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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이방인의 산책
다니엘 튜더 지음, 김재성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평점 :

한국에 사는 백인 남성에 대한 편견이 있다. 외국 살이가 쉬운 사람은 없겠지만, 외국 살이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백인 남성이 겪는 외국 살이와 비(非) 백인, 비(非) 남성이 겪는 외국 살이는 분명 큰 차이가 있을 거라는 (경험에 기반한) 짐작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사는 백인 남성, 다니엘 튜더가 쓴 이 책을 읽은 것은 이 책의 주제가 '외로움'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외로움은 단순히 외국에 오래 살아서 외롭다는 수준이 아니다.
어느 날 저자는 영국에 계신 어머니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퇴직 후 우울증을 앓았던 아버지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무사했지만, 저자는 이 일을 계기로 외로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객관적인 조건만 보면, 아버지는 괜찮은 삶을 산 축에 속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오랫동안 외로움에 시달렸다. 직장 내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했고, 하나뿐인 친구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가족들하고만 소통했다. 경제적 곤란이 해결되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져도 자동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있다. 저자는 그것을 연결에 대한 갈망이라고 보았고, 한국에도 이런 문제가 만연해 있다고 보았다.
이 책에는 저자가 11년째 한국에 살면서 발견한 외로움의 신호, 고독의 전조들에 관한 설명이 담겨 있다. 저자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저자의 행동이나 발언을 두고 서양식 개인주의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많았다. 직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지 않고, 회식과 술자리, 주말 등산을 싫어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최근에는 저자 같은 한국인이 전보다 크게 늘었다. 서양식 개인주의가 만연해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생활수준과 교육이 발전하고 현대화된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
문제는 개인주의 자체가 아니라 개인주의의 변질, 개인주의로 인한 폐해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은 낯선 사람을 점점 덜 믿고 사회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각자도생', '이전투구'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이러한 경쟁에서 탈락한 개인을 수용하고 지원해 줄 사회 시스템이 없으면, 우울증, 공황장애 같은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사람이 점점 늘어날 것이고,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증가할 것이다. 이미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영국에선 '외로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까지 만들었다. 한국인에게도 멀지 않은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