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인공이 되는 법 - 책벌레 소녀의 인생을 바꾼 11명의 여성 캐릭터들
서맨사 엘리스 지음, 고정아 옮김 / 민음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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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젠가 어느 책에서 남성과 여성의 독서 체험은 시작부터 다르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를테면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이 한 번쯤은 읽는 <빨간 머리 앤>이나 <작은 아씨들> 같은 작품을 남자아이들은 전혀 읽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이 한 번쯤은 읽는 <보물섬>이나 <톰 소여의 모험> 같은 작품을 여자아이들은 전혀 읽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예로 들 것도 없이 여성인 나부터도 <빨간 머리 앤>과 <작은 아씨들>은 초등학교 때 읽은 반면, <보물섬>이나 <톰 소여의 모험>은 성인이 된 후에야 읽었다. 


그렇다면 여성의 독서 체험은 여성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까. 영국의 페미니즘 연극 연출가 서맨사 엘리스가 쓴 <여주인공의 되는 법>에 따르면 그 영향이 엄청나다. 이라크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저자는 어려서부터 못 말리는 독서광이었다. 글을 읽게 된 무렵부터 수많은 동화와 소설을 부지런히 섭렵한 저자는 문학 작품에 나오는 여주인공처럼 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대체 '여주인공처럼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잘생겼지만 위험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일까? 아니면 로맨틱한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는 것? 결혼해서 아이 낳고 오순도순 행복한 가정 꾸리는 것? 


저자는 이제까지 자신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문학 작품 속 여주인공들을 차례로 소개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작품은 <인어 공주>, <빨간 머리 앤>, <오만과 편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프래니와 주이>, <전망 좋은 방>, <폭풍의 언덕> 등이다. 저자는 어릴 적 인어 공주처럼 목숨이 아깝지 않은 사랑에 빠지고 싶었다. 앤 셜리처럼 상상력이 풍부한 여자아이가 작가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리지 베넷이 마침내 다아시와 맺어졌을 때는 자신의 사랑이 이뤄진 양 감동했고, 스칼렛 오하라가 레트 버틀러와 헤어질 때는 이 또한 자신의 일인 것처럼 슬퍼했다. 


그런데 과연 여자의 삶은 남자와 연애, 결혼과 출산이 전부일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 역시 문학 작품 속 여주인공들의 삶을 통해 배웠다. <프래니와 주이>를 읽으며 타인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나답게 산다는 게 얼마나 멋진지 깨달았고, 실비아 플라스의 <벨 자>를 읽으며 결혼과 출산이 여성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똑똑히 알게 되었다. 어른이 되고 직업을 가지고 연극 연출가가 되기 위한 과정을 걸으며 <전망 좋은 방>, <인형의 계곡>, <폭풍의 언덕> 등을 다시 읽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사랑에 빠져 제 앞가림도 못하는 여주인공보다는(<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캐시), 어릴 적엔 차갑고 매서워 보였지만 다시 보니 현명하고 이성적인 여주인공에 더 끌렸다(<제인 에어>의 제인). 


이다혜 작가는 산문집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에서 여성 독자가 문학 작품 속 현실과 실제의 현실 사이에 간극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스스로가 여성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썼다. 남성의, 남성에 의해, 남성을 위해 쓰인 문학 작품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여성 독자는 작품의 내용에 쉽게 공감할 수 없고, 공감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성에 의해 주입된 남성적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여성이 억지로 길들여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서맨사 엘리스는 <여주인공이 되는 법>을 쓰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도록 열심히 읽고 흠모했던 작품들을 다시 읽으며, 비단 남성 작가가 쓴 작품이 아니어도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에 젖어 있거나 여성 스스로 독립적인 주체가 되기를 포기하는 듯한 작품이 적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나아가 연극 연출가이자 작가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수많은 여성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고 자극을 줄 수 있는 여주인공 캐릭터를 만들고 싶은 꿈이 생겼다고 고백한다. 앤 셜리와 리지 베넷과 스칼렛 오하라보다 멋지고 당당한 여주인공을 기대해도 좋을까. 그리고 나 - 그리고 당신 -는 어떤 삶을 사는 여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그동안 흠모했던 여주인공들의 모습을 찬찬히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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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마도 - 김연수 여행 산문집
김연수 지음 / 컬처그라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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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아껴 읽고 싶었는데 금방 읽어버렸습니다. 다시 반복해 읽고 작가님께서 나누어주신 여행의 단상을 곱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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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마도 - 김연수 여행 산문집
김연수 지음 / 컬처그라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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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하는 작가 김연수의 여행 산문집 <언젠가, 아마도>를 읽었다.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구입해서 하루에 한두 꼭지씩 아껴 읽었는데, 얼마 전 김연수 작가가 직접 출연한 팟캐스트 <요조, 장강명의 책 이게 뭐라고>를 듣고 끝까지 읽어버렸다. 내가 미처 읽지 못한 대목을 두고 세 분이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어찌나 애가 타던지. 덕분에 나는 조금씩 아껴 읽으려고 했던 책을 의도와 다르게 빨리 읽어버리고 허무한 마음으로 리뷰를 쓰고 있다(작가님 장편 소설은 언제쯤...ㅠㅠ). 


이 책은 김연수 작가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에 연재한 글과 새로 쓴 글 8편을 더해 엮은 것이다. 저자가 여행한 곳은 순천, 부산, 대구 등 국내 도시부터 몽골, 러시아, 스페인, 포르투갈, 태국, 일본, 이란, 중국, 실크로드까지 다양하다. 저자가 들려주고 보여주는 여행지의 볼거리라든가 먹거리, 그곳에서 만난 사람 이야기 등도 흥미롭지만, 여행을 하는 동안이나 여행을 마치고 나서 저자가 무심하게 떠올리는 생각들이 나로서는 더욱 인상적이었다. 이를테면 실크로드를 52일에 걸쳐 자동차로 완주하는 여행을 하다 묵게 된 호텔에서 무심코 보게 된 호텔 비누를 보고 대체 지구상의 호텔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쓰고 남은 비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라든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당시 '빽판'이라고 부르던 불법 음반을 사기 위해 김천에서 대구까지 갔던 일화라든가. 


'아메오토코', '아메온나'라는 일본어 표현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여행이나 야외 행사에 나서기만 하면 비(아메)가 내리는 운 나쁜 남자(오토코), 여자(온나)를 가리키는 말인데, 저자의 조사에 따르면 이 표현의 유래는 초나라 문인 송옥이 쓴 시 '고당부'에 나오는 한 에피소드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에 따르면 초 희왕은 어느 날 꿈속에서 한 여자와 사랑을 나누고, 여자는 초 희왕에게 아침 구름이 되고 저녁 비가 되어 당신을 그리워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우리도 잘 아는 '운우지정'의 유래가 되는 고사다. 아메온나도 알고 운우지정도 아는데 왜 이 둘이 관련 있는 단어라는 건 몰랐을까. 무엇이든 자세히 보고 깊이 보는 작가에게서 또 하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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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무감각한 사회의 공감 인류학
김관욱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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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아프다고 하면 이런 사람 꼭 있다. "자기만 아픈가. 나는 더 아파.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아프다는 사람을 앞에 두고 내가 더 아프다며 난데없이 '아픔 배틀'을 벌이는 사람의 심리는 뭘까. 가정의학과 의사이자 의료인류학자인 김관욱의 책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을 읽고 짐작건대, 한국 사회에서 아픔은 단순히 신체상의 질병이나 질환, 혹은 고통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권력의 문제, 힘의 문제, 도덕과 윤리의 문제로 쓰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서 이런 불상사가 벌어지는 것 같다. 


저자가 공부하는 의료인류학은 몸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읽는 학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랑의 매'라는 미명 아래 자행되고 있는 가정 내 아동 학대,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과 학살 등의 문제를 비롯해 장애인 특수학교, 미투 운동, 가습기 살균제, 삼성전자 산업재해 노동자 등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큰 이슈로 다루어진 문제들을 언급하며 몸과 사회의 관계를 분석한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문제들은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사회와 정부와 공공기관과 대기업에게 면죄부를 주고 피해자의 비명에는 귀 막은 대가라고 봐도 다르지 않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제4장 노동의 아픔'이다. 이 장에서 저자는 2017년 전주의 한 특성화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여학생이 5개월간 한 콜센터의 해지 방지 부서에서 현장 실습을 하다가 "아빠, 나 아직 콜 수 못 채웠어."라는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저수지에 몸을 던져 숨진 사건을 사례로 든다. 저자가 이 사례를 영국의 한 대학에서 열린 포럼에서 소개했을 때, 영국인들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그 학생은 그렇게 힘든데도 왜 콜센터를 그만두지 않았죠?" 사건을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그 학생은 죽기 전에 가족과 친구들에게 수차례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때마다 가족과 친구들은 이렇게 타일렀다. "어려워도 참고 이겨내야 한다." "다른 직장 가면 다른 게 있느냐." 


이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에선 학교든 직장이든 사업이든 결혼이든 뭐든 간에 그만두거나 포기하는 것을 실패라고 여기고 재도전하거나 새로운 길을 찾을 기회를 주지 않는다. 고통을 가하는 집단이나 상황에서 문제를 찾지 않고,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는 개인에게 책임을 돌린다. 다른 예로, 한국에서 가장 흔한 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두통과 안구 건조, 어깨 결림, 불면증 혹은 수면 장애, 우울 경험, 불안 장애 등 역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에게 과도한 업무량을 부과하고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다. 저자는 박카스 같은 피로 회복제가 1963년부터 오늘날까지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것은, '한국 사회에 옳지 못한 통증, 탈정치화된 통증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구체적 증거'라고 말한다. 


책을 읽으며 지난여름 세상을 떠난 친구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험 회사에 다니던 친구는 과도한 업무량과 실적 압박으로 인해 우울증과 수면 장애를 앓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 친구는 수차례 가족들과 상의했다고 한다. 회사 다니기 싫다고. 그만두고 싶다고. 그때마다 친구의 부모님은 무조건 참으라고, 나약한 소리 하지 말라고 타일렀다고 한다. 그때 누구라도 친구에게 참지 말라고, 그만둬도 괜찮다고 말 한마디 해줬으면 친구는 죽지 않았을까. 왜 나는 친구에게 그 짧은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을까. 만약 친구를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고, 우리 더는 아프지 말자고 말하고 꼭 끌어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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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9 1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키치 2018-10-29 18:30   좋아요 0 | URL
아이고 저 때문에 괜히 마음 편치 않게 해드린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ㅠㅠㅠ 마음 써주시고 위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10-29 1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키치 2018-10-29 18:30   좋아요 0 | URL
덕분에 저 역시 큰 위로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편안한 저녁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파친코 구슬
엘리자 수아 뒤사팽 지음, 이상해 옮김 / 북레시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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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구슬>은 올해로 26세인 한국계 프랑스 작가 엘리자 수아 뒤사팽이 발표한 두 번째 소설이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저자는 파리와 서울, 스위스의 포렌트루이를 오가며 자랐다. 저자는 책 앞쪽에 실린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글에 5년 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경험을 썼다. 저자는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이중적인 유배' 상태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과 프랑스에서도, 한국에서도, 스위스에서도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결코 다르지 않아 보였다고 적었다. 


그리하여 쓰게 되었다는 이 소설 <파친코 구슬>은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처럼 읽힐 만큼 저자 자신의 생애와 생각이 많이 반영된 듯 보인다. 소설의 주인공 클레르는 어머니가 한국인인 스위스 여성이다. 클레르의 외조부모는 한국 전쟁 당시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이주해 도쿄 닛포리에서 작은 파친코를 운영하며 지금까지 살고 있다. 방학을 맞아 일본으로 온 클레르는 외조부모와 셋이서 한국으로 떠날 여행 계획을 짜는 한편, 오가와 부인의 열 살짜리 딸 미에코를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클레르를 '언니'라고 부를 만큼 잘 따르는 미에코는 클레르의 외조부모가 파친코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그곳에 가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오가와 부인은 영 내키지 않는 내색이다. 


이는 일본에서 파친코가 단순한 오락 시설 이상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파친코가 나름의 은행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지하경제를 움직이며, 주요 정당들에 검은 돈을 댄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본에 거주하고 세금도 납부하지만 일본 국민과 동등한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지도 못하는 재일조선인들은, 생계를 위해 파친코를 비롯한 각종 산업에 뛰어들었고 그중엔 크게 성공한 부자들도 있지만, 클레르의 외조부모는 작은 가게를 겨우 꾸리는 영세 업자에 불과하다. 


클레어는 한국인임에도 한국에서 살지 못하고, 일본에서 오래 살았으나 일본인이 되지 못하는 외조부모를 보며 답답함과 동시에 연민을 느낀다. 집안에선 절대로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고, 익숙지 않은 전철을 타고 한국 식재료를 파는 가게에 가는 것을 불사할 만큼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깊으면서도, 정작 클레어가 다 같이 한국으로 여행을 가자고 하자 내켜 하지 않는 이들의 마음은 대체 어떤 상태일까. 양쪽 모두 한국인인 부모에게 태어나 한국에서만 살아온 내게는 쉽게 와닿지 않는, 그래서 더 알고 싶은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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