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 요즘 어른들 - 대한민국 세대분석 보고서
김용섭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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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기성세대만을 의식하며 살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나도 기성세대라는 걸 깨닫고 나보다 젊은 세대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소위 말하는 Z세대다. 텍스트보다 동영상에 능숙한 세대. 네이버 검색보다 유튜브 구독이 친숙한 세대. 그들을 모르면 언제 나도 꼰대라고 불릴지 모를 일이다(벌써 그렇게 불리고 있을지도...).


나처럼 '요즘 애들'을 알고 싶거나 '요즘 어른들'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 나왔다.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의 책 <요즘 애들, 요즘 어른들>이다. 이 책은 요즘 애들 또는 요즘 어른들이 다른 세대에 대해 가지는 궁금증과 의문을 64가지로 정리해 답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베이비 부머 & 뉴 식스티'(1955~1964년생), 'X세대 & 영 포티'(1969~1979년생), '밀레니얼 세대'(1984~1999년생), 'Z세대'(2000~2019년생)를 주로 다룬다. '베이비 부머 & 뉴 식스티'는 한국 전쟁 후 태어나 한국의 경제 재건 시기의 주역으로 활동한 세대다. 전반적으로 보수안정적 성향이 강하며 자신들이 한국의 경제 성장을 주도했다는 자부심이 크다. 'X세대 & 영 포티'는 해외 문화와 소비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첫 세대이자 가장 왕성한 대중문화 소비 세대다. 이들이 40대가 되면서 기성세대 같은 중년이 아니라 청년에 가까운 40대로 진화했는데 그것이 '영포티'다. '밀레니얼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로 소유보다는 경험과 공유에 가치를 둔다. 'Z세대'는 X세대의 자녀 세대로 디지털 환경에 능숙하고 텍스트보다 동영상에 능숙하다. ​ 이들이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건, 서로가 서로를 모르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 신입사원들은 왜 입사 1년 만에 사표를 쓰는 걸까? 베이비 부머 세대는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어',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라고 말하며 혀를 끌끌 차지만, 밀레니얼 세대가 보기에는 기존의 조직 문화야말로 답이 없다. 밀레니얼 세대는 조직의 화합보다 개인의 행복을 중시한다. 불필요한 야근을 강요당하고, 부하의 공을 채가는 상사를 묵인하고, 조직의 단합을 위한답시고 새벽까지 술 마시고 주말에도 상사가 부르면 나가야 하는 문화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과거 세대는 힘들고 더러워도 참고 견디다 보면 언젠가 좋은 날 오겠지라는 심정으로 버텼지만, 요즘 세대는 과거 세대처럼 정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평생직장을 기대하기도 어려우니 퇴사를 택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밀레니얼 세대는 어른들 말대로 미래가 불안한 N포 세대이고 오늘만 사는 욜로족일까? 기성세대는 밀레니얼 세대를 보면서 취직도 못 하고 돈도 못 벌어서 미래가 없는 무능한 애들이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의 준말)'를 외치며 인생을 허비한다고 개탄한다. 가만히 살펴보면 밀레니얼 세대가 탕진하는 돈은 그래봤자 인형뽑기나 동전노래방, 다이소에서 몇만 원 쓰는 게 전부다. 탕진하고 싶어도 탕진할 돈이 없다. 그에 비하면 기성세대는 노름해서, 유흥에 빠져서, 빚보증 서서, 사업 잘못 벌여서 엄청난 목돈을 날렸다. 온 식구를 힘들게 만들고 위험에 빠뜨렸다.


오늘날 기업들은 Z세대에 주목한다. Z세대는 아직 경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나이는 아니지만, 부모인 X세대의 소비에 큰 영향을 미친다. X세대는 과거 세대와 달리 권위적인 부모가 아닌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어 한다. 자녀와 소통도 원활하다. 가족 전체가 소비하는 식품 및 음료, 가구, 가정용품, 여행 등의 지출에 자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자녀가 부모에게 "우리 집 라면은 농심 말고 오뚜기만 먹자.", "우리 집 자동차는 전기차로 사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하면 그대로 따른다. 기업들은 이러한 특성을 포착해 Z세대와 X세대를 함께 공략하는 방식으로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있다.


베이비 부머 세대는 역사상 가장 활동적이고 소비 욕망이 충만한 60대다. 이들 중에는 꼰대도 많고 지는 해도 많지만, 시대적 변화에 맞게 진화한 사람들도 있다. 저자는 이들을 '뉴 식스티(New sixty)'라고 명명한다. 이들이 젊은 시절을 보낸 1970년대는 정치적으로는 독재 시대였고, 경제적으로는 개발과 성장이 미덕이던 시대였다. 당시 이들은 정부 단속을 피해가며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즐겼다. 그랬던 이들이 나이가 들고 은퇴를 하면서 다시 멋을 부리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여행을 떠나고 있다. 저자는 이들이 이제까지의 노인 문화를 크게 바꾸고 한국 사회의 문화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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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 평론가가 2014년에 발표한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읽다가 포기한 기억이 있다. 평론가가 쓴 책은 어렵다는 편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당시 내 독력(讀力)이 지금만 못했기 때문이었는지, 하여간 여러 번 읽기를 시도했다가 끝까지 못 읽고 중간에 관뒀다. 다행히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끝까지 다 읽었다. 읽다가 못 읽겠으면 전처럼 중간에 관둬야지, 라고 생각한 게 오히려 끝까지 읽는 힘이 된 것 같다(글 한 편의 길이가 짧기도 하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저자가 2010년 이후에 발표한 글들 중에 짧은 글들을 모으고 손봐서 엮은 책이다. 90편 조금 못 되는 글들을 슬픔(1부), 소설(2부), 사회(3부), 시(4부), 문화(5부)로 나눠 배치했다. 지난 7,8년의 글을 모아보니 슬픔에 대한 것들이 많아서 제목에 '슬픔'이라는 단어를 넣었다고 한다. 슬픔에 대한 글을 유독 많이 쓴 건,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때문이기도 하고 2017년 1월 23일 저자의 아내가 수술을 받은 일 때문이기도 하단다. 


저자는 슬픔에 관해 쓴 글을 모은 제1부에서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는 일의 어려움 혹은 불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쉽게 타인의 슬픔이나 고통에 대해 공감한다, 연민한다는 식의 표현을 쓴다. 하지만 타인의 슬픔이나 고통에 백 퍼센트 공감하거나 연민하는 일은 어렵거나 가능하지 않다. 예컨대 부모를 잃은 사람의 슬픔은 부모를 잃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고, 자식을 잃은 사람의 고통은 자식을 잃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똑같이 가까운 사람을 잃었다 해도 각자의 관계와 경험은 저마다 다르기에 쉽게 공감하거나 연민하기 어렵다(이를테면 부모와 사이가 좋았던 사람이 부모를 여읜 경우와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이 부모를 여읜 경우).


그렇다고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위한 노력을 영원히 포기해야 하는가. 그건 절대 아니다. 저자는 우리가 문학 작품을 읽고 직접 창작하고 공유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서로의 슬픔을 공부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슬픔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두운 영혼에 잠식되고 만다. 세월호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 앞에서 피자며 짜장면 따위를 폭식했던 인간들과 다름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죄없는 국민 수만 명을 학살하고도 스스로를 민주주의의 아버지라 칭하는 몰인격한 존재가 되고 만다.


건축학을 잘 모르면서도 글짓기는 집짓기와 유사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지면(紙面)이 곧 지면(地面)이어서, 나는 거기에 글을 짓는다. 건축을 위한 공정 혹은 준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식을 생산해낼 것. (중략) 둘째, 정확한 문장을 찾을 것. 건축에 적합한 자재를 찾듯이, 문장은 쓰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다. (중략) 셋째, 공학적으로 배치할 것. (5쪽)


케어란 누구에게 시간을 주는 일 (6쪽)


아내가 수술을 받은 날 우리는 병실에서 껴안고 울면서도 나는 아내와 다른 곳에 있는 것만 같았고 그 슬픔으로부터도 아내보다 더 빨리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런 일들을 겪고 무참해져서 이제부터 내 알량한 문학 공부는 슬픔에 대한 공부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8쪽)


제대로 아는 사람만이 '제대로 앎' 그 자체로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 (38쪽)


소설이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소설을 읽으면 겸손해지고 또 쓸쓸해진다. 삶의 진실이라는 게 이렇게 미세한 것이구나 싶어 겸손해지고, 내가 아는 건 그 진실의 극히 일부일뿐이구나 싶어 또 쓸쓸해지는 것이다. (57쪽)


내 사랑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운명에 의해서, 또 한 번은 나에 의해서. (76쪽)


사고는 '처리'하는 것이고 사건은 '해석'하는 것이다. '어떤 개가 어떤 날 어떤 사람을 물었다'라는 평서문에서 끝나는 게 처리이고, '그는 도대체 왜 개를 물어야만 했을까?'라는 의문문으로부터 비로소 시작되는 게 해석이다. 요컨대 사고에서는 사실의 확인이, 사건에서는 진실의 추출이 관건이다. 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 사고가 일어나면 최선을 다해 되돌려야 하거니와 이를 '복구'라 한다. 그러나 사건에서는, 그것이 진정한 사건이라면, 진실의 압력 때문에 그 사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무리하게 되돌릴 경우 그것은 '퇴행'이 되고 만다. (115쪽)


대통령(大統領)이 대통령(大痛靈)이면, 우리 중에 가장 크게 아파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204쪽)


어렵고 지루한 소설이나 영화를 보거나 그것을 칭찬하는 평론가를 볼 때 화가 난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들로부터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는 느낌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가장 대중친화적인 소설이나 영화라고 칭송되는, 그러니까 쉽고 재밌기만 한 작품을 보다가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 작품들이 나를 포함한 대중을 '아무 생각 없이 재미만을 탐닉하는 소비자' 정도로 얕잡아 보고 있는 것 같아서다. 나는 거기서 '지갑을 열어. 그리고 아무 생각 말고 그냥 즐겨. 넌 원래 그렇잖아.'라는 속삭임을 듣는다. (3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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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여름 2018 소설 보다
김봉곤.조남주.김혜진.정지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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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제 오늘 나로서는 드물게 잠시 쉴 겨를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마침내 좀 쉴 수 있을까 했더니 이 책 리뷰를 안 쓴 게 떠올라서 부리나케 리뷰를 쓴다. (얼른 쓰고 넷플릭스에서 <그레이스 앤 프랭키> 보며 쉬고 싶다...!)


<소설 보다>는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의 새로운 이름이라고 한다.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이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소설 보다>의 기획과 판형, 디자인은 매우 마음에 든다. 작고 얇고 가벼워서 휴대하기 좋고 가독성도 그만이다. <소설 보다>는 분기마다 두 편의 소설을 선정해 상반기와 하반기에 한 권씩 책이 나온다. 작년 여름에 나온 <소설 보다 : 봄 여름 2018>에는 모두 네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김봉곤의 <시절과 기분>, 조남주의 <가출>, 김혜진의 <다른 기억>, 정지돈의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이다. 


이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은 김봉곤의 <시절과 기분>이다. 주인공 '나'는 게이이며 소설가다. 어느 날 '나'는 대학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귀었던 여자 친구와 연락이 닿는다. 얼마 후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한창 연애하던 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는 거리를 걸으며 과거를 회상한다. 헤어질 무렵 '나'는 어쩌면 예전 여자 친구와 잘 될 수도 있었다고, 어쩌면 둘의 사이를 예전처럼 돌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그저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일 뿐이다. 사실 인생사가 대개 이렇지 않은가. 그 때로 돌아가면 다시 잘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일은 가능하지도 않고 절실히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그 가능성을 점쳐보고 혼자 미련 두고 마음 아파하는 심사는 대체 뭘까. 실은 나도 이런 심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요즘 가장 주목하고 있는 한국의 남성 작가가 김봉곤과 박상영인데, 두 작가 모두 첫 소설집이 불러일으킨 기대감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조남주의 <가출>도 좋았다. 전형적인 가부장인 칠십 대 아버지가 갑자기 집을 나간다. 이를 계기로 가족들이 오랜만에 부모님 집에 모이고 안부도 나누고 같이 식사도 한다. 한때 널리 읽혔던 <엄마를 부탁해>의 성별 역전 버전인 셈이다. 아버지의 행방을 쫓는 가족들은 아버지의 카드 사용 내역을 알리는 문자가 올 때마다 열 일 다 제쳐두고 도시로 시골로 아버지를 찾으러 다닌다. 결말에서 가족들은 아버지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만한 상태에 이르게 되는데, 가부장 없이도 가족 구성원들이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라고 해야할지 당연하다고 해야할지. 아무튼 잘 읽히면서도 마음에 남는 것이 많은 소설이었다.


김혜진의 <다른 기억>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정지돈의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는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작별>에서 읽은 적이 있어 다시 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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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경의선책거리에서 열린 세계 책의 날 행사에 다녀온 지 오늘로서 일주일이 지났다. 작년 세계 책의 날 행사는 우천으로 취소되었기에 올해 행사가 무척 기대되었다. 다행히 올해는 날씨도 좋고(행사 후반에는 비가 내린 듯하지만) 참가한 출판사나 관람객도 많아서 성황리에 잘 마친 듯하다.


주최측으로부터 장미꽃 한 송이와 책 한 권도 선물받았는데, 선물받은 책이 마음에 안 들어 얼굴을 찌푸리고 있자니 어떤 분이(아마도 행사요원이었던 듯하다) 책을 2만원 상당의 책 교환권으로 바꿔주시고 계셨다. 냉큼 달려가 가지고 있던 책을 반납하고 교환권을 받아서 읽고 싶었던 책 두 권을 샀다. 


그 중 하나가 북유튜버 '겨울서점' 김겨울 님의 책 <독서의 기쁨>이다. 책 읽는 장소, 책 읽는 자세, 책 읽을 때 사용하는 도구, 책에 밑줄을 긋는지 안 긋는지, 필사를 하는지 안 하는지 등등 책과 관련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담은 에세이집이다. 책 중반에 저자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독서 역사를 회고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잘 읽히고 재미있었다. 공부 외에 허락된 유일한 오락이 독서였고, 그게 취미이자 습관으로 굳어져 현재에 이르렀다는 고백에 깊이 공감. 중고등학생 때는 참고서 사고 남는 돈을 모아서 책 사고, 대학생 때는 알바해서 번 돈으로 책 사고, 현재는 버는 족족이 책을 산다는 고백에도 '이건 내가 쓴 글인가' 싶었다.


저자는 전자책 어플리케이션에서 제공하는 TTS 기능을 이용해 책을 '듣기'도 한다는데, 눈으로 읽을 때 쉬이 읽히지 않는 책이 있다면 귀로 들어보라는 조언에 솔깃했다. 줄간격이 좁아서 오랫동안 멀리했던,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집을 전자책으로 구입해 읽어볼까 생각 중이다. (겨울서점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GPfjyMkN7uAmzfRpXL-AxQ)





어젯밤엔 Y 인터넷서점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통해 알게 된 웹툰 작가 의외의사실 님의 책 <퇴근길엔 카프카를>을 읽었다. 만화라서 금방 읽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정말 금방 읽었다. 근데 만화라서 금방 읽었다기보다는, 만화에 나오는 책들을 대부분 읽었기 때문에 금방 읽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이 책은 저자가 민음사 블로그에 연재한 <의외의사실의 세계문학 읽기>를 엮은 것이다. 연재 기간 동안 저자는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을 한 권씩 읽고 해당 문학 작품에 관한 만화를 그렸다. <체호프 단편선>, <등대로>, <오셀로>, <죄와 벌>, <위대한 개츠비>, <픽션들>, <순수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 <페스트>, <오이디푸스 왕>, <보이지 않는 도시들>, <변신, 시골의사>, <나를 보내지마>까지 모두 열세 편이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필사적으로 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교롭게도 저자가 고른 열세 권 중 두 권빼고 다 읽었다(!!).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인지 다 알고 읽으니 아무래도 책장이 술술 넘어갈 수밖에.


당연하게도 읽지 않은 책에 관한 만화는 상대적으로 찬찬히,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 중 하나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다. 알베르 카뮈의 작품으로는 <이방인>밖에 읽지 못했는데, 알베르 카뮈의 작품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저자가 소개하는 작가의 생애나 작품에 관한 설명이 흥미로웠다. 이를테면 이런 인용문이 나온다.


늘 스스로를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 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외의 것들,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알베르 카뮈 <페스트> 중에서, 264쪽)


요즘 한창 A형 간염이 유행이기도 하지만, 자연스러운 것 - 잘못된 전통이나 관행, 조직의 적폐 등등 - 은 병균이고 부자연스러운 것 - 건강, 청렴, 순결성-은 일정 정도의 의지와 노력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경지라는 메시지가 마음에 와닿았다. 소설 자체의 줄거리나 내용을 보면 딱히 재미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뭔가 주제 사라마구 느낌?), 대체 이 문장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궁금해서 이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



이 책은 강추 도서이므로 큰 사이즈로 첨부한다.


<퇴근길엔 카프카를>을 다 읽고도 잠이 오지 않아서 읽은 책이 <박완서의 말>이다. 이 책도 Y 인터넷서점 팟캐스트 '책읽아웃'에서 김하나 작가님이 입이 닳도록 찬사를 보내셔서 구입했는데 정말이지 너무너무너무 X 100000 좋다. 필독서로 지정해야 함.


이 책에는 박완서 작가님이 1990년대에 했던 일곱 번의 인터뷰 혹은 대담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여러 지점이 흥미로운데, 첫째는 '작가의 탄생' 면이다.


박완서 작가는 어쩌다 작가가 되었을까. 문학 소녀였고, 서울대 국문과에 진학하기도 했던 박완서 작가가 결혼 후 평범한 전업주부로 지내다 마흔이 되어서야 <나목>으로 등단해 소설가로 커리어를 쌓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책에는 더욱 자세한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결혼 후에도 한국 소설을 즐겨 읽었는데 남성 작가들이 여성을 묘사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읽을 때마다 '이런 여자가 어딨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진짜 여자, 현실의 여자, 살아 있는 여자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인 계기는 박수근 화백의 그림이 엄청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는 알게 된 것이었다. 알려진대로 박완서 작가와 박수근 화백은 젊은 시절 미군 PX에서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 사이다. 박완서 작가는 박수근 화백이 얼마나 고생하며 생계를 잇고 그림을 그렸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데, 박수근 화백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거래하며 엄청난 돈을 번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박수근 화백에 관한 논픽션을 쓰기로 했고, 쓰다 보니 한계에 부딪쳐 픽션으로 장르를 바꿨는데, 그렇게 탄생한 <나목>이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둘째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1931년생인 박완서 작가는 페미니즘을 알지도 못하고 배운 적도 없다고 말한다. 여자라서 집안에서 차별받은 적도 없고, 아들딸 구분 없이 교육시킨 어머니 덕분에 당시로서는 드물게 여성의 몸으로 국내 최고 학부까지 입학했다. 그랬기 때문에 다른 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부당하고 불공평한 지가 눈에 더 잘 들어왔고, 나중에는 상대적으로 덜 부당하고 덜 불공평했다고 여겼던 자신의 삶에도 엄연한 차별의 요소가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전쟁 통에 아버지와 오빠가 죽고 엄마와 딸인 나만 남자, 엄마가 "집안이 바로 되려면 네가 죽고 오빠가 살아남았어야 했는데"라고 말한 식이다. (이는 사노 요코가 한 경험과도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가부장제 안에서 엄마가 딸을 온전한 딸로서가 아니라 아들 대신, 또는 아들이 되지 못한 존재로 여기는 경험은 나 역시 한 적이 있고 지금도 하고 있기에 어떤 전율 같은 것을 느꼈다. 


본인은 페미니즘에 관해 잘 모른다고 말하지만, 말씀 하나하나가 페미니즘 개론서에 나올 법한 문장들이고, 어떤 발언은 2019년을 살고 있는 현대 여성들도 미처 가닿지 못하는 생각들이라서 귀감이 되었다.


"사실 기득권을 쥔 쪽은 깨어날 필요가 없는 거구요. 남자가 기득권자인 건 확실하잖습니까? 그 점은 정권의 관계하고도 참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우리의 경우 절대로 정권을 쥔 쪽이 그냥 내놓는 법은 없었잖습니까? 결국 빼앗지 않으면 안 되고, 그러려면 조금은 더 슬기롭고 표독스럽지 않으면 안 돼요. 달래지 않아도 주는 사람은 없어요." (93쪽)


"말로써 쉽게 남녀평등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젊은 여자들, 만만한 남자를 만나서 쉽게 평등을 이루려는 약은 여자들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을 보여주고자 했다." (135쪽)


"페미니즘을 의식했다기보다는 남자들이 쓴 인기 있는 소설의 여성상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 이건 남자가 원하고 바라는 여성이다 생각해서 여성의 실제 모습을 보이고자 한 것이었죠. 남자들에 의해 왜곡되거나 환상적으로 처리된 것에서 벗어나 실제 여성의 모습을 드러내는, 여성 주체적인 소설이 바로 페미니즘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145쪽)


"효부는 있어도 효녀는 없거든요. 차를 타고 가면서 라디오를 들어보면 시어머니가 방문했을 때에는 극진하게 해드리고, 친정어머니가 다녀가실 때에는 찬밥 같이 먹고 차비 5000원을 드릴까 말까 고민했다고 해요. 이런 것을 우리 스스로 미덕이라고 느낍니다. 효란 자기를 길러준 사람에게 자연적으로 우러나는 가장 인간적인 마음이거든요. 그런데 효자는 효부 아내만 두면 저절로 되는 거예요. 남자도 여자 부모에게 똑같이 할 수 있나요?" (164쪽)


셋째는 '기분 나쁜 인터뷰어에 대처하는 태도'다. 김하나 작가님도 팟캐스트에서 언급했듯이, 이 책에는 아주 기분 나쁜 인터뷰어가 둘 나온다. "남자의 경우에는 군대라는 게 있고 더러는 운동권에 휩쓸리기도 하고 반항도 하게 되는데 여자에게는 그런 게 전혀 없거든요.", "아버지와 오빠로 대표되는 남성의 부재라는 것이 선생님에게 뭔가 운명적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같은 발언은 인터뷰어의 현실 인식과 역사관, 나아가 인성까지 의심하게 만드는 발언이라고 생각하는데, 박완서 작가는 대놓고 화내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아주 굽히지는 않는 태도로 인터뷰를 이어간다. 


마지막으로, 넷째는 일본어 세대인 작가가 우리말에 대해 느끼는 애정의 깊이다. 얼마 전 다른 책에서 박완서 작가가 도스토예프스키나 투르게네프 같은 작가들의 책을 일본어로 읽었다는 글을 읽고 새삼 놀랐다. 생각해보니 박완서 작가는 1931년생이고 일제 강점기에 학창시절을 보냈으니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어로 된 책을 읽었던 건 당연하다. 해방 후 작가는 학교에서 처음으로 우리말로 쓴 글을 배우고 시조나 가사 같은 전통 문학을 공부하며 국문학도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 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깊은 만큼 글을 쓸 때에도 단어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했다는데, 앞으로 박완서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이게 얼마나 공들여 쓴 단어이고 문장이고 글인가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책의 내용과는 상관 없이, 90년대까지만 해도 얼마나 책이 잘 팔렸는지를 알수 있는 대목들도 많이 나와서 흥미로웠다. "세칭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20판에서 30판씩 꾸준하게 팔리고", "<서 있는 여자>는 한 여름에 2,3만 부씩 팔린다.", "지금이야 소설 같은 거 10만 부쯤 팔리는 게 우습지만" 같은 발언을 보며 세상이 얼마나 크게 변했는지 새삼 느꼈다. 요즘은 1만 부도 안 팔리는 책이 허다한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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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둘리 2019-04-30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완서의 글을 참 좋아하는데, 꼭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키치 2019-05-01 09:45   좋아요 0 | URL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DON'T GIVE UP 포기하지 마 -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과 끝까지 달려갈 용기를 주는 믿음
카일 아이들먼 지음, 전의우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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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기 쉬운 신앙 생활을 어떻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낼 수 있는지,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책일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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