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리슨 벡델의 <펀 홈>이 워낙 좋았기에 그보다 좋은 책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당신 엄마 맞아?>를 읽은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펀 홈>이 100점 짜리 책이라면 <당신 엄마 맞아?>는 200점 짜리 책이다. 딸과 엄마의 지독한 관계를 이토록 생생하고 적나라하게 묘사하면서 심리학, 사회학 등에 기반한 해설까지 알차게 갖춘 책을 이제까지 본 적이 없다.
<당신 엄마 맞아?>는 <펀 홈>의 연속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전작인 <펀 홈>이 결혼한 게이인 아버지에 관해 다뤘다면, <당신 엄마 맞아>는 배우자가 게이임을 알면서도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힘쓴 어머니에 관해 다룬다.
저자는 남동생만 둘 있는 장녀로, 성장하는 내내 어머니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는 워킹맘인 데다가 남편과 세 아이를 돌봐야 했고, 때로는 남편이 일종의 부업으로 하는 장의사 일도 거들어야 했다. 저자는 어머니가 자신을 아기처럼 돌봐주길 원했지만, 오히려 어머니는 장녀인 저자가 어머니를 더 돕지 않는다고 질책했다(한국이나 미국이나 장녀란...).
심지어 어머니는 자신이 결혼을 하면서 포기한 직업적 성공이나 예술적인 성취를 저자가 이루는 것을 방해하고 질투하기까지 했다. 저자는 어머니에게서 마땅히 받아야 할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데에서 크나큰 심리적 고통과 감정적 결핍을 느꼈다. 저자는 자신이 '엄마의 딸'이 아니라 '엄마의 엄마' 같다고 느꼈고, 차라리 '엄마 없는 아이', '버려진 아이'에 가깝다고 느꼈다. 결국 저자는 오랜 기간 동안 심리 상담을 받았다.
동봉된 편지에는 '네가 어렸을 때, 만약에 네가 유명한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된다면 내가 미치도록 질투하게 될 것 같다고 생각한 기억이 난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로부터 17년 뒤 아버지에 관한 책을 쓰기 전까지 나는 다신 내 삶을 소재로 글을 쓰지 않았다.
앨리스 밀러는 부모에게 순응하기 위해 스스로의 감정을 억누르는 아이들은 일종의 버려짐을 겪은 아이들이라고 썼다. 또한 어머니가 아이에게 순응을 요구하는 것은 어머니 당신의 어머니로부터 거부당한 것을 얻고자 하는 시도일 뿐이라고 했다.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저자는 어머니 또한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받고 싶었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머니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받은 무시와 차별을 딸인 자신에게 행사한 것은 잘못이지만, 어머니조차 자신의 어머니에게 받지 못한 인정과 사랑을 구하는 것 또한 잘못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내가 엄마에게 얻고자 하는 것이 다만 엄마에게 있지 않을 뿐이었다. 그건 엄마 잘못이 아니었다.")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라 한 사람의 여성으로 보고 이해하는 경험도 한다. 어머니도 한때는 젊고 야심만만했다. 지적으로도 뛰어나고 예술적으로도 재능이 많았다. 만약 어머니가 이십 년, 아니 십 년만 늦게 태어났다면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미국에서) 동성혼이 좀 더 일찍 합법화 되었다면 성정체성을 속인 남편과 결혼해 억지로 정상 가족을 유지하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저자는 또한 수많은 책을 읽으며 어머니와 아이의 감정적 연결에 관해 공부한다. 엄마와 아기는 원래 한 몸이었던 존재다. 출산으로 인해 신체가 분리된 후에도 정신적으로는 연결 상태가 오랫동안 유지된다. 엄마의 마음이 곧 아기의 마음인 것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아기는 엄마한테 마음을 의존하는 대신 자기 스스로 마음을 형성하는 방법을 배운다. 이때 엄마를 대신해 아이의 마음을 형성하는 것이 바로 '이야기'이다.
문제는 우리 모두가 여성의 몸속에 있다가 태어났다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 모두 태어나자마자 여성에게 '의존'했다는 사실입니다. 여성에게 한때 의존했다는 당혹감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잔존하며, 완전히 성숙한 인격에 도달하였을 때에 이에 대한 혐오감은 일종의 감사로 바뀝니다. (위니캇)
내 어머니에게 받지 못한 것이 있다. 결핍과 간극과 공백이 있다. 하지만 그 대신 어머니는 내게 다른 것을 주셨다. 아마도, 훨씬 더 값진 것. 그녀는 내게 출구를 주었다.
비록 어머니로부터 받고 싶었던 인정과 사랑은 받지 못했지만, 저자는 어머니에게 받지 못한 인정과 사랑을 스스로 채우는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얻었다고 말한다. 어머니와의 스킨십이 거의 부재했고 아프다는 말조차 꺼낼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랐지만, 덕분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 수 있었고 레즈비언이라는 사실도 빨리 자각했다. ("나중에 나는 내가 사회성이 부족한 것을 동성애자인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지금은 레즈비언으로 산다는 것이 나를 구해 줬다고 여긴다.") 저자는 어머니가 부재한 마음의 자리를 이야기로 메우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책을 읽었고 자신도 창작자가 되었다.
책의 마지막에 저자는 이렇게 썼다. "그녀는 내게 출구를 주었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고 기나긴 터널을 지나 마침내 출구를 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