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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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도쿄타워>인 일본 소설이 둘 있다. 하나는 중년 여성이 스무 살 연하의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그린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의 작가이자 칼럼니스트,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작사 작곡가, 방송인, 배우 등으로 활약하는 릴리 프랭키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공교롭게도 두 소설 모두 큰 인기에 힘입어 영화화 또는 드라마화되었고,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이번에 내가 읽은 <도쿄타워>는 후자다(전자는 고등학교 때 읽었다. 그때 내가 오카다 준이치를 많이 좋아했다... ). 2005년에 발표되어 230만 부 이상 팔리고, 서점인들의 열렬한 지지에 힘입어 제3회 서점대상까지 수상한 이 작품을 왜 이제야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알겠다. <도쿄타워>가 왜 출간 당시 수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는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베스트셀러인지 직접 읽어보니 잘 알겠다.


이야기는 릴리 프랭키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 청년기로 이어진다. 릴리 프랭키의 본명은 나카가와 마사야. 1963년 후쿠오카에서 태어났다. 변변한 직업이 없는 아버지 때문에 '엄니(저자는 어머니를 '엄니'라고 부른다)'는 일찍부터 온갖 일을 전전했다. 행실이 좋지 않고, 이따금 술을 마시면 가족들에게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던 아버지는 얼마 후 집을 나갔고, 그때부터 몇 년에 한 번씩 큰일이 있을 때만 가족들을 찾았다.


결코 유복한 환경이 아닌데도 저자는 나름 즐겁고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집이 없어서 친가와 외가를 전전하는 생활도 나쁘지 않았고, 탄광촌의 아이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기억은 지금 떠올리면 흐뭇하기만 하다. 없는 살림에도 하나뿐인 아들의 부탁이라면 엄니는 뭐든 들어줬다. 아들이 음악을 좋아하면 외출할 때마다 레코드판을 사다 주고, 아들이 미술학교에 보내달라고 하면 군말 없이 보내줬다. 입학이나 취업 같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같이 살지 않는 아버지까지 나타나 아들을 챙겼다. 저자가 아버지를 원망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이 소설의 백미는, 언제까지나 엄니 품 안의 자식일 줄 알았던 저자가 어느새 어른이 되고 철이 들면서 엄니를 한 여자로, 한 인간으로 보기 시작하는 대목이다. 기모노 장사를 하는 집에서 비교적 유복하게 자란 엄니는, 당시로서는 늦은 서른한 살에 네 살 어린 남자와 결혼했다. 당시 의사인 남자친구도 있었는데 변변한 직업이 없는 남자를 택했다. 그 후 인생이 크게 꼬였다. 남편은 돈을 못 벌고 집에도 안 들어왔다. 하나뿐인 아들을 혼자서 길러야 했다. 아직 삼십 대니 다른 남자를 택할 수도 있었다. 아들을 친가에 맡기고 새 삶을 시작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엄니는 그러지 않았다.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아들을 지켰다.


"어머니란 욕심 없는 것입니다. / 내 자식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 내 자식이 큰 부자가 되는 것보다 / 하루하루 건강하게 지내주기만을 /진심으로 바라고 기원합니다. / 아무리 값비싼 선물보다 / 내 자식의 다정한 말 한마디에 / 넘칠 만큼 행복해집니다. / 어머니란 / 실로 욕심 없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어머니를 울리는 것은 / 이 세상에서 가장 몹쓸 일입니다." (495~6쪽)


방송이나 영화, 잡지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릴리 프랭키의 모습에만 익숙했기에, 이토록 서글픈 사연을 간직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새삼 놀랐다. 릴리 프랭키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활동하고 있는 건, 역시 하늘에서 그를 지켜주는 엄니 덕분일까. 언제 다시 도쿄에서 도쿄타워를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이 소설이 준 가슴 벅찬 감동을 떠올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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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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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에 적힌 문장 그대로,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설레는 이름이 된' 정세랑 작가님의 첫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를 읽는 중이다. (지금 보니 띠지에 실린 사진 속 정세랑 작가님, 왠지 일본 배우 아야세 하루카와 닮은 듯 ㅎㅎㅎ) 전부 아홉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한 편씩 아껴 읽을 작정인데, 자꾸만 한 편 읽으면 다음 한 편을 더 읽고 싶고, 다다음 한 편 내용도 궁금해져서 미치겠다. 정세랑 작가님 소설을 열심히 읽고 있기는 하지만 다 읽은 것도 아니면서. 오늘 트위터에서 보니 정세랑 작가님의 2012년작 <지구에서 한아뿐>이 조만간 재출간될 예정이라는데 그 책 나오기 전까지 천천히 읽으면 될까.


맨처음에 실린 <웨딩드레스 44>는 한 벌의 웨딩드레스를 대여해 입은 44명의 신부들의 이야기를 이어붙인 구성의 소설이다. 어떤 신부는 남자 친구와 동거하다가 양가 부모들의 협박 비슷한 간청에 못이겨 식을 올리게 되었다는 이야기, 어떤 신부는 졸업도 하지 않았는데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자 쪽 집안이 서두르는 바람에 결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등이 이어진다. 


흥미진진한 사연들을 매끄럽게 읽어가다가 이따금 과속방지턱에 걸린 것처럼 속도를 늦추게 되는 대목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신랑보다 한참 어린 신부에게 사람들이(아마도 신랑 쪽 집안 사람들이 아닐까) "어리고 깨끗하지."라고 말했다는 대목이라든가, 여자의 목에 새겨진 타투를 보고 남자가 비난을 했다는 대목이라든가, 남편과 같은 시험에 붙었는데 가족들이 여자 쪽에게만 '살살 다닐 직장'에 들어가라고 요구했다든가 하는 대목들. 아무리 남편이 좋아도 남편 쪽 집안 사람들이 잘해줘도, 결혼은 굴욕적이고 가부장제가 가하는 압박은 여성 한 사람이 극복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건 진작부터 알았지만 더 잘 알게 되었고, 이미 굳어있던 비혼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이어지는 <효진>은 한국의 2,30대 여성이라면 친구와 가볍게 할 법한 전화 통화를 그대로 옮겨 쓴 듯한 소설인데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다. 똑같은 자식인데도 아들은 귀하고 딸은 만만하고, 똑같이 나가 살아도 아들은 애틋하고 딸은 원망하는 한국의 부모들. 다행히 나는 남자 형제가 없어서 부모님에게 아들과 비교당하는 일을 겪어보진 않았지만, 아들 없는 집의 딸, 그것도 장녀로 산다는 건 그 또한 고역스런 일이다(없는 오빠, 없는 남동생과 경쟁하는 기분이랄까). 집에선 딸이라서, 집 밖에선 여자라서 당하는 무시와 차별, 배제.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장한 걸까. 아님 독한 걸까. 씁쓸한 기분으로 다음 소설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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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스토리
리처드 파워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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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묵은 버킷 리스트 중 하나는 일본 야쿠시마에 있는 '조몬 삼나무(조몬스기)'를 보러 가는 것이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에 나오는 나무로도 유명한 조몬 삼나무는, 높이 25미터, 둘레 16.4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도 놀랍지만, 추정 수령(樹齡)이 최소 2170년에서 최대 7200년이라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7200년 전이면 우리나라는 신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기나긴 날들을 죽지 않고 살아낸 나무. 그 나무의 기운을 받아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는 것이 나의 작은(?) 꿈이다.


그런데 굳이 가고시마에서 배 타고 네 시간은 가야 도착하는 야쿠시마까지 가지 않아도, 익숙지 않은 트레킹과 산행을 불사하면서까지 조몬 삼나무를 보러 가지 않아도, 생명력 강한 나무의 기운을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이미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리처드 파워스의 장편소설 <오버스토리>에 따르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심지어는 나와 내 주변에 심어져 있는 나무는 공통 조상에서 나왔다고 하니,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야쿠시마에 있는 조몬 삼나무는 우리 집 베란다에서 엄마가 키우는 고무나무와 연결되어 있고, 나무와의 관계라고는 사주 일간에 갑목(甲木)이 있는 정도인 나하고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나무와의 관계를 일부러 찾아야 찾을 수 있는 나와 달리, <오버스토리>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태어날 때부터(또는 등장할 때부터) 나무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오버스토리>의 중심인물은 모두 아홉 명이다. 이야기는 이민자 출신의 가난한 농부인 요르겐 호엘이 어느 날 밤[夜]에 구워 먹고 남은 밤[栗]을 마당 한구석에 심으면서 시작된다. 여섯 개의 밤알 중에 다섯 개만이 싹을 틔웠고, 그중 하나만이 커다란 나무로 성장했다. 그 아들이 나무를 돌보고, 그 아들이 나무를 돌보다 마침내 니컬러스 호엘에게까지 책임이 돌아왔다. 조상들을 닮아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니컬러스 호엘은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 있는 나무의 사진을 찍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보낸다.


이어지는 미미, 애덤, 레이와 도러시, 더글러스, 닐리, 올리비아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인물은 패트리샤 웨스터퍼드다. 패트리샤는 중심인물 아홉 명 중에서도 가장 식물 친화적이고 나무와 가까운 인물이다. 어릴 적 아버지의 영향으로 식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패트리샤는, 학창 시절 내내 '식물녀'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대학에서 식물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얼마 후 패트리샤는 명망 있는 저널에 논문을 수록하고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지만, 패트리샤가 젊은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남성 학자들의 조롱과 비난을 견디다 못해 학계를 떠나버리고 만다. 인간에게 상처받은 패트리샤는 숲으로 들어가 나무에게 치유받고, 다시 나무를 위해 살기로 결심한다. 나무의, 나무에 의한, 나무를 위한 삶을 살기로 한 패트리샤의 다짐은 지켜지고, 끝내 보상까지 받게 된다.


전반부가 인물 각각의 이야기가 하나씩 차례대로 펼쳐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후반부는 인물 각각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하고 통과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모든 인물들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꼼꼼하게 읽어야 하는 이유다). 밤나무를 지키던 니컬러스는 한때 파티광이었으나 감전된 후 기적적으로 살아난 여대생 올리비아와 우연히 만나 농장을 떠난다. 대학 졸업 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엔지니어로 일해온 미미는 더글러스와 함께 벌목 반대 집회에 참가한다. 집회에서 미미와 더글러스는 애덤을 만나고, 레이와 도러시는 결혼 생활이 위기에 빠졌을 때 패트리샤의 책을 읽는다. 닐리는 패트리샤의 강연에 참석했다가 삶의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린다. 패트리샤는 강연 도중에 미미와 눈이 마주친다.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각자의 삶을 영위하던 인물들의 관심을 하나로 집중시킨 건, 곳곳에서 끊임없이 무분별하게 벌어지는 벌목이다. 거대 기업의 이윤을 위해 시행되는 대규모 벌목부터 마을 환경 정비를 위한 나무 제거 활동까지, 온갖 목적으로 나무가 파헤쳐지고, 베어지고, 시야에서 사라질 때마다, 인물들은 시위를 벌이고, 공권력과 맞서고, (문자 그대로) 피 흘리며 투쟁한다. 환경 운동의 효과는 물론 당위성마저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인물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무 한 그루를 자를 때 그걸로 만드는 건 최소한 당신이 잘라낸 것만큼 기적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이는 나무가 단순히 있는 그대로 대대손손 보전해야 할 자원이어서가 아니다. 나무도 인간과 같은 생명체이고, 나무와 인간은 같은 지구상에서 공생하며, 나무가 없으면 인간도 없기 때문이다.


진실이 뻔히 보이는데도 행동하지 않는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는 애덤, 결혼이 인간이 인간을 소유하는 제도라고 생각해서 갈등하는 레이와 도로시의 이야기는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에 비해 나무와 덜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들의 이야기 또한 나무와 인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다. 심장마비로 사람이 쓰러져도 구하러 가지 않는 사람들이 나무 한 그루가 눈앞에서 쓰러진다고 눈 하나 깜짝할 리 없다. 인간이 인간을 - 정확히는 남자가 여자를 - 소유하고 그것이 결혼 제도로 정당화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인간이 나무를 소유하고 마음대로 사용하는 일에 죄의식을 느낄 리 없다.


아무도 나무를 보지 않는다. 우리는 열매를 보고, 견과를 보고, 목재를 보고, 그림자를 본다. 장식품이나 예쁜 가을의 나뭇잎을 본다. 길을 가로막거나 스키장을 훼손하는 장애물을 본다. 깨끗이 밀어야 할 어둡고 위험한 장소들을 본다. 우리 지붕을 무너뜨릴 수 있는 가지들을 본다. 환금성 작물을 본다. 하지만 나무는, 나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596쪽)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묻는다. 인간은 무슨 권리로 나무를 함부로 베고, 자르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가. 만약 나무가 인간을 함부로 베고, 자르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한다면 인간은 어떤 감정이 들겠는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게 '아낌없이 받기만 하는 인간'은 과연 타당한가. 남보다 더 많은 땅을 차지하고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면 승리하는 게임을 만들던 닐리가 패트리샤의 강연을 계기로 전혀 다른 게임을 개발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 질문들의 답을 찾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남보다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가지는 것을 목표로 살고 있는 우리도 실은 이 질문들의 답을 알고 있다. 다만 보지 않을 뿐이다. 보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나무는 집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도 있고 집 안에도 있는데, 그것들은 생명이 아니라 배경이나 장식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눈 앞에 있는 나무는 보지 않고, 진짜 나무는 저 먼 야쿠시마 산속 깊숙한 곳에나 있다고 생각한다(반성한다).


버킷 리스트를 수정해야겠다. 지구 환경에 해로운 온실가스를 배출해가며 야쿠시마까지 가는 대신, 당장 내 눈앞에 있는 나무, 내 손 뻗으면 닿는 나무들부터 신경 써야겠다. 나무로 된 가구를 사든, 수첩을 사든, 그것을 사용한 가치가 최소한 그것을 만드는 데 들어간 나무 이상의 것이 되도록 해야겠다. 문제는 내가 한 달에 열 권 이상씩 읽어치우는 책들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줄이기가 힘들 것 같다. 전자책으로 읽자니 그 또한 전기를 사용하니 지구 환경에 좋다고만 볼 수도 없을 것 같고. 그래도 <오버스토리>처럼, 나무의, 나무에 의한, 나무를 위한 책을 읽기 위한 독서라면 나무에 해롭다고만 볼 수도 없지 않을까. 독서도 나무에 해로운 행위라면, 대체 나는 그동안 저지르고, 앞으로 저지를 죗값을 언제 어떻게 다 갚을까. 갚을 순 있을까. 이제야 나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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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 - 앤드루 숀 그리어 장편소설
앤드루 숀 그리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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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아. 내가 게이 소설 좋아하는 거 알고 있지? 앤드루 숀 그리어의 소설 <레스>도 그래서 읽었어. 솔직히 처음부터 잘 읽히는 소설은 아니었어. 주인공 아서 레스가 어떤 사람인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 지에 관한 힌트가 아주 조금씩, 천천히 제시되는 소설이거든.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레스는 게이와 작가라는 두 정체성을 버팀목으로 살아가는 남자야. 그리고 현재 그 두 정체성은 위기를 맞고 있지. 일단 게이로서의 정체성부터 볼게. 레스는 젊은 시절 여러 명의 남자를 사귀었어. 아마 연상 남자를 무척 좋아했던 것 같아. 그중 제법 오랜 기간 사귀었던 로버트라는 남자는 퓰리처상까지 받은 유명한 시인이야. 레스와 로버트가 처음 만났을 때 로버트에게는 아내가 있었고, 결국 로버트는 레스를 위해 아내를 떠났어. 이후 레스와 로버트는 불꽃같은 사랑을 나눴지만 여느 커플처럼 이별을 택했어.


로버트와 헤어진 후 레스는 프레디를 만났어. 프레디는 젊은 시절부터 레스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카를로스의 아들이야(참고로 카를로스도 게이야). 그 때까지 자신의 취향은 연상 남자라고 굳게 믿었던 레스는, 젊고 건강하고 똑똑한 프레디의 매력에 빠져 정신을 못 차렸던 듯해. 그렇게 둘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 줄 알았는데, 결국 이들에게도 이별의 시간이 찾아왔어. 레스는 언젠가 로버트가 자신을 놓아줬던 것처럼 쿨하게 프레디를 놓아줄 수 있을 줄 알았어. 하지만 그렇지 못했어. 프레디가 다른 남자와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들은 레스는, 프레디의 결혼식으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거든.


그래서 레스는 떠나. 멕시코,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모로코, 인도, 일본으로. 레스의 여행이 어땠을 것 같아? 나는 실연을 당한 레스가 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소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가 떠올랐어(클리셰다, 클리셰. 뭐 이런 생각도 들었던 것 같아). 하지만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엘리자베스가 이탈리아에서 배 터지게 먹다 사랑하고, 인도에서 몸이 꼬일 정도로 요가를 하다 사랑하고, 발리에서 신들의 힘으로 사랑하는 황홀한 경험을 한 것과 달리, 레스는 사랑과는 거리가 먼 체험들을 더 많이 해(한두 번 사랑에 빠질 뻔하기도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닌 소설이야. 이 또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와 다른 점이지). 그건 레스가 남성으로서도, 게이로서도 매력적인 시기는 다 흘려보낸 50대 중년의 나이이기 때문이고, 작가로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듯해.


여행을 하면서 레스는 별별 장소에서 별별 사람들로부터 별별 말을 다 들어. 레스가 진행을 맡기로 한 행사의 주인공인 작가를 만나러 갔을 때는 어떤 숙녀로부터 "당신 대체 누구야?"라는 말을 듣지 않나,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옛 연인으로부터는 "이제 우리 둘을 좀 보라니까, 할아버지들이야!"라는 말을 듣지 않나, 레스가 인기가 없는 건 '형편없는 작가'여서가 아니라 '형편없는 게이'여서라는 말을 듣지 않나, '백인 중년 미국 남자가 백인 중년 미국인의 슬픔을 품고 걸어 다니'는 내용의 소설을 읽고 누가 공감하겠느냐는 말을 듣지 않나... 나 같으면 심장에 스크래치가 백 개쯤 났을 것 같은데, 레스는 그런 모욕을 꿋꿋이 참아내며 여행을 계속해. 오래 전 한 평론가가 <뉴욕 타임스>에 레스를 가리켜 '도도한 스타일의 바보 사랑꾼'이라고 조롱했던 일에 비하면 별일 아니라고 여겼던 걸까. 


근데 말이야. 사랑밖에 모르는 바보 소리를 들었던 우리의 레스가, 이 여행을 통해 사랑 말고도 다른 것들을 많이 알게 돼.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건은 역시 루이스와 클라크의 결혼 생활의 진실을 알게 된 일이 아닐까. 레스는 그동안 루이스와 클라크가 자신이 아는 게이 커플 중에서도 가장 잘 지내는, 성공적인 커플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레스는 비로소 자신이 못나고 부족해서 이 나이 먹도록 한 사람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게 아님을 알게 된 것 같아. 때로는 사람은 그대로인데 사랑이 먼저 떠나는 경우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것 같기도 하고. 

 

레스는 또 모로코에서 낙타 치기 소년 한 명이 다른 소년에게 팔을 두르는 모습을 봐. 레스가 사는 시카고 거리에서는 한 번도 이성애자 남성들이 이렇게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어. 반대로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에서는 남성들이 서로의 어깨에 팔을 두르거나 끌어안아도 그들을 게이로 보지 않아(이건 한국도 다르지 않지). 어쩌면 레스는 자신이 게이로서 사랑하는 남자와 마음껏 사랑할 자유는 누렸을지 몰라도, 남자와 친구로서 마음을 터놓고 편히 사귈 자유는 누리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 같아. 사랑만 보고 사람은 보지 못하는 실수. 이건 나도 몇 번인가 저지른 듯해.


레스는 자신이 그동안 제법 괜찮은 소설을 써왔고, 의외로 여러 독자들이 자신의 소설을 읽었다는 사실도 알게 돼. 레스 자신이 아는지 모르겠는데, 내 눈에는 레스의 대표작 <칼립소>가 레스 자신의 인생을 예감하고 쓴 듯한 작품처럼 보였어. 레스의 말에 따르면, <칼립소>는 <오디세이아>를 본따서 쓴 작품이래. 마치 오디세우스가 그 모든 모험과 방황, 일탈 끝에 페넬로페에게 돌아가는 것처럼, <칼립소>의 주인공 또한 다사다난했던 게이 연애를 마치고 자신의 아내에게로 돌아가는 내용이라는데, 결국 레스도 지구를 한 바퀴 빙 도는 긴 여행을 마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거든(그 자리가 누구의 옆 자리인지는 비밀로 둘게).


<레스>의 마지막 몇 장은 레스가 아닌, 바로 그 '누구'의 시선으로 서술돼. 그 시선이 얼마나 황홀하고 촉촉한지, 오랫동안 비연애 상태인 내가 오랜만에 연애를 하고 싶어질 정도였어. 그만큼 사랑스러운 소설이야. 아니, 사랑 그 자체야. 읽는 사람 모두를 '바보 사랑꾼'으로 만들어 버리는 소설 <레스>. 너도 꼭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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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 2019-06-19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어렵지 않았나요?
전 읽는 내내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겟더라구요.

키치 2019-06-19 20:40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엔 몰입하기가 좀 힘들었는데 읽다보니 술술 읽혔습니다.
결말이 괜찮으니 끝까지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긱 워커로 사는 법 - 원하는 만큼 일하고 꿈꾸는 대로 산다
토머스 오퐁 지음, 윤혜리 옮김 / 미래의창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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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정해진 시간 동안 규칙적으로 일하는 나날이 지겹다. 매일 지옥철을 타고 출퇴근하고 하늘이 보이지 않는 빌딩 숲을 누비며 일하는 것도 힘들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할지 스스로 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다면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올톱스타트업의 창시자 토머스 오퐁의 책 <긱 워커로 사는 법>을 읽어보길 권한다.


케임브리지 사전에 따르면 '긱 워커(gig worker)'는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임시직으로 일하거나 개별 업무를 수행하고 그에 따른 보수를 받는 사람을 일컫는다. 자기고용 근로자, 독립형 근로자, 프리랜서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리서치 업체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2013년 전 세계 인력의 29%가 자기고용의 형태로 일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근로자 10명 중 3명은 이미 독립형 근로자가 됐다는 뜻이다. 2017년 미국의 단기 일자리 중개 사이트 플렉스잡에서 실시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과거에는 정규직을 얻지 못하거나 기업이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하지 않아서 비자발적으로 긱 워커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다르다. PwC의 조사에 따르면 젊은 층일수록, 중국 등 신흥 시장일수록, 스타트업 창업이나 전문 기술을 활용한 분야일수록 긱 워커로 일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다. 좋은 직업이나 직장을 가진 사람 중에도 긱 워커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런던 경영 재무 대학에서 영국의 전문직 종사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업을 바꾸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이 47%나 됐으며 향후 12개월 안에 직업 전환을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20%가 넘었다.


이 책은 긱 경제의 탄생과 미래, 성공한 긱 워커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장이 마련되어 있으며, 미래의 직업과 포트폴리오식 경력 쌓기, 자기 브랜드 구축 관리, 긱 경제에서 일자리 찾기, 클라이언트와 관계 맺기, 일의 효율과 생산성 높이기, 재무 관리하기, 일감이 끊이지 않게 하는 법, 온라인 플랫폼에서 새로 출발하기 등 구체적인 조언도 잘 정리되어 있다.


자신이 긱 워커로 일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래의 트렌드를 잘 예측해야 한다. 앞으로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들고, 자동화 업무를 보완하는 데 필요한 고숙련 일자리는 수요가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전통적인 일자리의 속성은 사라지고 인터넷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한 일자리의 수요가 늘어날 것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저자는 자동화가 어려운 의료 서비스와 교육, 글쓰기, 예술, 디자인, 음악 같은 창조적인 분야의 일자리가 앞으로 크게 각광받을 것으로 예측한다.


저자는 긱 워커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자질도 소개한다. 긱 워커는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과 남들보다 한발 앞서 나가는 행동력을 갖춰야 성공할 수 있다. 기존에 없던 방식으로 현재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변화하는 환경에 민첩하게 적응할 줄 알아야 한다. 긱 워커는 단순히 일만 할 것이 아니라 독서, 개인 블로그 운영, 온라인 강의 듣기 등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사업가로서의 자산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 밖에도 긱 워커로 살아가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충고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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