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빛이 우리를 비추면
사라 피어스 지음, 이경아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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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 아닌데 올해 여름은 더워도 너무 덥다. 7월 더위가 이 정도인데 8월 더위는 어느 정도일지... 상상도 하지 말자. 더위 때문에(그렇다고 믿고 싶다) 한동안 약간의 책태기를 겪고 있었는데, 책태기를 끝내주는 책을 만났다. 영국 작가 사라 피어스의 '추미스(추리, 미스터리, 스릴러를 이르는 말)' 소설 <유리 빛이 우리를 비추면>이다.


휴직 중인 형사 엘린은 남동생 아이작의 약혼 파티에 초대를 받아 남자친구 윌과 함께 스위스 몽타나로 향한다. 경사스러운 일이건만 엘린의 기분은 좋지 않은데, 그도 그럴 것이 엘린의 엄마가 병으로 최근에 돌아가신 데다가 아이작은 엄마가 살아있는 동안 병문안을 오기는커녕 엄마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엘린은 또한 어릴 때 사고로 세상을 떠난 또 다른 남동생 샘의 죽음과 관련해 아이작을 오랫동안 의심해 왔다. 아이작의 약혼 상대가 하필이면 엘린의 옛 친구 로라라는 사실 또한 엘린의 기분을 께름칙하게 만든다.


이 와중에 엘린이 묵고 있는 호텔 안에서 연이어 실종 사건이 벌어진다. 설상가상으로 산사태까지 일어나 호텔 주변의 교통이 차단된다. 엘린은 휴직 중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현지 경찰을 대신해 사건 현장을 촬영하고 증거를 수집하고 관련자들을 심문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과정에서 엘린은 자신이 묵고 있는 '르 소메' 호텔이 알프스의 멋진 풍광을 조망할 수 있는 통유리 창과 최고급 럭셔리 인테리어로 유명할 뿐 아니라, 호텔로 개축되기 이전 결핵 환자들을 수용하는 요양원으로 사용되었던 어두운 역사와 호텔로 개축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실종 사건으로도 악명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단 이 소설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이 사람이 범인 같다고 의심하면 아닌 걸로 밝혀지고, 또 이 사람이 범인 같다고 의심하면 아닌 걸로 밝혀지는 식으로 계속해서 예상이 뒤집혀서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주인공 엘린의 심리 묘사 또한 일품이다. 엘린은 안 그래도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은데, 산사태로 인해 폐쇄된 호텔 안에 연쇄 살인범과 함께 발이 묶인 상태로 범인 찾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엄청난 심리적 압박에 시달린다. 이런 상황에서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범인 찾기라는 문제에 직면해 결국 자기 자신의 문제까지 해결하는 전개가 흥미진진함을 넘어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따로 떨어져 있는 듯 보였던 사건들이 조금씩 겹쳐지면서 연결 관계가 드러나고 종국에는 하나의 사건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결말도 인상적이었는데 이건 혹시 후속편이 나온다는 예고일까...? 무엇보다 눈 덮인 알프스 산 중턱에 있는 호텔이 무대라서 배경 묘사만 읽어도 기분이 시원했다. 몸은 무더운 도심 속에 있지만 마음만은 - 비록 살인 사건 현장일지라도 - 설산 위의 럭셔리 호텔에 있고 싶은 독자에게 이 소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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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망한 사랑
김지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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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아이돌 그룹 SMAP의 노래 중에 '10달러'라는 곡이 있다. 이 노래는 "어째서 사랑에 돈이 드는 거야. 사귀는 것만으로는 안 돼."라는 가사로 시작하는데, 어디 사랑뿐일까. 친구를 만나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하다못해 돈을 벌기 위해 취직을 하려고 해도 필요한 스펙을 갖추려면 적지 않은 돈이 든다. 그러니까 돈만 있으면 되고, 돈이 많기까지 하면 행복할 것 같은데, 돈 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들을 보면 뭐 또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도 않는 이유는 뭘까. 반대로 돈이 없어도 나름대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비결은...? 


김지연의 소설집 <조금 망한 사랑>의 주제는 거칠게 말해서 '돈과 사랑'이다. 이 소설집에는 돈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갈등을 겪는 인물들이 여럿 나온다. <포기>의 '나'는 전 남자친구가 '나'에게 친형제나 마찬가지인 사촌이 그동안 힘들게 모은 돈을 들고 잠적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려빚>의 정현은 헤어진 애인이 억대의 빚을 남긴 바람에 고생하는 중이다. <긴 끝>의 문애는 동거 중인 애인이 팬데믹 기간 동안 직장을 잃으면서 관계에 위기를 겪는다. <먼바다 쪽으로>의 '나'는 불안 장애가 발병하는 바람에 직장에 다닐 수 없게 된 남편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해변에 있는 펜션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돈이 없거나 부족해서 갈등이 생기는 상황이 있는가 하면, 그만한 돈이 있는데도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좋아하는 마음 없이>는 이혼 후 아들의 양육권을 남편에게 넘긴 안지가 남편 사망 후 남편의 아내로부터 양육비를 요구받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안지에게는 현재 직업도 있고 집도 있고, 안지의 아들을 함께 키울 마음이 있다고 말하는 남편도 있지만, 정작 안지 자신에게 아들을 키울 마음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유자차를 마시고 나는 쓰네>의 삼촌과 카페 사장 역시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아도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랑에 돈 말고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경기 지역 밖에서 사망>은 지방에 살면서 공장에서 일하는 상욱이 도시에 살면서 예술가로 일하는 미주의 인터뷰에 응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상욱과 미주는 단 하루 동안 인터뷰 때문에 만났을 뿐이고 둘 사이에 연애 감정이 오간 것은 아니지만, 성인인 남성과 여성이 한자리에 있기만 해도 연애와 연상시키는 주변의 시선이나 '정상적인 남자'라면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한다는 식의 고정관념 때문에 두 사람의 인터뷰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하다가도 종종 삐걱거린다. 차라리 그런 시선이나 고정관념이 없었다면 두 사람이 더 편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둘의 관계도 다른 전개를 보이지 않았을까. 


<정확한 비밀>은 운전학원에서 만난 혜미가 유부남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의 이야기를 통해 연인이나 부부처럼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서로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능한 밖은 어둠>은 쇠락해 가는 어촌 마을에 사는 어린아이 지수와 종우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 관심이나 애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외부 또는 환경의 작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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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롭, 드롭, 드롭
설재인 지음 / 슬로우리드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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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이 뭘까. 진정한 종말은 모든 것이 끝나는 게 아니라 진작에 다 끝났는데 끝난 줄도 모르고 있는 것 아닐까. 이대로 환경 파괴가 지속되면 매년 기후 위기는 더욱 심각해지고 해수면 상승, 농작물 생산량 감소, 신종 바이러스 출현 같은 부작용이 생길 거라는 걸 알면서도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현실처럼. 뜬금없이 종말에 대해 생각한 건, 최근에 읽은 설재인 작가의 단편 소설집 <드롭, 드롭, 드롭>에 실린 소설이 전부 종말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세상은 망할 예정이거나 이미 망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대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에 관한 책이라고 나는 느꼈다.


이 책에는 모두 네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는데, 하나같이 설정이 기발하고 신선하다. 첫 번째 소설 <미림 한 스푼>은 어느 날 갑자기 외계인이 나타나 한 달 후에 지구를 멸망시키겠다고 선언하는 상황으로 시작한다. 근데 이 외계인이 지독한 K 콘텐츠 중독자라서, 어차피 멸망시킬 지구를 그냥 멸망시키는 대신 한국의 내로라하는 글쟁이들을 섭외해 세상 종말의 방식을 쓰게 하여 그걸 후보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한다. 사람들은 한 달 후에 죽음이 예고된 상황이고, 자신들이 어떻게 죽게 될지를 정하는 내용인데도 이 지상 최후의 초거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열광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현실에서 아직 일어난 적 없는 일이지만 친숙한 기분이 드는 건 나뿐일까.


두 번째 소설 <드롭, 드롭, 드롭>은 어른이 아이가 되고 아이가 어른이 되는 식으로 한국에 사는 사람들의 연령층이 반전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저출생 고령화 문제로 고심하던 정부와 전문가들은 유소년층 인구가 늘고 노년층 인구가 줄어들었다고 기뻐하지만, 개개인의 삶에서 이는 엄청난 문제와 변화를 초래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세 번째 소설 <쓰리 코드>는 서울까지 시외버스로 세 시간 걸리는 지방의 한 도시가 어느 날 갑자기 수도가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세 소설 모두 사회적 약자, 소수자 또는 비정상으로 분류되는 젊은 여성들이 주인공인데, 이들의 주변 사람들은 이들이 대학에 가거나 취업을 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거나 서울로 이사를 가면 - 정상성을 획득하면 -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식으로 이들을 회유하거나 협박한다. 하지만 당장 한 달 후에 지구가 멸망하는 상황에는 강자도 약자도, 다수자도 소수자도, 정상도 비정상도 없다. 사람들의 연령층이 반전되어도 미성숙한 인간들은 미성숙한 행동을 한다. 수도가 바뀌어도 지역 차별은 계속된다. 그렇다면 종말이란 외부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이나 현상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그 자체의 속성 아닐까.


이런 식의 사유가 느껴지는 작품이 네 번째 소설 <멸종의 자국>이다. 이 소설은 빛기둥이 주기적으로 내려오는 땅에 사는 리안과 해랑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 인연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삶은 결국 죽음과 맞닿아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은 언젠가 끝이 나기 마련이라고 해도, 찰나를 믿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인 동시에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내용이라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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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 프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7
이디스 워튼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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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다는 건 뭘까. 이디스 워튼의 소설 <이선 프롬>을 읽으며 떠올린 질문이다. 주인공 이선 프롬은 누구라도 착하다고 할 만한 삶을 살았다. 미국 뉴잉글랜드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일 년 남짓 큰 도시에 있는 대학에 다니며 엔지니어의 꿈을 품기도 했지만 부모님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간병과 장례로 젊은 시절을 보낸 그는 자신을 도우러 와준 사촌 누나 지나와 결혼했는데, 지나마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서 또 다시 가족의 병수발을 드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내 쪽 친척 조카인 매티가 이선을 도우러 오는데, 이 매티라는 아가씨는 살림 솜씨는 엉망이지만 성격이 밝고 감수성이 풍부해 이선과 말이 잘 통한다. 젊은 시절 내내 가족들의 간병을 하느라 연애다운 연애를 해본 적이 없고, 아내 지나와는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지속하고 있었던 이선은 순식간에 매티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비록 아프기는 해도 아내 지나가 엄연히 살아 있고 이선과 매티의 관계는 친척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두 사람이 맺어진다면 주변 사람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혼이라도 한다면 법적, 경제적 곤궁에 처할 수도 있다.


<이선 프롬>은 착하게만 살아온 남자 이선 프롬이 '의무' 또는 '안정'을 상징하는 아내 지나와 '자유' 또는 '변화'를 상징하는 매티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의무를 중시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온 이선은 매티와의 만남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자기 뜻대로 해본 일은 아무것도 없고, 이대로 산다면 더 이상 자기 삶에 아무런 변화나 자극이 없을 거라는 걸 깨닫는다. 그러나 매티를 택한다면 그동안 자기 자신의 욕망보다 남들의 시선이나 요구를 중시하는 삶을 살면서 쌓은 (한 줌도 안 되는) 명예와 돈을 포기해야 할 것이고, 그 또한 큰 손해라고 느낀다.


이선이 지나를 선택하는 게 옳은지, 매티를 선택하는 게 옳은지에 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 같은데, 이 소설의 결말이 이선과 지나, 매티 모두에게 최악이라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 같다. 아내에게는 착한 남편이고 싶고 내연녀에게는 착한 애인이고 싶었던 이선의 욕심이 결국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다. 차라리 누구 한 사람에게는 나쁜 사람으로 남을 용기를 냈더라면 모두가 불행해지는 결말로 치닫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그러고도 여전히 불쌍한 사람, 근본은 착한 사람인 척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국 이선의 '착함'은 자기 자신을 위한 착함이 아니었을까. 


이선과 매티 사이에 오가는 감정이 과연 사랑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이선이 일방적으로 매티를 사랑한 게 아니고 매티도 이선을 사랑했다고 판단할 만한 근거가 되는 장면이 몇 개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선의 입장에서 쓰인 이선의 진술(회고) 아닌가. 더군다나 매티가 의지할 데 없는 고아이고 지나에게 미움을 받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매티가 이선에게 보인 호의적인 태도는 연인 간의 애정이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연기였는지도 모른다. 그런 것도 모르는 어리석고 우유부단한 남자의 태도를 비꼬듯 보여준다는 점에서 과연 이디스 워튼의 작품답고 오랫동안 사랑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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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리버 1~2 세트 - 전2권
오쿠다 히데오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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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범죄 소설을 열심히 읽었는데, 사람 죽는 이야기 그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동안 손을 놓았다가 최근에 다시 범죄 소설을 야금야금 읽기 시작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는데, 일단 날씨가 더워서 인간에 대해 사유하거나 세계에 대해 통찰하는 차분한 분위기의 진지한 소설보다는 쫓는 사람도 쫓기는 사람도 다들 미쳐 있는 듯한 분위기의 도파민 터지는 자극적인 소설을 읽고 싶은 것 같다. 어제 읽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리버>가 정확히 후자다. 


일본 간토 지방의 한가로운 농촌 지역인 군마현과 도치기현. 두 현의 경계를 가르는 와타라세강에서 한 노인이 개를 산책시키다가 젊은 여성의 시체 한 구를 발견한다. 얼마 후 비슷한 범행 수법으로 죽은 젊은 여성의 시체 한 구가 또다시 발견되고, 10년 전에 일어난 미제 사건과 정확히 동일한 수법 및 과정으로 범행이 일어나자 군마현과 도치기현 경찰은 경악한다. 10년 전의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군마현과 도치기현 경찰은 서둘러 수사본부를 세우고 범인으로 의심 가는 인물들을 찾아 나선다. 10년 전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은 현직 경찰만이 아니다. 


10년 전 사건을 담당했고 현재는 은퇴한 전(前) 형사, 10년 전 사건으로 딸을 잃고 직접 범인을 추적해 왔던 피해자의 아버지가 경찰 못지않은 정보와 열정으로 수사에 관여한다. 여기에 살인 사건 기사를 처음 맡는 신입 여성 기자, 자문 역으로 초대를 받고 온 괴짜 심리학자 등이 개입한다. 용의자는 총 세 명인데, 세 명의 캐릭터가 다 달라서 각각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있다. 범죄자의 동기나 수법보다는 범죄자를 쫓는 경찰 조직의 생리나 언론의 역할 등을 다루는 데 더 집중한다는 점에서 요코야마 히데오의 <64>가 떠오르기도 했다. 


오쿠다 히데오는 <무코다 이발소>를 비롯한 전작들을 통해 일본의 지방 소멸, 초고령화, 인구 감소 등의 문제를 다루어 왔는데 이 소설에도 그런 면이 드러난다. 조용하고 한적한 농촌 지역에 대기업 공장이 들어서면서 외국인 노동자 및 계절노동자가 늘어나고, 이들을 겨냥한 유흥업소가 줄줄이 생기면서 성매매, 마약 범죄가 증가한다. 철도, 도로망이 확대되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지역 범죄의 규모가 커지고 지역 경찰의 업무 부담이 늘어난다. 한국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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