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
김예지 지음 / 성안당 / 2020년 7월
평점 :
품절

대학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만 해도 나의 의욕은 하늘 높은 줄 몰랐다. 모임이라는 모임에는 다 나가고, 만나는 사람마다 연락처를 물으며 친해지려고 애썼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번아웃이 왔다. 학교 수업 외에는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핑계로 만남을 줄이고 사람을 덜 만나니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지 않을 때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라는걸.
갑자기 이런 생각을 떠올린 건, 간밤에 <저 청소일 하는데요?>의 작가 김예지의 신간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를 읽었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만 해도 의욕이 넘쳤다. 성인이 되었다는 설렘, 대학에 왔다는 성취감에 빠져 매사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갑자기 번아웃이 왔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 아닌 누군가를 연기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딱딱하게 굳었고, 극심한 불안을 느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후에도 이런 증상이 계속되었다.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알고 보니 저자의 증상은 '사회 불안 장애'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불안 장애 증상이었다. 문제는 병명을 안다고 해서 바로 치료되지는 않는다는 것인데, 저자 역시 다년간 정신과 치료와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증상이 호전되는 경험을 한 적도 있지만 악화되는 경험을 한 적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사회 불안 장애가 있는 채로는 원활하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인데, 다행히 저자는 사람들과 대면할 일이 많지 않은 청소 일을 하면서 생계를 해결할 수 있었다.
나아가 저자는 청소 일을 한 경험을 담은 책 <저 청소일 하는데요?>를 펴내 꿈에 그리던 첫 책도 내고,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도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사는 것도 어렵고, 죽는 것도 어렵지만 그래도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이런 생각을 떠올리기까지 얼마나 괴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상상이 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보기로 결심해서 멋진 책을 두 권이나 내줘서 고맙다. 남들 다하는 사회생활이 너무나 힘에 부치는 사람, 사람 만나는 일이 점점 더 괴롭고 두려워지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