혼을 생각했던 사람과 헤어졌다. 


그즈음 시를 만났다. 직업이 카피라이터인 만큼 글쓰기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를 써보니 쉽지 않았다. 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주로 써온 저자로서는 감정적이고 추상적인 시의 세계가 낯설고 어려웠다. 그런데 시가 자꾸 생각났다. 열심히 쓰다 보니 시가 제법 쌓였고, 쌓인 시들을 공모전에 제출했더니 덜컥 등단이 되어버렸다. 남들은 결혼이나 출산을 하거나 회사에서 높은 직위에 오르거나 집을 사거나 재산을 늘리는 나이에 생각지도 않았던 시인이 되었지만, 민망하거나 부끄럽기는커녕 자유롭고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시인이 된 것으로, 더 이상 모범생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았다. 


시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 힘든 시기를 어떻게 보냈을까. 저자는 여전히 시가 어렵고 시인이라고 불리는 건 더 어색하지만, 시를 만나고 시로 쓸 말들을 "고르고 고르"면서 보낸 시간 덕분에, 이제는 예전처럼 완전무결함을 곧 행복이라고 믿지도 않고, 불안과 강박으로 정신줄이 팽팽해져 눈 앞의 행복을 놓치는 실수를 덜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와 비슷한 나이이고 성향이라서, 저자의 이야기가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시를 만나면 지금의 불안을 한결 수월하게 이겨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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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의 혼잣말 11 - 카니발 플러스
휴우가 나츠 지음, 시노 토우코 그림, 김예진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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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와 함께 서도로 간 마오마오. 예상한 대로 황해가 본격화되어 이를 수습하느라 정신 없는 나날을 보낸다. 누구보다 일찍 황해를 예측하고 대비책을 마련한 진시이거늘, 서도의 백성들은 진시가 서도에 와서 이런 난리가 일어난 거라며 진시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이러한 백성들의 배후에는 놀랍게도 진시를 서도로 초대한 교쿠오가 있었고, 급기야 교쿠오는 석탄 채굴권을 걸고 이웃나라와 전쟁을 벌이겠다고 해서 진시를 당황시킨다. 


황해로 인한 피해가 아직 완전히 복구된 상황도 아닌데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하는 지도자라니. 심지어 (자신보다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황제의 동생인 진시가 자신이 다스리는 지역에 와 있는 상황에서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하는 교쿠오를 보면서 무슨 일이 나겠구나 싶었는데, 역시나 후반부에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사건의 전모를 안 후, 그동안 교쿠오의 이야기인 줄 알고 읽었던 대목들이 교쿠오가 아닌 '이 사람'의 이야기임을 깨닫고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서 12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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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벚꽃 에디션) - 인생이라는 장거리 레이스를 완주하기 위한 매일매일의 기록
심혜경 지음 / 더퀘스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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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채링크로스 84번지>의 작가 헬레인 한프의 런던 여행기를 담은 책 <마침내, 런던>을 읽었다. 그 책의 번역가가 심혜경 님이었는데 처음 보는 이름이 아닌 것 같아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 보니, 최근에 읽은 스기우라 사야카의 <여행자의 식사>도 번역하셨고, 읽으려고 벼르고 있는 책 중 하나인 세라 그리스트우드의 <비타와 버지니아>도 번역하셨고, 오래 전에 재미있게 읽은 <언니들의 여행법> 1, 2권의 공저자로 참여하셨다고. 


번역가이자 작가이며, 영어뿐 아니라 일본어, 중국어 번역도 하신다니! 이 자체로 너무 대단한 데다가, 책과 외국어를 좋아하는 나의 미래 모습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곧바로 올해 초에 출간된 이 분의 책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를 구입해 읽었다. 읽어보니 짐작한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분이신 듯하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대학에선 국문학을 전공했고, 교생 실습을 나갔다가 사서 교사의 존재를 알게 되어 사서 공부를 시작해 서울시 공공도서관 사서로 취업했다. 그 후 27년 동안 정독도서관, 남산도서관 등 여러 도서관에서 사서로 재직하는 동시에, 취미로 배운 다양한 외국어 능력을 활용해 번역가로서 경력을 쌓았다. 


일만 해도 힘든데, 일부러 돈과 시간을 내면서까지 공부를 계속한 이유는 뭘까. 저자는 뭐니 뭐니 해도 '재미'가 그 이유였다고 말한다. 저자는 재미있어 보이는 분야가 있으면 앞뒤 재지 않고 바로 시작한다. 그렇게 손을 댄 분야가 피아노, 바이올린, 클래식 기타, 목공예, 옷 만들기, 태극권, 수채화 등 한 트럭이다. 이 중에 경력이 될 만큼 오랫동안 지속한 취미는 외국어 공부와 번역 정도로 손에 꼽지만, 중도 하차했다고 해서 후회하지는 않는다. 뭐라도 해보면 배우는 것이 있고, 배우는 것이 없어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이 아니면 아예 시작도 못하기 때문이다. 


뭔가를 배우기 위해 학교나 학원 등 전문교육기관을 찾는 것도 좋지만(저자는 방송통신대학교를 추천한다), 저자는 저자처럼 독립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는 대안연구공동체나 스터디 모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런 식으로 영어,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베트남어, 심지어 에스페란토까지 공부했다니. 단순히 외국어를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열심히 배운 외국어 지식을 활용해 번역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다니 너무 멋있다. 나도 이렇게 멋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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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후의 대국, 우크라이나의 역사 - 장대한 동슬라브 종가의 고난에 찬 대서사시
구로카와 유지 지음, 안선주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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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해 배운 기억은 전혀 없다. 구 소련의 위성국가였다는 것과 소련이 해체될 때 독립 국가가 되었다는 것, 유럽의 곡창지대로 불린다는 것 정도만 겨우 떠오를 뿐이다. 이는 옆나라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유럽 최후의 대국,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쓴 구로카와 유지는 도쿄대학을 나온 엘리트 외교관인데도 주 우크라이나 대사로 부임하기 전까지 우크라이나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문화, 지정학적 중요성을 연구하여 쓴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전술한 것처럼 우크라이나 하면 1991년 소련이 해체된 해에 처음 건국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10~12세기에 현재의 동유럽 지역에는 '키예프 루스 공국'이라는 대국이 존재했다. 키예프 루스 공국의 수도는 현재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에 있었다. 하지만 이후 몽골의 침략으로 키예프 루스 공국이 쇠퇴하고 모스크바가 슬라브 공국의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키예프 루스 공국을 잇는 정통 국가의 자리를 우크라이나가 아닌 러시아가 차지하게 되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게 빼앗긴 것은 역사와 지역의 중심 지위만이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상당한 수준의 문화 예술과 과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것들을 모두 러시아에 빼앗겼다. 일례로 러시아가 자랑하는 문호 고골은 순수 우크라이나인이며, 도스토옙스키, 차이콥스키의 선조도 우크라이나 출신이라고 한다.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세르게이 코롤료프 역시 우크라이나인이다. 우크라이나가 엄청난 농업 생산량을 자랑하는 나라인 건 맞지만, 농업 외에 다양한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다.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보면, 일본과 중국 등 강대국들을 주변국으로 두어 주권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역사가 자연히 떠오른다. 만약 우리나라가 독립을 달성하지 못하고 최근까지 주변국으로부터 군사적, 경제적 지배를 받았다면, 우크라이나처럼 자국의 역사를 빼앗기고, 문화와 예술을 빼앗기고, 속절없이 침공 당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았을까. 한국이 자랑하는 위인들이 일본이나 중국의 위인으로 소개되고 있다고 상상하면 아찔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훨씬 이전에(2002년) 일본에선 이미 이런 책이 출간되어 있었다는 사실도 놀랍다. 단순히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예술에 대해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국방이나 경제 등 현실적으로 의미를 가지는 문제들에 대해 전직 외교관으로서의 통찰을 담은 분석을 중심인 책을 펴냈다는 사실도 인상적이다. 2000년대 초에 출간된 책이라서 최근에 부상한 문제들이 담겨 있지 않은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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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의 혼잣말 10 - 카니발 플러스
휴우가 나츠 지음, 시노 토우코 그림, 김예진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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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삶의 낙... 11권까지 다 읽으면 한동안 읽을 게 없어서(사놓고 안 읽은 책이 책장 하나 분량 정도 있지만 '읽을 게 없는' 모순...) 고민일 지경... 


전부터 황충이 조금씩 언급될 때마다 황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볼 만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10권에서 시작된 황해의 여파가 대단하다. 그토록 진시가 경고했건만 제대로 듣지 않았던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마오마오를 비롯한 진시 일행은 진시의 명을 받들어 황충에 대해 조사하고 나름대로 대비책을 마련했는데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는다. 이런 일이 과거에 실제로 있었다면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그 전에 마오마오는 농촌 시찰 겸 찾아간 마을에서 예전에 발생한 황해에서 살아남은 노인을 만나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과거에 서도에는 제사를 주관하는 일족이 있었고, 이들은 새를 부리는 특수한 능력이 있었는데, 이들을 몰살한 후에 황해가 심해졌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족의 원한이 황해를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마오마오는 (약사=과학자답게)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짐작한다. 


10권에는 반가운 얼굴도 등장한다. 한때 정1품 비의 자리에 올랐으나 현재는 출궁한 리슈다. 의외의 장소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모습이 좋았다. 바센과의 인연도 계속 이어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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