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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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거지 소녀>라서 주인공이 거지 소녀인 줄 알았다. 그래서 주인공 로즈에게 부모도 있고 집도 있어서 언제쯤 거지가 될까 궁금해하면서 읽었다. 끝내 거지가 되지 않은 채 대학에 진학하고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왜 이런 제목이 붙었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그러다 이런 문장을 만났다. "네가 가난해서 나는 좋아. 너무 사랑스러워. 거지 소녀 같잖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로즈의 첫사랑, 로즈의 전 남편 패트릭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패트릭이 그런 말을 한 의도를 모르지 않는 건 아니다. 부잣집 아들인 패트릭의 눈에는 가난한 집에서 힘들게 자란 로즈가 동화 속 거지 소녀와 겹쳐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타인에게, 그것도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거지라고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패트릭으로 하여금 로즈에게 거지 소녀라고 말할 수 있게 한 건 무엇일까. 그가 부자여서일까, 아니면 남자여서일까, 그것들이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더라도, 그가 만약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여자였다면, 부잣집 아들에게 그런 말을 '감히' 함부로 할 수 있었을까.


이 소설은 본격적인 페미니즘 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소설 곳곳에 여자라면, 그것도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장면과 문장이 나온다. 학창 시절 로즈의 학교에선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여학생이 코트 보관실 바닥에 떨어뜨린 생리대를 누군가가 학교 중앙홀에 있는 트로피 케이스에 몰래 넣어두었다. 문제가 되자 여학생들은 하나같이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고, 남학생들은 낄낄거리며 여학생들을 조롱했다. 결국 한 여학생이 생리대의 주인으로 지목되자(그 생리대를 트로피 케이스에 넣어둔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은 듯하다) 남학생들은 이렇게 놀렸다. "오늘도 걸레 차고 있냐, 뮤리얼?" 여학생들은 이렇게 말했다. "나 같으면 자살하고 만다." 측은함이 아니라 조급함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로즈가 딸 애나를 낳은 산부인과 병원에서 알게 된 조슬린과 클리퍼드는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로즈는 현재 전업주부인 조슬린인 결혼 전까지 작가 지망생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꿈을 포기한 이유를 물어본다. 그러자 조슬린은 이렇게 말한다. "(클리퍼드가 가진) 진짜 재능이 어떤 건지 보니까 난 그냥 펜이나 놀리며 노닥거리다 말 거란 생각이 드는 거야. 그래서 그냥 그 사람을 돌보는 게, 그러니까 내가 그이를 위해 하는 이딴 일들이 다 뭐든 간에 좌우간 이걸 하는 게 낫겠더라고." 그러고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 "여자들은 대개 위대한 예술가가 아니잖아. 남자들처럼 그렇게는 말이야." 조슬린은 그때까지 로즈가 만난 여자들 중에 가장 똑똑하고 개방적이며 재미있는 사람이었는데도 이런 고루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로즈는 조슬린이 잘못된 생각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했고, 조슬린 또한 그걸 알았다.


로즈의 삶에는 매질을 일삼았던 아버지와 배 아파 낳은 자식과 그렇지 않은 자식을 은밀하게 - 때로는 공공연히 - 차별했던 새어머니, 한때는 달콤한 연인이었지만 결국 가식적이고 비겁한 속내를 드러낸 패트릭, 한 시절 매우 친하게 지냈으나 이제는 소원해진 조슬린과 클리퍼드 부부 외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친구 랠프도 있다. 랠프와는 이름이 알파벳 순서상 비슷해서 가까운 자리에 앉는 경우가 많았다. 집안 환경이 비슷하고 유머 감각도 통해서 동지애 비슷한 감각으로 친하게 지냈다. 랠프가 집안 사정상 학교를 그만둔 후 자연스럽게 소식이 끊겼는데, 한참 후 로즈는 랠프가 해군에 입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로즈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녀가 아는 소년들은 아무리 무능해 보여도 결국은 남자가 될 것이며, 자신들이 갖춘 것보다 훨씬 큰 재능과 권위가 필요할 것 같은 일들을 하도록 허가받을 거라는 사실을."


세월이 흐른 후 로즈는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다. 로즈를 가혹하게 매질했던 아버지는 일찍이 세상을 떠났고, 새어머니 플로는 양로원에 들어갔다. 배다른 동생 브라이언은 로즈처럼 진작에 고향을 떠나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되었고, 동창들은 장의사가 되거나, 회계사가 되거나,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로즈는 랠프와 아주 잠깐 만난 적이 있다. 길게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그동안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이렇게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에 은근한 기쁨과 감동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로즈는 여전히 흉내 내기를 잘하는 랠프를 보면서 자신이 배우가 되고 싶었던 건 랠프의 영향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태어나고 자란 환경은 비슷했지만 남자라서 수많은 기회를 부여받았던 랠프와, 남자가 아니라서 스스로 기회를 찾아야 했던 자신의 처지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며 묘한 쾌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로즈는 살면서 자신에 대해 이렇다 또는 저렇다고 규정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새엄마 플로는 로즈에게 건방지고 이기적인 여자애라고 욕했고, 헨쇼 박사는 로즈에 대해 유흥에는 관심 없는 학구파라고 말했다. 조슬린은 로즈가 제법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놀란 표정을 차마 감추지 못했고, 패트릭은 로즈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로즈가 마구간 같은 집에서 자란 거지 소녀라고 말했다. 그 말들은 모두 사실일 수도,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로즈 자신의 선택이다. 로즈는 새엄마가 건방지고 이기적이라고 욕하든 말든 고향을 떠나 자신의 삶을 살았다. 헨쇼 박사의 말을 듣지 않고 패트릭과 결혼했다. 예술가 남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조슬린을 보면서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고, 끝내 자신을 오랫동안 무시하고 능멸했던 남편 패트릭과 헤어졌다.


로즈의 삶에는 분명 불행의 씨앗이 많이 있었다. 생모는 일찍 사망했고, 계모는 사려 깊지 못했으며, 아버지는 무심했다. 집안은 가난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계모와 로즈가 생계를 책임지다시피 했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했으나 일찍 결혼을 하는 바람에 직업을 가지지 못했고, 이혼 후 직업을 가지려 했을 때에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즈가 나름 만족할 만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건 위기가 닥칠 때마다 남의 생각에 의지하는 대신 스스로 판단하고 결과에 책임을 졌기 때문이다. 로즈 자신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 마땅한 인간인지 제대로 알고 있었고, 스스로 그것을 증명할 기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원제가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Who Do You Think You Are?)>라는 사실을 알았다. 영미권에서 이 말은 상대의 오만함을 지적하며 욕보이고 싶을 때 쓴다고 한다. 로즈는 주로 새엄마에게 야단을 맞을 때 이 말을 들었다. 새엄마의 눈에는 똑똑하고 당찬 로즈의 모습이 오만하고 건방지게 보였던 모양이다. 당시만 해도 어리고 약했던 로즈는 미처 자신을 변호하지 못했지만, 먼 훗날 새엄마 앞에서 로즈 자신의 삶으로 자신의 정체를 알린다. 새엄마 말대로 자신이 오만하고 건방진 계집애인지, 아니면 제법 괜찮은 대학을 나오고 어엿한 직업도 있는 똑똑하고 당당한 여성인지를 새엄마가 보게 한다. 물론 새엄마는 성장한 로즈의 모습을 바로 보지 못한다. 친자식이 아닌 로즈의 성공보다, 친자식인 브라이언의 성공을 더 크게 여긴다. 그래도 상관없다. 로즈의 삶은 온전히 로즈의 것이고, 로즈가 누구인지는 로즈 자신이 이미 결정했다.


패트릭도 끝내 바뀌지 않는다. 이혼한 지 몇 년이 지난 후 로즈와 패트릭은 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로즈를 알아본 패트릭은 얼굴을 찌푸린다. 패트릭에게 로즈는 주제도 모르고 자신을 배신한 여자, 비정하게 딸을 버리고 떠난 여자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패트릭이 아는 로즈는 로즈의 일부일지언정 전부가 아니다. 패트릭이 아는 로즈로 살기에 로즈는 너무 크고 대단한 존재다.


한때 자신을 사랑한다고 속삭였던 입으로 동시에 자신을 거지 소녀라고 모욕했던 남자. 그 남자로부터 등을 돌리며 로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제 더는 누구도 나에게 거지 소녀라는 말을 못 하게 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내 생각에 로즈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로즈는 더 이상 자신이 누구라고 증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로즈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 중 누구도 타인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규정할 자격이 없듯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저 살아갈 뿐이다. 삶으로 보여줄 뿐이다. 나는 거지 소녀가 아니라고. 나는 나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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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 바이 아마존 Death by Amazon - 새로운 유통 전쟁의 시대, 최후의 승자는?
시로타 마코토 지음, 신희원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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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아마존'이라는 공룡과 맞서 싸울 준비로 분주하다. 여기서 아마존은 진짜 공룡이 아니라 미국의 거대 유통 기업 아마존(amazon)을 의미한다. 일찍이 아마존이 진출한 미국과 일본에서는 온, 오프라인 구분 없이 수많은 매장이 문을 닫으며 아마존의 위세에 무릎을 꿇었다. 앞으로 아마존이 한국에 진출한다면 한국에선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아마존의 맹공격에 맞서 한국의 기업과 조직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일본의 미래유통전문가 시로타 마코토의 책 <데스 바이 아마존>에 그 답이 나온다.


'데스 바이 아마존(Death by amazon)'은 아마존의 성장으로 위기에 처한 상장 기업 종목들의 주가를 지수화한 것이다. 미국의 투자정보회사 베스포크 인베스트먼트그룹이 처음 만든 용어로 '아마존 공포종목지수'라는 의미다. 아마존 공포종목지수는 아마존의 약진으로 실적 악화가 예상되는 소매 관련 기업 54개사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 최대 소매 기업 월마트, 서점 체인점 반스앤드노블, 회원제 대형 판매점 코스트코 홀세일, JC페니, 메이시스, 노드스트롬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아마존이 과거에 진출했거나 현재 또는 미래에 진출 예정인 산업 분야의 동향을 하나씩 살펴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존의 시작은 서적 분야다. 아마존은 1995년에 온라인 판매 사이트를 연 이후 현재 종이책뿐만 아니라 전자책까지 세계 최대의 매출을 자랑하는 서점으로 성장했다. 이와 동시에 미국의 개인 서점은 4천 개에서 1,400개까지 감소했고, 대형 서점 보더스가 도산했으며, 또 다른 대형 서점인 반스앤드노블은 경영악화로 인해 정규직 1,800명의 해고를 발표했다.


이후 아마존은 IT와 유통 분야에 진출했다. 2018년 아마존은 클라우드 부문인 AWS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네트워크 스위치 기계를 판매할 것으로 보도했다. 그러자 이 분야의 유력 업체 시스코 시스템스의 주가는 6.1퍼센트 하락했다. 코스트코와 아마존 프라임은 유료 회원제를 도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1993년 회원제 비즈니스를 시작한 코스트코의 회원 수는 전 세계적으로 9천만 명이 넘었지만 후발주자인 아마존은 이미 1억 명을 돌파했다. 아마존이 홀푸드 인수를 발표한 후에는 코스트코의 주가가 10퍼센트 이상 떨어졌다.


아마존의 약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성장세가 빠르고 기업의 규모가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마존은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도입해 고객들에게 신선한 구매 경험을 선사하고 전에 없었던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직원도 계산대도 없는 무인점포 '아마존 고', 음성만으로 원하는 걸 주문할 수 있는 음성인식 비서 단말기 '아마존 에코' 등이다. 이밖에도 아마존이 가져올 변화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미래 트렌드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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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호구 되는 경제상식 - 내 주머니를 지키고, 삶의 등급을 높이는 최소한의 경제상식 떠먹여드림 모르면 호구 되는 상식 시리즈
이현우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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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는 적당한 돈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돈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하는 것이 바로 '경제상식'입니다." 미국공인회계사(AICPA)이자 유튜브 채널 <인문학으로 창업한 남자>의 운영자 이현우의 책 <모르면 호구 되는 경제상식>의 서문에 나오는 문장이다.


저자는 마냥 손해만 보는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 개인의 영혼과 육체를 잡아먹는 자본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재산과 행복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도구는 '경제상식'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인문학과 경제학을 넘나드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저자가 그 어떤 전문가보다 쉽고 친절한 언어로 금융상식, 재테크상식, 글로벌경제상식, 시사상식 등을 매끄럽게 설명해놓은 책이다.


이 책은 여섯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에서는 대학에서 배우는 경제원론 수준의 가벼운 경제상식을 다룬다. 최근 화제가 된 화폐 개혁 문제도 나온다. 화폐의 호칭을 바꾸거나 액면가를 일정 비율로 낮추는 것을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이라고 한다. 화폐 개혁을 하면 계산, 지급, 장부 기재상의 불편을 해소하고 자국 통화의 대외적 위상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물가가 매우 빠르게 치솟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 우리나라는 1962년에 화폐 개혁을 한 이후 지금까지 당시 화폐 시스템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제2장에서는 부동산, 주식, 펀드, 채권, 금 투자, 비트코인 등 부자들은 다 알고 있다는 기본적인 재테크 상식을 다룬다. 부동산 투자에서 필승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부동산 투자로 큰돈을 번 부자들은 부동산 가격만 보지 말고 '환율'도 보라고 충고한다. 왜냐하면 환율이 먼저 움직이고 부동산이 따라서 나중에 움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환율이 상승하면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려는 움직임이 늘어난다. 우리나라 자산에 관심이 없어지니 자연히 부동산의 열기도 식는다.


제3장에서는 물가, 실업률 등 거시경제 지표 읽는 법을, 제4장에서는 직장인이라면 꼭 알아야 하는 기업 활동 관련 경제상식을 소개한다. 제5장에선 미중 무역 전쟁, 브렉시트 등 글로벌 경제 이슈를, 마지막 제6장에선 5G, 3D프린터, VR과 AR 등 신기술 트렌드를 다룬다. '통일한국'이 되면 미세먼지가 줄어들 거라는 내용도 나온다. 북한을 통해 러시아 가스관이 연결되어 천연가스 사용이 늘어나면 석탄 사용량이 감소해 대기오염이 줄어들고 리스크가 높은 원자력 비중이 줄어들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새로운 시대에 주목받는 가치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자본의 가치는 떨어지고, 돈으로 살 수 없고 소비할 수 없는 신뢰, 공감, 호의 등의 가치는 높아질 것이다. 유튜브나 페이스북에서 팔로워나 구독자로 수익이 창출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익보다 가치가 먼저라는 저자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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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디까지 행복해봤니? - 네 마음이 반짝반짝 빛나는 곳으로 너를 데려다줄게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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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주시지도 않는 기도를 왜 해야 하나요?" 유명 광고 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다 현재는 20년째 여행하며 글을 쓰는 힐링라이터로 변신한 곽세라의 신작 <너는 어디까지 행복해봤니?>를 읽다가 이 문장에 눈길이 멈췄다.


이 책은 화자인 '나'가 천리 앞을 보는 장님 '해리', 꿈을 지키는 사람 '파루', 별을 이야기하는 소년 '야란'을 만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일종의 환상동화다. 어느 새벽 '나'는 기차역에 있었다. 기차역의 대합실에는 나와 소년, 수녀님밖에 없었다. 열네댓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은 백발의 수녀에게 들어주시지도 않는 기도를 왜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수녀는 이렇게 답했다. "... 부모들도 사랑한다고 해서 어린 자식이 조르는 것을 모두 들어주진 않지 않니? 하지만 일단 아들딸이 뭘 원하는지는 알고 있어야 해. 네가 원하는 바로 그때, 원하는 바로 그걸 주진 않을지 모르지만 들어뒀다가 너의 때가 무르익었다 싶을 때, 너에게 적당하겠다 싶은 걸로 골라 주는 것이 더 크고 현명한, 진정 너를 사랑하는 보호자가 하는 일이란다."


얼마 후 '나'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었다는 샤먼 해리를 만나러 간다. 해리는 손을 만지면 그 사람의 앞날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앞날이 어떤지 묻는 '나'에게 해리는 이렇게 답한다. "사람들은 던져지는 덩어리에만 관심이 있다. 그 덩어리로 그들이 무얼 할지가 진짜 운명인데도. '당신은 내년 봄에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가 부러지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뛸 듯이 놀라며 절망하지. ... 하지만 그 사고로 병원에 누워 지내는 3달 동안 그간 읽지 못했던 책들을 읽고 깊이 있게 생각한 끝에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아내는 것도 분명 일어날 일이다. 그가 선택하기만 한다면."


행복해지려고 라다크에 가겠다는 '나'에게 해리는 이렇게 충고한다. "먼저 행복해져라. 행복해지거든 라다크에 가. ... 행복한 사람이 되어서 가면 세상 어디든 행복할 거다.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출발점이다. 신발과 같아. ... 밑창이 튼튼한 신발을 신은 사람은 가시덤불이 나와도, 얼어붙은 강을 만나도 웃으며 성큼성큼 건널 수 있다. 불행한 채 어딘가로 간다는 것은 맨발로 길을 떠나는 것과 같아."


사실인지 허구인지 알쏭달쏭한 이야기들은, 놀랍게도 저자의 상상이 아니라 저자가 여행을 하면서 실제로 겪은 일들이라고 한다. 저자는 행복한 삶, 만족스러운 삶, 가슴이 뛰는 삶을 살고 싶다면 무엇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은 선택하지 않을 힘, 가슴 뛰지 않는 일엔 발을 들여놓지 않을 용기,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는 얽히지 않을 배짱을 갖춰야 한다고 충고한다. 저자의 경험에서 비롯된, 진심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조언들이 마음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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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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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읽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애정을 넘어 존경하는 황정은 작가가 추천해 읽게 된 책인데, 아무리 집중해도 진도가 안 나가서 결국 책장을 덮었다. 영영 그렇게 제발트와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얼마 전 창비에서 제발트의 <이민자들>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한 번 제발트에 도전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민자들>은 <아우스터리츠>보다 가독성이 훨씬 좋다. 쉬운 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도중에 그만둘 만큼 어려운 책도 아니다.


이 책은 저자의 분신으로 보이는 화자 '나'가 살면서 만난 네 명의 이민자의 이야기가 차례로 등장하는 연작 단편 형식을 취한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가 세 들어 사는 집의 주인인 헨리 쎌윈 박사다. 쎌윈 박사는 원래 리투아니아 사람인데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영국으로 이민 와서 영국식 교육을 받았다. 장학금을 받아 케임브리지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향수병이 심해지면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고향에서의 기억에 점점 침식되었다. 결국 그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데, 그것은 어쩌면 살면서 한 번도 온전히 한곳에 속해있다고 느껴본 적 없는 사람이 느끼는 우울감 비슷한 감정 때문이 아닌가 싶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의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인 파울 베라이터다. 파울의 부고를 듣고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나'는 파울의 생애에 관심이 생겨 파울을 아는 사람들을 만나러 다닌다. 사람들은 파울이 교사로서는 우수했지만 인간으로서는 별종이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무엇이 파울을 별난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궁금해진 '나'는 파울의 젊은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고, 파울의 아내 헬렌이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어 끔찍한 최후를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파울은 자신을 비롯한 유태인들을 차별하고 학살한 독일인들을 증오하면서 그 자신은 독일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 운명을 저주하지 않았을까 하고 '나'는 짐작한다.


이어서 미국으로 이주해 은행가 가문의 집사로 지냈던 친척 할아버지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1960년대 후반 영국으로 이주한 독일 출신의 유대인 화가 막스 페르버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이들의 삶을 재구성하는 동시에 자신의 삶을 반추해본다. '나' 또한 독일 출신이지만 영국에 살고 있는 이민자다. '나'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율하는 한편,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원래 나고 자란 곳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게 만들고 떠나게 만드는 요인이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본다.


재일조선인으로서 디아스포라 문제를 연구하는 서경식 선생의 책들이나 얼마 전에 읽은 재독 일본인 작가 다와다 요코의 책들과 같이 읽으면 좋을 듯하다. 유대인 문제를 다룬 책이라는 점에서 프리모 레비의 책들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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