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원천 - 꿈을 이루는 단 하나의 마스터키
타라 스와트 지음, 백지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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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성공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의 원천>의 저자 타라 스와트도 그중 하나다. 저자가 마음의 중요성을 깨달은 건 30대 중반의 일이다. 의대 졸업 후 정신과 의사로 일하던 그는 오랜 근무 시간과 과도한 업무로 인해 번아웃 상태가 되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환자들의 상태가 개선되지 않거나 오히려 악화되면 의사로서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큰 좌절감을 느꼈다. 그러다 우연히 긍정적 사고와 시각화라는 개념을 접했다. 저자는 그 후 전공인 신경과학과 이전부터 관심 있던 동양 철학과 인지 과학을 결합해 자신만의 뇌 훈련법을 개발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에 담긴 솔루션이다.


인간의 뇌는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라 경험에 의해 유연하게 변할 수 있는 가변적인 존재다. 신경과학에선 이를 신경 가소성이라고 부른다. 그뿐만 아니라 뇌와 몸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즉각적인 연쇄 반응을 주고받는다. 뇌가 행복하면 몸이 편안하고, 몸이 편안하면 뇌가 행복해지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바로 이 원리다. 이를 근거로 저자는 '일기 쓰기'와 '액션보드 만들기'를 권한다. 일기를 쓰다 보면 자신이 주로 무엇에 얽매여 있는지, 무엇을 바꾸고 싶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알아내기가 훨씬 쉬워진다. 액션 보드는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이 담긴 이미지를 조합해 시각화하는 것이다. 완성한 액션 보드를 수시로 보다 보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는 욕망이 더욱 구체화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명확하게 떠오른다.


초보자들 중에는 일기를 쓰고 액션 보드를 만들어도 효과가 없다며 조바심을 내는 경우가 더러 있다. 뇌세포를 연결해 새로운 경로를 만들려면 오랜 시간과 무수한 노력, 자원이 필요하다. 새로운 신경 경로가 형성될 때는 한동안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느낌이 들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지고 일이 술술 풀린다. 외국어 공부나 스포츠 연습도 마찬가지다. 외국어 공부를 하다 보면 처음에는 잘 안되다가 갑자기 말이 술술 나오거나 글이 술술 읽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스포츠도 초보 시절에는 가벼운 동작 하나도 어려운데 계속 연습하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능숙해지고 잘 하게 된다. 이는 인간의 뇌가 조금씩 서서히 변하고, 그 효과가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동기 부여가 잘 안되거나 동기 부여가 되어도 유지가 잘 안된다면 자신의 하루 일과를 돌아보는 것이 좋다. 공부 또는 업무 중에 수시로 스마트폰을 켜고 SNS를 확인하거나 게임을 한다면 일부러라도 스마트폰을 멀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주변 사람 중에 열등감을 자극하거나 의욕을 떨어뜨리는 사람이 있으면 가급적 멀리하는 것이 좋다. 반대로 새로운 영감을 주는 책 또는 영화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찾아 읽거나 보는 것이 좋다. 주변에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없으면 돈과 시간을 내서라도 강연을 찾아다니거나 모임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


과거에 실패한 일을 반성하는 것도 유의미하지만, 과거에 성취한 일이나 이미 현실이 된 목표를 일부러라도 계속해서 떠올리면 뇌에 긍정적인 자극을 줄 수 있다. 뇌와 몸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뇌를 바꾸고 싶으면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야 한다. 특히 장은 뇌의 상태와 직결되니 장의 상태에 항상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밖에도 알아두면 좋을 마음 습관, 생활 습관에 대해 자세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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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타임워프 - 페미니즘이 한국 사회를 기억하는 방법
김신현경.김주희.박차민정 지음 / 반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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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이들로 세상은 달라지는데, 그 변화는 엇비슷한 욕망의 재생산이 이뤄지는 집단이 아니라 상식과 규범을 의심하고 질문하는 장에서 싹을 틔운다." (은유, 한겨레 2019년 9월 27일자 삶의 창 <계모임 말고 책모임> 중에서) 얼마 전 은유 작가의 인스타그램에서 이 문장을 읽고 마음이 벅차올라서 눈가가 촉촉해졌다. 세상은 '당연한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이들'에 의해 달라진다.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침대에서 자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지만, 한때는 침대가 외국인들의 문화라고 배척하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날아간다고 꺼렸던 사람들이 많았다.


페미니즘을 보면 '당연한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이들'에 의해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을 더욱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한국의 여성학자 김신현경, 김주희, 박차민정이 쓴 아홉 편의 글을 엮은 책 <페미니스트 타임워프>는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고 장자연 사건, KTX 비정규직 여승무원 고용 분쟁,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지나 최근의 버닝썬 사태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에서 이슈가 되었던 문제들을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분석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고등학교 2학년인 주인공 덕선(혜리 분)은 예쁘장한 외모 덕분에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 피켓을 들고 마다가스카르 선수단과 함께 입장하는 '피켓걸'로 선발된다. 이렇게 젊고 예쁜 여성들이 국가 행사에 동원되는 경우는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남아 있다. 김주희는 <발전과 젠더, 환대의 성별정치>라는 글에서 이러한 피켓걸 문화가 "발전을 선전하는 국제적 장에서 여성들은 직접 과시하고 축하받는 위치에 있지 않으며 환대의 수단으로 매개된다." (24쪽)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여성을 행위 주체자로 보지 않고 행위 보조자 또는 환대의 수단으로 본다는 점에서,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일삼는 '룸살롱 접대'와도 일맥상통한다.


2016년에 일어난 강남역 살인 사건은 한국 여성들에게 여성혐오 범죄의 심각성을 일깨우고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한 주요 계기로 여겨진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강남역 살인 사건이 한국에서 일어난 최초의 여성혐오 범죄는 아니다. 그렇다면 왜 2016년에 이르러서야 여성이 피해자인 범죄를 여성혐오 범죄로 인식하게 된 것일까. 


김주희는 <우리는 왜 이제야 '여혐 전쟁'을 목격하게 되었나>라는 글에서 그동안 이런 여성혐오 범죄가 여성 문제로 인식되지 못하고, 심리가 불안정한 사이코패스가 일으킨 범죄, 치안이 좋지 않은 교외 지역에서 일어난 범죄, 윤락 여성 등 위험에 처할 확률이 높은 여성들에게 일어난 범죄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강남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여성들은 비로소 자신도 여성혐오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인식했고, 그동안 특정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성폭력, 가정폭력 문제 등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깨달았다.


이제는 일본군 '위안부(성노예)' 문제를 민족 문제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사건이 발생한 지 40년이 지나서야 겨우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는 여성 문제로 보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 만약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남성이었다면 40년이나 피해 사실을 숨길 필요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이 자신의 순결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 순결을 지키지 못한 여성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고통을 당하는 여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들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지금 '당연한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이들'에 의해 '당연하다'는 생각들이 바뀌고 있다. 이제 세상이 바뀔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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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 조선 - 우리가 몰랐던 조선인들의 성 이야기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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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팟캐스트를 듣는데 진행자가 "윤 씨 집안 여자 중에 폐비 윤 씨 이후로 가장 유명한 윤 씨 여자가 나왔다."(정확한 워딩이 아닐 수 있다)라는 농 섞인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역사에 기록된 인물 중에 가장 유명한 정씨 여자는 누구일까 곰곰 생각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대하드라마 <여인천하>에 나왔던 정난정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아무 이름도 떠오르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만, 폐비 윤 씨나 정난정이나 자기 자신으로서가 아니라 한 남자의 아내 또는 첩으로서 당대를 살고 역사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역사에 남은 윤 씨 남자, 정씨 남자들의 이름은 차고 넘치는데, 같은 집안에서 태어난 윤 씨 여자, 정씨 여자들은 고작 한두 명만 이름이(혹은 성씨만) 남았다는 것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박영규의 <에로틱 조선>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분노를 느꼈다. 저자는 현재까지 200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한 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한 권으로 읽는 일제강점실록>, <조선 왕 시크릿 파일> 등 다수의 대중 역사책을 썼다. 저자는 그동안 수많은 역사책을 쓰면서 역사에 나오는 인물 중 절대다수가 남자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예나 지금이나 인구의 절반이 남성이면 나머지 절반은 여성이다. 그런데 역사에 나오는 인물의 대부분이 남성이고, 여성은 어머니, 아내, 딸, 심지어는 첩이나 기생 같은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만 나온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history)가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남성의 역사(his-story)'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저자는 조선의 역사 속에서 여성의 역사만을 찾아봤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 <에로틱 조선>이다.


조선의 역사 속에서 여성의 역사만을 찾아보니 그 실체는 참담했다. 가부장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여성은 남성들이 성욕을 풀고 번식을 하기 위해 이용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절대 권력을 지닌 왕은 물론 유교를 숭상하는 점잖은 양반들도 부인 말고도 첩을 여러 명 거느리는 일이 허다했고, 기생과 어울리거나 집안일을 돕는 여종을 취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정실부인이나 첩이나, 여염집 여인이나 기생이나, 궁녀나 의녀나, 신분이 다르고 지위가 달라도 남성의 희롱과 강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존재라는 점은 같았다. 같은 죄를 지어도 남자는 가볍게, 여자는 무겁게 처벌받는 경우도 많았고, 남자라는 이유로 처벌조차 받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춘화나 육담이 크게 발달하지 않은 편이다. 이는 달리 생각하면 직접 성행위를 해서 성욕을 해소하는 것이 언제든 가능하고 딱히 지탄받는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인 춘화나 육담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뜻도 된다. 이 책뿐 아니라 다른 책들을 봐도 조선 시대의 성 문화는 모순적인 점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배층은 유교를 근거로 피지배층의 성생활을 통제하려고 했다. 이는 반대로 생각하면 지배층이 피지배층의 성생활을 통제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만큼 피지배층의 성생활이 자유분방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문제는 그러한 자유가 남성에게만 허용되고 여성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부장제를 위협하는 존재인 동성애자, 양성애자에 대한 탄압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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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목격자 - 한국전쟁 종군기자 마거리트 히긴스 전기
앙투아네트 메이 지음, 손희경 옮김 / 생각의힘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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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서, 언론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관해 성찰해볼 기회를 주는 멋진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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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목격자 - 한국전쟁 종군기자 마거리트 히긴스 전기
앙투아네트 메이 지음, 손희경 옮김 / 생각의힘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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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해병대를 상징하는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말을 만들어낸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미국의 종군기자 마거리트 히긴스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앙투아네트 메이의 책 <전쟁의 목격자>는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콩고 내전, 베트남전쟁을 직접 현장에서 취재한 전설의 종군기자 마거리트 히긴스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마거리트 히긴스는 1920년 홍콩에서 태어났다. 마거리트의 부모는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성품을 지닌 분들이었다. 마거리트는 부모를 따라 홍콩뿐 아니라 베트남, 프랑스 등 여러 나라의 여러 도시를 오가며 지냈고, 정규 교육을 받을 때가 되어 미국에 정착했을 때는 자유롭게 여행하며 지냈던 시절을 몹시 그리워했다. 이후 사립 학교를 거쳐 뛰어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마거리트가 그 시절 대부분의 젊은 여성들처럼 바로 결혼하지 않고 언론사 취업이라는 길을 택한 것은, 당시에는 대학을 졸업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진로가 몇 안 되었고, 전쟁 중에 외국에 나가려면 언론사에 취업해 해외 특파원 또는 종군 기자가 되는 길 정도뿐이었기 때문이다.


마거리트는 당시로서는 드문 '여성' 기자로서 수많은 차별과 제약에 부딪혔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언론은 남성 중심으로 운영되며, 남성 우월주의에 물든 업계였다. 남성들이 혈연, 지연, 학연 등을 동원해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받는 혜택을, 여성인 마거리트는 조금도 누릴 수 없었다. 오히려 남성들은 마거리트가 성적 매력을 이용해 고급 정보를 빼내고 일감을 따낸다는 소문을 퍼뜨리며 마거리트의 평판을 더럽히고 마거리트를 괴롭혔다. 그때마다 마거리트는 남성들에게 바로 반격하는 대신, 남들보다 두 배나 많은 자료를 읽고 세 배나 많은 질문을 하면서 일에 몰두했다. 마거리트가 그저 베갯머리송사로 일하는 기자였다면, 그 많은 전쟁에 종군기자로 따라나서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 많은 기사들을 그토록 빠르게 써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마거리트 히긴스의 개인사도 흥미롭지만, 마거리트 히긴스가 겪은 한국전쟁 이야기도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감동을 선사한다. 1950년 마거리트는 극동 아시아를 취재하라는 명을 받고 도쿄에 왔다. 도쿄에 도착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북한이 38도 선을 넘어 남하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마거리트는 기자의 본능으로 큰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하고 당장 한국으로 날아갔다. 마거리트는 이승만 정부가 한강 철교를 폭파해 그 즉시 민간인 수천 명이 사망하고 피난길이 막히는 현장에 있었다. 한국에 막 도착한 맥아더 장군과도 직접 만나 인터뷰했고, 인천상륙작전이 실행될 때도 군인들과 함께 도쿄에서 출발한 수송선을 타고 인천으로 왔다. 한국전쟁의 중요한 대목마다 마거리트 히긴스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대단한 인물인데도 후대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건 마거리트가 '여성의 몸으로 감히' 남성의 영역에 도전해 남성보다 뛰어난 성취를 보였기 때문이다. 1951년 마거리트는 한국전쟁을 취재한 공로를 인정받아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은 여전히 마거리트의 실력과 열정을 신뢰하지 않았고, 마거리트가 성적 매력을 이용한다고 비방했다. 남성 기자 중에도 자유롭게 연애를 즐기는 사람이 많고, 정작 그런 남자들은 '남자답다', '남자로서 능력이 있다'고 추켜세워지는데 말이다. 심지어 남성들은 마거리트의 공적을 가로채거나 아예 마거리트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도 신문사에선 남성 기자를 보낼 테니 마거리트는 돌아오라는 성화가 대단했다.


한국인으로서는 "한국은 여자들이 갈 곳이 아닙니다."라는 걱정 어린 경고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와서 한국전쟁을 취재해준 마거리트 히긴스에게 감사하다. 남성이 아니라 여성의 시각으로 전쟁을 경험하고 관찰하고, 자신이 만난 한국 여성들의 일화를 기록으로 남긴 것도 고맙다. 전쟁 중에 마거리트를 도와준 열일곱 살짜리 남한 소녀 김성영은 미국 군인과의 사이에 아이를 하나 낳았으나 이후 공산주의자들이 아이를 쏴 죽이는 일을 겪었다. 만약 마거리트가 아니라 남성 기자가 종군기자로 왔다면 이런 사연이 기록으로 남았을까. 이렇게 대단한 일을 했지만 사적으로는 행복하지 못했고, 마흔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부디 그의 뜻을 기리고 따르는 여성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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