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도시, 두번째 예술 - 국적과 국경을 뛰어넘은 어느 사회학자의 예술편력기,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노명우 지음 / 북인더갭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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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유학 시절에 여행한 유럽의 도시들을 중년이 되어 다시 여행한다는 콘셉트의 책이다. 단순히 여행기라고 하기에는 읽을거리가 많고 생각할거리도 풍부하다. 

시간적으로는 기원전 3만 7천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프랑스 쇼베 동굴의 벽화부터 20세기 러시아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연주까지, 공간적으로는 이스탄불에서 피렌체, 빈, 파리, 베를린,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쳐 서울에 다다르기까지를 다룬다. 그만큼 읽기가 쉬운 책은 아니지만 한 번 읽으면 유럽의 정치, 문화, 예술사를 잘 정리한 기분이 들 것이다. 

음악의 형식이나 분위기는 전혀 다를지 몰라도 (모차르트가 추구한) "장인도 신하도 아닌 자율적인 예술가"였다는 점에서 모차르트를 가장 잘 계승한 음악가는 쇤베르크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바그너의 열렬한 팬이었던 히틀러가 자신의 정치 행사에 바그너를 이용한 방식을 통해 정치와 예술의 관계를 설명한 대목도 흥미로웠다. 

유럽에서 시작된 여행이 유럽에서 끝나지 않고 (저자가 사는) 서울에서의 여행으로 마무리되는 결말도 좋았다. 숭례문과 한양 도성, 광화문, 전봉준 동상과 전태일 동상, 탑골공원, 간송미술관, 평범한 업무용 빌딩처럼 보이지만 김근태나 박종철 같은 민주화 열사들이 고문당한 장소인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등. 일상에서 여행을, 예술에서 역사를 발견하는 눈을 나도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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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돌로지 - 전복과 교란, 욕망의 놀이
스큅 외 지음, 연혜원 기획 / 오월의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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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서 읽은 책이다. H.O.T부터 NCT까지 25년 넘게 케이팝을 좋아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동안 거쳐온 팬덤 내의 문화와 변화가 이 책 한 권에 응축되어 있는 느낌...! 


이 책은 케이팝이 한국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현상의 기저에 퀴어 프렌들리한 면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책에는 "Speak yourself"라는 제목으로 UN연설을 한 BTS, 개인 SNS를 통해 "LGBT 커뮤니티를 지지한다"라고 밝힌 선미, "LGBT+ 팬덤을 향해 감사의 메시지를 전한 이달의 소녀 등의 사례가 나온다. 당장 유튜브만 검색해 보아도 케이팝 아티스트들이 LGBT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을 한 영상이 다수 나오고, 이에 대해 다수의 해외 팬들이 긍정적인 피드백을 보낸 것을 알 수 있는데, 한국 언론은 (케이팝 아티스트들의 수상 실적이나 판매량에는 주목해도) 구체적인 인기 요인이나 팬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다. 


나아가 이 책은 케이팝과 팬덤 문화의 퀴어적인 속성에 대해서도 분석한다. 단순히 케이팝에 게이 문화 또는 레즈비언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는 정도를 넘어서, BL, 팬픽션, 알페스 등 팬덤 문화가 내포하고 있는 퀴어성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이를테면 게이가 여자 아이돌(을 비롯한 여성 아티스트)을 좋아하는 경우는 흔한데, 레즈비언이 남자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하면 '진짜 레즈비언'이 아니라는 소리를 듣는 이유는 뭘까. 남돌 팬픽은 성애 묘사의 수위가 높은데 반해 여돌 팬픽은 그렇지 않은 이유는 뭘까. 알페스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심리의 기저에는 무엇이 있을까 등등. 


이성애 독점 관계만을 '정상적인' 성애의 형태로 인정하고, 성인이 되면 모든 사람이 (이성 간의) 연애-결혼-임신-출산-육아를 해야 한다고 믿는 한국 사회에서,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케이팝을 중심으로 모이고 연결되는 현상에 대한 분석도 흥미로웠다. 나는 이성애자 여성이지만 결혼-임신-출산-육아를 하지 않아서 동년배의 이성애자 여성들에게 유대감을 느끼기 어려운데, 이로 인한 소외감을 팬덤을 통해 해소한다. 성소수자의 경우 원가족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BTS의 <화양연화> 시리즈에 나오는 대안가족 콘셉트처럼 혈연이 아닌 타인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삶의 모습을 보면서 위로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감동적인 대목도 있었다. 소녀시대는 원래 성인 남성 소비자층을 주요 타깃으로 만들어진 걸그룹인데, 2016년 이화여대 시위에서 학생들이 소녀시대의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른 후로 이 노래가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힘을 실어주는' 노래로 재해석/재정의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아티스트들을 상품화하는 자본의 논리를 뛰어넘는 팬들의 활동이 나는 너무 재미있고, 이것이 결국 케이팝의 인기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전 세계로 퍼지는 비결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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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친구들 1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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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 기자님의 책 <코난 도일>을 읽다가 알게 된 책이다. 제목이 <용감한 친구'들'>이라서 셜록 홈즈와 왓슨에 관한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들'의 정체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알지도 못했고 상상도 못한 인물이었다. 바로 아서 코난 도일이 생전에 구명 운동을 해준 남자 조지 에들지. 사실 이 책의 원제는 <아서와 조지>라고. (이 제목이 훨씬 명확하지 않나?) 


소설은 <셜록 홈즈>를 쓴 유명 작가 아서 코난 도일과 목사관 출신의 사무 변호사 조지 에들지의 삶이 한 점에서 만나고 다시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서와 조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읽을 때는 두 사람이 비슷한 점이 많아 보였다. 유복하지 않은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는 점도 그렇고,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다는 책 읽고 공부하는 걸 더 좋아했다는 것도 그랬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아주 명확하게 구별되는 차이점이 있었다. 바로 피부색이다. 인도 파르시 출신의 아버지를 둔 조지는, 비록 영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자란 영국인이지만 앵글로 색슨계 영국인(백인)들과 달리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조지는 자신의 피부색이 출세에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열심히 공부해서 법률 시험을 통과해 일찍 사무 변호사로 자리 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조지에게 비극적인 일이 생기고, 몇 년 후 우연히 조지의 일을 알게 된 코난 도일이 조지에게 만남을 청한다. 사람들은 <셜록 홈즈>의 작가 코난 도일이라면 조지의 일을 쉽게 해결해 줄 거라고 기대했지만, 영국의 사법 체계는 당대 최고의 명사이자 추리 소설 작가인 코난 도일에게도 버거운 상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판 남인 조지를 돕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나선 코난 도일. 조지의 인생은 그와의 만남을 통해 180도 바뀐다. 


이 소설은 실존 인물인 아서 코난 도일과 조지 에들지의 생애를 그린 전기 소설로도 볼 수 있고, '드레퓌스 사건'에 비견되는 영국의 사법 체계에 큰 발전을 가져다준 사건을 재조명한 역사 소설로도 볼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잔혹한 범죄의 용의자로 몰린 조지 에들지를 '살아 있는 셜록 홈즈' 아서 코난 도일이 구제해 주는 미스터리 범죄물로도 볼 수 있는데, 이 모든 요소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직까지도 최고의 추리 소설 작가로 손꼽히는 아서 코난 도일의 개인사를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첫 번째 부인이 병석에 누워 있는 동안 훨씬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첫 번째 부인이 죽고 일 년도 지나지 않아서 결혼식을 올렸다니... 불륜에 대한 죄책감, 사회적 지탄에 대한 불안감 등을 잊으려고 조지 에들지 사건에 매달렸다는 암시도 나오는데, 과연 사실일까. 진실은 오래전에 돌아가신 그 분만이 알고 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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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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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의 첫 여행 산문집이다. 2012년부터 9년에 걸쳐 집필한 책으로, 여행지는 미국 뉴욕, 독일 아헨, 일본 오사카, 대만 타이베이, 영국 런던이다. 첫 여행지인 뉴욕으로 떠날 때만 해도 저자는 지금처럼 책만 냈다 하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는 인기 작가가 아니었다. 낮에는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밤에는 소설을 써서 투고하는 생활은 고단했고 보람도 없었다. 


결국 저자는 출판사를 그만두고 소설에 '올 인' 하기로 결정했다. 때마침 뉴욕에서 유학 중이던 친구가 손짓을 했다. 돈도 없고 직업도 없는 서른 직전의 싱글 여성이 뉴욕에 간다니. 그때는 미친 짓 같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너무 잘한 선택이었다. 한 달 동안 뉴욕의 미술관과 박물관, 서점 등을 둘러보고, 혼자서 걷고 글 쓰고 생각하며 저자 안에 쌓인 것들이 결국 훗날 저자가 쓴 소설들의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보고 먹고 마신 것들이 주(主)인 책이지만, 세심한 관찰과 진지한 성찰이 담긴 대목도 많다. 미국과 유럽을 여행할 때 빈번하게 경험한 인종차별과 캣콜링에 관한 이야기도 있고, 관광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환경 파괴와 자원 낭비에 관한 언급도 있다.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어 보여서, 언젠가 미술을 주제로 책을 한 권 써주셨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행지에서의 경험이 <시선으로부터> 같은 작품에 어떤 식으로 반영되었는가 하는 후일담도 좋았다. 런던이 배경인 영화를 봤을 뿐인데 이벤트에 당첨되어 선물로 받은 왕복 항공권으로 런던에 다녀온 이야기는 저자의 소설 도입부처럼 신기하고 흥미진진했다. 찰스 디킨스, 아서 코난 도일 같은 유명 작가들과 관련이 있는 장소에 갈 때마다 그곳의 벽을 만지며 문운을 빈다는 이야기도 좋았다. 부디 오래오래 쓰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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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조금
유진목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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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목 시인이 트위터에 올리는 사진들을 보면서, 유진목 시인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바다가 보이는 장소에 사랑하는 사람과 서점을 차리고, 책을 팔고 글을 쓰는 삶. 유진목 시인의 책 <거짓의 조금>을 읽은 지금은 어떨까. 여전히 유진목 시인의 사는 모습이 멋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그가 현재의 삶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많이 괴롭고 아프고 때로는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는 걸 알겠다. 그러니 남의 삶을 함부로 짐작하거나 멋대로 부러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나를 세상에 내놓은 부모에게도 사랑받지 못해서 부모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고통의 연쇄 작용. 그런데 왜 나는 (저자와 달리) 나를 지켜주는 아버지와 나를 좋아하는 어머니를 가졌음에도 나의 부모를 좋아하지 못할까. 자신들의 방식으로 사랑해놓고 나에게 필요한 사랑을 모두 주었다고 착각하는 부모를 언제쯤 용서(하거나 체념)할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태어나지 않는 편이 좋았다고 자책하면서 오지 않는 잠을 청하는 밤이 멈출까. 


마음에 사랑이 그득한 사람들이 부럽고,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내가 부끄럽고, 나처럼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여기 또 있다고 말을 걸어주는 이 책이 있어서, 그래도 어제는 잠을 조금 덜 설친 것 같다. 시인님 부디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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