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르테 5
오쿠보 케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몇 달 전 우연히 <아르테>란 만화를 보고 '이건 인생 만화야!'라고 직감했다. 하지만 처음에 잘 나가다 중간에 삐끗하는 만화가 적지 않기 때문에 이 만화도 그렇게 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있었고, 마침 4권을 끝으로 피렌체에서 베네치아로 이야기의 무대가 바뀌어 전개가 확 달라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새로 나온 5권을 사서 읽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순전히 섣부른 걱정이었다. 5권 역시 너무 재미있고 너무 통쾌하다. 베네치아의 귀족 유리에게 자신의 조카의 가정교사가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은 아르테는, 처음엔 거절했으나 나중엔 좋은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어 제안을 받아들인다. 유리와 함께 베네치아에 도착한 아르테는 베네치아의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할 따름이다. 수로와 곤돌라도 신기하고,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의 얼굴과 복식도 신기하고.

아르테는 베네치아에서 두 가지 일을 하게 된다. 하나는 유리의 형수인 소피아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유리의 조카이자 소피아의 큰딸인 카타리나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일이다. 초상화를 그리는 일은 아르테에게 전혀 어렵지 않고 오히려 즐거운데, 카타리나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일은 만만치가 않다.
그도 그럴 게, 카타리나 이 아가씨가 사실은 예의범절을 완벽하게 알고 있으면서(아르테보다 한 수, 아니 두 수 위쯤 된다 ㅎㅎㅎ) 부모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 앞에서만 예의범절을 모르는 척 굴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대체 왜 이러나 싶었는데, 5권 마지막에서 카타리나에게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는 걸 알고 나니 바로 수긍이 되었다(오해해서 미안...).

<아르테> 5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아르테가 주인집의 시녀 다프네와 함께 성당에 가서 그림을 그리다가 벌어진 일이다. 의뢰받은 초상화 그리랴, 카트리나 가르치랴,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는 와중에도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그림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아르테는 다프네에게 가까운 성당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성당에 도착한 아르테는 탄성을 지르며 자연스럽게 화판과 화구를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생전 처음 보는 베네치아 남자들이 아르테에게 다가와 다짜고짜 시비를 건다. "이거 이거, 피렌체는 여. 자.한테 장인 노릇을 다 시킬 만큼 남자가 모자라나? 꽃의 도시도 갈 데까지 갔나 보군. 그런 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되잖아. 여. 자. 화. 가. 라니!"

그러자 아르테는 이렇게 반응한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어딜 가나 다를 게 없구나 싶어서 말이에요." 고향인 피렌체에서도 그랬다. 아르테가 공공장소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남자들이 몰려와 감히 여자가 그림을 그린다고 시비를 걸고 때로는 위협까지 했다.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도제로 들어가 귀족 부인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고 베네치아에 왔으니 이제 더 이상 그런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베네치아에서도 똑같다. 베네치아 남자들에게도 여자 화가는 낯설고 이상하고 조롱해 마땅한 존재다.
그걸 깨달은 아르테는 어쩐지 웃음이 난다. 멍청이들은 어디에나 있구나. 멍청이들아. 계속 그렇게 멍청하게 살아라. 나는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 그리며 너희들보다 더 잘 살 테니. 아르테처럼 멍청이들에게 상처받지 않는 담력이, 멍청이들을 향해 시원하게 웃어줄 수 있는 배포가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시원하게 웃는 연습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