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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감정
일자 샌드 지음, 김유미 옮김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7월
평점 :

대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심리 상담을 받아봤다. 정식 상담은 아니고, 대학 심리상담 센터에서 진행하는 약식 상담 프로그램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나와 상담한 선생님이 했던 말을 똑똑히 기억한다. "좋은 감정은 잘 표현하는데 나쁜 감정은 잘 표현하지 못하는 분이신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를 정확히 설명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쁨이나 즐거움 같은 긍정적인 감정은 잘 표현하지만, 슬픔이나 분노, 질투심, 부끄러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가급적 숨기고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남에게 털어놓는 경우도 거의 없다.
덴마크의 심리치료사이자 <센서티브>, <서툰 감정> 등의 저자인 일자 샌드의 표현을 빌리면,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툰' 편이다. 나처럼 슬픔이나 분노,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툰 사람은 아주 많다. 무언가 불편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느낌의 정체가 분노인 줄 모르고 단순히 긴장했거나 불안한 거라고 착각하거나, 상대가 잘 되지 않기를 바라는 감정의 정체가 질투인 줄 모르고 경쟁심 정도로 약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저자는 우리가 '감정을 지배할 순 없지만, 생각을 조정하고, 초점을 맞추기 원하는 대상을 선택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웃 사람이 나에게 선물을 주었다고 가정해 보자. '대체 내게 선물을 주는 속셈이 뭐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부담스럽고 불편하지만,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선물을 줬겠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행복해지고 편안해진다.
분노를 느낄 때는 분노를 바람(wishes)의 형태로 표현하라고 권유한다. 분노는 내가 바라는 것이 충족되지 못한 상태일 때 야기되는 감정이다. 그러므로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그것을 분노가 아닌 바람의 형태로 표현하면 해소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 허락을 구하지 않고 노트북을 빌려 간 동료에게 "다음에 내 노트북을 빌려 갈 때는 내게 먼저 알려주세요. 그러면 데이터가 삭제되지 않도록 미리 저장할 수 있으니까요."라고 말한다면, 동료는 내 요구를 들어줄 것이다. 동료가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그때는 선전포고를 하거나 새로운 상황을 준비하면 된다.
여성들은 분노를 울음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남자가 분노를 표현하는 건 자연스럽지만 여자가 분노를 표현하는 건 자연스럽지 않다 - 여성스럽지 못하다 - 고 교육받은 탓이 크다. 여자아이들이 화를 내면 부모들은 "네 방에 들어가서 어떤 게 여자다운 행동인지 잘 생각해봐."라고 질책한다. 남자들도 어린 시절에 비슷한 경험을 하지만, 남자아이들의 분노는 대체로 더 관대하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면에선 장려된다(정의롭다, 남자답다 등등). 여자는 울어도 되지만 화를 내면 안 된다, 남자는 화를 내도 되지만 울면 안 된다는 식의 편견도 '서툰 감정'을 조장하는 요인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