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블라디보스톡 - 2019~2020 개정판 리얼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
강한나 지음 / 한빛라이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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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 블라디보스톡을 찾는 여행자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때마침 블라디보스톡의 최신 여행 정보를 담은 책 <리얼 블라디보스톡>이 출간되어 읽어보았다.


이 책을 쓴 강한나 작가는 대학시절 기차여행의 매력에 빠져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다 2014년,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인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올랐다. 이를 계기로 블라디보스톡과 러시아 여행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이후 5년 간, 틈만 나면 블라디보스톡을 찾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는 블라디보스톡 여행 전문가인 저자의 여행 노하우와 최근 급증한 블라디보스톡 여행 정보 중에서도 가장 믿을 만하고 따끈따끈한 정보가 담겨 있다.





이 책은 블라디보스톡을 처음 찾는 여행자는 물론 해외여행이 처음인 여행자들도 쉽고 편하게 여행을 준비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여행 전에 반드시 해야하는 일들을 시기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체크리스트를 비롯해 나만의 여행 스케줄, 지역별 지도 QR코드, 체력 소모를 줄여주는 추천 코스, 주요 스폿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한 상세 지도, 어디에도 없어 저자가 직접 만든 블라디보스톡 버스 노선도, 시베리아 횡단열차 노선도 등이 담겨 있다.


알아두면 편리한 웹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도 나와 있다. 자유여행자의 필수품인 '구글맵' 외에 블라디보스톡 시에서 진행되는 각종 행사나 공연, 축제, 날씨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블라디보스톡 시 공식 홈페이지', 도시 간 운행하는 기차 시간, 운영 횟수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러시아 철도청', 데이터 사용 없이 GPS만으로 내비게이션 이용이 가능한 '투기스', 러시아판 카카오택시인 '막심' 등의 앱을 미리 받아서 가면 좋다.





인천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는 2시간 40분이 걸린다. 러시아 항공을 이용해 북한 영공을 경유해 갈 경우에는 2시간이면 간다. 속초 동해항에서 크루즈 페리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23시간 소요). 아직도 한국인들에게 러시아는 비자가 필요하고 입국 절차가 까다로운 국가라는 인식이 있는데, 2014년 한-러 무비자 협정이 체결된 이후 대한민국 국민은 비자 없이 간단한 입국 심사만으로 러시아 땅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다.


블라디보스톡의 면적은 서울 면적의 절반 정도다. 관광지 대부분이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라서 짧은 일정으로도 구석구석 둘러볼 수 있다. 책에는 2박 3일 또는 3박 4일 추천 일정이 나와 있다.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 동아시아의 역사를 한눈에 보는 여행, 여름 또는 겨울에만 즐길 수 있는 시즌 투어까지 다양한 테마 여행 일정도 나와 있다. 참고로 여름에는 해양공원, 토카렙스키 등대, 연해주 레이싱 경기장, 샤마라 해변, 루스키 섬 등이 추천 스폿이다.





블라디보스톡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다섯 가지 키워드를 제시한다. 첫째는 시원한 여름과 다채로운 축제다. 블라디보스톡은 한여름에도 평균 기온이 22도 정도로 날씨가 선선하다. 7월과 8월에는 국제 락페스티벌, 킹크랩 축제 등이 열려서 전 세계인들이 찾는다. 둘째는 러시아 문화예술의 축소판이다. 블라디보스톡에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마린스키 극장에서 러시아 고유의 발레, 오페라, 오케스트라 공연을 볼 수 있다.


셋째는 동서양이 융합된 음식 문화다. 블라디보스톡은 예부터 동양인들이 많이 살았던 지역으로, 서양 문화권이 들어온 지는 200년이 채 안 된다. 그래서 지금도 동서양이 융합된 음식 문화가 남아 있으며 대다수 음식이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다. 넷째는 음악과 함께 하는 맥주 투어, 다섯째는 자연이 선사하는 힐링이다. 이 같은 키워드를 잘 조합하면 블라디보스톡의 매력을 충분히 즐기는 여행 일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블라디보스톡에 간다면 무조건 가봐야 하는 여행지는 어디일까. 저자는 일곱 군데를 소개한다. 축제와 유흥의 중심지인 '해양공원', 아기자기한 카페와 기념품숍이 있는 '포킨제독 거리(=아르바트 거리)', 고대 유물부터 20세기 생활상까지 역사와 전통을 알 수 있는'아르세니예프 연해주 국립박물관', 매주 금, 토요일마다 시장이 열리는 '혁명광장', 연해주의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해군제독 광장', 야경 명소로 유명한 '독수리전망대', 산책하기 좋은 '루스키 섬' 등이다.


저자가 추천한 베이직 2박 3일 코스를 보니 1일차에 혁명광장과 해양공원, 2일차에 아르세니예프 연해주 국립막물관과 해군제독 광장, 독수리 전망대, 3일차에 아르바트 거리가 포함되어 있다. 3박 4일 코스에는 루스키 섬을 하루동안 돌아보는 일정이 추가되어 있다. 이 일정대로 블라디보스톡 여행을 하면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나만의 취향과 개성을 반영한 색다른 여행을 하고 싶은 여행자를 위한 코너도 있다. 이름하여 '나만을 위한 맞춤 여행'! 눈으로 보는 여행보다는 온몸으로 즐기는 여행을 하고 싶은 여행자라면 여름엔 바다 유람선 투어, 겨울엔 얼음낚시와 시베리안 허스키 개썰매 체험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한국의 여행 TV 프로그램에도 소개된 러시아식 사우나 '바냐'를 체험해보는 것도 괜찮고, 전통 의학 학교 출신 마사지 마스터가 제공하는 마사지와 스파를 받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현지 시장에서 도시의 숨은 얼굴을 보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 될 수 있다. 시베리아산 과일, 채소, 꿀, 해산물 등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혁명광장 주말시장', 블라디보스톡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인 '중국시장 스빠르찌브나야', 겨울에 더 활기찬 '뻬르바야 레치카 실내시장' 등이 저자가 추천하는 현지 시장이다. 여기서는 블라디보스톡이 자랑하는 특산물 킹크랩과 곰새우를 더욱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더욱 깊이 있는 여행을 위해 블라디보스톡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보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특히 신기했던 건 러시아의 문화다. 한국은 대부분 바닥 한 귀퉁이에 배수구가 있는 습식 욕실을 사용하나, 러시아는 바닥에 배수구가 없는 건식 욕실을 주로 사용한다. 따라서 욕조 밖으로 물이 쏟아지면 도로 파낼 수 없고, 이 경우 일부 호텔에서는 벌금을 부과하기도 하니 샤워 시 꼭 샤워커튼을 치고 욕조 안으로 넣어 이용해야 한다.


블라디보스톡을 대표하는 음식은 러시아식 전통 꼬치 요리인 샤슬릭,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 스테이크와 수제버거,블라디보스톡에 왔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먹어야 하는 킹크랩과 곰새우, 바다에서 갓잡은 신선한 생선요리, 러시아식 만두 등이다. 책에는 각 음식마다 현지인이 추천하는 맛집 BEST 5가 잘 정리되어 있으니 미식 여행을 하고 싶은 여행자라면 반드시 참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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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짱과 고양이 : 때때로 오리
네코마키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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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를 추억하는 레트로 일상 코믹에세이'라는데 1980년대생인 나도 적지 않은 대목에서 공감했다. 회사원인 아빠, 전업주부인 엄마, 마지막에 태어난 귀여운 여동생까지. 켄이 남자 아이인 것만 빼면 나의 가족과 구성이 비슷하고, 부모님의 직업이나 취미, 성격, 심지어 생김새까지 거의 일치해서 마치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빠져들어 읽었다.


이야기의 배경은 1976년의 어느 시골 마을. 다섯 살 소년 켄은 늦잠 자기를 좋아하고 놀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평범한 아이다. 과묵한 아빠의 취미는 사진 찍기인데, 사진을 찍는 대상은 항상 켄이다. 켄이 고양이와 노는 모습, 켄이 맛있게 국수를 먹는 모습, 켄이 자는 모습 등 켄이 자라는 모습을 한 순간이라도 놓칠까봐 카메라를 손에서 놓치 못하고 연신 셔터를 눌러 댄다. 엄마는 옆에서 '사진 현상비'가 한두 푼이 아니라고, 심지어 죄다 비슷비슷하다고 핀잔을 주면서도 켄이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아빠 앞에서 깜찍하게 포즈를 취하는 켄의 모습을 보니 나도 어린 시절 엄마 아빠 앞에서 켄과 똑같이 포즈를 취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엄마 아빠가 보물처럼 다뤘던 필름 카메라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얼마든지 찍었다 지웠다 할 수 있는 스마트폰 카메라밖에 모르는 요즘 젊은이들은 '사진 현상비'가 뭔지 알까(모를 거야 아마...).


모처럼 외출하는 엄마를 따라간 켄이 맛있는 오므라이스를 얻어먹는 장면도 귀여웠다. 이 장면을 보니 나도 어린 시절 엄마가 친구 만나러 갈 때마다 따라갔던 기억이 나고, 그 때 얻어먹었던 맛있는 음식들 생각도 새록새록 났다. 요즘은 외식하는 일이 하도 흔해서 새롭지도 않지만, 나 어릴 때만 해도 요즘처럼 음식점이 많지도 않고 외식하는 일도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가족들 생일이나 친척들 결혼식 정도. 아니면 엄마 친구 모임, 아빠 친구 모임 따라가서 얻어먹는 게 전부였는데 그 때가 참 좋았다. 지금은 외식하면 내가 돈 내야 돼 ㅠㅠ


살이 쪄서 뚱뚱한 줄 알았던 엄마가 알고보니 임신 중인 걸 알고(ㅋㅋㅋ) 충격받은 켄의 모습도 귀여웠다. 얼마 후 진통을 느끼고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간 엄마와 아빠. 외할머니가 켄을 돌보러 올 때까지 옆집 아주머니가 켄을 돌봐주는 에피소드도 나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와 똑같아서 놀랐다. 나도 여동생이 태어날 때 엄마 아빠는 응급차 타고 병원 가고, 나 혼자 집에 남아 있었는데 집주인 아주머니가 돌봐줄 때는 뾰루퉁하게 있다가 외할머니가 오자 그제야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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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우즈
린다 라 플란테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수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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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이렇게 멋진 범죄 소설을 쓰는 여성 작가가 있다니! 린다 라 플란테의 소설 <위도우즈>를 읽고 든 생각이다. 린다 라 플란테는 이력부터 대단하다. 리버풀 출신인 그는 영국 왕립 연기 아카데미에서 연극을 전공했고, 졸업 후 각종 연극과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배우로 활약하다 1974년 드라마 작가로 변신했다. 1983년 영국 템스 텔레비전 드라마 <위도우즈>의 성공으로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렇다는 것은 이 소설이 지금으로부터 36년 전에 발표되었다는 건데 그렇게 오래된 작품 같지 않고 최근에 발표된 작품처럼 참신하다.


1984년 런던. 현금 수송 차량을 턴 세 남자가 도주 중 차량 폭발로 인해 목숨을 잃고, 세 남자의 아내는 졸지에 남편을 잃는다. 세 남자 중 리더였던 해리 롤린스의 아내 돌리는 남편이 죽을 때를 대비해 남긴 메시지를 읽는다. "사랑하는 달, 대여 금고 때문에 함께 은행에 갔던 일 기억나? 이제 그거 다 당신 거야. 열쇠는 리버풀 스트리트 근처 창고 거야. 그 안에 뭐가 있을 텐데, 그걸 없애야 해." 돌리는 메시지를 태우고 경찰의 감시망을 피해 해리가 없애라고 한 것을 찾으러 간다. 그것은 그동안 해리가 조직하거나 저지른 범죄들을 기록한 명부였다. 명부의 마지막 장에는 해리를 죽게 한 강도 계획이 쓰여 있었다. 돌리는 사랑하는 남자의 목숨을 앗아간 계획을 스스로 완성하기로 결심한다.


혼자선 그 일을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한 돌리는 자기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고로 남편을 잃고 시름에 잠겨 있을 두 여자를 부른다. 강도단의 일원이었던 조 파이렐리의 아내 린다와 테리 밀러의 아내 셜리다. 돌리가 애용하는 고급 스파에서 만난 세 사람. 돌리는 린다와 셜리에게 남편들이 이루지 못한 강도 계획을 완성하자고 제안한다. 안 그래도 남편을 잃고 생계를 해결할 길이 막막했던 린다와 셜리는 돌리의 계획에 동참하지만, 평범한 전업주부였던 세 사람이 생전 해본 적 없는 강도를 하자니 힘에 부친다. 이에 막강한 힘이 돼줄 네 번째 멤버를 찾는 한편, 남편들이 죽게 내버려 두고 도망간 네 번째 남자의 존재를 알고 그를 찾기 시작한다.


(비록 나쁜 일이기는 해도) 남자들이 성공하지 못한 일을 여자들이 해내는 모습,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해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소설은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여자들은 남편들이 죽기 전까지 자신들은 약하고 무력한 여자라고, 남자 뒤에 숨어지내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들이 죽고 생계를 위해 범죄에 뛰어들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범죄를 준비하고 실행하면서 자신들조차 몰랐던 힘과 능력을 깨닫고 용기와 자신감을 되찾는다. 나아가 자신들이 그토록 사랑하고 의지했던 남자들이 얼마나 비열하고 흉악했는지를 알게 된다(그동안 일부러 모른 척한 건 아니었을까?).


돌리, 린다, 셜리, 벨라 각각이 마냥 착하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는 점도 좋다. 기존 소설들이 여자를 성녀 아니면 창녀로 묘사했다면, 이 소설은 성스러우리만치 착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욕망 덩어리인 것만도 아닌 보통의 여자들을 보여준다. 왜 그동안 이 멋진 여성 작가의, 멋진 여성 소설을 몰랐을까. 2018년 <노예 12년>을 만든 스티브 맥퀸 감독의 영화로 리메이크되었는데 출연진이 무려 미셸 로드리게즈, 엘리자베스 데비키, 비올라 데이비스, 콜린 파렐, 리암 니슨 등등이다. 다가오는 주말에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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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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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를 쓴 지 올해로 10년째다. 대학교 2학년 때 생활도서관이라는 대학 내 자치기구에 가입했는데 그곳에서 제법 많은 책들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 뭐라도 쓰고 싶어졌고, 그렇게 쓴 글을 누구라도 읽어줬으면 했다. 그래서 개인 블로그를 만들어 책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리뷰라고 해도 처음에는 책이 좋았다, 재미있었다, 이런 감상이 전부였다. 책이 좋았다면 왜 좋았는지, 안 좋았다면 무엇이 안 좋았는지 같은 구체적인 내용은 안 썼다. 아니, 안 쓴 게 아니라 못 썼다. 그걸 알아보고 적확한 문장으로 풀어낼 깜냥이 부족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내가 쓴 리뷰에 만족하는 마음이 아주 없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자신감이 확 떨어졌다. 이렇게 충실하고 근사한 리뷰를 오랫동안 꾸준히 써온 프로 리뷰어인 저자도 글을 쓰기 전에는 싫고 괴롭고, 글을 쓸 때는 게으른 자신을 채찍질하며 쓴다니. 나는 아직 갈 길이 멀어도 한참 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어릴 때 천재성을 발휘한 예술가나 학자들보다는 나이 들어 뒤늦게 꽃을 피운 예술가나 학자들에게 관심이 많다는데 나도 그렇다. 어릴 때는 모차르트처럼 성인이 되기 이전에 주목받은 천재들의 이야기에 호기심이 동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박완서나 박경리처럼 성인이 된 이후에 데뷔해 죽기 직전까지 일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린다. 사노 요코도 그렇다. 사노 요코도 무사시노 미술대학 재학 시절부터 그림으로 돈을 벌어 암으로 죽기 직전까지 왕성한 활동을 했다. 이는 이들에게 글과 그림이 도달해야 할 예술이나 취미로 하는 유희가 아니라 경제 활동을 위한 수단, 사회적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방편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간 이슬아>의 이슬아가 사람들에게 자신을 '작가'가 아니라 '연재 노동자'라고 소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내가 그동안 천재를 꿈꾸던 어린이 상태에서 벗어나 먹고사는 게 제1목표인 때묻은 어른이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비록 먹고사는 일이 가장 중한 때묻은 어른이 되었을지라도 할 말은 하자는 저자의 주장에도 깊이 공감한다. 저자는 짐 자무시의 영화 <패터슨>을 보고 '불편했다기보다 약간 씁쓸했던 장면'이 딱 하나 있었노라고 고백한다. 그것은 시를 쓰는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이 저녁 산책을 하다가 양아치스러운 십 대들을 마주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보고 저자는 패터슨이 아무 거리낌 없이 십 대들에게 다가가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고 아무 일 없이 각자 갈 길 갈 수 있었던 것은, 패터슨이 '190센티미터 가까운 키에 떡 벌어진 어깨에 해병대 출신인 유럽계 인종 남자'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만약 패터슨이 여자였다면, 남자라도 소수 인종이거나 왜소했다면 해당 장면의 인상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저자는 이런 생각들을 떠올릴 때마다 '프로불편러'라는 말을 듣는 것이 불편하다. 성폭행이나 학교 폭력 같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비난하고, 피해자의 행실 운운하는 사람들이 꼭 있는 것도 불편하다.


프로불편러가 열 명이 모이고 백 명이 모이면 세상에 없는 예술 작품이 탄생한다는 것도 믿는다. 대표적인 예가 2017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다. 이 영화는 기존 영화들이 여성을 성녀 또는 창녀로 묘사하던 관례를 완전히 무시한다. 착하고 온순하지도 않고 통상적인 미녀도 아니고 남성의 욕망에 끌려다니지도 않는 여성 주인공 '일라이자'의 모습을 통해 그동안의 영화들이 얼마나 여성을 왜곡된 모습으로 묘사했는지를 보여준다. 나아가 여성이고, 가난하고, 장애로 말을 못 하는 일라이자가 자기보다 더 힘든 처지에 놓인 괴생명체에게 연민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통해 그동안의 영화들이 묘사했던 '사랑'이 얼마나 주류 중심적이었는지를 알게 해준다. 어떤 영화가 기존의 통념이나 관례를 답습하는 방식으로 게으르게 만들어진 영화인지, 아니면 다른 영화들이 미처 담아내지 못했거나 일부러 무시했던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이며 성실하게 만들어진 영화인지 제대로 보게 해준다. '다시 보게(re-view)' 해준다.


그동안 나는 리뷰를 쓰는 데에만 급급해 정작 독자가 리뷰의 대상을 '다시 보게' 만들지는 못했다. 독자가 놓칠 만한 점을 찾아내거나 불편했던 점을 용감하게 지적하는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나는 언제쯤 이런 리뷰를 쓸 수 있을까. '광대함'은 없고 '게으름'만 있는 지금의 나로선 힘들 거야,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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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하는 삶 - 여성의 몸, 욕망, 쾌락, 그리고 주체적으로 사랑하는 방식에 관하여
에이미 조 고다드 지음, 이유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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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모부는 물론이고 학교에서도 성에 관한 교육을 받은 기억이 없다. 다만 어려서부터 책과 만화, 영화, 드라마 등은 실컷 봤기 때문에 이따금 나오는 성적인 장면을 보고 여성의 몸과 남성의 몸을 인식하고 성관계 하는 법을 배웠던 것 같다. 그렇게 배운 '지식들'이 얼마나 왜곡되고 잘못된 것이었는지는 최근에야 깨닫고 다시 배워가는 중이다.


이 책을 쓴 에이미 조 고다드는 뉴욕대에서 성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섹슈얼리티 분야에서 20년 이상 활동해온 유명 연사이자 교육자다. 저자는 그동안 수많은 여성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얼마나 많은 성적 수치심에 시달리고 있는지, 잘못된 성 관념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지,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강요받거나 그로 인한 트라우마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는지 등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10대부터 70대까지 수많은 연령대의 여성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토로한 성적인 고민 또는 아픔에 대해 함께 대화하고 치유해나간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건 여성의 성 경험이 지나치게 극단적이라는 것이다. 한쪽에는 성적 불만족 때문에 고통받는 여성들이 있다. 많은 여성들이 배우자 또는 애인과의 성관계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으며, 어떤 여성들은 자신이 만족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저자는 이런 상황이 '성에 대한 무지' 때문에 발생한다고 본다. 여전히 많은 국가와 종교가 여성의 성적인 관심을 가지거나 자유롭게 성생활을 즐기는 것을 억압하거나 금지하며, 심지어는 자기 자신의 몸에 대해 알거나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방법조차 배우지 못하게 한다. 저자는 공부와 운동, 요리와 운전과 마찬가지로 성도 누구나 배우고 익혀야 하는 기술이며, 여기에 차별이나 배제는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쪽에는 끔찍한 성 경험으로 인해 고통받는 여성들이 있다. 이 책에는 아버지나 오빠, 남동생 등 남성 가족 또는 친척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여럿 나온다.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하는 것도 성폭행의 범주에 포함되는데, 많은 여성들이 배우자 또는 애인과의 관계가 어색해지거나 불편해지는 게 싫어서 억지로 성관계를 가진 후 괜찮은 척한다.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축적되면 성에 대한 트라우마로 남아서 성관계를 기피하거나 그런 성관계를 용인한 자기 자신을 증오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스스로 좋아서, 진심으로 즐기면서 성관계를 가지면 자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정신 건강도 개선된다.


이 책에는 성적 수치심이나 두려움, 공포 등을 극복하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섹스 라이프를 즐기게 된 여성들의 사례가 다수 나온다. 사례 위주로 읽어도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독자 자신이 찾고자 하는 답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애뿐 아니라 동성애, LGBT의 섹스에 관한 내용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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