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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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시인이 항암 치료를 받는 아버지를 간병하며 조금이라도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싶어서 읽었다는 책이다. 작년에 오랫동안 투병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를 간병해온 큰아버지가 암 선고를 받고, 동생마저 (암은 아니고 다른 병으로) 수술을 받게 되어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내가 내 마음만 신경 쓰느라 정작 자신의 일로 혼란스러울 사람들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구나 반성하며 이 책을 읽어보았다.


철학자 김진영의 첫 산문집이자 유고집인 이 책은 저자가 2017년 7월 암 선고를 받고 2018년 8월 향년 66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병상에 앉아 메모장에 썼던 일기 234편을 갈무리한 것이다. 저자의 일기는 단어 몇 개가 전부인 글부터 종이 한 장을 가득 메운 글까지 길이가 다양한데, 그런데도 모든 글이 결코 가볍지 않고 묵직하게 느껴지는 것은 글쓴이가 늘 죽음을 유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평생 동안 철학을 공부했고 철학이 삶을 구원할 거라고 믿었지만 막상 죽음을 앞둔 처지가 되고 보니 철학은 삶을 구할 수 없었고, 머리가 아닌 몸이 마음을 지배했다. 머리로는 인간은 모두 죽고 나만 예외일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마음은 여전히 삶을 갈구했다. 계속되는 검사와 치료, 선고인 양 묵직하게 느껴지는 의사의 말들, 짠맛이 느껴지지 않는 식사, 수시로 찾아오는 방문객과 안부 문자는 끊임없이 자신이 죽음을 앞둔 환자임을 깨닫게 했다.


하지만 청년 시절부터 닳도록 읽은 책들과 즐겨 들은 음악, 그동안 눈여겨보지 않았던 자연의 풍경과 새소리, 바람 냄새는 여전히 살아있는 인간임을 인식하게 했다. 조금 더 여기 있고 싶다. 살고 싶다. 죽고 싶지 않다. 문장 너머로 이런 비명이 들릴 때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왜일까. 생전에 얼굴 한 번 뵌 적 없고 음성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분인데도 그립고 안타까운 것은.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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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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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에 이어 2년 만에 선보인 최은영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아무리 잘 쓰는 소설가도 여러 중단편을 묶은 소설집을 내놓으면 그중 몇 편은 덜 좋기 마련인데 최은영 작가의 소설집은, <쇼코의 미소>도 그렇고 <내게 무해한 사람>도 그렇고, 실려 있는 작품이 하나같이 좋다. 약간이라도 덜 좋은 작품이 없다. (대체 어떻게 이래. 인생 2회차인가...)


이 책에는 <그 여름>, <601, 602>, <지나가는 밤>, <모래로 지은 집>, <고백>, <손길>, <아치디에서> 이렇게 일곱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작품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대목이 있다. 가령 <그 여름>은 지방 소도시에서 처음 만나 열렬하게 사랑을 나누었던 레즈비언 커플이 각각 대학 진학과 취업을 계기로 상경해 서서히 멀어지는 과정을 그린다. 작품의 화자는 지방 소도시 출신이며 레즈비언인 자신이 의심할 여지없는 소수자라고 여겼으나, 자신과 달리 대학 졸업장도 없고 험한 일을 하는 애인에게 점점 덜 끌리는 것을 느끼며 자신이 이 관계를 파괴하고 애인에게 해를 입히는 가해자임을 자각하고 괴로워한다. <601, 602>의 화자 역시 억압적인 가부장제에 시달리는 친구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지만, 정작 자신이 하는 일은 친구를 동정하는 것일 뿐이고 실제로 친구를 돕거나 구하지 않음을 깨닫고 자괴감에 빠진다.


작가는 후기에 이렇게 썼다. "나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주는 고통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몸으로 느꼈으니까. 그러나 그랬을까, 내가.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오래도록 나는 그 사실을 곱씹었다." 작가만 그랬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를 타인으로부터 상처받기만 할 뿐, 타인에게 상처 준 일은 없는 순결한 존재라고 굳게 믿기도 한다. 그런 믿음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실상 인간은 잉태된 순간부터 어머니의 육체에 해를 끼치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생명들)의 안녕과 평화를 해치며 살다 죽는다. 그것이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건 그대로 누군가가 입은 피해와 불편을 방조한 것과 다름없게 되고 가해자나 마찬가지가 된다.


산다는 건 정녕 피해자가 되거나 가해자가 되거나,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는 일일까. 상처받기도 싫고 상처 주기도 싫은 사람은 삶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을까. 작가가 이 책에서 분명한 답을 주는 건 아니지만, 이 책의 제목인 '내게 무해한 사람'이 <고백>에 나오는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야.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라는 문장에서 따왔다는 사실이 어쩌면 답일 수 있을 것 같다. 나부터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 그런 마음을 지닌 사람을 아끼는 마음. 그런 마음이 모이고 또 모이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덜 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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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 - 고서점에서 만난 동화들
곽한영 지음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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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먼저 읽고 강력 추천해서 읽게 된 책이다. 저자 곽한영은 캐나다의 헌책방에서 우연히 <키다리 아저씨>의 초판본을 만난 것을 계기로 서양 동화의 초판본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중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작품 10편을 골라 그 책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이 책에 담았다.


이 책에 소개된 서양 동화는 <작은 아씨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톰 소여의 모험>, <켄싱턴 공원의 피터 팬>, <보물섬>, <빨간 머리 앤>, <하늘을 나는 교실>, <안데르센 동화집>, '곰돌이 푸' 시리즈, <닐스의 모험> 등이다. 이 책을 통해 어린 시절 아무 생각 없이 읽었던 동화들의 뒷이야기를 알 수 있어 흥미로웠다. 어릴 때 나는 <작은 아씨들>을 읽다가 주인공 조가 아닌 동생 에이미가 로리와 결혼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는데, 실은 이게 결혼이 여성의 인생 목표인 것처럼 그리는 소녀 소설의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든 장면인 걸 알고 마음이 도리어 편해졌다. <빨간 머리 앤>의 작가도 작품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독립적인 여성상을 만들고 싶어 했다고.


여성 작가 대부분이 생계의 압박에 시달리며 힘들게 글을 쓴 것과 달리, 남성 작가 일부는 자신의 콤플렉스나 소아 성애 취향을 충족하기 위해 글을 썼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루이스 캐럴이 생전에 좋아했던 소녀 앨리스에게 바치기 위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썼다는 이야기는 유명하고, <피터 팬>의 작가는 자신이 입양한 남자아이들 중에 특별히 아꼈던 소년 몇 명을 모델로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안데르센은 평생에 걸쳐 지독한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으며, 이를 반영한 작품이 <미운 오리 새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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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40일 - 손으로 쓰고 그린
밥장 지음 / 시루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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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이 허영만 화백 일행과 함께 호주 대륙을 일주한 기록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이제까지 스페인, 그리스, 에스토니아, 이집트, 인도네시아, 태국, 아르헨티나 등을 다녀온 소문난 여행 마니아지만 이번 여행은 출발하기 전부터 불안했다. 그도 그럴 게 40대인 저자가 이 여행의 '막내'였기 때문이다. 


허영만 화백을 비롯한 '인생 선배'들을 수발하느라 정작 여행은 제대로 못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은 현실이 되었고, 선배들 몫까지 요리, 설거지, 청소, 빨래 등등을 하느라 여행을 즐기기는커녕 본업인 그림도 못 그려서 힘들어하는 저자의 모습은 시집살이로 등골 빠지는 며느리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이래서 내가 단체 여행을 안 간다...).


호주에서 뭘 보고 어떻게 놀지를 궁리하는 게 아니라, 오늘은 뭘 먹고 어떻게 요리를 할지를 궁리하는 저자의 모습은 저녁 반찬 고민하는 우리 엄마의 모습... 참다못한 저자가 노동 쟁의(?)를 벌이고, 그 결과 막내가 전담하다시피 했던 일들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눈물겹다 못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그래도 여행은 혼자 하는 게 최고라고.). 


이렇게 저자를 부려먹은(!) 허영만 화백 일행이 따로 남긴 여행기가 있나 궁금해 찾아보니 <호주 캠퍼밴 40일>이 출간되어 있다. 이것도 조만간 읽어봐야지.


밥장 특유의 생생하고 구체적인 일러스트로 기록한 40일간의 여정은, 때로는 그림이 글이나 사진보다 여행지에서의 추억과 감동을 전달하는 데 더욱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언제 봐도 부러운 솜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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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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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야마구치 슈는 철학 전문가가 아니라 경영 컨설턴트이다. 철학 전문가도 아닌 저자가 사회인을 위한 철학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이렇다. 미국과 유럽의 엘리트 교육은 철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서양의 엘리트 경영인들은 어려서부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홉스, 로크, 루소, 마르크스 등 철학과 사회학의 고전을 착실히 학습하며, 사회인이 된 후에도 꾸준히 새로운 저서를 읽고 토론을 나누며 지식을 업데이트한다. 반면 일본의 경영인들은 철학에 별 관심이 없다. 이들은 철학이 '돈 안 되는 학문'이라고 경시하거나 천대한다.


그렇다면 서양의 엘리트 경영인들은 왜 기꺼이 시간을 할애하여 걸핏하면 쓸모없는 학문으로 치부되는 철학을 배우는 걸까. 시카고 대학교 총장을 지낸 로버트 허친스는 이렇게 설명했다. '교양 없는 전문가야말로 우리의 문명을 가장 위협하는 존재다. 전문 능력이 있다고 해서 교양이 없거나 매사에 무지해도 되는 것일까?' 그러니까 서양의 엘리트 경영인들은 철학을 배우지 않고 사회적 지위만 얻은 '위험한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일부러 바쁜 시간을 내서 철학을 배우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철학을 배우지 않고 사회적 지위만 얻은 일본(과 한국)의 경영인들은 위험한 존재라는 뜻이 아닐까.


저자는 이 책에서 비즈니스 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50가지 철학 사상을 소개한다. 어려운 철학 용어나 이론을 남발하지 않아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고, 목차를 연대순으로 구성하지 않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다가 눈에 들어오는 대목이 있으면 자기 것으로 취하는 방식으로 읽으면 된다.


니체의 '르상티망'과 명품 마케팅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여느 철학서에 따르면 '르상티망(ressentiment)'은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강자에게 품는 질투, 원한, 증오, 열등감 등이 뒤섞인 감정'을 뜻한다.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개인은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 기준에 복종하거나,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판단 자체를 뒤바꾸거나. 주위의 모든 사람이 명품 가방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만 없는 경우, 어떻게든 명품 가방을 사는 사람이 전자라면, 명품 가방을 가진 사람을 욕하는 사람은 후자다. 르상티망을 품은 개인은 르상티망을 해소하기 위해 계속 상품을 구입하므로 기업은 르상티망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제품의 콘셉트를 설정하고 마케팅을 한다.


에리히 프롬의 명저 <자유로부터의 도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조직 관리의 기술은 무엇일까. <자유로부터의 도피>에 따르면 인간은 결코 자유를 좋아하는 존재가 아니다. 자유에는 견디기 어려운 고독과 통렬한 책임이 따른다. 이 고독과 책임을 감당하면서 자유를 만끽할 자신이 있는 인간은 의외로 많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나치즘이다. 당시 독일의 수많은 소상인, 장인, 사무직 근로자들로 구성된 하층 및 중산계급이 스스로 자유를 내던지고 국가 권력에 예속되고 복종하길 바랐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4차 산업혁명 등을 통해 개인의 자유를 점차 늘리는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사회에, '자유를 피하고 싶어 하는' 성향의 인간들은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명저 <제2의 성>을 언급하며 일본 기업은 물론 사회 전반에 깊숙이 침투되어 있는 여성차별을 언급한 점도 눈에 띈다. 저자는 일본 기업 대부분이 여성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줄도 모르는 심각한 상태라고 진단하며, 그러한 무자각이 여성의 사회 진출을 방해하는 최대의 장벽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한국 기업도 귀담아들어야 할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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