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리 홈즈와 핏빛 우울 LL 시리즈
다카도노 마도카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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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2016년에 개봉한 <고스트 버스터즈>를 뒤늦게 봤다. 흥행 성적도 좋지 않고 악평도 적지 않아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예상외로 재미있었다. 일단 등장인물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이 좋고, 내 친구 같고 언니 같은 여성들이 다 같이 총 들고 씩씩하게 거리로 나가서 유령을 퇴치하는 모습이 유쾌하고 보기 좋았다. 남자만 잔뜩 나오는 (알탕) 영화에 고명처럼 등장하는 멍청한 미녀 역할을 크리스 헴스워스가 맡은 것도 탁월했다. 이런 즐거움을 여태껏 남자들만 누려왔다니!! (이번 주에 <오션스 8> 꼭 봐야지 ㅎㅎㅎ) 


등장인물의 성별을 바꾼 것만으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영화가 <고스트 버스터즈>라면, 소설은 <셜리 홈즈와 핏빛 우울>이다. 셜록 홈즈와 존 왓슨 콤비의 성별을 여성으로 바꾼 이 소설. 전체적인 내용은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남성을 여성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세부 설정 - 인물의 옷차림이라든가 취미라든가 - 도 함께 바뀌어 신선한 재미가 더해졌다. 원작이 묵직한 분위기의 정통 추리 소설이라면, <셜리 홈즈와 핏빛 우울>은 가벼운 분위기의 라이트 노벨(을 연상케 하는 소설?)인 점도 다르다. 


추리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탐정이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단서를 찾는 대목인데, 이 단서가 남성인 셜록은 알아채기 힘든, 여성인 셜리만이 알 수 있는 단서라는 점이 좋았다. 여성 탐정, 여성 형사가 등장하는 추리 소설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닌데, 작가만의 새로운 여성 탐정 캐릭터를 창조할 수도 있는데, 남녀 불문하고 최고의 탐정 캐릭터로 손꼽히는 셜록 홈즈의 성별을 굳이 바꾸다니. 이 당돌함이 마음에 쏙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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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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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건드리는, 짧지만 강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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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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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인 조건만 보면 루시 바턴은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다. 뉴욕에서 괜찮은 집 한 칸을 마련했고, 작가로서 괜찮은 출발을 했으며, 사랑하는 남편과 귀여운 두 딸이 있으니 무엇을 더 바랄까. 하지만 맹장수술을 받고 병간호하러 온 어머니를 본 순간, 루시의 단단했던 마음은 한꺼번에 무너져내리고 만다. 그리고 밀려든 과거의 기억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은 병원에 입원한 루시 바턴이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에게 병간호를 받으면서 겪는 심경의 변화를 그린다. 미국 중서부 일리노이주 출신인 루시 바턴은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도 가장 가난한 부부의 셋째 아이로 태어났다. 루시의 부모는 변변한 집 한 채는커녕 고정 수입이 나오는 직업도 가지지 못했다. 그로 인해 루시는 어린 시절 내내 배를 곯기 일쑤였고, 잠도 남의 집 헛간이나 트럭에서 잤다. 


그런 루시에게 유일한 낙이자 삶의 희망은 책 읽기였다. 가난하고 행색이 별로인 자신과 놀려고 하는 친구가 없어서, 집에 가봤자 장난감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어서, 루시는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학교 성적이 좋았고,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향이 아닌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루시의 어머니는 루시의 성공을 대견하게 여기지 않는다. 루시가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을 때 가족을 버리고 부모를 배신한 거리고 루시를 비난한다. 루시가 작가로 데뷔해 좋은 반응을 얻어도 관심조차 없다. 루시가 하는 말은 잘난 척으로만 듣는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지만, 루시 바턴의 경우처럼 부모가 자식의 성공을 바라기는커녕 질투하고, 자식은 그런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미련을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분명 존재한다. 병간호를 하러 와서까지 루시를 바로 보려 하지 않는 어머니를 보며 "내가 원한 건 엄마가 내 삶에 대해 물어봐 주는 것이었다."라고 담담히 토로하는 루시가 어찌나 가엾던지.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건드리는, 짧지만 강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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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핸드 타임 -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러시아 현대문학 시리즈 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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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전쟁에 참가한 여성들의 잊힐 뻔했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라면, <세컨드핸드 타임>은 전쟁이 끝나고 이어진 냉전 이후 공산주의의 붕괴와 자본주의의 확산을 동시에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철저한 '호모 소비에티쿠스'였다. 호모 소비에티쿠스란 소비에트 시대의 발상, 사고방식, 행동 등이 뿌리 깊이 체화된 소비에트 시대의 인간을 일컫는다. 저자의 아버지는 공산주의를 신봉하다시피 했고, 저자는 어릴 때부터 '옥차브랴타(만7~9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당 교육, 인성 교육 등을 지도하던 단체)' 단원으로 활동했다. 


차세대 공산주의자가 되기 위한 수순을 착착 밟아가던 그가 '진실'을 알게 된 건 페레스트로이카가 시행된 직후다. 기록보관소가 개방되고, '소비에트 러시아에 거주하는 1억 명 중 9,000만 명은 데려가야 한다. 나머지 1,000만 명과는 대화할 필요가 없다. 모두 죽여야 한다.', '사로잡은 부농과 부자들 중 적어도 1,000여 명은 교살해야 한다. ... 주변 수백여 킬로미터 내에 거주하는 인민들이 꼭 그 장면을 목격하게 해서 두려움에 몸서리치도록 해야 한다.' 같은 무시무시한 말들이 레닌, 트로츠키 등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저자는 더 이상 호모 소비에티쿠스로 살 수 없음을 직감했다. 


페레스트로이카가 시행된 이후 저자처럼 소비에트 체제의 진실을 깨닫고 실망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자와 달리 소비에트 체제를 여전히 지지하며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삶을 추구한 사람도 있다. 이들 중에는 소비에트 체제가 무너진 이후 급물살을 타고 들어온 자본주의에 실망한 사람도 적지 않다. 자본주의는 자유를 주었지만, 주어진 자유를 누리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많은 돈이. 책을 읽고 연극을 보고 인생을 논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돈 버는 법, 돈 모으는 법, 돈 쓰는 법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소비에트 체제하에선 줄곧 모욕을 당해왔던 '속물근성'이 환영받고 장려되기 시작했다. 소비에트 체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공포이자 지옥이었다. 


사람들은 베르사체와 알마니가 만들어낸 그 헝겊 조각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라며 저를 설득시키려고 해요. 사람은 그것만 있으면 충분하다고요. 삶은 돈과 어음으로 쌓아올린 피라미드일 뿐이고, 자유가 곧 돈이고 돈이 곧 자유라는 말들을 하지요. ... 아무튼 전 제 어린 손주들이 불쌍해요. 가여워요.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을 텔레비전을 통해 매일매일 세뇌당하고 있으니까요. 전 이 모든 것에 동의하지 않아요. 저는 공산주의자였고 앞으로도 공산주의자로 남을 겁니다. (69쪽) 


비슷한 일이 지구상에 남은 사실상 유일한 공산국가인 북한에서 벌어질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 공산주의 이외의 사회 체제를 학습하지도, 경험하지도 못한 북한 사람들이, 갑자기 자본주의가 유입되고 거대 자본의 횡포를 맞닥뜨렸을 때 과연 잘 버틸 수 있을까. '소련이란 나라는 여성용 부츠와 휴지가 부족해서, 오렌지가 없었기 때문에 무너졌지만, 소련이 무너진 자리에 들어선 러시아는 베르사체와 알마니가 만들어낸 헝겊 조각이 없으면 불행하다는 생각을 퍼뜨린다고, 이런 세상이 전보다 더 나아진 건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던 유리예브나의 말이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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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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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201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지 어느덧 2년이 지났다. 그동안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 관한 말과 글을 수없이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의 책은 한 권도 읽지 않았다. 그의 책은 픽션이라기보다는, 여러 해에 걸쳐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한 이야기를 모은 논픽션에 가깝기 때문에 책의 요지를 이해하면 전체를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대표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몇 장 읽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폐기했다. 이 책은 전쟁에 참가했지만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여성들 중에 200여 명의 증언을 담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할머니이다. 저자의 할머니는 빨치산으로 활동하다가 티푸스로 사망했다. 할머니의 세 아들 중 두 명은 전쟁에 나갔다가 행방불명되었고 한 명만이 살아 돌아왔다. 그가 바로 저자의 아버지이다. 


저자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자신의 할머니를 비롯한 수많은 여자들이 남자들과 함께 전쟁에 나가 싸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학교에선 오로지 남자들만이 전쟁에 나갔고, 남자들이 싸우고, 남자들이 적을 죽여서 나라를 구하고 여자들을 지켰다고 가르쳤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자들이 전쟁에 나가 싸웠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점점 줄었고, 새로운 세대는 전쟁은 남자들의 전유물이며, 승리도 패배도 남자들의 몫이고, 여자는 여기에 기여한 적 없고, 기여할 수도 없고, 오직 승(리한 남)자에게 보상처럼 주어지는 전리품이라는 식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을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 알았다. 우리는 모두 '남자'가 이해하는 전쟁, '남자'가 느끼는 전쟁에 사로잡혀 있다. '남자'들의 언어로 쓰인 전쟁. 여자들은 침묵한다.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할머니의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나의 엄마 이야기도. 심지어 전쟁터에 나갔던 여자들조차 알려 들지 않았다. 우연히 전쟁 이야기가 시작되더라도, 그건 '남자'들의 전쟁 이야기이지 '여자'들의 전쟁은 아니다. (17쪽) 


저자는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전쟁을 겪었는지를 그 사람의 목소리와 그 사람의 이야기로 일일이 들려준다. 자신을 제외하고 남자밖에 없는 부대에 배치되었는데 하필 생리가 터지는 바람에 곤란했던 일, 병원에서 야간 당직을 서고 있는데 대위가 가슴을 보여달라고 했던 일, 전장에서 출산을 했는데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면 적에게 들킨다고 해서 아기를 죽인 일 등 그동안 역사 책은 물론이요 소설, 영화, 드라마 그 어떤 매체를 통해서도 접해본 적 없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줄줄이 나온다. 


저자는 말한다. "전선이니 전선의 활약이니 진격과 퇴각이니 그런 이야기, 전복된 열차가 몇 대고, 빨치산의 기습공격은 어땠는지 따위의 이야기가 필요한 걸까? 이미 수천 권도 넘는 책들에 등장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저자는 전쟁을 통해서 우리가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것은 '전쟁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고 영웅들이 얼마나 훌륭한가'가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피폐해지고 파괴당했는가'라고 설명한다. 전투의 명칭이나 전사자 수보다 중요한 건 얼마나 어린 소녀들이 참전을 종용하는 프로파간다에 혹해 총을 쏘고, 지뢰를 던지고, 폭격을 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남성과 똑같이 총을 들고 전쟁에 나가 싸웠다는 것은 그들의 '여성성'이 '훼손당한' 것을 뜻하기 때문에 참전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말하고 싶어도 침묵을 강요당했다는 사실이다. 


더욱 충격적인 건 이런 내용을 고발하는 이 책이 전쟁의 위업을 훼손하고 참전자들의 명예를 모독한다는 이유로 여러 부분을 검열, 삭제당했고, 작가가 재판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당사자가 직접 체험한 일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훼손되는 '위업', 모독당하는 '명예'란 무엇일까. 세상의 진실을 더욱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여자의 얼굴, 여자의 목소리, 여자의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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